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는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추락하는 한국교회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하나는 무속신앙과 성령운동의 부정적 조합에 의한 “실용주의적 신앙”입니다. 성령운동이 폭발했던 이유 중 하나는 한국사회 저변에 흐르는 무속과의 친화성 때문입니다. 이것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령운동이 무속의 기복신앙과 화학작용을 일으킬 경우, 신앙은 현실적 문제에 대한 구체적·즉각적 해법으로 인식되면서, 신앙은 기복의 비법, 성령은 “삶의 해결사”로 변질됩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가 자본주의의 종교적 메카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명백한 왜곡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런 실용주의적 신앙의 부정적 결과로써 발생한 “목사의 우상화”입니다. 목사는 결코 양떼의 주인이 아니라 주인에게 고용된 목동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한국교회에서 많은 목사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체하여 우상의 자리에 오른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목사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성전이 목사의 왕국으로 변질되면서,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목사가 가로채는 참담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거룩한 곳에 서지 못할 것이 서거든”이라고 종말의 징조를 예언했던 주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아찔한 순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읽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신앙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 아들을 낳지 못한 여인으로서 사회적 편견과 개인적 갈등 속에 고통의 세월을 보냈던 그녀가 하나님의 은총 속에 극적으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을 낳으면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서원을 갚기 위해, 한나는 젖을 뗀 사무엘을 데리고 제물을 준비하여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곳에서 한나는 하나님께 아들을 드리면서, 하나님을 찬미하는 신령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삼상2:1-2)
한나는 하나님을 이기적·세속적 욕구 충족의 도구로 삼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 소중한 아들을 드렸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축복을 사유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동시에, 한나는 그런 체험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정확한 인식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런 체험과 깨달음이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찬미로 승화되었습니다. 신앙체험이 하나님에 대한 성숙한 인식과 관계로 성숙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기복이나 우상숭배의 흔적을 도무지 찾을 수 없습니다.
기복적 실용주의와 우상숭배적 신흥종교로 추락하는 한국교회가 깊이 묵상해야 할 숭고한 성경의 교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