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야 58장 12절에 의해 관통되다!
느헤미야의 인생은 바로 이사야 58장 12절에 의해 관통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소명은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무려 250여 년이 앞서서 선지자 이사야에 의해 예언되었던 것입니다. 실로 놀랍지 않습니까? 참으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우리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말입니다. 즉 하나님은 느헤미야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 같은 일들을 계획하시고 때가 되매 그를 부르셔서 그로 하여금 이 일을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사 58:12).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그를 그의 소명으로 인도하셨습니까? 뜻밖의 사건을 통해서입니다. 어떤 사건이었습니까? 예루살렘에 다녀온 사람들을 통해 전해들은 비보(悲報)를 듣고서입니다.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느 1:3)
즉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갔지만, 그들의 형편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이 불타 없어진 터라, 주변 민족들의 약탈(掠奪)과 핍박 앞에 무방비(無防備)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이 이 정도면 주변의 다른 성읍들은 어떠했겠습니까? 그 참혹함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같은 비보를 전해들은 느헤미야는 어찌하였습니까? 충격에 빠졌습니다. 슬픔에 잠겼습니다.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4개월 동안 하나님께 매어 달려 기도했습니다(이 기도는 기슬르 월에 시작되어 니산 월까지 이어졌습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느 1:4)
또한 성경을 읽고 또 읽으면서 묵상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구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다가 아마도 이사야 58장 12절을 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이사야 58장 12절이나 61장 4절을 읽었다면, 그는 이 4개월의 기도시간을 통해 자신의 소명, 곧 '예루살렘 성의 재건'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통해 확인될 수 있습니까? 그가 4개월 후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치밀하게 요구한 내용들입니다. 즉 그는 왕에게 예루살렘 성의 구체적인 재건일정과 필요한 물목(物目), 기타 지원사항 등을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설명하고 받아내었던 것입니다.
“...나를 유다 땅 나의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건축하게 하옵소서...”(느 2:5 중) / “...네가 몇 날에 다녀올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좋게 여기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거든 강 서쪽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그들이 나를 용납하여 유다에 들어가기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그가 성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내가 들어갈 집을 위하여 들보로 쓸 재목을 내게 주게 하옵소서...”(느 2:6~18)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즉흥적으로 뱉은 말들이었겠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수개월 동안 충분히 숙고하고 세운 계획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그가 이사야 58장 12절이나 61장 4절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분명 그를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우고,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다시 쌓으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로 선택하시고 때가 되매 부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결국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느헤미야의 인생은 자신도 모르게 이사야 58장 12절에 의해 관통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어느 때에 시작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린 바 된 때,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관통되기 시작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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