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짱깨주의 탄생을 읽고
차례 1.교직시절의 경험 2.본문 3.중국은 왜 사회주의인가 4.중국은 왜 제국주의가 아닌가
1. 교직 시절의 경험
수업시간에 사회과목이 중국 관련 이야기를 할라치면 학생 일부는 짱개라고 바로 내뱉습니다.
중학교 사회책이 남북 단원을 포함해서 다국적 기업 등이 있기에 있는 그대로나 조금이나 저의 생각을 넣고 이야기하면 바로 빨갱이란 말이 바로 나왔습니다. 교직 시작 후 얼마 되지 앟아서 참교육-촌지거부, 모듬별 토론수업, 모듬일기쓰기(8개 모듬이 쓴 글을 오후 자습시간에 간단히 샘의 촌평해주기), 아침조회?시간에 장미송이로 그날 학생 생일챙기기, 방학책거부하기, 학생들과 학급문고 만들기(당시에는 중은 도서관도 없었고 조그만한 학급문고은 학생들용이 한 권도 없었음.) 등-을 한다고 빨갱이 교사로 학부모 20명 동원과 학생 연판장으로(말만 듣고 하도 어이없고 경황도 없어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여부와 관계없이 담임 쫓겨나는데는 영향이 없었기에) 그만 두었습다. 딱히 죄목도 없었습니다. 다음날 교무회의에서 A4용지 2장으로 신상발언하려고 하지 관리자가 뛰어와서 저의 발언을 막고 밖으로 나가자고 합니다. 그러면서 교사 그만두고 싶냐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가 기어코 발언을 해야 했습니다. 동료나 학생들은 거의 10년이 지난 다음 이런 사실을 말을 하기 전에는 전혀 몰랐습니다.
저가 근무한 학교는 연합고사 성적이 좋아서 광주시내에서 명문중학교 중 한 군데였습니다. 중3학년은 연합고사를 준비한다고 저녁 9시 까지 공부하면서 주초고사를 봤습니다. 교사에 따라 쪽지시험이나 체벌 중 하나로 깜지가 유행했죠. 그래야만 성적이 더 잘나온다고 생각하고 통제수단이기도 했습니다. 주입식 암기교육으로 성적을 잘내고 있는데 토론하고 모둠일기 쓰기 독서하여(학생들 성장에 도움이 되는 책들이었는데 당시에 의식적인 책들이 본 것 같음, 다음 해에는 교육청에서 교양서적 등이 몇 십권씩 들어왔습니다.-담임직 박탈한 해) 신식민지인 한국교육에서 학생이 생각하게 하고, 심지어 당시에 국가이데올로기을 학생들에게 선전하고 교총의 자금줄인 방학책을 거부하다니 이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손쉬운 통제로 빨갱이 교사로 통하게 하였습니다.
이후 10년 이상을 수업 이외는 모든 부문에서 열외였습니다. 물론 업무 등에서 배제된 것은 아닙니다. 소위 위험한 사상소유자?라 서인지 바이러스같은 혐오자로 낙인 찍었는지 학교나 대부분 가까운 지인들은 멀리합니다. 특히 교직 초 담임에서 쫓겨나면서부터는 이런 상황이 내가 숨쉬는 모든 공간에서 전방위적으로 공격하였습니다. 퇴직 몇 년 전 동안은 전보다는 심하지 않았지만 학교에서 주로 그랬죠. 내가 근무한 학교 선생님들이 학생들이나 내 주변 지인들이 딱히 다른 데보다 덜 착해서 그랬던 것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반공의 벽이 큰지를 절감한 것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어떤 선생님들도 담임이나 교과샘이나 위에서 언급한 이상의 참교육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야만 학생의 성장에 도움이 되니까요. 지금 같으면 특별 대우 받은 것 같지만 당시에는 이는 철저히 왕따이고 자주 이이제이로 말도 되지 않은 상황으로 괴롭혔습다. 저의 교직 생활 2/3가량은 자랑스러운 이런 생활이었습니다. 교직생활 내내 생물학적은 아니지만 사회적 생명에 대한 위협은 끊임없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는 지식을 상품화하는 기능적 지식인이 아닌 학생들이 성장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창조적 지식인 되고자 하였습다. 그 결과 철저히 이방인 정도가 아니라 변신의 처지로 전락하였습니다. 이후에도 내 양심껏 창조적 지식인이 되고자 노력했습다. 시지프처럼 무거운 돌을 정상에 올려놓으면 다시 굴러 떨어지는 일이 반복된다고 할지라고 최선을 다하였습다. 여기에 인용은 대학 1년 때 사회과학 책이 얼마 없을 때 읽었던 실존주의 책들입니다. 실존주의는 2차 대전 후 서구 지식인층이 개인의 불안, 두려움, 죽음 등을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철저히 개인주의 입장이기에 부르주아 철학입니다. 그럼에도 인용하였습니다.
2.본문
세계 2차 대전 후 미제는 동아시아에서 냉전질서인 샌프란스코 체제를 통해서 일본-한국으로 이어지지는 수직분업체계로 신식민주의를 구축하고 이북은 악마화하고 중국은 봉쇄화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제조업이 독.일에 뒤처지고 금융자본이 우세한 미제는 이윤율 저하를 돌파하기 위해 1970년대 초반 중국과 국교정상화를 통해서 단일시장을 형성하여 이 저하를 회복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키신저체제라고 합니다. 중국을 끌어들인 행위는 소련을 견제하고자 하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일본을 바로 우리나라는 20년 후에 이 체제에 탑승하여 나름대로 자본축적에 재미를 봤습니다. 조선은 이마저도 배제해왔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가 미제를 추월하기에 동맹국들과 함께 중국봉쇄로 돌아섰습니다. 본격적인 시기는 트럼프 정권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중국과 관련된 경제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정치.군사.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공격합니다. 소위 신장과 티벳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면서 중국의 이미지를 추락을 시도하던가 천안문 사태와 홍콩 사태처럼 공공연하게 공작하여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신장주민은 이슬람교를 믿은 지역으로 빈곤, 불평등, 도시화에 따른 실업증가, 소비수준에 따른 욕망상승과 늘어나는 범죄등이 있고, 영,미의 분리독립지원문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테러 문제들이 함깨 공존하는 지역입니다. 미국의 인권문제제기에 대해서 중국은 그 지역의 책임은 중국국가가 집니다. 신장은 테러, 극단주의, 분리주의가 성행하는 지역으로 주민들이 이동할 자유보다 지역의 안정이 우선이고, 매우 가난한 지역이기에 생존권확보가 낙태나 산아조절 같은 보편인권보다 우선하다는 입장입니다. 서구 언론이 강제수용소라는 것은 직업훈련소입니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타민족을 침략하는 DNA을 가졌기에 타국가를 침략한다고 합니다. 그 예로 우리나라는 동북공정을 말합니다. 미제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강한 달러시기에 중국은 경제발전을 위하여 안정을 필요로 하는데, 북조선은 아주 힘겹게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시절입니다. 이럴 때 중국은 혹시 있을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해서 연변의 조선족 2백만이 독립을 추진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같은 사회주의 조선을 믿고 지원하지 않고 때로는 적대시하고 대립한 점은 못마땅하지만.
한복공정이나 김치공정을 한국문화를 빼앗아 갔다고 한국언론은 자초지종을 따지지 않고 중국을 공격했습니다. 한국언론이 만든 김치공정은 리즈치라는 유투버가 김치 담그는 동영상과 유엔중국대사가 김치 담그는 사진을 SNS에 올리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리즈치는 김치는 연변의 조선족들의 전통ㅇ식품이라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조선족이 한복을 등장했을 때부터 한복공정을 안보적 보수주의가 시작했습니다. 이는 인식론적 폭력의 일종인 유사인종주의다. 중국을 향한 인식론적 폭력은 내부와 외부의 균열을 동시에 노린 것이다. 그 외 많은 중국 관련된 내용들이 조작.왜곡되어 있습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미제의 신식민지로 미제의 자문화중심주의를 넘어서 문화제국주의를 준거집단으로 기꺼히 동참할 뿐만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서 중국을 험담합니다. 소위 안보적 보수주의는 철저히 미제와 일제를 내집단으로 하고 북.중.러 등을 외집단화 하여 적대시합니다. 서양세력이 제국주의로 제3세계를 식민지화할 때 소위 근대화론이었습니다. 서양은 우리처럼 공장을 짓고. 자유시장경제체제를, 대의제 민주주의를, 3권 분립를, 사유재산의 신성시 등을 시행하면 문명화된다고 강요하였습니다. 이 근대화론이 자연과 동물이나 생물학적 인간에게 적용되면 매우 진보적인 진화론이 사회에 적용되면서 서양 제국주의를 제외한 제3세계는 문명이 아니라 야만이나 미개로 보게 했습니다. 그래서 서양제국주의자들은 제3세계를 침략하여 원주민을 노예처럼 부리고 죽이고 자원을 약탈하면서 이 미개.야만인들을 계몽한답시고 자기들의 지배를 정당화하였습니다. 중국짱깨주의도 철저히 이런 관점에서 이루어지지만 예전처럼 무력이나 경제력으로 중국을 몰락을 시키지 못하니 언론조작이나 공작, 봉쇄 등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철저히 오리엔탈리즘으로 중국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미제는 실시간으로 몰락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계가 일극체제가 아닌 다극체제로 급격히 전환 중에 있습니다. 우리 민족도 주체적으로 평화체제를 만들어야겠습니다. 남한은 중국과 무역량이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더 많습니다. 중국을 적대시하니 무역적자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중국이 우리나라의 기술을 따라와서 자립한 측면도 있습니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민족인 북조선과 러시아 등에 대해서 미제의 의도에 따라 적대시할 것 아니라 국가이익을 먼저 판단해서 함께 해야할 국가란 생각을 해야할 것입니다.
우리 언론은 중국의 소식을 전할 때 특파원조차도 현장 점검도 하지 않고,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 객관적이면서 균형잡힌 기사를 쓰지 않습니다. 단지 미국이나 서방이 주는 자료나 극우가 주는 기사에 전적으로 의존하거나 일부는 조작해서 기사를 내보냅니다.
3. 중국은 왜 사회주의인가?
중국은 여타 사회주의 국가처럼 생산력이 발전하여 탄생된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아주 미약한 상태에서 민족해방과 민중해방.인간해방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마오쩌둥은 생산관계를 중시하여 대약진운동 등을 통하여 자립경제를 이루려고 했으나 쉽지 않아서 홍위병사건 등이 일어납니다. 이후 등소평의 등장으로 개혁.개방정책으로 생산력 우선 정책으로 선회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사회주의 근간을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사회주의 생산양식(생산력과 생산관계)에서 무엇을 우선시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사회구성체에서 토대(하부구조)는 상부구조에 1차적 규정요인입니다. 그러나 상부구조도 토대에 영향을 줍니다. 인간은 가장 발달한 물질이므로 다른 저차원의 물질을 지배합니다. 의식은 물질에서 형성되기에 사상의식을 가지고 역사적이고 집단적인 자주적인 인간을 요구합니다.
중국도 생산력 우선으로 자본주의적 요소를 도입하여 불평등이 심화되었으나 공동부유같은 정책 등으로 이를 완화하고 있어서 기본골격은 사회주의입니다. 우선 국유기업의 비율도 높지만 막강한 권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에서 국유기업은 다수 인민이익을 위해 복무합니다. 자본주의에서 공기업은 사기업의 이익을 위해 복무합니다. 물론 공기업이 민중이익을 위해 조금은 봉사합니다. 중국의 토지는 집체소유와 국가 소유만 존재합니다. 기업 내 공산당 조직이 있어 중요한 결정 때마다 함께 합니다. 다음은 일부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하고 있는-신자유주의 광품이 분 이후에는 찾아보기가 힘들지만-당국의 증시개입, 환율시장 개입, 자본유출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국경제가 지금까지 고도성장을 해왔습니다. 중국은 토대도 사회주의 요소가 강하게 남아있고 상부구조인 공산당이나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여 나름 인민복지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토대(생산력과 생산관계)뿐만 아니라와 상부구조와 관계도 변증법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중국공산당이 집권기에 내세웠던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실제로 참여민주주의 한 형태다. 서구 민주주의가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을ㄴ 가져오고 있다면 중국의 당-국가체제는 정치활동에 일상적인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다. 당이 직접 생산관계까지 만든다. 전민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당의 개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산이 어느 정도 공유되는지가 핵심이다. 그래서 강한 정부와 민주주의는 같이 갈 수 있다. 자본주의는 계급과 계층이 다양하기에 이들을 대변할 수 있는 양당제가 아닌 다당제가 필요하나 사회주의는 적대적 계급이 해소되어서 일당제가 실시된다.
영국이 산업혁명 후 미국에게 자유무역을 이후에 독일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했으나 보호무역을 통해서 자본축적과 기술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4. 중국은 왜 제국주의가 아닌가?
중국의 대외정책이 미국처럼 제국주의인가 하는 점입니다. (신)제국주의는 자본수출로 타국의 값싼 자원과 노동력을 약탈하기 위해서 간접지배합니다. 이는 2차대전 후 제3세계 민족해방투재의 고양과 제국주의 막대한 비용증가로 지배방식이 바뀝니다. 미제는 전 세계 140개국에 800개의 미군기지가 있습니다. 이런 군사력과 달러패권으로 세계의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해왔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군사기지는 아프리카의 지부티에 불과합니다. 이곳은 소말리아의 테러로부터 무역선을 보호하기 위해서 상징적인 군대만 있습니다. 미국의 하수인에 불과한 IMF처럼 자본을 빌려주고 구조조정, 민영화, 사회복지축소, 노동유연성 확보, 자원약탈 등을 하면서 그 나라의 주권을 심각하게 침범하여 경제가 파탄나지만 미제 등 제국주의 자본의 이익은 천문학적입니다.
대신에 중국의 자본은 세 가지 정도의 담보를 받습니다. 자본을 집행할 때 중국기업을 사용하는 조건을 답니다. 다음은 자본제공의 대가를 자원으로 받은 방식을 사용합니다. 마지막으로는 구축한 인프라의 운영권을 넘기는 방식입니다. 중국은 부채를 상환할 때 특정 방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중국자본은 서구 자본에 비해 이미 국제적으로 너그러운 자본이자 낮은 수익 기준으로 유명합니다. 중국ㅇ자본의 이런 성격 때문에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가한 국가는 107개국입니다.(2017) 중국은 미국과 달리 그 어느지역과도 국가 간의 불평등체제를 구축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자본시장에서도 중국자본은 여전히 제2금융권 정도에 해당합니다. 부채위험이 높은 국가들이 빌립다. 정부재정이 열악하여 부채를 갚을 가능성이 없거나, 차관을 하기에는 국가신용등급이 너무 낮아 가난한 국가들입니다. 사회기반산업을 구축하거나 재정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손을 내밀 수 있는 국가는 중국이 유일합니다. 그런 국가들인 디폴트 위험에 처할 확률이 높습니다.
일대일로는 네트워크와 인프라구축에 집중된 사업입니다. 철로, 에너지수송관, 물류허브 들이 핵심입니다. 서울과 평양사이에 철로를 놓을 비용만 분담하면 우리는 아시아 대륙전체를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중국몽의 핵심은 중국의 국익을 대중들과 나누겠다는 것이고, 중국의 이익을 위해 중국의 힘을 폭력적ㅇ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중국성장이 다른 국가들의 이익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워싱턴 컨센서스가 미국의 강권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베이징 컨센서스는 중국의 공통시장제공 및 개발이익 공유를 바탕으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