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원
상하이는 청나라 말 다른 나라들에 임차되면서 근대적인 건물이 들어서면서 대다수가 고전적인 모습을 잃고 근대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고전적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 중 하나인 예원은 상하이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옛 정취를 찾는 사람들이 많이 방문한다 . 옛모습을 그대로 갖춘 정원저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예원 ( 預園 , 위위엔 ) 은 명나라 시대의 관료였던 ' 반윤단 ' 이 자신의 아버지 ' 반은 ' 의 노후를 위해 1559 년에 착공하여 18 년 동안 건축 , 자신의 고향인 상하이 중심에 대저택 , 예원을 세웠다. ‘ 예원 ’ 이라는 이름은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다라는 의미를 가진 ‘ 유열노친 ( 愉悅老親 )’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이 정원은 북경의 황궁정원인 이 화원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알려지며 황제만 쓸 수 있는 용문양을 예원에 조각하면서 역적으로 몰릴 뻔 했으나 용 발가락을 하나 더 만들어 역적으로 몰릴 위기를 모면했다고 전해진다 . | |
이후 , 예원은 4 백 여년의 시간 동안 여러 차례 다른 주인을 맞았고 중국 근대화 시기에 영국군들과 태평천국 군 , 프랑스군 등에게 점령되고 그들 간의 전투로 인해 불타버리는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다 . 이후 중국 정부는 예원의 문화적 중요성을 깨닫고 1956 년에 대규모 복원 작업에 착수하여 1961 년부터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관람을 허가하였다 . |
명 , 청 시대의 정원저택의 건축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넓고 투박한 북부 북경의 정원에 비해 , 좁은 공간을 촘촘히 꾸미고 작은 공간이 넓게 느껴지도록 만들어진 전형적인 강남의 정원이라고 할 수 있다.
밝은 색 담에 둥글게 입구를 냈으며 다양한 느낌을 주기 위해 여러 가지 문양을 바닥등에 새겨넣었다 . 꽃 모양을 조각한 화창 , 중국 전래의 전설이나 복을 상징하는 동물과 글자를 그려 넣은 바닥의 색돌 그림 , 나무와 돌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이채롭게 꾸며 놓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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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의 전체 면적은 약 20 ㎢며 , 오솔길처럼 좁고 구불구불한 회랑과 다리를 따라 돌며 40 여 개의 정자와 누각이 있고 연못과 작은 인공 봉우리들이 있으며 예원입구에 있는 차관 ' 湖心停 ' 은 굉장히 유명하여 항상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예원 옆에는 다양한 종류의 기념품과 공예품 , 먹거리들을 파는 시장인 예원상장이 있고 100년 전까지는 이곳도 모두 예원에 속했으므로 전통적인 건물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 | |
또한 예원 매표소 근처에는 만두만 전문으로 파는 남상만두점이 있는데 샤룽바오 ( 小龍包 ) 라고 하는 상하이 만두로 유명하다. 샤룽바오는 속을 기름기 있는 국물로 만든 만두인데 한국에도 그 지점이 있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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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관 시간 : 08:30-17:00 - 입장료 : 30위안
- 인근 관광지 : 와이탄 , 인민광장 , 상해박물관 ,난징루 ,대한민국임시정부 ,신천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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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불사는 상해의 유명한 선종의 사찰로 1882 년 청나라 광서 황제 때 보타산의 승려 혜근이 미얀마에서 다섯 존의 옥불을 가지고 , 보타산으로 돌아가던 중 상해를 지나는 길에 상해 강 만진 에 옥불사를 짓고 옥불 두존을 모시게 되었다 . 그 후 신해혁명 때 강만진 옥불사가 훼손되자 대부분의 불당과 부속건축물은 현재의 장소로 옮겨 1911 년과 1918 년에 깔끔하게 개축되었다 . 사원 건물들이 대부분 송나라의 궁궐형식을 본따서 지은 것으로 전체적인 분위기가 장엄하다 . | |
혜근이 가져온 나머지 세 존의 옥불은 상해 근교 보타산에 안치되었으나 문화혁명 때 모두 파괴되었다 . 당시 옥불사에 있던 두 존은 문화혁명의 와중에 파괴될 위기에 처했으나 주지스님이 뛰어난 지혜로 사원 건물과 옥불상에 온통 주석 모택동의 사진을 붙여 놓아 군인들이 감히 옥불상을 파괴하지 못했다 . 사찰내의 옥불루와 와불당에 각각 보존되어 있는 두개의 옥불상은 하나는 좌불 ( 坐佛 ) 이고 , 하나는 와불 ( 臥佛 ) 이며 둘 모두 옥으로 만들어진 보기 드문 옥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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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옥 특유의 반들반들한 피부와 선명한 입술과 눈매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존경의 마음을 갖도록 한다 . 좌불은 높이 1.9m 폭 1.34m 의 옥으로 이루어져있다 . 이 사찰의 위치는 상해역에서 서쪽으로 3 킬로 정도 떨어져 있으며 개관시간은 아침 8 시 부터 오후 5 시까지이고 사찰내 식당에서는 징진요리를 팔기도 하는데 미리 예약을 해야한다고 한다 .
옥불사의 좌불은 사찰내 한 누각의 2 층에 모셔져있고 사진촬영이 금지되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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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탄은 현재 중국의 각 지역에 같은 명칭을 한 곳이 많은데 상하이의 황푸쟝와이탄은 1843 년 서방 조계지였던 상하이 황푸쟝 와이탄에 만든 대로의 한 명칭으로서 영문은 ‘bund’, 중국어 발음은 ‘와이탄’이다 .
이는 상하이의 상징이며 19 세기 열강의 대륙침탈의 살아있는 역사책이다 . 과거 영국 , 프랑스등 제국주의 열강들의 조계지였던 와이탄은 원래 황푸강의 서쪽편의 진흙으로 된 강둑으로 열강들의 조계지가 된 후부터 르네상스식 , 고딕식 까지 고색창연한 서구풍 건물이 건설 되어 ‘ 세계 건축 박물관 ’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
140 여년 전 침략자 미국인 ,영국인 등은 ‘ 중국인과 개는 출입금지 ’ 라는 푯말을 걸어 놓고 이곳을 중국이 아닌 것처럼 꾸미려 했다 . | |
그렇게 중국 자존심의 오명이었던 와이탄은 현재 중국 경제의 중심지인 상하이의 금융의 중심이며 상하이 관광의 중심이 되었고 상하이를 오는 관광객이 제일 먼저 찾는 국제적인 명소가 되었다 . |
중국정부는 황푸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 ,즉 동방밍주가 있는 쪽인 푸동을 경제특구로 정하여 푸동신구 (浦東新區 )를 개발하여 외국자본을 적극 유치하고 중국 개방정책의 핵심으로 삼고있으며 2001년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곳을 보고 별천지라 하기도 하였다 .
아마도 와이탄에서 보는 건너편 동방밍주 등의 빌딩과 와이탄의 건물들을 보면 중국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듯 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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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탄에서 볼 수 있는 건물들은 포동쪽으로 진마오빌딩 , 국제회의빌딩 , 동방밍주등이 있고 황푸강변 동 , 서 모두에 넓은 제방을 따라 강변을 볼 수 있는 관람로가 설치되어 있어 강변과 주변 빌딩 , 그리고 황푸강을 지나는 수많은 배들을 볼 수 있고 황푸강에서 유람선을 이용하여 와이탄과 푸동을 관람할 수도 있다 .
와이탄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주로 밤에 와야하는데 특히 매주 금요일 , 토요일 밤에 와이탄 주변의 동방밍주를 비롯한 건물들은 모두 자신의 건물을 향하여 점등하여 그 | |
모습이 장관이며 오래된 유럽도시 같은 느낌도 들어 많은 연인들이 이곳에서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
와이탄 제방길을 따라 가다보면 공산혁명의 원로인 진의 (陳毅 : 천이 )를 기념하기 위한 큰 동상을 볼 수도 있다 . |
황푸강의 서쪽인 와이탄에는 제방외에 별다른 편의 시설을 찾아볼 수 없으며 반대쪽인 푸동신구쪽의 제방에는 스타벅스등 커피숍과 하겐다스등의 아이스크림 전문점이 제방옆에 1층 건물들로 늘어서있어 강변을 바라보며 음료를 마실 수 있도록 배려되어 있다 . 그러나 실제 관람은 서쪽 와이탄 제방에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와이탄에 가려면 지하철 2호선 허난중루2호출구(河南中路)로 나오면 난징루의 끝자락쯤 되는데 여기서 동방밍주가 보이는 쪽으로 10여분정도 걸어가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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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근 관광지 : 난징루 , 인민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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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광장은 상해시의 정치 , 문화 중심으로서 인민광장은 영국조계지 시기에 동양 제일의 경마장였다 . 해방 후에 경마장은 인민광장과 인민공원 , 인민대도 ( 人民大道 ) 로 건설 되였고 90 년대에 대규모 재건을 거쳐 시민들의 관광 , 휴식의 장소로 탈바꿈하였다 . 총 면적은 14 만평방 미터로서 최대 120 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이다 .
이 인민광장의 중심에 원형 음악분수대가 있는데 저녁이면 유리계단에 홍 ( ? ), 황 ( ? ), 란 ( ? ) 색의 네온등이 켜지면서 분수와 함께 어우러지는데 노래에 따라 분수 | |
의 높이도 변하는 것이 볼만하며 활짝피여난 꽃들과 잘 다듬어진 잔디로 이곳은 언제나 휴식의 한때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
사회와 경제의 발전에 따라 사람들의 사상도 개방적으로 변해 여기저기에서 데이트하는 연인들로 인민광장에는 젊음과 개방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키스와 애무를 하는 그들은 한국의 연인들보다 더 자본주의적이 더 개방적이다라는 느낌이 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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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볼만한 역사적인 유물은 없지만 그래도 상하이 교통 및 상업의 중심지로 인민광장을 중심으로 , 박물관 , 상하이시 정부청사 , 상하이 대극원 , 인민광장공원 , 경극극장이 있어 색다른 건축디자인으로 보는 이를 즐겁게 하고 있다 .
인민광장의 지하에는 여성들이 즐겨찾는 액세서리 및 의류 등의 쇼핑몰이 있고 시 정부청사의 뒤쪽의 인민공원에는 연못과 화단이 잘 조성되어 있으며 풀장 , 레스토랑 등도 있다 . | |
중국최고의 패션거리 난징루가 인민광장 바로옆에 걸어서 3 분거리에 있고 와이탄이 20 분정도 거리에 있다 . 한국의 동대문시장과 비슷한 치푸루 의류시장도 북쪽으로 걸어 30 분 정도면 갈 수 있다 .특이한 것이 난징루의 입구에는 SAMSUNG 라고 크게 써 붙인 한국의 신세계백화점이 보인다 .
상하이에는 동서남북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는 환승지인 4 개의 교통기점이 있는데 서가회와 인민광장 , 홍커우체육장 , 상하이역인데 이곳 인민광장은 그중에서 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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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버스가 지나는 곳이며 지하철 1,2 호선의 환승역까지 있어 항상 사람들이 붐비고 상해의 어디를 가려 해도 자주 들르게 되는 여행자들의 기점이라고 볼 수 있다 . 또한 인민광장 근처에는 여행사들이 많아 항주나 소주로의 패키지여행을 구매할 수 있다 .
인민광장에서 와이탄으로 이어지는 푸주루 ( 福州路 ) 의 거리는 상해 문화거리로서 100 년이 넘은 서점 , 문구점 , 화방들 , 서예방 , 경극 극장 그리고 중국의 유명한 작가 노신의 집이 있는데 중국의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거리라 할 수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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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 : 지하철 1,2 호선 런민꽝창역 , 다수의 버스
- 주변관광지 : 난징루 , 신천지 , 대한민국상해임시정부 , 치푸루의류시장 , 푸주루 , 와이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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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는 난징루는 중국 최대의 번화 거리라 말할 수 있는 곳으로 총길이 5.5km이고 길 좌우측으로 여러가지 상점, 특히 의류 및 잡화 상점들이 많으며 호텔,레스토랑등이 즐비하여 주말에는 말할 것 없이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다.
이 난징루는 동쪽으로 와이탄에서 시작하여 인민광장쪽으로 26개 도로를 가로질러 징안쓰(靜安寺), 옌안시루(延安西路)와 만나 상하이 중심부를 관통하고 인민공원을 기준으로 동과 서로 나뉘어진다. | |
동로에는 중국최대의 백화점 및 여러 백화점들과 패션 상점들이 있고 서로에는 공예품과 차를 파는 상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 곳은 도로 양쪽에 600 여 상점들이 있고 , 하루 평균 150 만명 이상의 사람들에 의해 물건이 거래되고 전국에서 매출이 가장 많은 3 대 소매상이 모두 이곳에 있다 . 1999 년 전면 도로 공사를 끝내고 이곳은 보행자만의 거리로 개통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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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한국의 명동과 비교할 수 있는데 명동보다 길의 폭이 넓고 차가 다닐 수 없고 일직선으로 이루어져있어 오히려 더 쇼핑하기 편리하다.
차가 다닐 수 없는 대신 2원짜리 관람열차가 수시로 관광객과 쇼핑객들을 태우고 다니어 걷는 피곤함을 덜고 색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깨끗한 화광암으로 이루어진 거리 바닥과 잘 어울려진 벤치등, 그 모습이 산뜻하고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 해
준다.
이곳은 사람이 굉장히 많음에도 상당히 깨끗한데 노점상과 걸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수시로 청소차가 거리를 청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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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 : 1,2 호선 인민광장역에서 걸어서 5 분 , 다수의 버스
- 인근관광지 : 인민광장 , 신천지 , 와이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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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공원은 중국 근대화의 아버지이자 사상가, 작가인 노신을 기념하기 위한 공원으로 옛 홍커우 공원의 이름을 루쉰공원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고 루쉰의 묘와 비, 그리고 공원옆에 루쉰이 말년을 보낸 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곳의 한 부분인 매원은 중국정부가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기리기 위해 만든 루쉰공원 내의 작은 공원이다.
이곳이 한국이었다면 당연히 윤봉길 의사의 호를 따라 매헌공원으로 지었을 텐데 중국의 사상가인 노신의 한귀퉁이를 임대했다는 것이 좀 안타깝게 보인다. | |
이곳 매원은 윤봉길 의사가 일본군 시라가와 및 7명을 사살한 곳으로 기념물 하나 없이 방치되다가 국교수립 후 한국인 관광지 목적으로 94년 6월 매정(梅亭:메이팅)이라는 한국 정자 형식의 기념 정자가 건립되었으며 지금은 한국인이 많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1932년 일본이 대륙 침략과 일본 왕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이 홍커우 공원에서 기념식을 올리는 동안 윤봉길 의사는 물병으로 위장한 폭탄을 던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중국 정부와 인민은 우리나라 임시정부를 크게 칭찬하고 많은 도움을 아끼지 아니하였는데 당시 장개석(蔣介石)주석은 “중국의 백만 군대가 하지 못한 일을 한국의 한 젊은이가 능히 했으니 장하다”고 격찬했다.
매원은 루쉰공원 입구에서 5 분 정도 직진하다가 왼쪽 홍커우 축구장 쪽으로 꺾어져 루쉰 동상이 나오고 그 뒤에는 루쉰의 묘가 있는데 묘비를 직접 모택동이 적어넣었다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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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른쪽 편 호수 옆에 윤봉길 의사의 매원이 위치하는데 루신공원의 입장료는 무료지만 매원은 입장료 20 원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 . 들어가자 마자 돌로 된 단상이 나오고 비석이 하나 있는데 이 비석이 있는 자리가 윤봉길 의사가 물병폭탄을 던진 자리라고 전해진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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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바로 앞에 정자가 하나 보이는데 이곳이 윤봉길 의사의 폭탄이 터진 자리이며 현재는 2 층 건물의 매정 정자로 되어 있다 .
이 매정정자는 1 층은 윤봉길 기념관으로 각종 문서와 자료를 전시했으며 2 층에는 약간의 자료와 기념품을 팔고 있다 . 두 명의 조선족 아가씨들이 윤봉길의사와 이곳 매원에 대한 설명을 관광객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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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서문
나는 적성 (赤誠 , 참된 정성 )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 (屠戮 , 무참하게 마구 죽임 )하기로 맹세하나이다 .
대한민국 14년 4월 26일 선서인 윤봉길
한국애인단 앞 | |
당당히 나아가 폭탄을 던지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윤봉길 의사의 비석앞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숙연해질 수 밖에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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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관시간 : 08: 00-16:00 - 교통편 : 18,21,47,70,97,139,231,70 번 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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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화한 신천지를 지나 마땅루(馬當路)쪽으로 들어서면 100년 역사를 가진 오래된 2-3층 건물로 이루어진 주택가가 나온다. 임시정부청사는 마당로(馬當路)에 있는 3층 벽돌집으로, 1926년부터 윤봉길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1932년 직후까지 사용하던 곳이다. 이곳은 역사적인 유물이 많은 거리라서 개발이 제한되어 아직까지 옛모습을 갖추고 있다.
임시정부청사는 암울했던 일제 점령기에 한국인의 유일한 자존심으로 그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임시정부는 전황에 따라 여러 곳으로 옮겨 세워졌지만 임시정부 27년의 역사 중 처음 13년 동안 이곳을 청사로 사용했다. | |
중국 당국에서 철거할 계획까지 세웠으나 중국과 수교 후 우리나라의 요청으로 그대로 남게 되었고 1992년부터는 다시 재건축하여 지금은 상해 인민 정부에서 유적지로 지정, 직접 관리하고 있다.
현재 이곳은 한국의 기업 및 한국의 관광객들이 수없이 다녀가고 있으며 입장료 및 헌금 수익이 매우 높아 현재는 그 사업성이 매우 뛰어나다고 볼 수 있어 관광사업에 큰 도움이 됨으로 철거할 이유는 없을 듯 하다.
마땅루 길가의 매표소에서 20원을 내고 표를 사면 매표소 앞이나 뒷골목의 임시정부청사 옆집에서 대형 TV 로 임시정부의 비디오를 보게 되고 그 후 안내원이 임시정부 청사를 1층부터 3층까지 안내해 주는데 한 층당 약 15-20평 정도나 될까 한 작은 크기로 나무로 된 작은 계단을 고개를 숙이고 올라가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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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층에 바로 회의실이 있고 그 뒤로 주방이 있다 . 2 층에는 박은식 , 이동녕 등 임시정부 대통령이 사용하던 집무실이 있고 3 층에는 요인 숙소가 있으며 그 후 옆문을 통해 새로 증축한 전시관으로 연결되어 각종 기사자료 및 사진들을 관람하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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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축한 1 층에는 방명록에 사인을 할 수 있게 되어있고 방문한 한국의 유명 인사 , 한국 대통령들의 사진과 사인을 볼 수 있으며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 실내에서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
이곳이 외세에 대항한 대한민국의 자존심 임시정부 청사치고는 상당히 작고 초라하여 다 관람하는데 불과 5 분 정도 뿐이 소요되지 않으니 1 층 입구에서부터 책상과 의자 , 침대 , 서적 , 사진 등을 유심히 살펴보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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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방시간 : 09:00 ~ 17:00 ( 월요일 09:00 ~ 12:30 은 관람불가 ) - 교통 : 지하철 1 호선 황푸난루 ( 黃浦南路 ) 지하철역 신천지를 지나 마땅루 ( 馬當路 ) 방향 5 분 - 인근관광지 : 신천지 , 예원 , 인민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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