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목 자사고 폐지 논란
과학고 영재학교는?
편집부가 독자에게 ... 인공지능 시대에 사교육으로 영재 만들기 웬 말? 지금은 대학생이 된 큰아들이 수학을 어려워해 다양하게 수학을 접하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초등 4학년 때 사고력 수학 학원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과 어울려 대학 부설 영재원을 준비하게 되었고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이건 아니다 싶어 중간에 그만두게 했더니 오히려 아들이 속상해해 결국 2주 만에 복귀했던 기억이 납니다. 과고·영재학교 취재를 하면서 인공지능을 만드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아직도 10년 전과 변함없이 선행으로 영재를 만들어간다니 안타까웠습니다. 만들어가는 영재 교육이 아니라 제대로 된 영재 교육을 기대하고 싶네요._ 김정옥 리포터 |
과고·영재학교, 고교 서열 1·2위 다퉈
외고·자사고가 폐지 위기에 몰린 이유 중 하나는 이들이 본래의 설립 취지를 잃고 우수 학생 선점의 특혜를 누리면서 높은 대입 실적을 토대로 고교 서열화를 조장했기 때문이다. 이는 서울대 입시 결과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EBS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4학년 서울대 입학생 중 자사고·특목고 출신 학생은 1천591명, 일반고 학생은 1천611명으로 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그러나 같은 해 수능 응시생 중 자사고·특목고는 4만3천779명, 일반고는 39만7천180명으로 10배 가까운 차이가 난다.
특목고에서 과고·영재학교만 따로 보면 그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학교별 수험생 규모 대비 서울대 등록자를 기준으로 2017년 진학률을 살펴본 결과 서울과고, 대전과고, 경기과고, 대구과고가 1~4위를 차지했다. 이는 고교 입시에서 과고·영재학교가 우수 학생을 먼저 뽑게 되는 선발 효과 때문으로 풀이된다. 우수한 자원을 확보해 명문 대학 진학률을 높이면서 고교 서열화를 만들어가는 것.
전국진학지도협의회 최승후 정책국장(경기 문산고)은 “현재 고교 서열은 영재학교 - 과고 - 자사고 - 외고 - 비평준화 지역 일반고 - 과학중점학급 운영 일반고 - 일반고 순”이라며 “과학 영재들이 국가적 발전에 기여한다는 논리에서 볼 때 과고·영재학교가 특목고 논란에서 배제된 측면은 이해할 수 있지만 중학교와 일반고를 황폐화시키는 과고·영재학교 입시는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전국 8개 영재학교 모집 인원은 860명, 20개 과고는 1천638명이다. 전국 31개 외고에서 6천여 명을 모집하는 것과 비교해 규모는 작지만 자연 계열의 최상위층을 싹쓸이한다는 점에서 일반고 황폐화의 주범 중 하나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교육 부추기는 과고·영재학교 입시
과고·영재학교의 가장 큰 문제는 사교육 의존도가 심하다는 점이다. 사교육 조장 면에서 볼 때 외고나 자사고보다 몇십 배는 더 심각하다는 게 학부모들의 인식이다. ‘영재학교는 초등 4학년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알고 있을 정도. 특히 중등수학올림피아드 등 대회를 치러야 과고·영재학교 입시에 유리하다는 입소문 때문에 초·중학생 때부터 과도한 사교육을 받는 학생이 많다.
영재학교에 자녀를 보낸 한 학부모는 “아들이 공부를 잘해 중학교 때 지방에서 서울 대치동으로 이사 왔다”며 “아이가 영재성을 타고난 측면이 강하지만 입시 정보, 올림피아드 준비 등 학원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과고를 준비했던 한 학부모는 “고교 과정까지 몇 번씩 선행을 반복하지 않으면 과고에 진학해서도 고생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초등학교 4학년부터 시작해 중학교 3학년까지 학원을 다니며 과고 진학을 준비했다”며 “과고에 떨어져도 공부한 건 남기 때문에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타임교육 입시연구소 이해웅 소장은 “도대체 영재학교는 왜 아직도 시대에 뒤처진 지필고사를 실시하는지 의문”이라며 “영재학교 지필고사야말로 사교육에서 선행 학습과 과도한 학습량을 강제하는 원흉”이라고 지적했다.
종로학원하늘교육 오종운 평가이사는 “외고에 비해 과고 선발 인원이 적고 영재 교육의 필요성이 인정돼 이번 특목고 폐지 논란에서 빠졌지만 사교육 유발 요소가 높다는 점에서 사실 형평성이 문제 될 수 있다”며 “예체능과 사교육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듯이 과고·영재학교도 사교육 없이 준비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고급 과학 인력 양성한다더니 의대 진학 계속돼
외고는 외국어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지만 이과반을 만들어 의대와 이공계 진학을 도왔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이 교육부로터 제출받아 공개한 ‘외고 졸업생 계열별 대학 진학 현황’에 따르면 2016년 2월 외고를 졸업한 6천919명 중 대학 진학자는 5천32명이다. 이 중 31.9%인 1천605명만이 어문 계열로 진학했으며 나머지는 이공 계열(6.2%) 의약 계열(1.4%) 등으로 나타났다.
과고·영재학교도 고급 과학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의대 진학률이 높아 비판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공개한 ‘2014~2016 과고·영재학교 진학 현황’을 보면 최근 3년간 졸업한 1500명 중 130명이 의학 계열로 진학했다. 영재학교 중에서는 서울과고, 과고 중에서는 한성과고 출신 학생의 의학 계열 진학률이 늘어나는 추세다.
서울과고 임규형 교장은 “안정을 희구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학교의 설립 목적에 맞춰 입학 전형 요강에 의대 진학 배제 사항을 명시했고, 올해부터 의대 진학 희망자에게는 추천서를 써주지 않기로 했다”며 “학생들에게도 자신이 가진 재능에 사회적 책무가 있음을 알려주고 더 많은 가능성을 지닌 만큼 새로운 미래에 도전하고 나아가도록 적극 권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교육으로 만들어진 영재 선발은 이제 그만
과학 인재 양성의 중요한 축을 맡고 있는 과고·영재학교의 선발 과정부터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고 신입생 선발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사교육 유발 요소이다. 영재학교 3단계 전형 중 지필고사로 진행하는 2단계 영재성 검사와 과고 2단계 창의성 면접에서 다루는 문항들은 사교육 도움 없이 준비가 힘들다는 점에서 가장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영재를 선발하는 평가 과정인 만큼 과도한 선행이나 주입식 문제 풀이로 접근할 수 없는 영재성 평가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 학습된, 사교육으로 만들어진 영재가 발붙일 환경을 없애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비판에 대해 과고·영재학교 관계자들은 최근 사교육 유발 요소를 줄이기 위해 문제를 쉽게 내고 있으며 평가할 때에도 주입식 지식 나열이 아니라 창의적 해결 방식을 살핀다고 반박한다. 한국과학영재학교 관계자는 “중학교 수준의 내용을 철저히 이해하고 창의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한 수준에서 출제한다”며 “단순히 선행 학습 지식이나 기계적인 반복 학습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종합적 사고력과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고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학생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성과고와 세종과고는 면접 기출문제를 올해 처음으로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사교육을 통하지 않고도 기출문제에 접근할 수 있게 조치한 것. 한성과고 관계자는 “중학 과정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했다면 사교육이나 선행의 도움 없이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 안곡중 배수경 교사는 “예전에는 선행으로 만들어진 학생들이 많이 합격했다면 최근에는 사교육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남다른 영재성을 지닌 학생들이 진학하고 있다”며 “다양한 문제 풀이 방식을 찾아보면서 자신만의 접근법을 고민하는 학생들이 영재학교 진학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의대 진학은 강경 대응… 추천서 거부, 장학금 회수
과고·영재학교가 특목고 논란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의대 입학 등 전공 외 진학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의대 진학자가 계속늘자 올해 교육부는 과고·영재학교 입학 전형 요강에 ‘의대 지원자 배제’ 문구를 적시하도록 권고했다. 또 학교에서는 올해 신입생에게 대입 추천서 작성 거부 및 장학금 회수 같은 불이익에 대해 동의서를 받기로 했다.
과고·영재학교의 의대 진학 문제는 대학이 서열화된 사회적 분위기와 명문고 진학을 강력하게 바라는 학부모들의 요구가 걸려 있어 학교만의 노력으로 근절되기는 어렵다. 오 이사는 “과고·영재학교에서 의대 진학자에게는 추천서를 써주지 않고 장학금 환수 등 불이익을 주겠다는 방침을 밝힌 만큼 수시에서는 의대 진학이 어려울 것”이지만 “어떤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의대에 진학하겠다는 학생을 제도적으로 막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대입 관련 전문가들은 의대 진학을 희망한다면 과고나 영재학교보다 일반고가 확률이 높다고 조언한다. 최근 학생부 종합 전형이 확대되면서 과고·영재학교에서 의대로 진학하는 길이 좁아지고 있는 것. 수능 준비를 거의 하지 않는 과고·영재학교 학생들은 대부분 수시로 대학에 진학하는데, 이들의 의대 진학 주요 통로로 활용되던 특기자 전형 비중이 줄고 있다. 또 종합 전형에 필요한 추천서를 학교에서 써주지 않기로 한 데다 학생부 교과 전형 역시 내신이 불리한 과고·영재학교 학생들로서는 지원하기가 쉽지 않다. 논술 전형은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이 적용되는 경우가 많아 수능을 별도로 준비해야 한다.
교육부, 과고·영재학교 발전 방안 연구 진행
영재 교육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사교육을 통해 과도한 선행 학습으로 만들어진 학생들이 지역 영재교육원을 거쳐 과고·영재학교에 입학하고 명문대로 진학하는 것이 영재 교육의 현주소이기 때문. 이제는 사교육으로 만들어진 영재가 아니라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창의·융합적인 사고력을 갖춘 영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국제미래학회 미래정책연구원 안종배 원장은 “4차 산업에는 이공계 관련 분야가 많기 때문에 이 분야의 인재 양성은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단순한 기술의 개발보다 창의성과 윤리가 강조되어야 한다. 인문학적 소양과 인성 윤리를 함께 갖추어가는 이공계 분야 인재 양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 이사는 “영재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쉽지 않다. 우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서는 시험이나 평가 과정을 거치는데 그 과정에서 사교육의 영향을 최대한 줄여야겠지만 원천봉쇄하기는 어렵다”며 “사교육 유발이라는 단순한 잣대만으로 수월성 교육이나 영재 교육을 비난할 수 없다. 우리 현실에 맞는 영재 교육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조율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교육부는 지난 4월 ‘과고·영재학교 운영체계 개선 및 발전 방안 연구’를 시작했다.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관계자는 확대 해석을 경계하면서 “현재 과고(20개교), 영재학교(8개교)는 모두 ‘과학 인재 양성’이라는 유사한 목적으로 학교별 큰 차이 없이 운영되고 있다. 과고와 영재학교의 학생 선발, 교육과정, 진로·진학 등의 운영체제 점검 및 입시 위주의 교육이 아닌 창의적 과학 인재 육성 등 각 학교의 목적에 맞는 발전 방안 수립을 위해 연구 용역을 의뢰한 것”이라고 밝혔다. 결과 보고는 10월 중으로 예정돼 있으며 과고와 영재학교 발전 방안에 연구 결과 내용을 참고할 계획이다. 외고·자사고 폐지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이번 연구 결과가 과고·영재학교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