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부군-이념의 비극, 누가 누구를 탓할 것인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으며 한반도의 비극을 다시 본다.
1950년 9월말. 이태(안성기 분)는 ‘조선 중앙통신사’의 종군 기자로 전주에 파견 근무를 하게 된다. 파죽지세로 낙동강까지 내려왔던 인민군이 패전을 거듭하자 이태는 ‘조선 노동당 유격대’에 합류하게 된다. 취재활동이 있을 때까지 전투대원으로 참가하라는 지시였다. 전세의 변화에 따라 남부군은 부대를 개편하게 되는 데 이때 이태는 '지리산 승리의 길'이라는 빨치산의 진중신문 편집과 전사기록의 책임을 맡아 빨치산의 전투 활동을 기록하기 시작한다.
얼마 후 빨치산에게 전투 회담의 소식이 전해지자 빨치산은 이제 북으로의 귀환과 열렬한 환영을 기대하며 가슴이 부푼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남쪽으로부터의 추격과 북쪽으로부터의 버림을 받게 되는 남부군의 최후의 서곡이었던 것이다. 청용 작전이 무너지고 토벌대에 쫓기면서 부상당한 이태는 자신을 간호해 주던 박민자(최진실 분)와 사랑에 빠지지만, 본대복귀 명령으로 슬픈 이별을 하는데.
[스포일러] 겨울은 깊어만가고 이태의 소대는 악담봉 전투에 참여한다. 그곳에서 시인 김영(최민수 분)을 만나 그는 동족간의 전쟁의 허무함을 토로한다. 계속되는 전투에 쫓긴 남부군은 지리산에 밀려와 상상속의 이현상 사령관을 만나고, 이태는 김희숙 대원(이혜영 분)의 용감성 놀란다. 이때부터 그는 정치부 소속의 정식당원이 된다. 휴전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대원들의 분위기는 어수선해지고, 남부군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궁지에 몰린다. 생존을 위한 필사의 투쟁, 쇄진해진 사기로 위기에 놓인 남부군, 최후의 발악같은 전투가 벌어지고 대열에서 낙오된 이태는 눈속을 헤메고 결국, 그의 기나긴 빨치산 투쟁도 막을 내리게 된다.
{나는 시천면 외공 마을에서 토벌군에게 체포되었다. 16개월 후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양측 후방에 남겨진 장비의 철거, 심지어 전사자의 발굴 및 반출에 관한 조문은 있었지만, 남쪽 산악지대에서 절망 속에 헤메고 있는 살아있는 인간들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다.}
{1949년에서 1954년까지 소백지리지구유격전에서 사망한 군경 및 빨치산 수는 2만여 명이었다. 또한 3년여에 걸친 한국전쟁기간동안 남북 양쪽의 총희생자 수는 사망 130만명, 행방불명 111만여 명이었다. 이 작품을 그들의 영전에 바친다.}
첫댓글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6.25가 주변 강국의 이권에 이용된 남북살륙전이었고 지금도 분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군요.
영화 남부군 풀버전입니다. 시간여유 있을 때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