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전으로서 조선실록의 가치 고전은 대개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개인의 언행이나 정신이 담긴 저술이다. 개인의 언행과 정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세력을 장악하고 있지 못하면 동시대 국가ㆍ사회를 실제로 좌우할 수는 없다. 세력의 영향력은 개인보다 우월하며, 지배 세력의 정신은 시대를 움직인다. 여기, 우리에게는 조선 국가 중추 세력의 시대정신이 고스란히 응축된 위대한 고전이 있다. 조선실록은 개인이 아닌 집단의, 한 때가 아닌 장구한 세월 훼손되지 않았던 시대정신을 기반으로 존재할 수 있었고, 그러한 이유로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실록은 조선의 국왕과 사대부가 500여 년간 국정을 어떻게 운영하였고 잘잘못은 무엇이었는지를 공정하고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수준의 역사 편찬물은 실록의 가치를 공유했던 동아시아에서도 조선이 가장 모범적으로 성취한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역사 편찬 및 기록물 관리의 현실과 비교해 보아도 조선실록의 성취는 범상한 것이 아니다. 현대 한국은 실록에 비견될 수 있는 당대 역사 편찬이 가능한가? 조선과는 시스템이 다르므로 실록과 같은 역사 편찬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면, 조선과 같이 국정 운영의 핵심 기록이나마 정치 변동에 관계없이 엄정하게 기록ㆍ관리되고 있는가? 대한민국은 국가 기록물 관리의 노력이 시작된 지 몇 년 안 되었고, 그나마 정치적 대립으로 인해 아직 정착되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하면 이 정도 수준의 실록 편찬을 가능하게 하였던 조선의 국가ㆍ사회적 성숙도는 놀랍다 할 만하다.
혹여 무기력한 멸망 때문에 조선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조선실록은 존중해야 한다. 조선의 멸망과 조선실록의 위대한 성취는 별개의 문제이다. 주자학의 문제의식에 의하면 특정 시기의 성패를 기준으로 옳고 그름의 가치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성공에 안주하면 더 심각한 폐단을 초래할 수 있고, 반대로 실패에서 더 큰 교훈을 얻을 수도 있는 법이다. 조선의 실패가 가치 지향의 잘못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조선의 역사에서 얼마든지 훌륭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교훈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의 인식과 자세의 문제이다. 조선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을 돌아보며 한 단계 성숙해지기 위해서도 조선실록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고전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 환경에서 조선실록을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어서인지 도리어 그 가치를 잘 실감하지 못한다. 본래 실록은 국왕을 포함해 누구도 함부로 볼 수 없었으므로 친근한 기록이 아니었다. 실록은 누가 보라고 편찬한 것일까? 오늘날 정치가들은 자신의 치세(治世)를 역사의 평가에 맡긴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논란에서 벗어나려고 하지만, 실록은 국왕의 사후 곧장 사관(史官)의 평가가 비교적 엄정하게 내려지고 영원히 전해지도록 만들어졌다. 실록은 당장의 실용(實用)을 위해 편찬된 것이 아니라, 후손들 보라고 그토록 정성껏 편찬되고 철저히 비장(秘藏)되어 전해진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원칙이 훼손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실록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엄정한 국정 기록이 될 수 있었다.
2. 조선실록 기사의 특징
조선실록에 수록된 기사들은 어떠한 가치를 지닐까? 무엇보다 실록은 역사서이다. 오항녕 교수의 정의에 따르면 실록은 역사서에 가까운 역사 편찬물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일단 역사서라고 하자. 그것도 언제일지 모르는 후세, 곧 천리(天理)에 부끄럽지 않다고 자부하는 역사서이다. 실록의 진정성(眞正性)은 이러한 성리학적 세계관에 근간하고 있다. 실록 편찬의 준거가 되는 「범례」와 실제 기사를 살펴보면, 실록에는 천문ㆍ예악ㆍ군사ㆍ형정(刑政)ㆍ재용ㆍ경제ㆍ교육ㆍ선거ㆍ관직ㆍ외교 등 국정 전반에 걸친 주요 사항들과 이를 둘러싼 시비(是非)를 기록하도록 하였고, 이를 위하여 사관들은 시정기(時政記), 승정원일기, 일성록, 주요 관청들의 등록(謄錄), 문집(文集) 등 국정 운영과 관련된 핵심 자료들을 최대한 수집하였다.
역사서 편찬이라는 기준에서 보았을 때 실록과 여타의 기록물들 사이에는 분명한 위계(位階)가 있으니, 당연히 실록은 가장 상위에 있다. 이는 실록의 기사 선정이나 서술 방식에도 반영되어 있다. 실록은 편년체라고는 하지만, 성리학적 포폄의식의 전범인 『자치통감강목』의 영향을 받았기에 강목체를 전제로 한다. 실록을 편찬할 때에 자체의 「범례」가 있었지만, 그 이전에 『자치통감강목』의 「범례」와 필법은 사관의 상식이었다. 이는 실록 편찬 당시에 분명한 역사적 가치 판단에 입각해서 실록에 인용될 제반 기초 자료들에 대한 평가와 취사선택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실록은 조선 시대의 기록물들을 이해할 때 국정 운영 핵심층의 판단 기준을 알려주는 역사서이다.
이 때문에 실록을 일성록, 승정원일기 등 일기류 자료와 동등한 차원의 기록물 정도로 취급해서는 안 될 일이다. 분량의 방대함이나 특정 분야의 세세함으로 말하자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자료의 중요성과 가치를 기준으로 볼 때 실록을 넘어서는 조선의 기록물은 없다. 그렇기에 실록은 조선 시대 문헌들의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전제이기도 하다. 실록 이외의 여타 자료들은 국왕을 포함해 관료들의 국정 운영 참고 자료라는 실용적 목적에서 편찬되었으므로, 국정 운영에 해를 끼친다고 판단될 때에는 관련 사항을 삭제한다고 해서 심각하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이는 역사 편찬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실록은 역사서에 근접한 역사 편찬물이기 때문에 사적(私的) 이해관계 혹은 실용적 목적에 좌우되는 왜곡과 삭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조선이라는 국가는 사화(史禍)를 겪으면서 축적하였던 것이다.
예컨대 임오화변 관련 기록은 방대한 승정원일기 자료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영조 대에 세손의 요청으로 관련 기록 일체를 찾아서 도삭(刀削)하였기 때문이다. 도삭을 결정한 이유는 ‘비장(秘藏)될 실록에는 기록이 남을 터이니 관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승정원일기에서 없앤다 해도 문제 될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일기류와 같은 일상 기록의 도삭을 역사 왜곡이라고 함부로 단정하지 말 일이다. 실제로 실록에는 임오화변의 원인이 되었던 부자 갈등 및 세자의 비행 등이 비교적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실록은 도삭될 수 없는 책이다. 그것은 오늘날 국가 기록물 관리에서 문서의 비밀 등급을 매겨 놓고 별도로 관리하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조선의 역사 편찬은 우리가 손쉽게 생각하듯이 멋대로 조작 가능한 시스템이 결코 아니었다. 물론 역사는 사람이 편찬하는 이상 당파에 따른 편파적 편집과 서술은 피할 수 없지만, 이러한 한계마저도 조선실록은 수정(修正), 개수(改修) 실록을 남김으로써 최대한 보완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정도의 편파성을 역사 조작이라고 쉽게 단정해 버린다면 이 세상에 믿을 만한 사료나 역사는 그 어디에도 없다. 실록의 편찬자들은 그만큼 역사 앞에 진실했던 것이다.
조선은 실록 편찬자들로 하여금 국가의 중대사들을 누락시키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두었기 때문에 실록만 제대로 정리하면 국정의 대강(大綱)은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여타의 자료들은 이를 바탕으로 촘촘한 그물을 짜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쓸모없는 경우도 있다. 그 판단의 준거 역시 실록일 터이다. 이렇듯 조선실록에 수록된 기사는 정보의 수준과 범위, 사실성과 역사성의 측면에서 두루 높은 수준의 잣대를 제공해 준다.
실록 기사의 범위와 수준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실록에는 군신의 일상적 대화, 전문 관료들의 국정 논의, 당대 최고 문장가들이 지은 작품들까지 다양한 수준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군신 간의 일상적인 대화라 하더라도 이를 제대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정치사의 주요 쟁점이나 제도에 대해서 상세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 작업도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당대 문장가들이 중국의 고사와 조선의 역사를 교묘히 엮어 지은 교서(敎書)들은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이후 최고의 문장가로 손꼽히는 정인보(鄭寅普)는 농암 김창협이 글을 지을 때 그러하였다면서 순종(純宗)의 묘지문을 지을 때에 나흘 동안 거실 문을 잠그고 자신을 고립시킨 상태에서 제술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관각(館閣)의 문장은 이처럼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것이기에 수준도 높고 무척이나 어렵다.
3. 조선실록 재번역 사업의 중요성
이처럼 실록에는 조선 국정의 정수(精粹)가 다양한 문체로 수록되어 있다. 그래서 실록을 제대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온갖 난관을 거쳐야 한다. 다행히 이런 난관을 돌파해 주었던 선구적인 번역이 있었고, 그 번역의 도움을 받아 오늘날 일반 독자들도 어느 정도는 맥락을 잡아가면서 실록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선 번역 작업은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서 보면 난해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고, 전문가의 수준에서 보면 많은 오역도 있었다. 친절하고 상세한 주석은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여러 면에서 여건이 불비하였다. 이를 보완하는 것은 온전히 후대의 몫이다.
지난 2011년부터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실록 재번역 사업에 착수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대단히 뜻깊은 일이다. 그러나 재번역에 대한 관심과 국가 차원의 지원은 턱없이 미미하다. 조선실록의 위상과 대한민국의 품격에 걸맞은 재번역을 위해서는 한국고전번역원이 축적한 최고 수준의 번역 역량뿐 아니라 한문학ㆍ역사학ㆍ예학ㆍ철학ㆍ군사학ㆍ재정사ㆍ경제사ㆍ천문학 등 각 분야의 연구 성과까지 총동원되어야 한다. 이는 몇몇 번역자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에 국가 차원의 대폭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이러한 비상한 결단이 있어야 한국 인문학의 든든한 토대가 될 ‘실록학(實錄學)’도 정립될 것이고, 번역과 연구를 포괄하고 대중과 전문가가 모두 만족할 수준의 재번역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실록은 조선이다. 조선은 동아시아에서 성리학적 국가운영의 전범을 확립하였다. 조선실록의 충실함과 엄정함은 조선의 국가 이념 및 그 철저한 실천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성취이다. 그래서 실록은 오늘날에도 되새겨야 할 고전이다. 무릇 고전은 과거의 박제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 우리에게 영감을 주어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 단언컨대, 실록에 기록된 조선 국가는 해방 후 쉼 없이 산업화에 매진해 온 대한민국이 한 단계 성숙하고 비약하는 데 커다란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그래서 실록 번역은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조선의 위대한 성취를 오늘날의 우리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