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0편 강해 / 이레교회 새벽기도회 20161216 金曜日 정인준 목사]
사도신경 찬송가 201(240)장 ‘참 사람 되신 말씀 하늘의 지혜요…’
통성 기도(3분) 말씀 봉독(시편 90:1-17), 설교(15분),
◈ 시편의 제 4권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두 17편의 노래 중에서 첫 작품인 90편은 유일한 모세의 노래입니다.
◈ 모세는 이 시에서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을 구분 짓습니다.
1절에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라고 했고,
2절에서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하나님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라고 소개하신 것을 기억하며 쓴 내용이리라 생각됩니다.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는 분”과 동의어입니다.
‘영원’이라는 말은 신명기 33장 27절에도 하나님을 소개할 때 쓰였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여기 신명기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라는 표현과,
본문 1절에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는 똑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인 ‘영원’이라는 개념을 우리가 이해하기 쉽지 않으므로,
‘처소’ 또는 ‘거처’라는 시각적 공간적 표현을 사용하여 설명하는 것입니다.
‘처소’ 또는 ‘거처’는 우리가 사는 단독주택이나 아파트 같은 집이 아니라,
흔히 ‘반석’이라고 말하는, 야생동물이 기거하는 높은 커다란 바위산입니다.
‘처소’ 또는 ‘거처’는, 이스라엘의 피난처요 요새요 산성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높은 산의 반석처럼, 대대로 그 자리에 서 계신 분입니다.
모락산, 수리산, 관악산이 있기 전에 이미 우리 주님은 계셨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해도, 우리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 3절부터 12절까지를 보면 ‘영원’과 상대적인 ‘우리의 시간’이 나옵니다.
3절에서는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들인데, 흙이 완전히 부수어진 개념인,
흙보다 더 미약한 존재인 ‘티끌’로 돌아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석’이시지만, 우리는 ‘티끌’로 돌아갈 무상한 존재들입니다.
4절에서 우리는 하루살이 같이 ‘순간’을 사는 존재임을 확인하게 되고,
5절에서 우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습니다.
또한 5절 중간에는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라 하였습니다.
깜빡 조는 것 같이, ‘일장춘몽’처럼 짧고도 허무한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꿈이나 잠은 우리가 의식도 못하는 사이에 지나가고 끝나 버립니다.
5절 끝과 6절에서는 우리 인생을 가리켜,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태양이 작열하기 때문에 꽃과 풀이 빨리 시듭니다.
우리 인간도 본질적으로 꽃처럼 유한한 존재이며 시들어 가고 있습니다.
◈ 우리 인생이 짧은 이유를 성경은 하나님의 분노 때문이라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이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광야에서 하나님의 분노를 많이 봤습니다.
불뱀에 물려 죽는 사람들, 땅이 입을 벌려 삼킴으로 죽어간 사람들…
8절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하나님의 얼굴 앞에 두시는 것을 봅니다.
하반절에는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라 했는데,
“주의 앞에 놓으시며”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같은 표현들은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개념으로 쓰인 표현입니다.
TV카메라를 들이대면 얼굴을 가리거나 숙이고 피하는 죄인들처럼,
우리의 죄가 낱낱이 하나님 앞에 드러날 때에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에덴동산을 거니시며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무슨 대답을 하겠습니까?
9절에,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한평생이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놓여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일생이 끝나는데 ‘한숨을 쉬는 동안’ 다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1986년 1월 28일에 미국 플로리다 주에 있는 미 우주항공국(NASA)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를 발사할 때, 미국 시민들 중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 우주인으로 선발되어 탑승했습니다. 그 중 맥콜리프라는 여교사가 뽑혔습니다. 아름답고 존경받는 초등학교 교사였고, 두 자녀의 어머니였습니다. 그 분 때문에 미국의 모든 초등학교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TV로 발사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우주선이 발사된 지 73초 만에 공중에서 폭발했습니다. 우리의 평생이 그렇게 ‘순식간에’ 다하는 때가 있습니다.
12, 14, 16절 같이 읽습니다.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14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16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에게 나타내소서.”
이 말씀들이 우리 평생의 신앙 고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