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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과 맛을 함께 나눈 濟州 友情旅行
우리들이 다니라고 만든 길은 몸만 옮겨놓지 않는다.
몸이 가는대로 마음이 간다.
몸과 마음이 함께 가면 그 길은 길이 아니라 도(道)이다.
누군가 첫 발을 내딛고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면 길이 생깁니다.
그 곳이 숲이면 숲길이 되고, 그 길에 꽃을 심으면 꽃길이 됩니다.
어느 날, 좋은 사람들이 만나 마음을 나누며 꿈과 희망을 노래하면
아름다운 길(道), 꿈길이 됩니다.
희망과 미래의 길이 됩니다.
지난 2012년 12월 13일 3명의 親舊들이 부천생태공원에 모여서 健康과 親睦를 위하여 걷기 모임을 만들어 보자고 意氣投合해 시작한 서남부지부 걷기모임이 어느덧 출발 4년이 가까워 온 시점 처음으로 團體 旅行을 다녀 왔다.
여느 곳들은 단체여행은 海外라는 公式으로 槪念을 두지만 義를 至高로 涵養해 온 우리들은 단연코 愛國의 마음가짐으로 濟州道를 選定하였다. 금년 1월 모임에서 여행계획을 발표하고 3번의 예비모임과 5회의 모바일 통신을 거쳐 2016년 11월 6일(일)부터 11월 8일(화)까지 2박3일 일정으로 9명의 同期들이 우정을 더욱 돈독히 다지고 왔다.
출발일인 6일은 일요일이고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야 하는 스케줄이다. 오전 5시에 알람 起床을 하여 대략의 旅裝을 꾸리고 개봉역으로 향했다. 6시 30분에 김종현과 함께 이지수가 픽업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아침이라 그런지 氣溫이 제법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 정확한 시각에 도착한 차량에 승차하여 서로들 인사를 나누었다. 운전은 지수 아들이 공항까지 수고를 해 주었다. 아버지를 위한 孝心이 고마웠다.
김포공항 국내선 2층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6시 50분이었다. 만날 시각과 장소는 오전 7시 국내선 2층 아시아나항공 무인발급기 앞이다. 먼저 도착해 있던 박화삼, 이은철, 황선익, 이항무와 반가운 악수를 나누었다. 얼마있지 않아 김래현이와 김철호가 도착하여 계획된 9명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 모두 밝고 들뜬 마음으로 좋은 우정여행을 期約하는 회전인사를 가졌다. 특히 멀리 수원에서 아침 일찍 정시에 도착해 준 김철호와 김래현에게 더더욱 고마움을 느꼈다. 이제는 發券과 手荷物을 委託해야 한다. 일행의 신분증을 걷은 이지수 회장이 무인발권기를 이용하여 발권을 완료하고 바로 맞은편에 있는 카운터에서 모두 수하물을 위탁한 뒤 3층으로 올라가 검색을 마치고 14번게이트에서 탑승을 기다렸다. 搭乘은 오전 7시 50분에 시작된다고 한다. 지금 시각이 오전 7시 30분이고 우리가 이용할 항공편은 제주행 아시아나항공 OZ8913편이며 오전 8시 10분에 출발할 예정이다.
이은철이 레모나를 하나씩 나누어 준다. 새콤한 맛과 함께 상큼한 기분을 주었다. 조금 있으려니 김철호가 가방에서 볼펜을 꺼내 한자루씩 또 나누어 준다. 아마도 여행의 추억을 새겨보라고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레모나 봉지 등을 전부 수거하여 쓰레기통에 버려 주었다. 率先垂範하는 깊은 配慮가 돋보이는 情景이었다.
搭乘 待合室은 창 밖으로 각각의 旅行地로 離陸하는 항공기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문득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가 지팡이에 의지하며 지나고 있고 한 켠에선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들어오고 있다. 修學旅行 가는 걸까? 엄마 손을 잡고 아장 아장하는 어린아이도 여행 기분에 발걸음이 가볍다. 그런가 하면 커피 한잔을 입술에 갖다 대며 이륙하는 비행기를 그윽히 바라보는 아가씨 모습도 스케치가 되고 있다.
지금 시각이 오전 7시 50분이다. 이지수 회장이 지금부터 숙소 배정 가위, 바위, 보를 하겠다 한다. A조는 김철호, 이지수, 이항무이고, B조는 이은철, 김래현, 석대식이며, C조는 박화삼, 김종현, 황선익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숙소는 펜션이고 온돌방, 침실방, 거실 등 3개의 방을 배정하는 게임이다. 대표주자는 김철호, 석대식, 박화삼으로 결정되었다. 특별한 절차를 거쳐 결정된 것이 아니고 탑승대합실 맨 앞쪽 의자에 공교롭게도 3명이 나란히 앉아 있어 이지수 회장이 그대로 게임을 실시하게 된 것이다. 게임 결과 김철호가 온돌방을, 석대식이 침실방을, 박화삼이 거실을 사용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잠깐의 재치있는 게임이었다. 이지수 회장의 기지가 돋보였다.
잠시 案內 放送이 나오고 탑승 遲延 案內板이 揭示되고 있다. 탑승시각이 예정보다 10분 정도 지연될 예정이라 한다. 이항무가 일행들을 위해 준비해 온 큰 사탕을 하나씩 나누어 준다. 입에 물고 한참을 입속에 굴려야 할 것이다.
오전 8시 6분 탑승 안내방송이 나온다. 24개월 未滿 영유아를 먼저 탑승시킨다는 안내이다. 잠시 시간을 내어 이지수 회장이 오늘의 일정을 간략히 소개한다. 그리고 곧바로 탑승에 들어갔다. 탑승을 마친 아아시아나 항공기는 오전 8시 33분 김포공항 활주로를 이륙하여 제주로 향했다.
항공기 뒤쪽에 자리잡은 일행들은 피곤한 탓인지 모두들 잠을 청했다. 이륙한지 20여분이 지나 機長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현재 정상고도로 운항중이며 제주공항의 날씨는 맑은 편이고 이륙 후 50분이 지난 오전 9시 23분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인사를 겸하여 방송해 주었다.
잠시 뒤에는 음료 한잔씩 서비스가 있었다. 바로 옆좌석의 이은철이와 봄철에 다녀온 싱가폴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는데 은철이가 싱가폴에서의 18개월 생활 경험담을 들려주어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기내방송이 이어진다. 지금부터 제주공항 착륙준비에 들어간다고 한다. 창 밖으로는 벌써 제주시내의 전경이 보여지고 있다. 서서히 공항 활주로에 접근한 항공기는 공항의 아침공기를 가르며 착륙하였다. 오전 9시 23분이다.
수하물을 찿아 공항을 나온 일행들은 주차장에 대기중인 노블고속관광버스에 짐을 싣고 승차를 완료한 뒤 오전 9시 50분 공항을 출발하여 여행 첫날의 공식 일정을 시작하였다.
♣ 여행 1일차(11. 6. 일)
이 곳 제주도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새삼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글쎄 거슬러 올라가 삼국시대의 탐라국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섬이고 三多라하여 바람, 돌, 여자가 많은 곳으로 알려진 정도일게다.
제주도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중심부를 이루는 우리나라 최대의 섬으로 목포에서 남쪽으로 141.6㎞, 부산에서 남서 방향으로 286.5㎞, 일본 대마도(對馬島)에서 서쪽으로 255.1㎞ 떨어져 있다. 동경 126°09′∼127°00′, 북위 33°10′∼34°35′의 범위에 위치하며, 면적 1,845.88㎢, 해안선 길이 253㎞, 인구 62만 4394명이다.
서기 1002년(목종 5)과 서기 1007년에 국지적인 화산활동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한라산(漢拏山, 1,950m)의 정상에는 백록담으로 불리는 직경 약 500m의 화구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곳에 물이 고여 화구호(火口湖: 白鹿潭)를 이룬다. 360여 개의 기생화산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오름이라고 불리워지고 있으며, 섬의 장축을 따라 한라산의 동·서 산복(山腹)에 대상(帶狀)으로 분포하며, 송당(松堂) 일대에서 최대 밀도를 나타낸다(38개·100㎢).
해안 지역에 위치한 성산일출봉(城山日出峰)·송악산(松岳山)·두산봉(斗山峰)·당산봉(唐山峰)과 산간지의 산굼부리는 응회구(凝灰丘) 또는 응회환(凝灰環)에 속하며, 산방산(山房山)은 조면암질 안산암의 전형적인 종상화산이다.
이 지역에서는 빗물이 절리(節理)를 통하여 지하로 쉽게 스며들기 때문에 하천의 발달이 微弱하며 대부분이 건천(乾川)이다. 북쪽 사면의 산지천(山池川)·도근천(都近川)·한천(漢川)과 남쪽 사면의 창고천(倉庫川)·천제천(天帝川) 등의 하천은 용천(湧川)에서 물을 공급받는다.
이 밖에 용암동굴로는 만장굴(萬丈窟)·김녕굴(金寧窟)·협재굴(挾才窟)·쌍룡굴(雙龍窟) 등이 발달하고 있다.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로우며 남부 해안에는 柱床節理를 따라 높은 해식애(海蝕崖)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 많다.
북부 해안의 퇴적물은 대부분이 흰 모래를 이루는 패사(貝砂)인 데 비하여 남부 해안에는 화산쇄설물이 풍화된 검붉은 모래가 많다. 남부 해안의 절벽에는 서귀포의 천지연폭포와 정방폭포, 중문의 천제연폭포 등이 형성되어 있다.
북제주 지방은 연평균기온이 14.7℃, 남제주 지방은 연평균기온이 15.6℃이며, 연강수량은 1,440㎜(제주시)∼1,688㎜(서귀포시)로 우리나라 最多雨 지역에 해당한다.
경지 면적은 540.34㎢이고, 논 8.41㎢, 밭 531.93㎢로 총면적의 29.2%에 달하며 주민의 24.9% 정도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하여도 고구마를 주종으로 한 식량 작물 위주였으나 최근에는 감귤과 유채·파인애플·맥주맥 등의 특용작물과 채소 재배로 전환되고 있다. 이 지역의 聚落은 생활 용수 및 교통로의 이점을 고려하여 해안의 저지대에 90% 이상 분포한다.
제주도의 명칭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불려왔다.
제주도의 개벽신화인 3성(三姓)신화에 의하면 태고에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 라고 하는 삼신인(三神人)이 한라산 북쪽 모흥혈(毛興穴:현재의 삼성혈) 이라는 땅 속에서 솟아나와 가죽옷을 입고 사냥을 하며 살고 있었으며, 이들 3성(高·梁·夫) 중 고을나(高乙那)의 15대 손이 신라에 입조하여 탐라(耽羅)라는 국호를 받아와 개국하였으므로 탐라로 불리다가, 고려 희종 때(1211년) 제주로 개칭되었다.
고려 말에 원나라와 고려에 번갈아 隸屬되면서 명칭도 수시로 바뀌었으나 1374년(공민왕 23)에 원나라 세력을 몰아냄에 따라 제주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
제주도는 여러 가지 특징적인 화산지형과 지질을 가지고 있어 화산의 보고(寶庫)라고 일컬어지고 있으며, 수려한 경치, 온난한 기후, 남국적인 식생·경관, 독특한 문화와 풍속 등 관광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또한, 육지와의 해상 및 항공교통이 편리하여 우리나라 제1의 관광지로 알려져 있으며 국제적인 관광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주요 관광자원으로는 성산일출(城山日出)·녹담만설(鹿潭滿雪) 등의 영주10경(瀛洲十景), 구십구곡(九十九谷)과 안덕계곡, 천지연(天地淵)·정방(正房)·천제연(天帝淵) 등의 폭포, 용두암(龍頭巖)·외돌괴·오백나한(五百羅漢) 등의 기암, 만장굴, 협재굴 등 용암동굴, 비자림(榧子林)·동백군·구상나무군 등의 수림, 산방산·성산일출봉·산굼부리 등 360여 개의 기생화산, 한란·왕벚나무·문주란 등 1,635여 종의 식물, 꿩, 노루 등 800여 종의 동물과 곤충, 협재·표선 등 10여 개의 해수욕장, 서부두·사라봉·용두암 등의 낚시터, 이시돌·송당·제동 등의 목장, 그리고 꿩 수렵장 등 무한하다. 그 밖에 많은 지정 문화재가 있다. 지정 관광지로는 용연 지구·만장굴 지구·정방폭포 지구·안덕계곡 지구·천제연 지구 등이 있다.
우리가 자주 보는 제주도의 심벌마크는 환태평양의 청정한 제주바다, 푸른 녹원 영산 한라산, 세계자연유산을 보유한 국제자유도시의 떠오르며 커가는 21세기 비전을 바탕으로 제주 현무암의 검은색을 기초로 강인한 제주, 전통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제주인의 문화를 상징한다.
수평의 붓 터치는 평등가치의 제주정신, 세계자연유산에 빛나는 제주의 자연을 표현하며, 녹색은 푸른 한라산과 자연환경을, 청색은 청정한 제주의 바다를 상징하면서 생물권보전지역을, 주황색은 특별자치도로서의 미래지향적 가치와 우뚝 솟은 제주의 희망을 상징한다고 한다.
제주를 상징하는 꽃은 참꽃으로써 각박(刻薄)한 땅이나 바위틈에서도 잘 자라며 봄철 초록빛 숲 속에서 타는 듯한 붉은 꽃을 무더기로 피우고 있는 참꽃은 제주특별자치도민의 불타는 의욕과 응결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제주를 상징하는 나무는 녹나무로써 언제나 그 싱싱함을 잃지 않는 상록수일 뿐만 아니라 봄에 새 잎이 날 때는 그 잎이 붉은 꽃과 같이 화려함은 도민의 희망과 정열과 무궁한 번영의 기상을 보여준다.
제주를 상징하는 새는 제주큰오색딱따구리로써 활엽수의 노거수 교목림에 많으며 제주특별자치도에 분포하는 종으로 소형이며 암색이다.
제주를 상징하는 색은 파랑으로 푸른 바다, 푸른 산, 푸른 하늘과 더불어 사는 도민의 푸른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제주도는 三多(돌,바람,여자가 많다), 三無(도둑,대문,거지가 없다), 三麗(삼려:자연,민속,토착산업의 아름다움),三寶(삼보:특용작물,수산,관광의 보물)의 진귀함을 지니고 있어 2011. 11. 12 세계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우리 속담에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의 근원지가 바로 제주도이다. 「아니 짇은 굴묵에 네 나랴」즉, 「아니 땐 방고래에 연기 나랴」 라는 이 소박한 한마디 제주특별자치도 속담에서, 우리는 제주 선인들의 화산회토를 일궈 온 생활관과 고난의 역사를 슬기롭게 극복한 인생관을 읽을 수 있다. 아울러 거기에다 풍자와 해학, 아이러니와 위트까지 드러냄으로써 지금도 훌륭한 생활 교훈이 되고 있다. 비록 장문으로 소개되었지만 다시한번 회상시키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제주국제공항을 출발한 우리들은 첫 번째 찿을 곳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만장굴로 향하고 있다. 오전 10시가 가까워 오는 시각이다. 모두들 아침을 먹지않아 시장끼가 도는 것 같다.
일행들이 이런 저런 얘기들을 주고 받을 때 이항무가 말을 꺼낸다. “모처럼의 제주 우정여행인 만큼 우리 모두 이전보다 더욱 友情을 敦篤히 하자!”라고 先唱을 하며 버스안의 분위기를 高潮시켰다. 모두들 欣快히 答禮 拍手로 和答한다.
이지수 회장이 방풍 목도리를 나누어 주고 있다. 이전 모임에서 이미 받은 친구도 있는 듯 했다. 이어서 이은철이 준비한 “고급 비닐 레인코트”를 하나씩 나눠준다. 제주에는 비가 많은 곳이니 이런 소지품은 아마도 필수 휴대품일지도 모를게다. 친구들을 위한 고마운 마음이다. 다시 이지수 회장이 “ESSENCE IN SKIN TRIAL KIT 1"을 내 놓은다. 豊盛한 선물들이다. 그리고 이지수 회장이 발표한다. 지난 5월 수원 칠보산 트레킹 때에 허 택 친구가 스폰했던 ”시바스 리갈“ 양주를 가져왔고 ”발렌타인 17년산“을 준비해 왔슴을 공지하자 버스안은 환호의 박수로 여행 분위기를 한껏 높여 주었다.
차창 밖으로는 제주시내 全景이 들어온다. 하늘이 흐리다. 하지만 햇볕이 구름사이로 간간이 드리워지고 있다. 가로수로 야자나무가 심어져 있어 南國의 맛을 느끼게 한다.
잠시 차가 정차한다. 지수를 비롯해 몇몇이 하차하여 편의점에 다녀 온다고 한다. 얼마 안 지나 쇼핑백을 하나씩 들고 버스에 올라왔다. 음료, 소세지, 맥주 등을 일행에게 나누어 준다. 회장의 노고가 새삼 고맙게 여겨진다. 소세지가 아침대용 안성맞춤이라 생각이 든다. 음료와 맥주를 곁들여 소세지로 아침을 때웠다. 회장이 맥주캔을 들어 乾杯를 외친다. 서남지부 공식 건배사인 ”걷자!, 걷자!, 힘차게!“를 모두 힘있게 외쳤다.
차창 밖으로 ”화북공업지역“이라는 안내간판이 보인다. 아마도 이곳이 공장이 밀집된 지역인 모양이다. 그런데 굴뚝이나 높은 공장건물 등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가로수는 사철나무가 보인다. 가이드의 말을 빌리자면 위로는 싹이 새롭게 나오고, 아래로는 낙엽이 지는 나무라고 한다.
揭帖臺에 이런 간판이 붙어 있다. ”세계가 찿는 제주, 세계로 가는 제주“ 제주의 21세기 비전을 알려주는 느낌이다. 차안이 약간 소란스럽다. 이항무, 김래현, 김철호가 일반적인 얘기보다는 주로 우스개소리나 즐거운 농담을 늘어 놓는다. 들어서 부담없고 유쾌한 joke들이다.
가이드의 설명이 있다. 제주시 행정구역이 얘전에는 제주시, 남제주군, 북제주군, 서귀포시 이렇게 4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현재는 한라산을 기준하여 제주시와 서귀포시 2개 구역으로 편성되어 있다고 한다.
군데 군데 돌담이 보이는데 이는 화산석이고 종류는 현무암이라고 한다. 지금 시각이 오전 10시 40분이고 제주시 구좌리를 지나고 있다. 가까운 곳에 風力發電機가 몇 곳 관측된다. 제주도가 바람이 많은 곳이니까 풍력발전은 제주도민들에게 아주 필요하고도 중요한 전기시설물임에 틀림없을 것 같았다.
버스는 계속 달려 오전 10시 52분 만장굴에 도착했다. 만장굴[萬丈窟]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에 있는 동굴로써 1962년 12월 3일 김녕사굴과 함께 천연기념물 제98호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총길이 8,928m, 폭 2~23m, 천장높이 2~30m이다. 제주에는 화산 용암의 침하운동으로 생성된 천연동굴이 많은데, 만장굴도 그 중의 하나로 석주(石柱)·종유석(鍾乳石) 등이 장관을 이루어 동굴 내부의 규모는 세계적이다.
오래 전부터 주민들 사이에 ‘만쟁이굴’이라는 속칭으로 알려졌으나, 세상에 널리 공개된 것은 1958년 이후였다. 동굴이 같은 방향으로 2중·3중으로 발달한 것도 만장굴의 지형적 특징이다. 동굴 관람은 1,000m까지로 제한되어 있다고 한다.
窟이라서 그런지 들어가는 입구부터 기온이 확연히 바깥과는 차이가 있어 차거운 느낌이다. 동굴 안은 낮은 천정과 울퉁불퉁한 바닥의 용암석 그리고 천정에서 떨어지는 낙수물이 가끔씩 옷을 적시는 등 동굴안의 보행 시 상당한 주의가 요구되었다.
용암표석으로는 만장굴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거북바위'가 제주도와 비슷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용암발가락', '용암선반'을 볼 수 있었다. 이밖에도 만장굴 곳곳에는 분위기있는 조명들이 설치되어 있어 만장굴의 신비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며 동굴안을 20분 정도 걸었을까? 1,000m지점에 도착했다. 모든 관광객들이 기념촬영하는 곳이라 우리도 한 컷 촬영을 마치고 입구로 향했다.
동굴 관람을 마친 시각은 오전 11시 50분이다. 주차장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주위에 植栽된 나무에 대한 친구들의 常識들이 많이 披瀝되었다. 돈나무, LONG TREE(?) 등 등에 대한 얘기들이었다.
버스는 만장굴을 출발하여 이제 성산쪽으로 향하고 있다. 밖의 거리는 왼쪽으로는 가로수와 건물들이 그리 높지 않아 멀리 바다와 맞닿은 듯하며, 오른쪽으로는 갈대와 억새가 무성한 田園 風景이다.
얼마를 달렸을까 성산일출봉이 보인다. 지금시각이 12시 30분이고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회장이 공지한다. 성산일출봉 주차장에서 내려 도보로 인근의 ‘청운식당’에 도착했다. 아침을 pass했으니 모두들 시장끼가 도는 분위기이다. 점심 메뉴는 제주은갈치조림에 감귤막걸리와 조껍데기막걸리를 飯酒로 꿀맛같은 식사를 했다. 게다가 식후 커피 한잔은 여행의 一味를 더해 주었다.
1시간 가까운 오찬을 마친 오후 1시 25분에 다음 행선지인 ‘비자림’으로 출발하였다. 하늘에는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금방이라도 한줄기 퍼부을 기세이다.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를 지나고 있다. 차안에는 친구들의 情談들이 오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은철이가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중동 건설붐이 한창일 때 우리나라 외화보유고가 4억$인 상황에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이 10억$공사를 수주하면서 2억$의 先手金을 받아내어 국가 외화보유고의 50%에 해당하는 외화를 선수금으로 획득했던 愛國者의 逸話를 소개해 주었다. 두고 두고 膾炙될 수 있는 모범 愛國企業人으로 推仰될 것이다.
창 밖의 논과 밭의 경계가 검은 돌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 돌들이 현무암이라 한다. 차 중의 얘기들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비자림’에 도착했다. 정각 오후 2시이다. 아침 일찍 기상한 탓인지 졸린 표정들이 歷歷하다.
제주도 榧子林은 1993년 8월 19일 천연기념물 제374호로 지정되었다. 구좌읍 평대리에서 서남쪽으로 6km 되는 지점에 448,165㎡ 면적에 500∼800년생 비자나무 2,570그루가 밀집하여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單純林으로는 世界 最大 規模이다. 나무의 높이는 7∼14m, 지름은 50∼110cm, 수관폭은 10∼15m에 이른다.
이곳에 비자나무 숲이 이루어진 由來는 마을의 무제(巫祭)에 쓰이던 비자 종자가 사방으로 흩어져 자라 식물상을 이룬 것으로 추정된다. 예로부터 섬의 진상품으로 바쳤던 비자나무의 열매인 비자는 구충제로 많이 쓰였고, 음식이나 제사상에 오르기도 하였다. 지방분이 있어 비자유를 짜기도 하는데, 기관지 천식이나 장 기능에 효험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무는 재질이 좋아 고급 가구나 바둑판을 만드는 데 사용되어왔다.
숲 가운데에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최고령목이라고 하는 800년 이상 된 비자나무가 있는데, 높이 25m, 둘레 6m로 비자나무의 조상목이라고도 한다. 나도풍란, 콩짜개난, 흑난초, 비자란 등 희귀한 난과식물도 자생하며, 이외에도 천선과나무, 자귀나무, 아왜나무, 머귀나무, 후박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있다. 1992년 이곳에 산책로를 만들었다고 한다.
약 1시간 가량 비자림 트레킹을 마치고 오후 3시에 다음 행선지인 ‘제주올레1길’로 출발하였다. 밖은 계속 날씨가 잔뜩 흐리다. 철호가 ‘아이비’과자를 일행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창밖을 구경하면서 과자를 먹는 기분이 여행의 맛을 업그레이드 해주는 促進劑가 될 듯 싶었다.
오후 3시 30분 제주올레1길 입구에 도착했다. 주위는 벌써 어둑 어둑한 분위기이다. 올레1길인데도 인적이 드물고 오직 우리 일행 뿐이다. 길목에서부터 평탄한 입구길을 15분가량 걸으니 오르막길에 다다르고 지금부터 본격적인 트레킹이 시작되고 있었다.
제주라 그런지 바람이 무척 강하다. 海風이라 강도는 더욱 세다. 木柵길과 야자매트, 흙길을 번갈아 가며 45분 가량 山行을 하여 오후 4시 30분에 올레1길 정상에 도착했다. 멀리 앞쪽으로 성산일출봉이 보이고 뒤쪽으로는 아주 희끄무레하게 한라산이 관측되고 있었다.
바람이 너무 세다. 약간의 추위도 느껴진다. 하산길은 억새와 갈대가 壯觀을 이루는 형세이다. 이곳에는 산길의 分岐點에는 반드시 말머리 모양의 방향표시를 해 놓아 찿는이로 하여금 길잡이 역할을 잘 해주고 있었다.
약간의 언덕길을 오르락 내리락, 좌로 구부러지고 우로 구부러진 산길을 친구들과 도란 도란 얘기하며 내려와 평지 길목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 50분이다. 워낙 강한 바람 때문에 조금 힘든 트레킹이었다고 생각되었다. 대기중인 버스로 이동을 할 무렵 지수가 이재규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고 일러준다. 잊지않고 소식을 물으니 우정의 샘물이 따로 있겠나 싶었다.
周圍가 제법 어두운 시각 오후 5시에 제주올레1길 트레킹을 모두 마치고 숙소로 출발하였다. 중간에 잠시 마트에 들러 저녁꺼리를 구입했다. 버스 안에서는 가벼운 歡談들이 오가며 우정의 塔을 더욱 높이 쌓아 가고 있었다.
1일차 일정을 거의 消化해 낸 지금은 모두들 疲勞가 역력할 터이지만 친구들의 표정은 환하고 만족스런 얼굴 모습들로 차 안의 분위기가 點綴되고 있었다. 오후 5시 45분 드디어 宿所에 도착했다. ‘성산올레펜션’으로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298-19번지에 위치하고 있고 주위 환경은 코앞이 바다이고 성산일출봉이 뒤쪽에 아주 가까이 있는 곳이다. 한마디로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은철이가 배낭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프랑카드가 아닌가! “서남부지부 제주 우정여행”이라고 씌어진 현수막을 은철이가 준비해 온 것이다. 일행들은 거실 안쪽 벽에 멋지게 게첩했다. 준비해 준 은철이에게 모두 마음으로부터의 감사를 표했다.
이제부터는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지난번 3차 예비모임 때 각자에게 임무 분담이 주어져 있어 식사준비는 一瀉千里로 착착 진행되었다. 잠깐 각자 맡은 분담내용은 지수가 총괄 진행, 항무가 오락, 여흥, 래현이가 여행중 식단, 은철이가 안주, 메뉴, 철호가 간식 조달, 종현이가 대외협력, 화삼이가 의료, 환경, 선익이가 안주 및 보급, 대식이가 여행코스 조정 및 홍보로 짜여졌었다.
첫날 일정의 저녁은 제주 흑돼지 삼겹살 및 목살 구이의 主 메뉴와 김치, 양파, 상추 등 서브 메뉴로 차려졌다. 물론 돼지고기 두부찌개가 곁들여져 맛을 더해 주었고, 여기에 씨바스리갈과 소주를 飯酒로 같이 기울이며 지수의 서남지부 공식 乾杯辭를 다시한번 외치고 나머지 친구들의 오늘 일정에 대한 所懷를 들으면서 우정 여행의 멋을 이곳 성산읍에 아로새겼다.
저녁식사의 모든 것을 철저히 준비한 지수의 勞苦에 우리들은 힘찬 박수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저녁을 마친 친구들은 일부는 휴식을 취하고 일부는 노래방을 갔다 오는 것으로 첫날 일정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 여행 2일차( 11. 7 월)
오전 6시 기상하여 인근의 성산일출봉을 운동을 겸하여 食前에 다녀왔다. 다녀온 시간은 약 50분 정도 소요됐으며, 구름이 끼어 정상적인 日出을 아니었지만 그래도 群鷄一鶴으로 지수가 구름사이로 일출을 보았고 이를 촬영한 모습이 마치 如意珠를 물은 龍의 형상이라 몇 번이고 되풀이 하고 있었다.
오전 8시 아침을 먹을 시간이다. 어제 저녁의 宿醉 解消 兼 해장을 위하여 아침은 컵라면으로 준비하였다. 밥과 김치가 곁들여져 평소의 컵라면 맛과는 또다른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는 食單이었다.
김종현이가 무언가 준비해 온 것 같다. 가방에서 각자에게 나누어 줄 수 있도록 봉지 땅콩을 만들어 온 것이다. 1인당 한봉지씩 땅콩을 나누어 주었다. 이 땅콩은 종현이 집 근처의 상점에서 직접 볶아 온 것이라 그 精誠이 대단했기에 모두들 고맙게 생각하였다.
이제는 오늘 일정이 시작될 시각이다. 출발전에 지수가 대략의 일정을 설명한다. 오늘은 우도둘레길 트레킹이 주된 스케줄이라 한다. 오전 9시 숙소를 나와 우도를 가는 여객선을 승선하기위해 ‘성산포항종합여객터미널’로 발길을 옮긴다.
바닷바람이 무척 차고 강하기에 옷차림을 단단히 하고 나왔다. 日出峰을 바로 곁으로 깎아지른 海岸路를 따라 걸었다. 그런데 친구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한 곳으로 모두 모이는 것이 아닌가! 무슨일이 있나 싶어 가 보았더니 어느 詩 標石앞에 모여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여기가 학교 先輩 詩人 이생진 선생님의 詩碑公園이라고 한다. 이생진 시인은 ‘섬 시인’이다. 1929년 서산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외딴 섬을 좋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섬이라면 유인도, 무인도 가리지 않고 찾다 보니 그의 발길이 닿은 섬이 천 곳이 넘는다고 한다. 특히 젊은 날 군대생활을 하였던 모슬포뿐만이 아니라, 성산포, 서귀포, 우도, 다랑쉬오름 등, 제주 어느 한 곳 그의 발걸음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그 곳의 풍광을 사랑하여 곳곳을 걷고 또 걸어 다녔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올레길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제주 걷기 일주를 두 차례 하였으며, 지금도 틈만 나면 스케치북을 들고 제주를 비롯한 우리나라 여러 섬들을 찾아가 직접 그 곳의 풍경을 스케치하고 시를 쓰며 지낸다고 한다. 1955년부터 시집을 펴내기 시작해《현대문학》을 통해 김현승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한 후 지금까지 33권의 시집과 여러 권의 수필집을 펴냈으며, 우리나라 섬의 정경과 섬사람들의 뿌리 깊은 애환을 담은 시를 주로 써오고 있다고 한다.
특히 1978년에 처음 펴낸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수십 년째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스테디셀러로 다양한 계층의 독자들에게 지금까지 읽히고 있다고 한다. 1996년 《먼 섬에 가고 싶다》로 윤동주문학상, 2002년 《혼자 사는 어머니》로 상화尙火시인상을 수상했다.
2001년 제주자치도 名譽道民이 되었고, 2009년 성산포 오정개 해안에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비공원이 만들어졌으며, 2012년 신안 명예군민이 된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섬에서 돌아오면 지금도 인사동에서 섬을 중심으로 한 詩 朗誦과 談論을 계속하고 있다.
시집으로《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비롯하여《그리운 섬 우도에 가면》, 황진이에 관한 시집 《그 사람 내게로 오네》, 그리고《김삿갓, 시인아 바람아》,《반 고흐, ‘너도 미쳐라’》,《우이도에 가야지》,《골뱅이@ 이야기》,《실미도, 꿩 우는 소리》등, 다수의 시집이 있다. 오정개 해안에 설치된 시 표석을 찬찬히 살피면서 선배님의 붓이 그려졌던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 뿌듯하고 무척 자랑스러웠다.
해안가에는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가 큰 泡沫을 형성하고 있고 주위의 바닷바람은 매우 거세고 강하다. 그렇지만 관광객들은 아랑곳하지않고 각종 포즈을 자아낸다.
해안길과 언덕길을 30여분을 걸어 오전 9시 30분에 ‘성산포항종합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각자 乘船申告書를 작성하고 지수가 취합하여 제출을 완료한 뒤 승선에 들어갔다. 오전 9시 45분 ‘우일훼리우도유람선’에 승선을 완료한 우리들은 3층 갑판위에서 바닷바람과 시원한 제주 풍경을 鑑賞하면서 出港을 기다렸다.
약간의 波濤가 일고 갈매기 무리가 꾸룩 꾸룩 歡迎의 날갯짓을 한다. 여기 저기 셀카의 모습도 눈에 띈다. 오전 9시 55분에 성산포 선착장을 출발한 유람선은 15분이 지난 오전 10시 10분 우도항 선착장에 도착했다. 우도내에서는 순환버스를 이용하여 이동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10분 정도를 걸어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우도봉산책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전 10시 30분 우도봉 버스정유장에 도착하여 ‘우도봉산책로’를 따라 트레킹을 시작했다. 木柵路와 흙길을 번갈아 오르며, 멀리 보이는 우도봉 燈臺를 향하여 트레킹을 계속했다. 登山路의 고무매트는 미끄러워 주의가 요구되었다. 40여분을 올라가니 등대앞에 도착한다. 올라보니 사방이 탁 트이고 우도의 全景이 들어왔다. 말 목축장과 우도의 해안로가 시원스레 관측된다.
땀을 식힌 우리들은 우도봉을 내려와 1시간의 트레킹을 마치고 순환버스를 기다렸다. 오전 11시 30분에 순환버스에 승차하여 우도 一周道路를 달리고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우도의 밭에는 주로 고구마가 많이 심어져 있고 군데 군데 쪽파가 재배되고 있다. 성산과 마찬가지로 돌담은 온통 黑色으로 彩色되어 있으며 해안도로의 길목은 거의 골목길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
항무가 ‘해보리수나무’에 대해 ”겨울에 열매 맺어 봄에 먹는 나무“라고 말한다. 순환버스는 ‘우도 땅콩마을’, ‘비양도’, ‘용두암 해수욕장’을 경유 오전 11시 55분에 ‘홍조단괴해빈 [濟州 牛島 紅藻團塊 海濱]’에 도착하였다.
제주도 북쪽 해안에는 대부분 패사로 이루어진 사빈 또는 사구들이 여러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시 우도의 해빈은 패사가 아닌 홍조사 또는 홍조단괴로 되어 있어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우도의 해빈을 이루는 홍조단괴의 직경은 1cm 내외부터 5∼8cm 정도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우도의 해안가에 발달한 홍조단괴 해빈은 길이가 약 300m, 폭이 약 15m이며 이 지역에 분포하는 흑색의 현무암과 매우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 지역의 해안가에 발달한 홍조단괴 해빈은 과거에는 "산호사 해빈"으로 잘못 알려져 왔으나, 최근 해빈 퇴적물을 이루는 구성요소가 홍조단괴임이 밝혀졌다.
홍조단괴는 우도의 반짝이는 하얀 보석밭으로 상징된다. 해변은 온통 새하얀 모래사장으로 길게 뻗어 있다. 거리에는 음식점과 놀이시설들로 빽빽하다. 우리들도 이제 점심을 먹어야 하겠기에 식당을 정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살펴본다. 그런데 선익이가 어제부터 노래불렀던 ‘보말칼국수’집은 어디에도 없다. 누가 얘기를 한다. 아까 비양도를 지날 때에 얼핏 보말칼국수집을 보았다고 말은 하지만 지금 다시 그곳으로 return하기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의논 끝에 이곳에 있는 식당으로 정하기로 했다. 마침 식당 한 곳이 눈에 띄어 모두들 들어갔다. ‘우도동식이’ 식당이다. 메뉴는 ‘우도 회국수’와 ‘땅콩막걸리’로 정하고 일행들은 휴식을 취했다. 비록 보말칼국수는 아닐지라도 회국수는 그리 자주 접하는 음식은 아니기에 기대가 되기도 했다. 식사가 나오고 맛을 보니 기대했던대로 한결같이 모두 아주 좋다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기분좋게 점심을 마친 우리들은 식당 앞 테라스에서 食後의 깔끔한 맛을 더해주는 커피 한잔씩을 마시면서 바로 앞에 펼쳐진 하얀 보석밭으로 이어지는 海邊의 情趣를 鑑賞한 뒤 성산포항으로 가기 위해 船着場으로 가는 循環버스에 올랐다.
오후 1시 30분에 우도 선착장을 출발한 ‘우도2호유람선’은 쏟아지는 우도 해상의 햇볕과 식후의 나른함을 함께 갑판위에 내려 놓으며 20분간을 운항하여 오후 1시 50분 성산포항에 도착하였다.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오후 일정은 사우나를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성산포항에서 택시를 이용하여 성산읍의 ‘수협목욕탕’으로 이동하였다. 목욕탕의 따뜻한 목욕물을 접하는 친구들의 얼굴 모습은 무척이나 흐뭇한 표정 그대로였다.
피로를 풀고 가뿐한 기분이 된 우리들은 저녁시간까지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지수와 종현이, 래현이는 저녁 준비에 쓰일 회를 장만하기 위해 성산읍 魚市場으로, 은철이와 철호, 선익이, 화삼이, 대식이는 인근 당구장으로 항무는 목욕을 계속하는 것으로 각자의 위치를 정했다.
오후 5시 15분 쯤 되어 모두 숙소에 도착했고 커피 한잔씩을 마시면서 우도 일정을 review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좋은 意見과 有益한 提案들을 주고 받는 사이 저녁시간이 가까워 왔다. 지금 시각이 오후 6시 30분이다. 지수와 철호가 분주하다. 저녁메뉴로 회를 준비해 왔고 메운탕을 끓이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일행들은 밥상을 준비하고 반찬들을 setting하느라 餘念이 없다.
主 메뉴인 회는 ‘부시리’라는 방어의 사촌격인 생선이다. 회의 모양이 얼핏 보면 방어와 흡사한 것 같다. 문자 그대로 실컷 먹을 정도로 양이 충분했다. 매운탕으로 끓인 찌개와 밥을 먹으니 珍羞盛饌이 부럽지 않을 食單이었다. 물론 食後 커피 한잔도 분위기에 안성맞춤이었다. 食事 뒷정리를 마친 우리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일부는 휴식을 일부는 노래방으로 둘째날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여행 3일차(11. 8. 화)
오늘은 일정의 마지막날이다. 아침 6시에 기상하여 펜션의 check out을 위한 旅裝 꾸리기를 각자 완료하고 내부 청소까지 완벽하게 마쳤다. 은철이가 사과를 준비해 小盤에 깎아 놓는다. 아침 사과는 금사과라 할 정도로 건강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아마 그래서 은철이가 친구들을 위해 준비한 것 같다. 고맙다 친구야!가 절로 나온다. 선익이는 사과를 껍질채로 먹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수가 문을 열고 나갔다 오더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고 일러준다. 현재 高位職에 있는 後輩 政治人 얘기로 대화의 분위기가 高潮된다. 지수가 雨天關係로 일정의 일부를 調整하는 내용과 함께 오늘 아침은 팬션 주인께서 특별히 우리들을 위하여 준비하셨다고 공지한다.
지금시각이 오전 8시 15분이다. 이제 각자의 여장을 챙기고 아침 식사 장소로 이동해야 할 시각이다. 밖은 빗줄기가 굵어지고 어둑한 흐린 날씨이다. 오전 8시 30분에 성산읍의 ‘아쿠아비치호텔’에 도착했다. 고등어조림을 주 메뉴로 복어지리국과 함께 찐계란 등 밑반찬이 차려져 盛饌으로 아침을 먹었다. 역시 식후에 원두커피가 제공되어 아침의 뒷맛을 개운하게 해 주었다.
밖은 여전히 흐리고 비가 내린다. 오전 9시 20분 아침을 마친 우리들은 버스에 승차하여 서귀포 쪽으로 출발하였다. 지수가 일기관계로 버스투어를 提議하니 일행 모두 同意하였다.
얼마간을 지났을 무렵 선익이가 가이드 기사에게 ‘오메기떡’과 ‘오분작’에 대해 질문을 한다. 기사 아저씨는 이번 행선지에서 두 가지를 모두 확인할 수 있다고 답한다. 비는 계속되고 빗물이 온통 대지를 적시고 있다. 제주민속마을을 지나 표선과 가까운 가시리를 지나고 있다. 도로 좌우로는 귤밭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금시각이 출발한지 1시간이 지난 오전 10시 20분으로 토평마을을 지나고 있다. 밖이 조금은 맑아 보인다. 중문단지를 지나 오전 10시 30분 천지연폭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비가 계속된다. 주위에는 중국에서 온 관람객들이 꽤나 많다. 은철이가 先見之明이 있어 비옷을 준비한 것 같았다. 철호는 率先하여 은철이가 준 비옷을 입고 폭포로 향했다.
폭포는 壯觀을 이루고 있었고 관광객들은 所重한 景觀을 한 컷이라도 더 간직하기 위해 카메라 또는 핸드폰으로 촬영을 이어갔다. 폭포물이 湖水를 이루는 곳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오리들은 한폭의 그림과도 같은 情景이었다.
천지연폭포 관람을 마친 일행들은 오전 11시 20분 감귤체험농장으로 출발하였다. 오전 11시 35분 감귤체험농장에 도착하여 하우스에서 試食도 하고 농장에 주렁 주렁 달린 감귤도 직접 구경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곳에서는 이번에 참가한 일행 모두에게 감귤 1box씩을 公式으로 贈呈해 주어 또한 고마웠다.
오전 11시 53분을 가리키는 시각 이제는 ‘주상절리’로 출발한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제주월드컵경기장을 지나고 있다. 더 내려가 제주 강정마을을 지나 오전 12시 25분에 ‘주상절리’에 도착했다. 제주도 중문 주상절리는 육각형의 병풍 돌기둥 유형 柱狀節理(Columnar joint)로써 신(神)이 빚은 최고의 비경이다. 대포동 주상절리는 제주공항에서 한라산 횡단도로(99번 국도)를 타고 중문의 여미지 식물원을 지나 중문민속촌을 거쳐 제주국제컨벤션센터로 우회전하면 대포동 주상절리군을 볼 수 있다. 서귀포시 대포동 해안에는 '지삿개' 또는 '모시기정'이라고 불리는 절경지가 있다. 육각형의 돌기둥이 겹겹이 쌓여 성처럼 우뚝우뚝 솟아있는 돌기둥 사이로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지삿개해안 주상절리는 약 1㎞에 이르는 해안에 걸쳐 높이가 30m 정도인 사각내지 육각형 바위가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고 있다.
30여분간의 주상절리를 관람한 우리들은 오후 1시경 인근에 있는 점심식사 장소인 ‘제주오성’ 음식점에 도착했다. 오늘 점심은 ‘오분작뚝배기’이다. 전복 2마리에 딱새우 2마리, 꽃게다리 2개 등으로 푸짐하고 맛깔진 그리고 담백한 맛이 우러나는 뚝배기였다.
식사를 마치고 밖에서 잠시 談笑를 나눈 뒤 곧바로 이동하여 중문관광단지를 지나 인근의 ‘여미지식물원’에 오후 1시 45분에 도착하였다. 38m 전망대에 올라가 주위를 관람하니 멀리 한라산이 관측되었고 도시 전경이 펼쳐졌다.
식물원 내를 운행하는 ‘유람동차’에도 탑승하여 각국의 庭園을 一見할 수 있었고 공식적인 국제행사가 열렸던 넓은 잔디광장도 볼 수 있었다. 여미지식물원 관람을 끝으로 서귀포쪽 지역에서의 예정된 일정을 모두 마친 지금 시각이 오후 2시 40분이다.
우리들은 이제 서울로 가기 위해 제주공항으로 출발하고 있다. 내륙횡단도로를 지나 오후 3시 17분에 제주시내에 진입한다. 피곤한 탓인지 모두 잠을 청하고 있다. 귀가 멍하기도 하다. 밖의 도로표시에 ‘제주시 노형동’이라 표시되어 있다. 중간에 잠시 특산품점을 들른 뒤 서귀포에서 출발한 지 1시간 가량 지난 오후 4시 15분에 제주시 일도일동에 도착하였다.
移動中에 지수가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마지막 일정으로 김만덕 기념관을 들르자는 것이었다. 모두 동의하여 동문현대시장과 동문재래시장이 있고 서울의 청계천 개발 모델인 山支川이 흐르는 川邊에 위치한 ‘金萬德 記念館’을 찿았다.
제주 義人 김만덕은 1793년 제주도에서 김해 김씨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되자, 두 오라비인 만석과 만재는 목동이 되고 만덕은 기생이 되었다. 만덕은 악기 등을 잘 탔으며 미모도 뛰어나, 스무 살도 안 되어 제주 삼기 중 하나로 유명해졌다. 그런데 스무 살이 되자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고, 제주목사에게 자신을 양반으로 신분을 환원시켜 달라고 했다. 제주목사는 거절했으나 만덕은 양반이 되면 불쌍한 사람들을 돕고 가문을 다시 일으키겠다고 설득했다.
결국 만덕은 제주목사의 허락 하에 양반이 되었다. 그 뒤 숱한 남자들이 구혼했지만 만덕은 모두 거절하고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사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먼저 주목한 사업은 客主였다. 객주란 제주 포구에서 상거래 주선, 금융, 창고업 등을 말하는 것으로 정조 때 상업이 매우 번창했기에 만덕은 그 일로 꽤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만덕이 주목한 것은 양반들이 집에 꽁꽁 묶어둔 돈이었다. 그녀는 양반층의 주 소비품으로 녹용을 거래했고(제주도에는 사슴이 많으니 가능했을 것), 양반 부녀자들을 위해 여러 가지 고급 옷감과 화장품 거래에도 손을 댔다.
사업이 번창함에 따라 船舶 貿易까지 하게 되었다. 중간에 다른 상인들이나 그 상인들과 결탁한 관리들 때문에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正直과 誠實性을 基盤으로 한 그녀의 사업은 繁昌해 만덕은 10년도 안 되어 제주 포구를 완전히 장악한 巨富가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제주도에 큰 饑饉이 들자, 만덕은 千金을 털어 육지에서 쌀(약 500석 정도로 짐작된다)을 사다가 제주 官衙에 기부했다. 이 일로 만덕은 제주도민 전체의 큰 稱頌을 받았으며, 제주목사는 만덕의 부탁을 하나 들어 주기로 했다. 만덕은 한양과 금강산을 구경하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 國法으로 제주도의 여자는 本土에 가는 게 禁止되어 있었다. 그러나 제주목사의 狀啓에 의해 정조는 만덕을 불러올렸고, ‘行首內醫’라는 관직을 받아 政丞 채제공의 도움으로 한양과 금강산을 구경했다고 한다. 解說士의 도움으로 기념관을 둘러 본 우리들은 5만원을 寄附하는 善行을 보이기도 했다.
오후 5시 20분 공항 인근에 있는 저녁 식사를 위하여 ‘바당좀여’에 도착하여 전복죽과 해삼, 멍게, 문어, 갈치회와 함께 소주를 반주로 하여 넉넉한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친구들은 오후 5시 55분 제주국제공항으로 출발하였다. 지수는 차안에서 금번 여행의 收支決算 說明과 함께 次後計劃에 대한 公知를 해 주었다.
오후 6시 10분에 공항에 도착하여 발권과 수하물 위탁을 모두 마치고 오후 8시 10분 대한항공 KE1240편 김포행 항공기에 탑승하기 위해 탑승장 대합실로 이동하였다. 출발 탑승장 대합실은 승객들로 매우 북적거렸다. 면세점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流動 乘客이 많았다.
정시보다 5분 늦게 탑승한 항공기는 오후 8시 30분 제주국제공항을 離陸하여 김포로 향했다. 機內에서 제공하는 시원한 오렌지쥬스 飮料 한 잔이 3일간의 제주 여행의 疲勞를 말끔히 씻기에 충분했던 것 같았다.
제주공항을 이륙한 지 50분이 지난 오후 9시 20분 김포공항에 무사히 着陸하였고 수하물을 찿은 9명의 동기 친구들은 입국장에서 여행기간 동안 함께 겪었던 수고와 다음 會合을 期約하는 악수를 나누며 解散하였다.
그렇다. 우선은 모두 별다른 일없이 2박3일 일정을 잘 다녀온 것에 感謝하고 그러한 頂点에서 計劃하고 準備하고 實行하는데 최일선에서 勞苦를 아끼지 않은 이지수 회장에게 깊디깊은 감사의 拍手를 보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貴重한 시간을 갖게 해 준 친구 婦人들께 더 크고 넓은 무한한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알뜰한 멋과 살뜰한 맛을 함께 나눈 아홉 벗님들의 濟州 友情旅行은 서남지부가 발전해 가는 無窮한 里程標의 한 페이지를 裝飾했다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2016. 11. 6~8까지 2박3일의 제주 우정여행을 마치고, 서남지부 리포터 석대식이가
첫댓글 훌륭힌 서.남부지부의 보물 "석 주필"의 기행문은 시간을 초월하는 마력을 갖었나 봅나다.
다시한번 제주 2박3일의 여정을 추억하게 만드네요.
함께했던 9명의 우정여행 친구들 항상 건강들 하시고 다음에 더 좋은 길위에서 다시 만나요~~
만약에 서남부지부에 석대식친구가 없었다면~~~
사람마다 하늘이 준 재주가 있는데 대식친구는 너무나 큰 선물을 받은것 같다.
그런 친구가 있어 난 행복하다.2박3일 동안 같이 해준 8명의 친구들에게 감사하고 고맙다.
다시금 추억이 새록 새록 ~
아름다운 추억은
행복한 마음을
늘 간직하게 합니다.
그날은 나에게 새론 즐거움과 행복을 주었던 시간~~
대식친구가 써내려간 기행문을 읽으며 그날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더이다.
칭구 여러분 사랑합니다~~
간식,주식이는 대식 앞에서 쪽도 못씁ㄴ다 그래도 여라분은 간식과 주식을 항상 기억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