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知의 리스크 극복을" 수뇌부 70여명에 강조
"요즘 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
8일 오후 롯데그룹 상반기 그룹 사장단 회의 참석차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로 들어서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애써 웃었지만 편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회의장에 들어서기 전까지도 "메르스 때문에 상황이 안 좋다"며 "업종 상태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사장들과 나누던 신 회장은 이날 회의 자리에서 '선제적 대응능력'을 강조했다.
신 회장은 메르스라는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며 "무지의 리스크에 대한 대처 방안이 필요하다"면서 "변화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선제적인 대응능력을 키워 달라"고 주문했다. 실제 롯데그룹 핵심 사업인 쇼핑 분야가 메르스로 인해 유독 심한 타격을 입었다. 신 회장이 가장 많이 챙기는 것으로 알려진 면세점 사업은 메르스 사태가 본격화하기 전인 5월에는 성장을 지속하며 '불황 무풍지대'임을 입증하는 듯했지만 6월 들어 중국인 관광객이 끊이면서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0%나 급감했다. 이달에도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작년에 비해 매울을 절반 밖에 못 올릴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롯데호텔 역시 상황이 최악 수준이다. 특1급호텔은 객실 점유율이 70%선은 돼야 수익이 나는데 메르스 사태 이후 30% 선까지 급락했다.
결국 신 회장이 '예상치 못한 위기 속에서 선제적 대응 능력'을 강조한 것은 그룹 핵심 계열사들이 메르스라는 바람에 맥을 못 추고 휘청인 데 대한 염려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선제적 대응'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핵심 사업에 집중하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롯데 핵심 사업은 결국 쇼핑인데 이 부분이 최악 국면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우리 성장 기반을 공고히 하는 것은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핵심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신 회장은 지난해부터 '옴니채널'전략 등을 강조하며 쇼핑 분야에서 핵심 역량을 강화를 강조해왔다. 결국 메르스처럼 예상하기 어려운 외부 변수가 닥치더라도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기술과 트렌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빠르게 대응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신 회장은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때도 연관 사업을 가장 먼저 고려해 우리 경쟁력이나 핵심 역량이 통할 수 있는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고객 니즈나 시장 트렌드 변화에 따른 포트폴리오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초 인천공항 면세점에 통 큰 베팅을 한 것이나 KT렌탈을 인수하는등 과감한 행보가 이를 뒷받침한다.
미래 성장을 위한 인적 경쟁력 강화도 선제적 대응을 위한 핵심 요소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신 회장은 "미래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경쟁력이 그 효력을 잃고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라이벌이 나타나 우리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고 전제하면서 "(이를 위해)미래 인재에 대한 투자와 여성 인재 육성, 국외 인재 발굴 등에 더욱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장단 회의에서는 신 회장을 비롯대 46개 계열사 대표이사와 정책본부 임원 등 70여 명이 참석해 국내외 경영상황과 하반기 전망 등을 논의 했다.
이날 회의에서 언급될 것으로 보였던 신 회장 '원톱체제설'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롯데그룹 핵심 관계자는 "일각에서 신 회장이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 총괄하는 '원톱'에 올라섰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체제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한국이, 일본 내 전문경영인이 일본을 책임진다는 스탠스 변화는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과도한 해석이 나오는 데 대한 신 회장 본인은 무척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면서 "기존 체제에서 경영구도가 크게 변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