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원주부학교 이선재교장
(양원주부학교 문의전화 02) 704-7402, 0153)
평생학습시대. 언제 어디서나 배움의 길이 열려있다는 요즘이지만 이 길에 쉽사리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정형편 때문에, 아니면 학교가 멀거나 여자라는 이유로 공부할 기회를 놓친 사람들, 나이가 들도록 '까막눈'으로 한과 고통을 안고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유야 어찌됐건 그들은 못배운 사실이 부끄럽다. 커가는 아들 딸이 무얼 가르쳐달라고 졸라도 손을 내저을 수밖에 없는 자신이 원망스럽다. 세상이 눈부시게 바뀌어 '컴맹'도 서러운 판에 '문맹'으로서의 삶이 오죽 답답했으랴. 그러나 아무에게도 말못했던 그 답답함과 서러움을 풀어주는 곳이 있었다. 서울 마포구 대흥동 양원주부학교. 이곳에서 17년간 2만4936명의 주부들이 '지적인 장애'를 훌훌 털어버리고 밝고 활기찬 새삶을 찾았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못배운 이들을 벗삼아 40년간 사회교육의 현장을 지켜온 양원주부학교 이선재(李善宰.64)교장의 이야기다.
"서울에만 스스로 '무학(無學)'이라고 밝힌 성인이 31만이 넘습니다. 초등학교만 졸업했다는 64만명을 합치면 100만명 가까운 서울시민이 살아가는 데 큰 불편을 겪고 있어요. 저희 주부학교 학생의 평균 연령이 40세인데, 이들이 앞으로도 40여년을 더 살면서 내내 한글을 못 읽고 자기 이름은 물론 아들 딸의 한자이름이나 알파벳도 모른 채 지낸다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불행입니까. 이들을 내버려두고 석사 박사만 많이 길러내면 과연 우리 사회가 좋아지겠습니까." 이 교장의 얘기에는 안타까움과 함께 때론 울분이 묻어난다. 평생 불우 청소년과 공단 근로자, 주부들을 가르쳐온 그로서는 배움에 가장 굶주린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 채 살아가는 모습이나 사회가 이들에게 무관심한 현실이 답답한 것이다. "의무교육이란 게 뭡니까. 국가는 국민에게 최소한 9년동안 교육을 시켜야 하고, 국민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학령 초과자라고 해서 모른 척해서 되겠습니까. 나이와 상관없이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 필요한 기초교육은 국가가 나서서 뒷받침해줘야죠."
그는 이들을 부축해주는 것이야말로 '생산적 복지'라고 강조한다. 배우지 못해 겪는 '지적(知的) 장애'는 다른 육체적-정신적 장애와 성격이 다르다. 조금만 이끌어주면 된다. 작은 도움으로도 금세 깨인 삶, 생산적인 삶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이들을 위해 돈 한푼 투자하지 않는다. 올부터 발효된 평생교육법 시행령도 대부분 고교 졸업자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다. 독학사 제도, 방송통신대, 학점은행제, 사내(社內)대학, 사이버(cyber)대학 등등이 그렇다. 초등학교를 나오지 못한 이들은 여전히 교육의 사각(死角)지대에 버려져 있다.
"주부학교를 찾아와 입학원서를 내고는 벅찬 마음에 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못배운 한과 설움 고통 속에 움츠리고 살아왔던 겁니다. 그간 이를 속시원히 해결할 데가 없었던 거죠. 어떤 학생은 멀리 전북 군산에서 고속버스를 3시간 이상 타고 오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각종 복지시설, 학교시설마다 한글학교나 중학과정을 열어줬으면 하는 게 그의 간절한 바람이다. 정부가 사회교육 시설 등을 지원해 이들의 교육기회를 넓혀주는 방법도 있다.
이 교장이 사회교육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1963년 어느 일간지 보도 때문이었다.
한 고등공민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서울 마포에서 노천수업을 한다는 기사였다. 당시 신문팔이 소년들을 위해 야학을 펴던 그는 직접 현장을 찾아가 보았다. 학생 수백명이 칠판을 덩그러니 앞에 놓고 길바닥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유인즉 밀린 1년치 월세 때문이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한의원을 운영하던 지역 유지에게 도움을 청해 밀린 월세를 갚아주었다. 자원봉사 교사로 학생을 가르치던 그는 결국 경영난에 몰린 이 학교를 인수하기에 이른다. 그 학교가 바로 일성고등공민학교였다. 당시엔 전쟁 고아들, 중학교 시험 낙방생이나 가난한 청소년, 정규학교 중퇴자가 많았다.
1978년 그는 공장 근로자를 위한 일요학교를 열었고, 이어 83년엔 주부학교를 시작했다.
"어린 고등공민학교 학생들 틈에서 어렵사리 공부하던 주부학생 10여명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랐습니다.
생활이 어려운데도 교사들이 흔쾌히 자원봉사를 해줬어요. 소문이 퍼지자 다음해에는 50여명이 몰렸습니다.
이들의 사연이 간간이 라디오나 여성지 TV프로에 소개되면서 학생모집은 신경을 안써도 될 정도였지요."
현재 주부학교는 중-고등부와 한문 철학 영어 일어 등을 공부하는 교양부, 대학교수 초청강의로 진행되는
연구부, 상업학교 과정을 배우는 여상부 등 5개 과정을 두고 있다. 수업료는 월 3만6000원의 실비.
"학생들에게 1년이 지난 뒤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물으면 10명중 1명꼴로 우울증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애들과 대화가 통한다' '남편과 대화가 늘었다'는 반응이 제일 많고, '자신감이 생겼다'는 대답도 많습니다."
지식에 목마른 그들은 참으로 열심히 공부한다. 중학교 3학년 과정을 1년에 마칠 만큼. 올해만도 이곳 학생 800여명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가 평생을 사회교육에 몸바쳐온 것은 잊을 수 없는 고마운 분들 때문이다. 피란시절 집도 절도 없이 고학하는 그에게 필동의 집을 내준 이인섭씨, 한의원을 운영하며 20년 가까이 그의 사회교육사업을 도와준 이정화씨, 진명여고 교장을 지낸 뒤 10년간 무보수로 일성여상과 주부학교 교장을 맡아준 이세정 선생 등등.
"지금은 다 돌아가셨습니다. 이런 분들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려다 보니 자연히 저도 어려운 이들에게 관심을
쏟게 되었지요." 못배운 고통을 안고 사는 이가 있는 한 그는 죽는 날까지 이들을 도우며 그 빚을 갚아나갈 생각이다.
약력 : (양원주부학교 문의전화 서울 704-7402,0153)
△1936년 개성에서 출생 △국민대 정치학과 졸업('61)
△고려대 교육학 석사(77) △일성고등공민학교 설립자 겸 교장(63∼88)
△일성 일요학교장 (79∼88) △일성여상 설립자 겸 교장(86∼)
△양원주부학교 설립자 겸 교장(82∼) △양원지역봉사회 회장(93∼)
△서울시의회 부의장 (96∼98) △서울시의회의원(98∼99)
* 2000년 9월 6일 게재 Posted by / 길따라 구름따라
첫댓글 감동입니다. 존경 할 수있는 분이십니다
이선재교장님 건강하시고 행복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