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당신> 출판기념회와 가을맞이 잔치가 9월 20일에 행신동의 <재미있는 느티나무 온가족 도서관>과 동네북카페&극장 <동굴>에서 있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80여 명의 동네 사람들이 참석하여 동네 시집 출간을 축하하였다.
관장인 시냇가 사회로 “당~신은 누구십니까?”하면, 시냇가의 마이크가 도달한 사람이 “나~는 사다리.” 하고, 다시 지목된 옆 사람이 “그 이름 길~구나~.” 식으로 참석한 사람들의 소개하며, 축하연은 시작되었다.
이어서 손병오 게임이 진행되었다. 모든 관객이 다섯 손가락을 쫙 펴서 들고 사회자의 질문에 해당되면 하나씩 접는 방식이다. “빨간 바지 입으신 분, 손가락 접으세요”, “마누라가 있으신 분, 손가락 접으세요.”, “손자 없는 분, 접으세요, 접으세요.” 여기저기서 아쉬운 탄성이 올라오고, 다섯 번까지 하고 “손가락 다 접으신 분, 팔 들어보세요.” 이렇게 하여 정해진 분을 무대로 모신다. 뽑힌 분은 이번 동네 시집 <우리 동네 당신>에 저자들이 많다. 저자의 속 내막을 잘 알지 못하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사회자의 요령이 돋보인다. 나오신 분은 책을 펼치고 자기 시를 읽고 시 속의 ‘당신’을 수수께끼로 낸다. 이를 맞춘 사람은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사회자의 소개, 시를 쓴 분의 소감을 나누고, 맞춘 사람이 다시 시를 읽고, 관객 중에서 지목된 사람이 맞추고. 흐름이 끊기면 손병오 게임을 다시 내고... 모든 관객은 반짝반짝 눈동자를 굴리며 사회자의 입모양에 집중하게 된다.
시인들 중에 ‘빵빵’이란 별명을 가진 분이 있다. 동네에서 카센터 하는 사장님이다. 생전 처음 시를 써 보았단다. 시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이 분은 연거푸 새로운 시를 써서 보내 주셨다고 한다. “이 시가 좋아요. 아니면 이 시가 좋아요” 자신이 쓴 시가 교보에서도 인터넷 서점에서도 팔리고 있다고 사회자가 말하자, 흥분을 감출지 못했다.
이날 잔치에는 특별한 손님이 왔다. 할머니 다섯 분. 다들 예쁘게 꽃단장을 하셨다. 첫 방문인데도 위풍당당 거침없이 자리를 잡은 할머니들. 시냇가에 따르면 “아침참에 동네 인근 가라산에 운동 삼아 오르다가 만난 일군의 할머니들”이란다. 시루째 쑥버무리를 해 놓고는 할머니들이 두런두런 말꽃을 피우고 있었단다. 오가는 사람을 불러 굳이 떡 먹고 가라길래, 엉겁결에 한 손 가득 받아먹으면서, 동네잔치를 알렸단다. 이 분들이 잔치에 다 오신 것이다. 노래 한 곡을 요청 드리니, ‘소양강 처녀’를 부르셨고, 아우성 같은 관객들의 앵콜에 마치 준비한 양, 가수 오승근의 <내 나이가 어때서>를 답가로 부르셨다.
...
야이~야이~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마음은 하나요~느낌도 하나요~
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 눈물이 나네요~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
트로트 가락에 실은 살랑살랑 흔들흔들 하던 몸과 팔 동작이 갑자기 이마를 ‘딱!’ 치며,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를 날렸다. 자지러지는 관객들. 연거푸 딱! 딱! 관객들도 따라한다. 잔치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흥분의 도가니가 되고야 말았다. 이 분은 한국에 온 지 20년이 넘은, 고향이 중국인 분이었다. 재미난 일군의 할머니들은 행사 끝까지 다 보고, 차린 음식 더 달라하여 배불리 먹고 총총히 사라졌다. 아무래도 이 분들은 도서관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등장할 것 같다.
사회자의 호명으로 무대로 나온 잠자리는 이 책을 낸 출판사 대표이다. 잠자리는 ‘이 책에서 출판의 미래를 보았다’는 동료 출판인의 말을 전하면서, 동네북 시리즈에 지속하고 싶으며, 앞으로도 멋진 기획을 재미있는 느티나무 도서관과 동네분들에게 부탁했다.
곧이어 어린이극단 <아이>와 동네 뮤지컬단 <바스락> 간의 락 배틀이 시작되었다. 깜찍한 아이들이 다리를 설핏 꼬고 팔을 허공에 내던지며 어깨를 들었다 놓았다를 연발했다. 아이들이 집단 무를 한 토막 끝내자, 아줌마들의 도도한 표정과 내리깔던 눈초리가 호랑방탕하게 돌변했다. 승부를 내기가 쉽지 않다. 관객의 박수는 아줌마들에게 더 컸지만 이기는 팀에게 마무리 청소를 담당하는 선물(?)로 간신히 아이들을 달래며 배틀은 마무리 되었다. 이어서 <바스락>이 준비한 무대가 이어졌다. 열정적인 샤우팅, 터지는 리듬에 맞추어 좌우로 튕기는 액션들, 관객들도 머릿결이 흩어지면서 좌우로 몸을 흔들고,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로 한껏 땀을 훔쳤다. “나도 하고 싶어” 관객석에서 가난아이를 품에 앉고 있던 젊은 엄마 한 분이 살짝 내뱉는다.
드디어 동네 락뺀드가 드럼, 전자기타, 키보드를 무대로 옮기며 소리를 맞춘다. <봄날은 온다> 6기팀이다. 새로운 멤버들이 보인다. 보컬에 쭈니와 나비구름, 키보드에 지구별, 드럼에 아편, 고양시 최고의 기타리스트 원주민이 새로 결합했다. 이번에 새로 맞춘 팀복을 입고 무대의 배경으로 섰다. 앗, 빨강 파랑 꼽실 벙거지 머리를 한 똘랑과 삐딱이가 나온다. 선곡은 미미시스터즈의 <나랑 오늘>.
...
나랑 손잡을 사람
나랑 밥 먹을 사람
나랑 놀러 갈 사람
나랑 연애할 사람
이리와
....
형광빛 선글라스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원색의 벙거지 머리, 분홍색 스트라이프 티를 입은, 마치 영화 <화양연화>의 장만옥처럼 여리여리한 두 분이 엉덩이를 과감하게 옮기며 유혹한다. ‘나랑 연애할 사람~’. 아빠들은 ‘미춰~ 붜리 것다’를 외치고, 두 가수는 숨소리조차 빨라 들이는 듯이 좌중을 휘어잡았다.
그리고 이어서 기타의 극성스럽고 맹렬한 전자음이 흥분되던 관객들의 맘을 다시금 정돈해 놓는다. 보강된 남성 보컬들이 걸출하다. 묵직한 베이스 저음과 K2봉 정상에 막 도달한 것 같은 포효가 이렇게 잘 어울릴 수가 있을까. 음색, 박자, 세션의 어울림, 무대 매너, 그리고 특히 뛰어난 마스크, 뭐 하나 기성 락밴드들에게 부족할 게 없다. 분명 무대가 화정역 광장이었다면 우리 고양 청소년들의 새로운 우상이 막 탄생했음을 직감하였으리라. 이적의 <하늘을 달리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풍문으로 들었소> 등등. 달리는 곡마다 관객들은 앵콜을 외치며 팔뚝을 들고 또 든다.
이렇게 행사는 마무리 되었다.
뒤풀이는 도서관 조합원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상차림이었다. 김치전, 부추전, 오징어쭈꾸미볶음, 떡, 잡채... 다섯 해 넘게 이런 저런 마을 잔치를 치르면서 숙련된, 무지개, 하늘다람쥐, 해바라기, 정우모가 솜씨를 발휘하였다. 다만 김치전이 부족했다. 김치전이 워낙 맛나서 상을 차리기도 전에 한두 사람씩 들러서 준비한 양의 반을 먹어버렸단다. 지나가는 말이지만, ‘동굴 김치전’을 상표 등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여기저기 두런두런 모여 앉아서, 시 감상평과 각 무대 공연평을 입 나온 대로 다 하고, ‘오동추야의 달빛’을 받으며 우리 동네 당신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사진 제공 : 동굴과 느티나무 도서관
첫댓글 생생한 현장 소식! 글로 읽어도 충분히 느낌이 전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