“세상에서 가장 빨리 끝나는 폭죽을 샀다.” -서윤후의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에 수록된 〈스무 살〉
우리가 기억하는 ‘청춘’
지난여름 참여했던 글쓰기 수업 때 서윤후의 시집 《어느 누구의 모든 동생》을 읽고, 마음에 드는 시를 낭송했다. 가장 짧아 낭송하기 편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강렬했던 시 〈스무 살〉을 두고 각자의 스무 살, 혹은 청춘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듣던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 스무 살은 가장 빨리 끝나는 폭죽이 아니라 불발된 폭죽이었어요.”
그때 내가 살던 자취방은 불을 켜지 않으면 낮에도 어둑하고, 누군가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종일 사람 그림자는 찾아보기 힘든 허름하고 외진 방이었다. 하루 종일 누워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는 기형도의 시를 중얼거리며 허세를 부리기 딱 좋은 방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그때 나는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내 인생을 낭비했다. 나는 “세상이 너무 사랑스러워 뒹구는 돌눈썹 하나에도 입맞춤”(곽재구)하는 보드라운 청춘 따윈 내 몫이 아니라 생각했다. 오히려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기도 하고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최승자),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에 가까웠다. 지금 생각하면 이유를 알 수 없으나 버릇처럼 “50세에 죽을 거야”라고 호기롭게 말하곤 했다. 가장 찬란한 시절에 생각하는 죽음이라니! 세상에서 가장 빨리 끝나는 폭죽 뒤에는 길고 독한 어둠과 화약 냄새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알고 했던 이야기일까? 아무튼 인생은 빛과 어둠, 찬란과 우울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았던 것 같다.
JTBC 드라마 〈청춘 시대〉는 겉모습만 보자면 “세상이 너무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곽재구의 시구에 더 어울리는 드라마다. ‘벨 에포크’라는 셰어하우스에 사는 다섯 명의 20대 청춘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청춘’(靑春)이라는 한자의 조합이 말하듯 그늘 따위는 끼어들 틈 없는, 싱그럽고 따뜻한 이야기로 채워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첫 회부터 그런 기대와 예측을 배신하며 싱그런 청춘의 이면, 폭죽 뒤의 어둠을 보여준다.
서울 소재 대학에 입학하여 셰어하우스의 일원이 된 소심한 신입생 유은재(박혜수)에게는 설렘보다는 불안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발랄하지만 이기적인 정예은(한승연)은 요요현상을 두려워하고, 오랜 연인과 관계에서 언제나 ‘을’이어서 고민이 많다. 휴학을 반복하며 과외와 레스토랑, 야간 편의점 알바까지 뛰어야 겨우 생존을 하는 윤진명(한예리)은 자신에게 사랑은 사치라 생각한다. 일요일 저녁 창가에서 마시는 맥주가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사치다.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는 강이나(류화영)는 대학생이 아니라 ‘가짜 애인’을 여러 명 만들어 용돈을 받아 생활하는 ‘창녀’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산다. ‘여자 신동엽’으로 불리며 유쾌하게 무리를 이끄는 송지원(박은빈)은 ‘모쏠’이라 슬프다. 그리고 이 다섯 명을 연결하는 단어는 청춘이 아니라 ‘귀신’이다.
‘살해당한 영혼’ 곁의 청춘
“나 귀신 본다. 저 뒤에 있어.” 뒤늦게 합류한 은재의 환영식 날, 각자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놓기로 하고 시시껄렁한 비밀을 이야기하며 깔깔거릴 때 지원은 뜻밖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청춘 드라마가 오싹한 스릴러로 장르를 전환하는 순간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귀신이 있다’는 말에 관한 하우스 메이트들의 반응이다. 그들은 지원의 말을 취기에 의한 헛소리로 흘려듣지도 않고, 놀라지도 않았다. 다만 조용히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신발장을 응시하며 자신과의 연관성을 떠올렸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엔 밝혀지지 않았지만) 은재는 ‘사람을 죽인’ 사연이 있고, 진명에게는 6년째 식물인간 상태로 버티고 있는, ‘죽었으면 하는’ 동생이 있다. 이나는 사고 난 배에서 탈출하여 구조되기까지 물에 떠 있기 위해 꼭 필요했던 가방을 두고 사투를 벌이던 ‘사람을 죽이고’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산다. 지원은 어쩌다가 귀신을 보게 되었는지, 그가 보는 귀신의 정체는 무엇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그 귀신을 “살해당한 영혼”이라 구체화했다. 청춘의 심연에 자리 잡은 ‘살해당한 영혼’의 존재는 청춘을 상징하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흔히 청춘을 가장 빛나던 시절로 기억하지만, 기억은 조작과 미화에 기반을 두어 재구성되는 법이다. 실제 ‘살아내는’ 청춘은 “손톱이 빠졌는데 이렇게 아픈 줄 몰랐어”라는 진명의 말처럼, 아픈 줄도 모르게 아픈 법이고 살아 있(다 여겨지)는 삶조차도 ‘이미 죽은’ 삶일 수도 있다. 특히 진명의 삶이 그렇다. 6년째 죽지 않아 엄마의 삶도, 자신의 삶도 빚에 허덕이게 만든 동생의 병실에서 뭐에 홀린 듯 동생의 호흡기 쪽으로 손을 뻗은 자신에게 “동생 안부도 묻지 않는다”며 타박하는 엄마 말에 진명은 대답한다. “죽은 사람 안부도 물어요?” 이미 죽은 사람 곁의 삶이란, 지독할 수밖에 없다. 레스토랑 매니저에게 성희롱을 당해도 견뎌야 하고, “자꾸 기대게 될까 봐” 사랑도 밀어낸다. 죽음이 삶을 잡아먹는 것이다. 반면 이나의 삶은 누군가의 죽음을 대가로 가능하게 된 삶이다. 그는 물속에서 살기 위해 함께 발버둥치다 죽어버린 또래 여자 아이를 자신이 죽였다 생각하며 그 사건 이후 자기 삶을 방치하게 된 것이다. 죽음이 청춘을 청춘일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싱그러운 청춘들 곁을 맴도는 ‘살해당한 영혼’은 어쩌면, 청춘이 고스란히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빚’들이다. 누군가의 목숨에 빚진 삶, 삶을 지그시 눌러 숨조차 ‘죄’로 만드는 순간들. 어쩌면 청춘뿐 아니라, 살아있는 존재들은 모두 ‘살해당한 영혼’ 위에서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살해당한 영혼’ 자체가 청춘이던가! 그러므로 청춘 드라마를 뜬금없이 ‘죽음’과 연관 지은 박연선 작가의 통찰은 지극히 옳다.
그렇다고 드라마가 청춘을 마냥 우울하게 그리진 않는다. 청춘을 청춘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시대, 고통 값을 터무니없이 비싸게 치러야 하는 시절에도 청춘은 제 빛을 잃지 않는다. 은재는 설레는 사랑을 시작하고, 예은은 드디어 을의 연애에 이별을 고한다. 이나는 자신의 꿈에 나타나 괴롭히는 ‘살해당한 영혼’의 눈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진명은 면접을 본 회사에서 1차 심사에 합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많은 오해와 상처가 ‘벨 에포크(Belle·poque : 아름다운 시대)’를 수시로 전쟁터로 만들지만 그들은 속 깊은 우정을 공유하며 슬기롭게 극복할 것이다. 청춘이 청춘인 이유는 상처와 고통을 애써 피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맞서고, 순간순간 만나는 푸른 신호들을 놓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살해당한 영혼’이 누군지, 누구에 의해, 왜 살해되었는지 용감하게 응시하며 성장하는 청춘이길 바란다.
오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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