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발
김지희
2017년 제주 영주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자운영 붉게 핀 옷감 위를 노루발이 겅중겅중 뛰어간다. 두 귀 쫑긋 지나간 자국마다 박음질된 실들이 오솔길처럼 펼쳐진다. 촘촘한 길 가로 새소리며 바람소리가 들려온다. 챠르르! 챠르르! 할머니가 손잡이를 돌릴 때마다 눈부신 천들이 지어져 나온다.
노루발은 재봉틀의 부속품이다. 박음질 할 때 옷감이 밀리지 않도록 눌러주는 역할을 한다. 지그시 누르는 힘이 없다면 실이 끊어지거나 선이 비뚤어져 낭패를 보기 일쑤이다. 중간이 갈라져 끝이 살짝 들린 생김새가 노루의 발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누가 처음 그렇게 불렀는지 언제 들어도 정답고 살갑다.
몇 번씩이나 이삿짐을 꾸릴 때마다 엄마는 신주단지처럼 재봉틀을 모셨다. 혹여 생채기라도 날까봐 이불로 고이 싸매고 난 후에야 다른 짐을 챙겼다. 이사한 집에서도 가장 호젓한 자리를 차지했다. 재봉틀을 앉히고 구도를 잡은 후에야 다른 가구들을 배치했다. 그건 어쩌면 청상과부로 반백년을 보냈던 외할머니의 체온이 고스란히 스며들었기 때문이리라.
할머니는 육이오 전쟁에 남편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학도병이던 아들까지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야했으니 삶이 얼마나 곡진했을까. 난리 속에 자원입대한 아들의 생사를 알 수 없어 밤낮 분간 없이 사방을 헤매며 다녔다고 한다. 수소문으로 듣게 된 아들의 죽음은 청천벽력이었고 할머니는 한동안 실어증환자처럼 말문을 닫아버렸다. 그런 할머니에게선 어린 내가 느끼기에도 아련하고 쓸쓸한 냄새가 났다. 뒷산 바위 틈새에 피어난 구절초 향기 같기도 했고 늦가을 들판 위로 피어오르는 수숫대 타는 냄새 같기도 했다.
할머니는 매일 꼭두새벽마다 장독대에 촛불을 밝힌 후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를 했다. 기도가 끝나면 가족들이 일어나기 전 무명치마저고리를 띠 둘러 입고 윤이 나도록 마루를 닦았다. 보리밥 한 소쿠리 처마 밑에 매달아 놓고 잠 덜 깬 내 손을 잡고 집 뒤 작은 암자에 새벽기도를 가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엔 마을초입의 기생집에 들러 바느질거리를 받아왔다.
앉은뱅이 손틀은 한 손으로 손잡이를 돌리고 다른 한 손으론 노루발을 조절해야 바느질이 고르게 된다. 북에 실을 감을 때에도 요령이 있다. 바퀴처럼 생긴 북에 송곳을 끼우고 재봉틀의 손잡이를 돌리면 오동보동 배를 불리며 북이 넘친다. 대롱이 뾰족한 양철기름통 밑동을 누르면 한 방울씩 내어줄 듯 말 듯 한다. 손잡이에 기름 몇 방울이 떨어지면 기다렸다는 듯 노루발은 천을 뒤로 밀어내며 걸어간다. 그때마다 나는 산중턱을 겅중겅중 뛰어오르는 한 마리 노루를 상상하곤 했다.
할머니의 재봉틀은 달그락거리며 한나절 옷감을 지었다. 노루발은 발꿈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기생들의 갑사저고리와 치맛단을 총망하게 밟고 다녔다. 잠자리 날개 같은 치마와 저고리를 만들고 빳빳한 동정을 달았다. 대나무자로 이리저리 재단을 하는 할머니의 숨 깊은 휘파람 소리도 곁들여졌다. 가끔 나를 부를 때도 있었다. 바늘귀에 실을 꿰어야 할 때였다. 실을 꿸 때면 노루발은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나를 그윽이 바라보곤 했다. 할머니의 희끗한 머리엔 자투리 실이 올라가 있거나 입술엔 보푸라기가 물려있기도 했다.
할머니는 가져온 일감이 다 끝날 때까지 밤샘을 했다. 자투리 천이 생기면 손가방을 만들어 수를 놓거나 목수건을 만들었다. 덕분에 설빔으로 한복 한 벌씩은 내 차지가 되었다. 할머니는 여러 손자손녀 중 유독 나를 어여뻐했다. 어쩌면 이목구비가 당신을 빼닮은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옷감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자투리 천으로 만든 색동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는 종일 실밥처럼 폴폴 웃음을 날리고 다녔다.
노루발은 옷감뿐 아니라 자꾸만 비어져나가려는 슬픔도 지그시 눌러준 게 아닐까. 할머니는 시댁도 친정도 의지가지가 없었다. 남편과 아들을 잃고 수십 년 세월을 어떻게 살아냈을까. 순간순간 닥치는 외로움과 허망함을 새끼손가락만한 그걸로 눌러 가슴 한켠에 꼭꼭 여미며 한 많은 세월을 이겨낸 게 아닐까.
어느 해 가을, 할머니는 당신이 손수 박음질한 수의를 입고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이 있는 저 세상으로 떠났다. 돌아가시기 전 잘 간직하라며 재봉틀을 엄마에게 물려주었다. 엄마는 입다 헤진 옷으로 원피스며 천가방 등을 만들었다.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에 재봉틀은 꽤 도움이 되었다. 어떤 날은 엄마 방에 새벽이 이슥하도록 불이 켜지고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나기도 했다. 노루발이 할머니의 슬픔을 눌러주었던 것처럼 엄마의 가난도 지그시 눌러주었을까. 어린 우리들은 풍족하진 않았지만 불편한 것 없이 자랐다. 그 후 연로한 엄마는 나에게 재봉틀을 넘겨주었다.
할머니에게서 엄마에게로 또 내게로 대물림되어온 재봉틀은 이제 기력이 많이 떨어졌다. 손잡이는 헐거워져 헛돌기를 하고 북은 자꾸만 실을 끊어 먹는다. 관절이 꺽꺽 소리를 내는가하면 걷다가 퍼질러 앉아 일어나질 않는다. 헐거워진 경첩을 조여 보기도 하고 삐걱대는 나사를 조절하며 윤활유를 발라보지만 종내 옛날의 모습을 회복하진 못한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 되고 사회적문화도 많이 변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엔 집집마다 유행처럼 재봉틀이 놓여 있었다. 이젠 전문수선집이 아니면 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러고 보면 요즘 새로 나온 노루발은 빠르기도 하고 주름도 예쁘게 잡아주며 앙증맞기까지 하다. 거기다 실도 자동으로 꿰어준다. 두꺼운 청바지단도 지그시 밟으며 소리 내지 않고 달린다. 그러나 아무리 편리해졌다 해도 할머니의 재봉틀만큼 섬세하진 못하다. 손 때 묻은 바퀴며, 덜컹거리는 소리며, 그 소리를 따라 왁자하게 피어나던 꽃무늬며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없다.
어쩌면 노루발은 삶을 견디는 무언의 힘이 아니었을까. 가끔씩 사는 것이 고단하고 힘이 들 때면 재봉틀 앞에 앉아 본다. 천천히 손잡이를 돌리면 늙은 노루발이 겅중겅중 뛰어간다. 가끔씩 멈추어 “괜찮아, 괜찮아”하고 내 어깨를 토닥거려 준다. 그러면 나는 또 서툰 재봉질로 가슴 속 맺힌 것들을 풀어내어 가만히 내일을 박음질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