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기상하 메시야 왕국의 대망
(26) 성전을 짓는 사람 I, 성전은 누가 짓나 역대상 22:6-19
성전은 누가 지을까요? 오늘은 성전건축을 할 수 없었지만, 오히려 자신의 한계를 알았기 때문에 더욱 자신의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아들 솔로몬의 성전건축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했던 다윗이, 오늘 그 아들에게 여러 가지 당부와 하나님 주신 약속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본문으로부터 ‘성전을 짓는 사람’, 정확하게 ‘성전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성전을 짓는 사람은 하나님이 정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전은 내가 짓고 싶다고 짓는 것이 아니요, 사람의 필요에 의해서 사람의 계획과 의지로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7-8절입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대상22:7-8)
다윗은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성전의 필요성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는 힘이 있었고 돈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을 짓도록 허락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왜요? 성전은 사람의 의지로 힘으로 돈으로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이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누구보다 크고 절절하다고 지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기 때문에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오늘 하나님께서 다윗에게서 찾으신, 성전을 지을 수 없는 이유,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많은 전쟁에서 승리할 정도로 힘과 실력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지만, 그것 역시 실력인 것이죠. 그러나 오늘 성경이 말씀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가는 곳마다 이기게 하시는 힘과 실력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성전을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쟁에 이기도록 함께 하시며 힘을 주시는 것과 당신 거하시며 말씀하실 성전건축은 별개라는 것입니다. 그래요. 하나의 항목에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기뻐하셨다고 다른 항목도 복을 주시고 기뻐하시는 것은 아닐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정해주시는 지계표가 있고 구역이 있는 것이지요. 모든 것을 다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을 인간적인 마음과 욕심으로 덤벼들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에 내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에, 내게 주신 사명에 힘을 내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전건축은 한두 사람이 돈으로 짓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히 잘못된 동기, 경쟁에서 나오거나 자기를 드러내려는 목적으로 지어서는 더더욱 안됩니다. 그래서 막으시는 것이지요. 성전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사람, 하나님께서 허락하는 사람에 의해서 지어집니다.
그래요. 성전은 백전노장에 하나님의 은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어야만 건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본문 5절이 기록하듯, 어리고 미숙한 사람을 통해서도 지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해야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지어지는 성전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어느 새 하나님보다 뛰어난 설계사와 건축가가 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뜻대로 지어지는 건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특별히 허락하신 일을 잘 감당하는 사람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다른 사람의 일을 시기하고 경쟁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역할과 본분에 힘을 내는 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래요. 내가 더 잘났고, 내가 더 돈도 많고, 내가 더 똑똑하고 내가 더 큰 힘이 있지만, 나에게 맡기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나보다 어리고 미숙한 이들에게 일을 맡기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의지에 도전하지 마시고, 그 결정을 가지고 가서 도대체 이게 맞냐? 도대체 누가 크냐 논쟁하느라 힘빼지 마시고, 그 모든 일을 결정하신 하나님 앞에 순종하시고, 더욱 내게 정해주신 자리를 잘 지키며 세우신 저를 위해 힘이 되고 도움이 되는 거룩한 뜻에 마음을 모으고 내 역할을 잘 감당하는 주의 종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피를 많이 흘렸다는 것은 사람을 생명을 다치게 했고, 살아있는 것을 죽게 했다는 뜻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다윗의 손을 사용하셔서 진멸해야 할 이들을 죽게 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었지요? 자신을 조롱하던 여부스 사람들의 말에, 공연히 장애인들을 죽이기도 했고, 키가 작은 사람들만 남기고 키가 큰 사람들을 다 죽이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윗의 범죄함으로 우리야가 죽었고, 다윗의 범죄함으로 이스라엘 7만 명이 죽은 것이지요. 그뿐인가요? 압살롬의 반란 때는 두고 간 후궁들이 고통을 당했고, 또 여러 다윗의 신하들이 압살롬과 부하들과 싸우느라 다치고 죽어야 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자기의 열등감과 범죄함, 자식에 대한 비뚤어진 사랑 때문에 생명을 죽게 하고 다치게 한 다윗의 손으로는 성전을 짓게 하실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행여나 성전건축이 다윗의 죄에 대한 신분세탁이 되지 않도록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죄를 씻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우리의 공로로 퉁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뭔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위해 괄목할 만한 어떤 일을 하면, 지은 죄가 삭감되거나 무거운 형벌이 정상참작되어 감면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은 언제나 감사함으로 하는 것이고, 특별히 성전건축은 더더욱 되돌아올 보상을 따져서, 박수를 칭찬과 명성을 바라고 하는 일이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요. 이 성전은 죄인이 정결한 짐승을 자기 대신 죽게 하고, 자신들의 죄를 용서받고 생명을 얻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성전은 다윗이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 다윗은 자기가 살려고 자기가 고생하지 않으려고 기근과 도피생활이 아닌 전염병을 선택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어 타인을 살리는 사람이 아닌, 타인에게 내 욕심과 죄의 결과를 떠넘기려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다윗을 변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요. 다윗이 죽이고 싶어서 죽인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들이요,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지키고 완성하기 위해서 행한 일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들이 온전한 청종, 순수한 청종이 되질 못했던 것을 하나님은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피를 흘린 다윗이 지을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셨고, 그 이야기를 다윗도 알아들었습니다. 고집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성전 지을 이에 대한 결정권을 하나님께 넘겨 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하나님의 결정하심에 왈가왈부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 전쟁을 해보지 못한,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난 어리고 미숙한, 성정마저 온순한 저 솔로몬을 하나님이 선택하셨을 때, 아니 하나님 무슨 저 애가 성전을 짓냐고 암만봐도 내가 낫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솔로몬을 위해 준비하고 준비하고 또 준비한 것이 다윗이었던 것이지요. 이 모습을 한 구절로 요약해둔 성경말씀이 있습니다. 스가랴 4장 6절입니다.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
여러분, 성전건축에서만이 아닙니다. 모든 영역에 있어서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내려놓음이요,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내 힘으로 하려고, 내 능으로 하려고 하는 것을 자꾸만 내려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요. 내 주장 내 뜻을 관철하고 세워내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자기를 위하여 만들고 그 앞에 비는 우상숭배인 것이지요.
오늘 저와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입니다. 이 땅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신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결정과 명령에 오늘도 겸허히, 겸손하게 자기를 비우고, 내게 허락하신 일, 내 십자가를 지고 우리 하나님을 따르는 주의 종들 거룩한 하나님의 용사들이 다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 거하실 성전을 짓겠다는 것, 탁월한 생각이었습니다. 지난 번 성막의 가죽과 천들이 다 낡았으니 ‘새 가죽들로 새로이 청색홍색자색실로 천을 짜서 다시’가 아닌 이제는 ‘금과 은으로 놋으로 철로 나무와 벽돌로 성전을 웅장하고 명성과 영광이 있게 짓겠노라’고 한 것도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하였으니 네가 지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아니 하나님 아이디어는 다 제가 냈는데, 준비도 다 제가 했는데, 왜 짓는 것은 저가 하고, 칭찬과 명성은 또 왜 저가 받아야 합니까? 여러분, 이 마음을 잘 다스리시길 축복합니다.
이 일을 제일 잘했던 사람이 세례요한입니다. 준비는 세례요한이 다했습니다. 골짜기를 메우고 언덕을 깎아 길을 냈습니다. 광야에서 고생하며 메뚜기 먹으며, 그런데, 영광 받으시는 분은 예수님이셨지요? 제자들이 되려 질투하고 승질을 부립니다.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여러분, 기름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어야 불이 붙는 것입니다. 불을 붙이고 불꽃을 터뜨리는 사람이 환호와 박수를 받을 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준비한 사람을 기억하십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모세가 기억되고, 오늘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봉헌했지만, 준비한 다윗이 기억되듯이 말입니다.
바라옵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도 남들 준비해 놓은 것에 숟가락 얻는 삶 말고, 요압이 다 싸워놓은 전쟁에 가서 왕관만 쓰는 다윗 말고, 이제는 타인을 위해 내 힘껏, 내 힘과 능력을 다해 준비해주는 분들이 되어 보시길 축복합니다. 루터도 칼뱅도 웨슬리도 한 순간에 튀어나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 앞에 이들이 활약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준비하고 준비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지요. 광복은 해방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이들의 피흘림과 죽음이 수고와 고생이 있었고 수많은 이들의 기도와 눈물이 있었기에 마침내 이뤄지는 것이지요. 멋진 셰프는 멋진 주방보조들에 의해 아니, 모든 식재료들을 정성으로 기르고 공급한 농부와 어부들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수랏간 최고상궁은 그 아래 무수한 생각시와 나인들이 부지런히 정성으로 다듬고 주무르고 버무릴 때 그렇게 모두가 한마음 되어 준비할 때 인정받고 세워지는 것입니다.
요렇게 말씀드리면 어떨까요? 주목받는 자리는 위험한 자리입니다. 저 높은 에베레스트는 오래 머물러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얼른 내려와야 사는 자리인 것이지요. 예수님도 변화산에 오래 머물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오래 머물고 싶은 자리였으나, 거기서 초막을 짓고 영원히 살고 싶은 자리였으나, 예수님은 즉시 산 아래로 내려오셨던 것을, 그리고 나아가 저 십자가를 지셨던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일의 식구들은 아래에서 첫 번째인 사람들입니다. 낮아져서 섬기고 준비하고 희생하고 썩어져 가는 사람들입니다. 세례요한처럼 신들메를 푸는 사람이면 됩니다. 물길어오는 하인들이면 됩니다. 나귀를 데리러가는 제자들이면 됩니다. 우리의 자리를 못 마땅해 하며 다른 곳을 기웃거리지 마시고, 내가 훨씬 더 낫다고 말하며, 그저 이 사람, 저 사람 이것도 나보다 못하고 저것도 나보다 못하다고 까내리기 바쁜 이들도 되지 마시고, 오늘 이곳,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곳, 배신할 제자를 위해서 마저 대야에 새 물을 떠오시고 수건으로 닦으시는 곳에, 부활하셔서도 제자들의 조반을 준비하고 섬기신 곳에, 저와 여러분이 더욱 힘껏 서시길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음 수요일에는 성전을 짓는 사람 2부로, 성전을 짓는 이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