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가족에게도 똑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 할아버지는 9 남매를 두셨습니다. 그 중에서 제 아버지만 장애인입니다. 할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인도에서의 법에 따르면 장애를 가진 자식이 우선 가장 좋은 몫을 나누어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형제들은 아버지를 속이고 할아버지의 땅에서 가장 쓸모없는 땅을 아버지에게 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소송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말렸습니다. 어머니가 말했답니다. “법정에서 땅을 찾을 수는 있을지는 모르지만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는 없습니다. 땅은 잊어버립시다.”
어머니는 지혜로운 분입니다.
아버지를 속이고 할아버지의 재산을 쫓아간 아버지 형제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 망했습니다. 그 자식들은 다 믿음을 잃어 버렸고, 알코올 중독이 되거나 마약에 빠지거나 부도덕한 삶을 살았습니다. 아버지 형제의 모든 가족이 파멸로 향해 나갔습니다. 그들이 나쁜 것을 계획하기 위해 하나로 뭉쳤지만 나중에는 유산 분배 일로 서로 싸웠습니다. 그리고 아주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에사우의 죄가 계속되는 모습입니다.
우리 가족은 아무도 불행하지 않습니다. 이제 가족 안에 행복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우리 가족이 새로 나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야곱과 에사우의 이야기가 있는 성경 말씀은 바로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제가 더 깊이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축복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죽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최우선은 축복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입니까?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서로의 관계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부자 부모와 자식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하느님께 다가갈 때도 똑같습니다. 죽을 위해서 하느님께 다가가면 안 됩니다. 좋은 배우자를 위해서 하느님께 갑니까? 좋은 직장을 위해서 갑니까? 그런 것도 필요한 것이고 달라고 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이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모든 것이 내 것이 됩니다. 예수님을 우리 삶에 모시면 우리는 삶에서 모든 것을 지닌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이해하기는 쉽지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생활 중의 사생활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의 내밀한 방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루만지도록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이 축복으로 향해 가는 여정입니다.
신앙의 여정은 서서히 일어나는 과정을 거치며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바로 사마리아 여인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모든 것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다른 남자들은 그녀에게 행복을 주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 여인은 모든 것을 되찾았습니다. 그녀에게는 이제 다른 남자가 필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에게 물을 주겠소. 영원한 생명을 물을 주겠소.”
생명의 물은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여인은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모든 것은 다 축복이었습니다. 축복으로 모든 것을 얻었습니다.
우리에게 돈, 건강, 직장 등등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입니다. 최우선 순위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보다 그 선물을 주시는 그분이 더 중요합니다. “주어진 것을 쫓아가지 마라.”는 격언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