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 수요일 저녁, 고전강독회 스터디 룸에서는 사마천의 『사기열전』 세 번째 강의가 열렸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강의실은 동문과 재학생들로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만큼 가득 찼다. 사람들의 뜨거운 열기에 시원한 바람을 내뿜던 에어컨도 두 손을 들었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훈훈한 바람을 내뿜고 있었다. 그래도 누구 하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든 시선은 강단에 선 성균관대학교 한림원 조동영 교수님(고강 7기 동문)을 향해 있었다.
때마침 박재왕 집행부 회장님께서 시원한 꿀홍삼을 한 병씩 나누어 주셨다. 목을 축이고 나니 다시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교수님의 강의도 어느덧 절정으로 치달았다.
오늘 강의의 중심에는 유방의 천하통일을 도운 세 사람이 있었다. 소하, 장량, 한신이다.
세 사람의 재능과 역할은 뚜렷하게 달랐다. 소하는 후방에서 나라의 살림을 책임졌고, 장량은 유방의 책사로서 천하의 방향을 제시했으며, 한신은 뛰어난 군사적 재능으로 전쟁터를 누볐다.
소하가 특별했던 것은 전쟁터에서 칼을 휘두르는 능력이 아니었다. 행정과 조직, 사람과 물자를 관리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유방의 군대가 진나라의 수도 함양에 들어갔을 때 다른 사람들이 궁궐의 재물과 보화를 살피는 동안, 소하는 진나라의 승상부 등에 보관되어 있던 법령과 호적, 지리 자료 등 중요한 문서들을 확보했다. 이 자료들은 훗날 한나라가 국가의 제도를 정비하고 관중을 다스리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전쟁에서 칼을 휘두르는 사람만이 영웅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사람도 천하를 만드는 주인공이었다.
젊은 장량이 하비에서 지내던 어느 날, 다리 위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일부러 자신의 신발을 다리 아래로 떨어뜨리고 장량에게 주워 오라고 했다. 장량은 화가 났지만 참고 신발을 주워 왔다. 그런데 노인은 다시 자신의 발에 신발을 신겨 달라고 했다.
장량은 또다시 분노를 참으며 노인의 신발을 신겨 주었다. 노인은 그의 인내심을 시험한 뒤 훗날 다시 만나자고 했다. 여러 차례의 시험 끝에 노인은 장량에게 『태공병법(太公兵法)』을 건네주었다.
『사기』에는 이 노인의 이름이 처음부터 황석공이라고 적혀 있는 것은 아니다. 사마천은 그를 ‘노부’라고 기록했으며, 훗날 사람들이 이 노인을 황석공(黃石公)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날 조동영 교수님께서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것을 보여주셨다.
바로 장량이 황석공에게서 받았다는 『태공병법』과 같은 이름의 고서였다. 교수님께서 책을 펼쳐 보여주시자 강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교수님의 배려로 참석자들은 차례로 책을 펼쳐보며 오래된 병법서의 모습을 직접 확인했다.
2천여 년 전 장량이 황석공에게 받았다는 그 책의 이름을, 우리는 그날 강의실에서 직접 눈으로 마주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런데 장량이 그 책을 몇 번 읽었다고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1,000번인가 100번인가를 읽고 네가지를 써먹었다고 했는데...
한신은 세 사람 가운데 가장 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던 시절을 지나 소하의 천거로 유방의 대장군이 된 그는 뛰어난 군사적 재능으로 여러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며 유방의 천하통일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하지만 천하가 통일된 뒤 그의 뛰어난 군사적 능력은 오히려 유방에게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한신은 반역을 의심받았고, 기원전 196년 여후와 소하의 계책으로 궁궐에 들어갔다가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 후대에는 ‘성야소하, 패야소하(成也蕭何, 敗也蕭何)’라는 말이 생겼다. 성공도 소하의 도움으로 이루었고, 마지막 죽음에도 소하가 관여했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소하는 나라의 살림을 맡았고, 장량은 천하의 책략을 세웠으며, 한신은 전쟁으로 천하를 얻었다. 그러나 세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서로 달랐다.
유방은 천하를 얻은 뒤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신에게는 소하와 같은 행정 능력도, 장량과 같은 책략도, 한신과 같은 군사적 재능도 없지만, 자신에게는 그들의 능력을 알아보고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고.
어쩌면 유방이 천하를 얻은 진짜 힘은 바로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뜨거운 여름밤, 훈훈한 바람이 흐르던 스터디 룸에서 우리는 2천여 년 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교수님이 보여주신 오래된 병법서를 차례로 들여다보며, 역사책 속에서만 존재하던 장량과 황석공의 이야기를 잠시 우리 눈앞의 현실로 불러내는 특별한 경험도 했다. 한자는 잘 몰랐지만...
사마천의『사기』는 그렇게 오래된 책이지만, 그 속에 담긴 사람 이야기는 여전히 오늘의 우리에게 묻고 있는 듯했다.
당신이라면 어떤 재능으로 세상에 쓰임을 받고, 또 어떤 사람의 재능을 알아볼 수 있겠느냐고.
첫댓글 학습부장님께서 성균관대 조동영 교수님의 여름 특강
<사마천의 사기>중 제 3강 을 잘 정리해서 올려 주셨네요.
복습하고 좋으네요.
수고에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