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라이는 4년 전에 3박을 하면서 잠시 구경을 했던 곳이다. 시내에 있는 사원들과 쑤언뚱에서 열린 꽃축제 등을 구경했고, 왓롱쿤과 도이뚱을 다녀왔었다. 첫날 숙소 때문에 애를 먹었었지만 도시 분위기나 음식들이 마음에 들어서 이번에도 기대를 하며 일정을 잡았다. 가 볼 곳으로 적어 놓은 곳은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못 가 본 곳이 더 많았다. 남은 여행기간이 9일밖에 안 되는데 그 중 절반은 치앙마이를 위해 남겨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두 번을 방문하고도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곳으로는 반담뮤지엄 추이퐁 푸치파 치앙쌘(골든트라이앵글) 등이 있다.
1월 15일
난에서 치앙라이로 가는 버스는 하루에 한 번 아침 9시에 출발한다. 파야오(市)쪽으로 가지 않고 훨씬 북쪽 길로 가는데 높은 산을 구불구불 돌아 가느라 치앙라이까지는 6시간이 넘게 걸렸다. 요금은 181밧.
숙소는 원래 반짜루 반와라버디 반말라이 등 터미널 남쪽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들 중에서 찾아보려고 했었는데 갑자기 치앙라이 호텔을 추천하는글을 보고 찾아가 보았는데 잘 한 선택이었다.
조금 오래된 느낌이긴 하지만 가격이든 방 상태든 친절도든 모든 면에서 큰 흠결이 없이 무난한 호텔이다. 첫 이틀은 조식 포함 하루 750밧을 주었는데 조식이 썩 맘에 들지 않아 (국수 볶음밥 샌드위치등 단품 메뉴.) 나중 이틀은 조식 없이 하루 570밧씩에 묵었다. 그런데 우리가 안 먹는 날부터 조식이 부페식으로 바뀐 것은 무슨 조화인지? 그러나 부페 조식이라 해도 180밧 가격 차이를 고려하면 아쉽지는 않다. 스탠다드 룸이 좁다는 후기가 있었지만 잠만 자면 되는 우리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방은 좁기는 하지만 킹사이즈 침대에 널널한 수납 공간이 있어서 넓이에 비해 실용적이었다. 다만 이불이 낡아서 찢어졌는데 다음날도 바꿔주지 않더라는......






4년 전에도 꽃축제를 하더니 이번에도 같은 곳(쑤언뚱)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다.
저녁은 4년 전에 족발 튀김을 맛있게 먹었던 식당을 찾으려다 못 찾고 근처에 손님 많은 식당(푸래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그 식당도 나름 유서깊은 맛집인 모양이다. 똠얌꿍, 돼지고기 튀김, 차요테 무침을 맛있게 먹었다. 합 500밧.
1월 16일
멩라이 동상 뒤편에서 출발하는 무료 시티투어가 있다고 들었으나 늦게 일어난 탓에 포기하고 (투어는 아침 9시반과 오후 1시 하루 두 번 출발한다고 한다.) 오늘은 적당한(?) 거리에 있는 라이매파루앙(매파루앙 예술 문화 공원)을 가보기로 했다. 도이뚱에 있는 매파루앙 정원은 4년 전에 다녀온 바, 경치도 있고 감동도 있었던 좋은 곳이었다. 치앙라이의 매파루앙 공원은 어떠할까? (매파루앙은 라마9세의 어머니 즉 현 국왕의 할머니를 일컫는 말이다. 말 그대로 번역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왕의 어머니? 전국적으로 인기가 많았다지만 특히 도이뚱을 중심으로 이곳 북부에서 굉장히 추앙을 받고 있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걸어가기에는 약간 먼 곳에 있는데 버스는 다니지 않으며(갈 때는 걷고 올 때는 썽태우), 깔끔하게 잘 관리되고 있는 아름다운 정원과 목조 건물들이 볼 만한데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외국인 입장료 200밧.








라이매파루앙 근처에 치앙라이 시내에서 밥을 먹으러 일부러 찾아 온다는 유명 맛집이 있다길래 들러서 점심을 먹었다. 상호는 반너이, 작은 집이란 뜻일텐데 장사가 잘 된 덕분인지 집이 서너 채가 되는 큰 식당이다. 손님도 많고 음식도 맛이 괜찮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일부러까지는 몰라도 근처에 왔다면 필히 들러볼 만하다고 생각.
호텔까지 걸어가기에는 부담스런 날씨라 연신 지나가는 썽태우가 없나 찾아보다가 결국 하나 만나서 시계탑까지 타고 돌아왔다. 40밧.
호텔에서 좀 쉬다가 나가서 4년전의 그 맛집을 찾아 저녁을 먹었다. 내 기억으로는 한자로 자희식당이라고 쓴 간판이 있었는데(태국 발음으로는 짜히), 아무리 돌아봐도 한자는 안 보이고 태국어 간판뿐이다. 짜히카우똠밧디여우 라는 간판을 해석해 보자면, '짜히 1밧 죽집'이라는 의미다. 죽만 파는 것은 아니고 여러가지 태국 음식을 파는데 간판에 써 있는대로 죽 한 그릇에 1밧이다. (매우 작은 그릇에 주기는 하지만, 어쨌든 10밧짜리 공기밥에 비하면 매우 싸다.) 서민 식당이라는 뜻일까, 혹은 1밧에 죽을 팔던 어떤 역사나 사연이 있는 것일까?


소통의 한계로 더 이상 알아보지는 못하고 4년 전에 먹었던 족발 튀김과 똠얌꿍 그리고 팍붕파이댕을 시켰는데 (물론 밥과 죽도) 그때처럼 감동적인 맛은 아니었다. 손님도 많고 일하는 사람들도 활기찬 식당 분위기는 예전 그대로인데 왜 족발 튀김은 맛이 변했을까?
1월 17일
왓롱쿤 근처에 유명 맥주 회사가 운영하는 싱하파크(현지인들의 발음은 대략 씽빡)라는 넓은 공원이 있다고 하여 찾아가 보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왓롱쿤으로 가서 (일인당 20밧) 잠시 구경을 하고 나서 썽태우를 찾아보니 생각보다 흔치 않다. 100밧이면 간다고 들었으나 150밧을 꼭 받겠다는 기사가 한 명 있을 뿐이다. 올 때는 100밧을 주었으니 우리가 협상을 잘 못한 탓일까? 거리는 6킬로미터 정도 된다고 한다.

(태국 여행 40일 만에 처음으로 관광지다운 관광지를 만났다. 서양 관광객이 우글거리는 왓롱쿤)



(왓롱쿤을 지은 찰름차이, 이 아저씨 능력은 인정하겠는데, 곳곳에서 느껴지는 돈 밝힘증 때문에 정이 가지는 않는다. 4년 전에는 받지 않던 입장료도 생겼네?)
싱하파크에는 내부 관람차를 운영중이었는데 예약 부쓰에서 보니 2시간 이후에 출발하는 것밖에 없다. 점심때라 운영을 안 하나? 했는데 그게 아니라 예약 손님이 이미 꽉 차 있다는 것. 그냥 걸어다니지 뭐. 우린 걷는 거 좋아하잖아? 지도를 보면서 슬슬 출발했다. 그러나 오판이었다. 공원은 너무나 넓었고 보행자를 위한 배려(가로수라든가 벤치라든가) 따위는 전혀 없었다. 뙤약볕 아래 찻길을 따라 걷다가 고생만 하고 돌아왔다. 지도에 보면 동물원도 있고 열기구도 있고 차밭과 차공장도 있는 등 볼거리가 많은 것 같은데 우린 그냥 벌판만 보았다. (호수도 있고 꽃밭도 있고 잔디밭도 있으니 말 그대로 벌판만 본 건 아니지만,) 2시간을 기다려서라도 관람차를 탔어야 했나, 아님 자전거라도 빌려서 돌아 볼 걸 그랬나. 나중에 들어보니 자전거를 타고 1시간을 돌아도 만만치 않은 넓은 곳이라고 한다.


(잔디 언덕 위에 유명한 싱하 맥주 로고인 사자상이 보인다.)
왓롱쿤에서 시내로 오는 길은 썽태우를 탔다. 인당 20밧이니 버스 요금이나 같다.
꽃 축제와 함께 수언뚱 맞은 편 광장에도 야시장이 서지만(토요 야시장이 서는 곳) 매일 서는 치앙라이의 야시장은 터미널 뒤편에 있다. 4년 전에 비하여 가게도 많아지고 사람도 많아졌는데 언제부터인가 메뉴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다. 광장을 꽉 채운 테이블마다 찜쭘 항아리가 끓고 있다. 우리도 당연 찜쭘을 먹었다.

1월 18일
왓후어이빠깡(쁠라깡)은 치앙라이 외곽에 새로 지어진 대형 사원이다. 초대형 불상과 불탑이 높은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다. 커다란 불탑이나 불상을 짓고 그 안에 불교 관련 콘텐츠를 채우는 것이 동남아 불교의 요즘 트렌드인 모양이다. 미얀마의 몽유와 대불이 그렇고 이번 여행에서 만난 코끼리 사원(왓반라이)이나 왓프라탓파썬깨우도 비슷한 맥락이다. 9층 불탑 안을 계단을 따라 올라가노라면 층마다 조각 작품들이 있고(주로 목각 불상) 불상 안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왓롱쿤 스타일의 하얀 부조 작품들이 있다. 높은 곳에 올라가니 전망이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고.










절 입구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식당이 있는데 배가 고픈 시간이 아니라서 그냥 구경만 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 절에서도 점심을 공짜로 주는 곳이 있었다. 오래 전에 관악산 연주암에서 국수를 얻어 먹은 기억이 난다.
구경을 끝내고 내려왔는데 우리가 타고 온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왕복 300밧을 주기로 했는데 기다리지 않고 그냥 가버리면 어떻게 해? 돈을 안 주었으니 다른 택시 있으면 타고 가버릴까? 생각도 해 봤지만 관광버스와 자가용만 보일 뿐 들어오는 택시가 없다. 한참만에 들어온 택시는 우리가 타고 온 택시, 기사는 미안한 기색도 없이 친구가 어쩌고 하면서 변명을 늘어 놓는다. 그 사이에 한탕 뛰고 온 것이리라. 블루템플(왓롱쓰어뗀)에서 내리면서 돈을 주고 택시를 보냈다.
블루템플은 2005년에 지어진 (그리고 아직도 지어지고 있는) 현대적인 사원이다. 왓롱쿤을 지은 찰름차이의 제자가 지었다고 한다. 비교적 작은 사원이지만 보러 오는 사람이 많다.




블루템플에서 꼭강변의 유명 카페 치윗탐마다까지는 걸어서 금방 갈 수 있는 거리다. 치윗은 생명이고 탐마다는 보통이란 뜻이니 치윗탐마다는 "보통 인생"이란 의미일까? 블루템플처럼 화려한 곳이 아님에도 사람은 더 많이 모이는 것 같다. 2층 건물이 두 채에 테라스와 야외 테이블도 있는데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카페가 예뻐서? 음식맛이 좋아서? 아마 둘 다 일 것이다. 음식마다 다 맛이 좋았다. 가격은 '탐마다'가 약간 넘는 듯. 파인애플 볶음밥 250밧, 치즈 오믈렛 220밧, 망고 마니아 110밧, 커피 80밧, 합 660밧.



뚝뚝을 타고 멩라이 대왕 동상 앞까지, 더위를 피해 그늘에 앉아 있자니 가끔씩 향이나 꽃을 들고 나타나 참배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다른 도시의 다른 동상에서도 보았듯 존경보다는 신앙의 대상이다.
숙소로 돌아와서 쉬다가 시계탑 근처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 때 만난 인력거 행렬, 삐쩍 마른 아저씨들이 뚱뚱한 서양인들을 태우고 정시에 맞추어 시계탑을 보러 왔다.

(손님들은 벌써 내려서 시계탑쪽으로 가 버렸군.)
내일은 마지막 여행지인 치앙마이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