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날 풀리면 생각나는 바다밥상 거제 멍게·성게비빔밥
‘바람의 언덕’ 바라보며 비빔밥 한상 거제 관광의 1번지인 바람의 언덕이 있는 도장포,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으로 감탄을 자아내는 곳이다. 관광지로서 명성 못지않게 어촌으로서 분위기도 활기차다. 그곳에서 멍게·성게비빔밥을 맛보기로 했다. 30대에 밥장사를 시작해 팔순이 되도록 식당일을 놓지 못하는 김선이 주방장의 비빔밥이다. “뭘 찍는다고 그래?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밥이나 먹고 가.” 카메라를 들이대자 손사래를 치는 김 여사는 사장인 아들 백광호(52) 씨를 불러내 촬영거부 시위를 한다. 백 사장은 “있는 그대로 차려내면 된다”는 말로 어머니 허락을 받는다. “그냥 산지에서 먹는 거라 재료가 좋은 것뿐인데, 뭘.” 봄 햇살 따뜻하게 내리쬐는 야외식탁에 앉아 김 여사의 멍게·성게비빔밥 한상을 받았다. 바람의 언덕 풍차가 바라보이는 곳이어서 거제 특미의 맛을 더한다. 홍합탕으로 개운한 입가심 여덟 가지 밑반찬이 차려진다. 집밥을 마주한 듯하다. 화려한 꾸밈새가 없다. 비빔밥과 세트를 이루는 홍합탕이 그나마 밥집 분위기를 낸다. 유명 식당에서 멍게·성게비빔밥에 지리탕을 내는데, 여기서는 홍합탕을 낸단다. 비빔밥을 보면 이유를 안다고. “집집마다 비빔밥 스타일이 다른데요. 멍게살과 성게알에 김가루, 참기름만으로 비빔밥을 내는 게 보통인데, 우리 집은 야채비빔밥처럼 냅니다. 그러다보니 국물로는 무거운 지리탕보다 개운한 맛으로 먹는 홍합탕이 낫더라고요.” 과연 백 사장이 가져온 비빔밥은 흰쌀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덮은 멍게와 성게, 그리고 야채와 김가루가 한가득이다. 양념장인 초고추장도 이미 뿌려져 나온다. 손님 요청에 따라 양념장 없이 내기도 한다. “멍게와 성게는 바다향이 진해서 호불호가 확실한 편이죠. 기성세대는 좋아하고, 젊은층은 별로라 하더라고요. 특유의 바다 맛을 즐기시는 분들은 양념장 없이도 감칠맛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숙성 거쳐 비빔밥으로, 해녀채취 성게 ‘귀한 몸’ 멍게는 양식, 성게는 거제 해녀들이 물질한 자연산을 쓴다. 양식 못하는 성게는 제철 아니면 맛보기 어려운 귀한 몸이다. 하지만 멍게가 양식이라고 자연산에 비해 맛이 떨어지지는 않다는 게 백 사장의 설명. 어차피 바다 속에서 자라기는 매한가지기는 하다. 봄부터 여름까지 한창 제철일 때는 막 건져 올린 생물을, 제철이 아닐 때는 냉동 보관했던 것을 숙성해 쓴다. 제철일 때도 살짝 얼려 이틀정도 냉장고에서 숙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더 진한 맛을 낸단다. 백 사장의 얘기를 들으며, 알싸하고 달큰한 맛의 세계로 숟가락질 해간다. 특유의 바다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우리는 보통 성게알이라고 하잖아요?그런데 사실은 알이 아니고 암수 구분되는 생식기예요.” 백 사장이 무심코 던지는 정보성 발언에, ‘헐~ 생식기?’ 숟가락질을 멈추고 비빔밥 그릇을 내려다본다. 이미 밥그릇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 멍게·성게비빔밥, 안 먹어봤으면 모를까 맛보고 나면 다시 생각날 수밖에 없는 중독성을 갖고 있다.
“거제 오시면 꼭 맛보시고 가세요.” 백 사장이 바닷가에 왔으니 물고기 맛을 안 보고 갈 수는 없다면서, 우럭매운탕을 내온다. 큼지막한 우럭이 솥이 비좁아라 누웠다. 비린내를 가시게 하는 쑥갓이 듬뿍 얹혔다. 빨간 국물에 침을 꼴깍 삼킨다. 통통한 우럭살을 한 덩어리씩 건져내 푸지게 먹는다. 향 진한 멍게·성게비빔밥이 싫다던 손님들도 우럭매운탕 앞에서는 밥 한 그릇 뚝딱이다. 거기다 일일이 손으로 떠 넣은 수제비가 밀가루음식 마니아에게도 힘을 쓴다. 마지막 한 점까지 끝까지 먹어야 숟가락을 놓게 한다. “매운탕에 뭘 한 거냐?”고 묻자, “어머니 김 여사 손맛”이라며 웃는 백 사장. 꼭 써달라면서 멍게·성게비빔밥 자랑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한다. “성게는 단백질이 많고, 비타민과 철이 풍부해서 영양가가 높답니다. 비싸지만 안 먹을 수 없는 식재료지요. 멍게야 간 기능 향상에 좋고 피로회복, 노화방지에도 좋다고 소문나 있어서 제값을 충분히 하는 셈이고요. 채취하고 손질하고 보관 숙성까지 쉬운 재료들은 아니에요. 거제 오시면 꼭 한 번 맛보시고 가세요!” 취재협조 바람의언덕맛집 055)633-1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