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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과 칼끝에서 피어난 꽃 전시회를 열며- -김영배-
서예는 마음에 그림을 형태로 풀어내는 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예와 전각은 항상 함께해야 하는 관계입니다.
서예 전각과 살아온 지 40여 년을 맞이하여 전시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예작품은 시경·주역·사서에 나오는 문장과 한시를 주제로 삼아 작품을 했습니다. 해서로 금강경 5,000여 자를 쓰고, 행서로 전후 적벽부를 썼으며, 전각은 노자 전체문장을 변관(邊款)하고, 노자 81장의 문장을 각 장마다 한 구절씩 뽑아서 81개의 전각인면(篆刻印面)에 새긴 것이 특이할 만 한 작품입니다.
작품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마음에 와닿는 작품은 없습니다.
저의 미흡한 작품 관람하시고 고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도필생화(刀筆生花) -
청운서전(靑耘書展)을 기림
초정(艸丁) 권창륜(權昌倫) -일부 발췌
청운(靑耘)의 서품(書品)의 창경고졸(蒼勁古拙)한 필획(筆劃)의 선조(線條)와 도필(刀筆)의 자법(字法), 도법(刀法), 장법(章法)이 혼융(混融)된 솰필(刷筆)은 대전(大篆)과 한글 판본체(版本體)에서 그 백미(白眉)를 표출하였다.
서통즉(書通則) 변(變)이란 대명제(大命題)를 표방하여 이기위주(以氣爲主)로 휘쇄(揮灑)한 역작(力作)이 아닐 수 없다.
우선 도필(刀筆)과 모필(毛筆)의 특성을 혼효(混淆)시켜 천연의 선질(線質)을 표출시켜 자연미를 창출해 내었고, 나아가 형변(形變)과 체재(體裁) 변화를 가하여 장폭(長幅) 장체(長體)를 구사하여 감상자로 하여금 삽상(颯爽)의 쾌감을 자아내었다. 몇 작품의 특성을 짚어보면 <사랑품고> 한글 판본체 필의는 천균노(千鈞弩)의 선조(線條)로서 천지초판(天地初判)할 때 음양(陰陽)이 始生하는 畫質이 엿보인다.
출품작 가운데에서도 전서작품이 우수한데 <만상경신(萬象更新)>과 <명월고산(明月高山)>은 쾌도난마(快刀亂麻)하여 통쾌하고 <양신(養神)>, <포황(包荒)>은 신청(神淸)한가운데 태풍이 휘몰아치는 듯 한 의태(意態)며 <개벽동이왕(開闢東夷王)>은 광개토왕비 필의를 잘 살려 법상(法象)을 십분 표출하였다. <산고수장(山高水長)> 전서는 ‘산(山)’자와 ‘수(水)’자의 상형(象形)이 진경(眞境)의 백미(白眉)이다. <추야우중(秋夜雨中)> 행서는 시의(詩意)를 잘 파악하여 매우 삽상(颯爽)하면서 냉일(冷逸)한 운의(韻意)를 띠고 있다. <수류화개(水流花開)>, <창송명월(蒼松明月)> 초서는 개결(介潔)하며 청아(淸雅)하다.
<수박(守樸)> 전서는 고삽(苦澁)한 필조로 소밀(疏密)의 구성이 빼어나다. <풍류유아역오사(風流儒雅亦吾師)> 전서작품은 강인한 선조(線條)와 후중(厚重)한 체태(體態)로서 융화되었다. <향(享)> 전서는 상부는 농묵(濃墨), 하부는 담묵(淡墨)으로 처리하여 누각(樓閣)의 그림자가 호수에 비쳐서 유영(游泳)하는 듯하다. <연어가득(淵魚可得)> 갑골(甲骨)은 선질과 장법이 온아융창(溫雅融暢)하다. <누실명(陋室銘)> 인전필의(印篆筆意)는 도필(刀筆)의 경직된 체상(體相)에서 음율(韻律)을 자아내었다. <전각(篆刻)>81편은 도규(刀圭)의 공력을 잘 표현해낸 회심(懷心)의 거작이다.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은 혼돈(渾沌)의 상태에서 음양이 태동하려는 듯한 태고(太古)의 원형질(原形質)을 방불케 한다. 이상으로 몇 작품을 예로 들어 보았다. 청운의 학서태도와 의취(意趣)는 서법이 지향 해야할 바를 습학(習學)과 강단의 교수(敎授)를 통하여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에는 화질상반(華質相伴)과 신채(神采)로서 더욱 승화된 자창풍격(自創風格)을 이루기를 바라며서 이번 계묘전(癸卯展)의 대성(大成)을 빌고 많은 감상자(鑑賞者)의 호응이 기대된다.
2023년 한글날 藝舟觀 寒燈下 雙六尊子 艸丁 未定稿
서언(敍言)의 제호를 ‘도필생화(刀筆生花)’ 라 칭한 것은
이태백(李太白)이 꿈에 붓끝에서
연꽃이 핀 꿈을 꾼 뒤
더욱 문명(文名)이 드높아 진
몽필생화(夢筆生花)의 고사를 빌어
청운(靑耘)은 전각의 도필(刀筆)과
글씨의 모필(毛筆)의 상호 조화를
이루어 낸 것을 풍자하여
도필생화(刀筆生花)로 명제를 붙여보았다.
청운(靑耘)과의 인연(因緣) - 金基卓 (前 國立尙州大學校 總長)-
단풍과 더불어 결실의 계절, 10월을 맞이하면서 청운(靑耘)의 두 번째 서예 전시를 갖는다니 참으로 반갑고 축하를 드립니다. 그동안 갈고 닦은 자형(字形)의 묵향(墨香)이 가득 찬 개인전은 우리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와 풍성함을 더욱더 느끼게 합니다.
2013년 첫 개인전 이후, 두 번째 전시회를 갖는다는 것은 서예술(書藝術)에 대한 기(技)와 감각(感覺)이 겨우 눈을 뜨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예(書藝)는 이미 동양의 예술로 우리 선조들은 대(代)를 이어 오면서 한문·한글을 먹으로 자형(字形)을 예술적 표현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붓글씨를 통한 청운과 나의 만남은 참으로 우연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면면이 이어온 인연이 되었습니다. 사람과의 만남은 그저 인사로 끝내지만 만남이 거듭되면 인연으로 승화합니다. 청운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연묵회에 가입하여 사제(師弟)간이 되어 줄곧 깊은 인연을 맺어 왔습니다. 그 후 졸업시기가 되어 청운은 취업과 서예술(書藝術) 입문이라는 갈림길에서 방황할 때 나의 의견에 동의하여 주었습니다. 청운은 평생 고난과 싸우도록 서예술의 길을 가도록 권유했을 때부터 지도교수인 나와 청운의 심적부담과 고통은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심지(心志)가 굳은 청운은 참으로 대견하게 고난을 잘 참고 끊임없이 수련과정을 통하여 처음 입선작품이 세상에 선을 보였을 때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시골 청년이 자신의 젊음을 인사동 거리에서 오직 “예술의 꿈”을 위해 방황했으니,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고초는 말로 다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대학졸업과 동시에 확정된 취업을 마다하고 험난한 서예술(書藝術)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서울에서 참 스승인 초정 권창윤선생을 만나 예술의 기(技)를 익히면서 한편으로 학문의 이론을 연구하고자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까지 취득하였으니 진정한 예술인으로 입문하는 길목에 들어섰다고 봅니다. 고여있는 물은 상하게 마련이다. 청운에게 만족하지 말고 쉼 없이 항상 새로운 변화와 도약을 꿈꾸며 노력하는 진정한 예술가가 되라고 조언하였습니다. “영화묵연회”를 통하여 문하생들에게 지도하면서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열정으로 서예 보급에 실천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서예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은 유시무종(有始無終)으로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는 무한의 경지를 동경하는 수련입니다. 서(書)는 유공권(柳公權)이 말한 심정즉필정(心正则筆正)의 마음으로 항상 극기(克己) 뒤 따르지만, 순간순간의 고된 작업도 즐거움을 주는 매력이 있기에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청운(靑耘)! 항상 건강을 염려하면서 앞으로도 이 나라의 서예발전을 위해 끊임없는 정진을 기대하네. 지금까지 청운과의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2023. 10. 10
金基卓 (前 國立尙州大學校 總長)
서화동원(書畵同源)의 사유로 본 청운(靑耘)의 서예 세계
김대원(경기대학교 명예교수)
서예와 그림이 다른 장르라고 해도 동양문화권 서화가들이 추구하는 미의식은 대자연의 이치와 생동감을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사유가 담겨있다. 서화동원론의 핵심은 이런 사유에 의해 표현되어야, 그 작품이 훌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품의 연마과정도 서화가 다를 것 없다. 석도(石濤)가 “내가 50년 전에는 산천의 원리를 벗어나지 못했어도 나는 산천을 하찮게 여기지는 않았더니, 산천이 산천으로 하여금 스스로 사사롭게 되었다. …기이한 봉우리를 다 찾아서 초고를 그렸다. 그 결과 산천은 나와 정신으로 교류하여 그림이 변화하였다.”고 했다. 이 말은 청운의 서학과정과 상통하리라 본다.
서예를 비롯한 다른 예술들도 그들의 양식이나 법식만을 계승한다면, 이는 쇠퇴하게 되어 종말을 맞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를 면하려면 창신적(創新的) 계승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은 청운도 인식하고 있으리라.
청운의 자유분방한 필묵 구사를 보면 서예나 서법이나 서도라고 하는 묵시적 경계는 보이지 않는다. 농담이 공존하는 필치에서 필력이니 필법이니 하는 등의 방법적 문제를 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먹의 농담을 드러내고 먹의 번지는 특성을 드러내면서 글씨를 쓴다는 것 자체도 용납되지 않는 서예가들도 있을 것이다. 이를 서예의 경계를 허물어 서법을 해체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위에서 석도의 말을 인용했듯이 청운의 서학과정은 몇 십 년은 족히 넘었으니, 선본(善本)과 본받을 만한 법첩(法帖)은 모두 찾아서 석도가 기이한 봉우리를 다 찾아서 초고를 그렸듯이 서법을 익혔으니, 법고창신(法古創新)한 세계를 보여줄 때라 하겠다. 청운의 석사·박사과정을 곁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다.
청운의 서예나 전각작품을 볼 때 항상 기운(氣韻)을 느낀다. 청나라 장경(張庚)이 기운을 논했듯이 기운은 필묵에서 나오는 것도 있으며, 생각에서 나오는 것도 있으며, 생각지도 않는 중에 나오는 것도 있다. 필묵에서 나오는 것보다는 뜻에서 나오는 것이 바람직하며, 뜻하지 않게 나오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였다.
이는 완숙한 경지를 의미하는데, 생각지도 않게 기운이 표현된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의 내면세계에 온축된 에너지가 자신도 모르게 표출되는 것이다. 이는 곧 고법을 탐구하고 기량을 연마한 노력의 결과라 하겠다. 연마과정이 고법을 배우며 고인을 모방하는 과정이라면, 이제는 모방의 길을 버리고 독자적인 길을 지향하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올바른 학습법이라 하겠다.
석도가 말한 기이한 봉우리를 찾아 초고를 그렸더니 그림이 변했다는 것도, 기존의 법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의 구체적 경물에서 그 경물의 정신을 스스로 체험하고 발견해냈기 때문이다. 서예 또한 그림과 다를 바 없기에 하는 말이다.
끝으로 모든 예술에서 가장 꺼리는 것이 속기(俗氣)이다. 속기를 제거하려면, 필묵 사이에 치기(稚氣)가 있을지언정 체기(滯氣)가 있어선 안 되고, 패기(覇氣)가 있을지언정 시기(市氣)가 있으면 안 된다. 속기를 버리는 데는 다른 방법이 없고 책을 많이 읽으면 서권기(書卷氣)가 상승하고 속기가 사라진다고 하였으니, 청운도 인문학적 소양의 온축과 함께 독자적인 서예의 길에 햇볕이 가득하길 빌면서, 화가의 입장에서 두서없이 몇 마디 올린다.
2023년10월3일- 김대원(경기대학교 명예교수)
-청운의 장수와 작품전의 성공을 기원하며-
-김건표-
1.
십여 년이나 되었을까? 한국의 원로 대가 한 분이 중국에서 중국미술과 서예에 대해 엄준한 평가를 한 적이 있다. 자유롭게 마련된 사석에서 별 준비도 없이 즉흥적으로 마음에 있는 그대로를 얘기한 것인데 이를 어떤 기자가 녹음을 하고 정리를 해서 어느 잡지에 발표를 하였고 이를 본 네티즌들이 퍼 나르기를 하며 한동안 중국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대략의 내용인 즉, 중국의 전통의 가장 핵심적인 미술이란 문인화이며 중국 철학과 사상 및 정신의 정수가 모두 문인화의 필묵으로 녹아있는데 지금의 중국미술은 그 정신과 철학이 퇴색되어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작금 미술을 하고 있는 대부분 작가들은 마치 영혼을 잃어버린 듯 마음이 오염되어 예술을 하는 정신머리가 되어 있지 않다고 했다. 돈과 집, 고급차만 쫓아다니며 겸손을 모르고 오만불손하여 중국의 현대미술을 매우 위험한 경계에 빠뜨리고 있다 하였다. 그러면서 이처럼 돈밖에 모르는 예술가들은 일찍이 본적이 없다고 설파하였다. 그 뒤에는 기자가 부르는 대로 몇몇 작가들을 품평하고 끝을 맺었는데 지금도 이 문장은 중국의 바이뚜에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거기서 별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어떤 작가는 그 불편한 마음을 나에게 토로하기까지 하였다.
어쨌든 이 외국에서 온 한 원로 선생님이 사석에서 토로한 이 내용을 본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였는데 너무 부정적이고 직선적이라 점잖지 못하다는 평들이 있는 반면에 일부 현역 작가들이나 미술 관련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외국의 작가분이 중국 미술계에 대한 안목과 작금 미술계 현실에 대한 민낯을 어떻게 이렇게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가 라며 ‘구구절절 폐부를 찌르고 있다(針針見血)’며 만연한 중국 미술계의 황폐에 대한 자책을 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어떤 행사에 참석하여 축사라도 하려고 하면 미리 원고를 사전 검열까지 받아야 하는 매우 형식적이고 관료적이어서 공석에서는 이런 얘기는 차마 꺼낼 수가 없고 일부러 한 잔 술을 핑계 삼아 그동안 보고 경험한 중국 미술계의 현재를 슬며시 흘려내 보낸 것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중국은 90년대 후반부터 팽창하기 시작한 미술시장 덕분에 작가들은 살림살이가 나아졌고 배도 볼록해진 것이 사실이다. 집이 바뀌어졌고 차를 새로 뽑고 틈만 나면 자기의 평당가(작품가격)을 입에 오르내리는가 하는 등 새 치장을 하는 작가들을 보고 부럽다 못해 은근히 부아가 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돈밖에 모른다’는 이 한국 선생의 문장을 읽고 있노라니 속이 아니 오장육부가 온통 시원해졌다.
그렇다. 중국은 당 차원에서 회화, 서예를 미증유의 예산과 정책으로 부흥에 나서고 있고, 그와 더불어 인민들의 문화에 대한 연민과 존경으로 큰 시장도 형성되었다. 그 바람에 경황도 모른 채 졸부가 된 작가들이 진정한 내면의 승화된 예술로서의 존경과 경외는 내팽개친 채 그저 영혼과 정신을 팔아서 얻은 번쩍거리는 고급 세단과 황금 장신구만 빛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본 것이다.
한국을 한번 보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는 갈수록 허기가 진다. 시대의 물결이란 것이 일말의 주저도 없이 한자와 서예를 벼랑으로 내몰았지만 그동안 우리는 이 엄혹한 현실을 마주하고도 온몸으로 부대끼며 끝까지 남아서 목숨조차 아까운 줄 모르고 버텨냈다. 어떤 이들은 모국어가 아닌 문자예술 서예는 그 공감대를 끌어내기가 더욱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잖아도 꽉 깨문 입술은 금방이라도 터지려고 하는데 쓸데없는 곳에 소모를 하고 있다. 한자가 어찌 우리문자가 아니던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원고에 한자어로 된 단어를 빼면 도무지 몇 자나 남겠는가? 심신은 허약해가도 눈빛만은 형형히 빛난다. 내 비록 자동차를 팔아 자전거를 사고 장신구를 팔아 쌀을 팔아도 이 서예예술의 절명에 대해 절대 자신은 죄인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는 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부릅뜨고 대오를 유지하는 한국 서예가 ‘영혼과 정신을 팔아먹는’ 그 어떤 곳의 서예보다도 더욱 절박하고 살아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2.
뚜벅뚜벅 묵묵히 오직 서예의 한 길만 걸어 온 청년 청운 김영배 선생이 어느 덧 회갑을 맞았다. 이에 발맞추어 주옥같은 작품을 모아 또 한 번의 감로를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다. 누구든 이 땅에 서예 개인전을 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출혈인지 우리는 안다. 이 용감한 사람들이야 말로 불리한 전세를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앞으로 돌진하는 전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던 길을 되돌아갔지만 그럴수록 자세를 고쳐 앉고 무뎌진 전각도를 새파랗게 갈아 놓는 사람이 청운이다.
청운선생은 나보다는 딱 한 살이 위다. 우리는 오며가며 자주 만났다. 세파에 심신이 무력해지면 무던히도 의지가 되던 청운이다. 아무 가진 건 없어도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며 또 힘을 내곤 했다. 마치 고향집 나지막한 밭두둑에 언제나 서 있는 한 그루 감나무처럼, 칠락팔락 도회지를 쏘대다 지친 몸으로 고향에 버스를 내리면 언제나처럼 지긋이 웃고 있는 밭두둑 위 한 그루 감나무, 말도 별로 없이 언제나처럼 한 구석에 세모 또는 네모처럼 앉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다각형인 우리들을 지긋이 보기만 한다. 툭툭 던지는 몇 마디가 대체 무슨 말일까를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가방끈을 목에 챙챙 감고 별 박힌 밤하늘 골목사이로 사라진다. 글쎄 목구멍이 막혀 숨이나 제대로 쉬어 지려나...
중국의 근대 초성(草聖) 임산지는 시집의 자서에서 시란 ‘성정일 뿐’[詩, 性情而已.]이라 했다. 性은 성품이요, 情은 정감 또는 감정이다. 성품은 바뀔 수 없는 것이지만 정은 그때그때 다르다. 청운은 그 본연의 성정대로 글씨를 쓴다. 그의 성품대로 글씨를 쓴다. 본성을 속이지 않는 글씨, 그래서 나는 그의 글씨나 인품을 얘기할 때 마치 삼군을 지휘하는 장군의 모습이라고 자주 얘기한다. 거의 모든 협회나 단체에 청운은 당당히 자리한다. 우리의 치열한 대오 속에 이 사람의 존재는 자랑이며 역량이다.
우리는 野狐(야우)처럼 미친 듯이 무엇이라도 해놓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아는 글씨들을 경계하여 傅山(부산)의 ‘四寧四毋(사녕사무)’를 자주 인용한다. ‘졸할지언정 교묘하지 않고, 추할지언정 아첨하지 않으며, 지리멸렬할지언정 매끄럽지 않고, 솔직할지언정 안배하지 않는다.[寧拙毋巧, 寧丑毋媚, 寧支離毋輕滑, 寧直率毋安排]’ 생긴 대로 쓰는 것이 글씨이다. 생긴 대로 쓰지 않는 것을 추하다고 하였고 안배한 것은 솔직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미련이 생기지 않는 글씨야 말로 성정을 나타낸 것이며 성정대로 썼다고 생각되면 미련이 생길 리가 없다.
청운의 작품세계를 경박한 말 몇 마디로 운운하기는 어려우나 그는 그저 매우 강력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어떤 색깔도 소리도 그는 보지 않고 들으려도 않는다. 개인전을 맞아 이 꿈쩍도 않는 작가의 미래가 틀림이 없도록 바라는 마음뿐이다.
반간서옥에서 김건표
2023. 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