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28일 주일예배 설교문 / 마 1:1-3 / 예수님의 계보② 아브라함, 야곱, 유다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합니다.
지난 주 우리는 1절 말씀을 통해서 아브라함의 자손 이삭, 다윗의 자손 솔로몬이 그리스도의 예표가 됨을 보았습니다.
이삭으로 예표된 예수 그리스도는 ①모든 민족들에게 축복을 가져온 자 ②십자가에 순종하여 제물이 된 자 ③마지막 때에 신부를 영접한 자 신랑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솔로몬으로 예표된 예수 그리스도는 ①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은 왕중왕 ②참된 지혜의 왕 ③십자가 피 값으로 교회를 세우신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계보라. 이 족보는 ①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다윗까지 믿음의 조상 14대, ②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열왕들 14대, ③바벨론 포로부터 예수님까지 14대로 이어집니다. 17절 14+14+14=총 42명.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말씀이지만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신약성경을 열자마자 하나님 이야기가 아닌 인간 족보 즉 42명이나 되는 사람 이름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창세기도 죽고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셀 수 없이 나오며, 종교개혁의 근간이 되는 로마서도 16장에만 무려 36명의 이름이 나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은 그들을 통해서 어떻게 영으로 살아내었는지 보라는 것입니다. 영으로 살아내어 이기고 열매 맺는 사람을 발견하고, 우리도 영으로 살아내어 나의 이름이 생명록에 기록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1. 부름 받은 아브라함
신약성경의 첫 단어요, 예수님의 족보에서 처음 이름으로 장식되는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믿음의 조상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숭배가 충만한 도시, 모든 사람이 사탄과 하나 된 곳, 바벨로부터 하나님은 아브람이라 이름하는 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창세기 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도 바꾸어주십니다. 아브라함으로. 원래는 큰 아버지라는 뜻이었는데 이제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의 이름을 얻었습니다. 이는 천연적인 생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신 새 생명, 예수생명, 부활생명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부르신 이름 그대로 아브라함으로 살았더니 마침내 열국의 조상이 되고 복덩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아담의 후손이 아닌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도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있지 못하다면 나는 아담의 후손일 뿐입니다. 그러나 내 안에 예수님이 계셔서 예수 생명으로 살고 있다면 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것이고 우리도 복덩어리가 될 줄 믿습니다.
갈라디아서 3: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갈라디아서 3: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성경은 우리가 옛 생명에서 새 생명으로 거듭났을 때 다시 태어났다고 하기보다 대부분 아브라함처럼 “불렀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베드로전서 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부름 받은 이들이 모인 곳이 에클레시아(부름을 받았다) 곧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산다는 것은 나 자신을 예수 공장의 기계로 찍어낸 예수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철수는 철수대로 영희는 영희대로 부르신 그 부르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마치 손가락은 손가락대로, 머리카락은 머리카락대로 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부르심의 소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주인인 머리로 모시고 우리 모두 부르신 지체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삭이 예수님을 예표할지 알고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이삭은 이삭대로 부르신 그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축복을 가져다주는 자, 순종하여 제물이 된 자, 신부를 영접하는 자로서의 예수님의 몸을 이루는 예표적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솔로몬이 부름받은 그대로 솔로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니 왕, 지혜, 성전지은 자로서의 예표를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나중에 부르심에서 떠나 타락하지요. 하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지 못하고 교만하여져서 자기가 높아지니 영으로 살아내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나라가 두 쪽 나고 복덩어리가 아니라 심판 덩어리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각자 각인에게는 나름대로 부르심의 소망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손가락이 없으면, 발가락이 없으면 몸이 어찌되겠습니까? 지체 중 중요하지 않는 부분이 없습니다. 나를 무엇으로 부르셨든지 예수님의 몸으로서 모두다 중요할 뿐입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는 너무 작은 교회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너무 중요합니다. 따라합시다. “나는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사람이다.” “○○○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아멘. 할렐루야!
예수님을 내 마음 안에서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십시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나를 나로 부르신 소망 그대로 사십시오. 그것이 나의 믿음의 인생인 것입니다.
2. 변화된 야곱
아브라함, 이삭, 다음은 야곱입니다. 야곱의 이름의 뜻은 “빼앗는 자, 발뒤꿈치를 붙잡는 자”였습니다. 그는 자기 형 에서를 속여 빼앗았으며 외삼촌 라반의 집에 들어가 속여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모든 수고는 헛되었습니다. 나이 130이 되도록 험악한 세월뿐이었습니다.
창세기 47:9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창세기 25장부터 47장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야곱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어리석은 야곱아 너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나는 네가 얻은 것 보다 더 많이 네게 줄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계속 자기 것을 얻으려고 분투했다. 그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었지만 그의 분투와 본성에 따르면 그는 전적으로 아담의 후손이요 마귀의 후손이었던 것입니다. 위치적으로 말하자면 야곱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었지만 기질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마귀의 자녀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다루시기 위해 그의 주변사람들을 통해 고통에 빠지게 했습니다. 형 에서, 외삼촌 라반. 심지어 네 명의 아내, 열두 명의 아들이 다 속 썩이고 인생을 힘들게 했습니다. 축복을 얻으려고 분투하고 속여 빼앗기까지 했으나 가는 데마다 지뢰밭이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험악한 세월. 야곱의 생애는 엄청난 고통이었지만 이 고통은 자신이 분투함으로 온 것이지 하나님이 일부러 골탕 먹인 것이 아닙니다. 애쓰면 애쓸수록 그는 더욱더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 야곱이 이스라엘이 됩니다. 천연적인 생명인 야곱이 아니라 새 생명으로 거듭난 변화된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언제지요? 얍복강 나루에서 어떤 사람과 씨름할 때입니다. 야곱은 이 사람을 딱 알아보았습니다. 영 안이 열린 사람은 이것이 보입니다. 이 사람은 구약의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축복을 달라고 밤새 씨름합니다. 얼마나 덤벼드는지 그 사람이 “이제 그만” 환도뼈를 발로 차버립니다. 그리곤 그 사람이 축복해줍니다. “너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창 32:28)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다.”
마태복음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이 들어가는 것은 장자권의 문제입니다. 장자권의 결론은 예수님의 계보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멸시했으며 값싸게 팔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평생 그 장자권을 존중했으며, 마침내 획득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지만 영은 추구해야 합니다. “옛 생명으로 살면 옛 야곱처럼 험악한 지옥생활이다. 이제 새 생명으로 부활생명으로 살아야겠다.”는 영적 의지를 가지고 영을 추구하십시오. 그때 야곱이 변화된 이스라엘이 된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계보에 들어가는 축복을 상속받을 줄 믿습니다.
3. 책임을 진 유다
유다는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넷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도 야곱처럼 여러 험난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동생 요셉과 베냐민을 살리려고 부단히 애썼던 사람입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시기해서 구덩이에 묻어 죽이자고 했을 때 종으로라도 팔자고 살리는 길을 열었습니다.
창세기 37:26-27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유다 덕에 죽지 않고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이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요셉은 자기 친동생 베냐민이 걱정이었습니다. 자기를 죽이듯 베냐민도 죽거나 고통당하면 어떨까해서 베냐민을 형제로부터 빼내어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베냐민마저 없어지면 아버지 야곱은 죽고 말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유다가 베냐민을 책임집니다.
창세기 44:33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내가 애굽의 노예살이를 할테니 베냐민은 살려달라고 하는 장면입니다. 이때 요셉이 울면서 모든 형제들을 용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생명에 책임을 지려고 했던 유다. 그를 통해서 다윗 왕이 나왔으며 왕중왕이신 예수님이 나오셨습니다. 할렐루야!
부르심의 소망으로 살았던 아브라함, 새 생명으로 변화된 야곱, 생명에 책임을 진 유다. 우리 모두다 메시아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어, 변화된 생명으로 부르심의 소망으로 사십시오. 그리고 누구든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하는 생명을 살리는데 책임을 진, 영으로 살아낸다면 천국의 생명록에 이름이 올리는 우리가 될 줄 믿습니다.✞동문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