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의 시대
현대 자본주의 경제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생산량을 늘려야만 한다.
상어가 계속 헤엄치지 않으면 질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누군가 제품을 사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조업자와 투자자는 함께 파산할 것이다.
이런 파국을 막으면서 업계에서 생산하는 신제품이 무엇이든 사람들이 항상 구매하게 하기 위해서
새로운 종류의 윤리가 등장했은 데, 그것이 바로 소비지상주의다.
역사를 통틀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핍 속에서 살았다. 그러므로 검약이 표어였다.
청교도와 스파르타인의 금욕 윤리는 가장 유명한 두 사례였다.
훌륭한 사람은 사치품을 멀리했고, 음식을 버리지 않았으며,
바지가 찢어지면 새로 사는 것이 아니라 꿰매 입었다.
오로지 왕과 귀족들만이 그런 가치관을 공개적으로 포기하고 자신들의 부를 눈에 띄게 뽐낼 수 있었다.
소비지상주의는 점점 더 많은 재화와 용역을 소비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사람들로 하여금 제 자신에게 잔치를 베풀어 실컷 먹게 하고,
자신을 망치고, 나아가 스스로 죽이게끔 한다. 검약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말한다.
소비지상주의 윤리가 실제로 작동중이라는 사실을 알려면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시리얼 상자의 뒷면을 읽어보면 된다.
내가 좋아하는이침용 시리얼은 이스라엘 회사 델마의 것인데 그 상자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다.
" 당신을 가끔 맛있는 것을 잔뜩 먹어야 합니다. 가끔은 에너지만 약간 보충하면 됩니다.
과체중에 주의해야 할 때도 있지요. 하지만 뭔가 먹어야만 할 때도 있습니다..... 바로 지금처럼!
델마는 바로 당신을 위해 다양하고도 맛있는 시리얼을 제공합니다. 후회 없이 마음껏 드세요"
이 상자에는 '헬스 트리츠'라는 또 다른 시리얼 브랜드를 자랑스럽게 광고하는 말도 적혀 있다.
"헬스트리츠는 다량의 곡물, 과일, 견과를 제공합니다. 맛과 즐거움, 건강이 결합된 경험으 선사하죠,
낮에 즐기는 파티, 건강한 생활방식에 맞는 스낵, 더욱 놀라운 맛을 지닌 진짜 선물."
이런 글들은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사람들을 유혹하기보다 배척받기가 더 쉬웠다
사람들은 여기에 이기적이고 퇴페적이고, 도덕적으로 부패했다는 낙인을 찍었을 것이다.
소비지상주의는 대중 심리학('Just do it!)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에게 탐닉은 당신에게 좋은 것이며 검약은 스스로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설득하려 무진장 애썼다.
설득은 먹혔다. 이제 우리는 모두가 훌륭한 소비자다.
우리는 실제로 필요하지 않은 상품들을 무수히 사들인다.
어제까지만 해도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것들을 말이다.
제조업자들은 일부러 수명이 짧은 상품들을 고안하고 ,
이미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제품을 불필요하게 갱신하는 새 모델을 발명한다.
이것은 유행을 따르려면 반드시 사야하는 물건이다.
소핑은 인기 있는 소일거리가 되었으며, 소비재는 가족, 배우자, 친구 관계의 핵심 매개물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같은 종교 휴일은 쇼핑 축제가 되었다. 미국의 경우 심지어 현충일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경건한 날이었지만 이제는 특별 세일을 하는 기회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쇼핑을 하러 가는데,
어쩌면 자유를 수호했던 사람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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