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四面楚歌 - 四 : 넉 사, 面 : 얼굴 면, 楚 : 초나라 초, 歌 : 노래 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초나라 노래라는 뜻으로, 적에게 포위되거나 몹시 어려운 일을 당하여 극복할 방법이 전혀 없는 곤경을 말하는 고사성어로 그 유래는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에서 유래하였다.
진(秦)나라 말기에 각지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는 군웅들의 물고 물리는 싸움으로 발전한 끝에 유방의 한(漢)나라와 항우의 초(楚)나라 양대 세력의 대결로 귀결괴고 있었다. 처음에는 항우가 우세했으나 한신(韓信), 장양(張良), 진평(陳平) 같은 유능한 참모들의 보필을 받은 유방의 선전(善戰) 끝에 마침내 가늠의 저울추가 유방 쪽으로 기울었다. 수세에 몰려던 유방은 홍구(鴻溝)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하는 조건으로 패권 다툼을 그만두고 각자 도읍으로 철수하기로 했지만 유방이 배신하여 말머리를 돌려 급작스럽게 치는 바람에 항우는 참패하고 해하(垓下)에서 오지도 가지도 못한 채 포위되고 말았다.
성 안에 고립된 초나라였지만 좀처럼 유방의 군대는 성을 점령할 수 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겹겹이 둘러싸인 한나라군 진영에서 난데없이 초나라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들려오자, 초나라군 병사들은 모두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났고, 그리고는 향수에 젖어 눈물을 흘렸다. 항복한 초나라군 병사들을 동원해 고향 노래를 부르게 한 장양의 심리 작전은 맞아떨어져, 항우의 진영에서는 도망자가 속출했다.
항우는 죽을 힘을 다해 결전을 벌여 포위망을 돌파한 끝에 오강(烏江)까지 다다랐다가 추격 부대 속에 몸을 던져 장렬한 최후를 장식했다. 이렇듯 ‘사면초가’는 원래 노래를 일컬었으나, 어느덧 곤궁에 빠져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를 이르는 말로 변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