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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1:1 |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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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1:2 |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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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1:3 |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놓아주고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도록 했다."
많은 비평가들은 "기원전 6세기의 페르시아 황제는 정치적으로 약아 빠진 자들이라,
포로 된 백성을 놓아주고 종교적 자유를 선언했다는 것은 우스운 소리다"라고 하면서
에스라의 기록이 잘못이라고 비웃었다.
그러나 고레스 왕의 실린더가 발견된 후 그들은 더 이상 에스라의 기록을 비웃을 수 없었다.
그 실린더에는 고레스가 어떻게 539BC에 바벨론의 도시를 저항 받지 않고 취했는가를 보이며
그 실린더 위의 기록의 끝 부분에는 외국 포로에 대한 자유와 사회적 신분을 바로 잡아 주고
그들을 고국의 땅으로 돌아가 전통에 따라서 예배하도록 한 고레스의 정책이 있다.
즉 "바벨론 거주민에 대하여는...
나는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안 주는 것과, 사회적 신분을 안 주는 제도를 폐지한다...
나는 그들의 무질서한 주거 생활에 안녕을 주었고 티그리스 다른 편에 있는 헌납됐던 도시들을 돌려주었다.
그 땅은 오랫동안 폐허 되어온 거룩한 땅으로...
나는 역시 이전의 원주민들을 모아서 그리로 돌려 보냈다".
또한 아래와 같이 성소재건과 예루살렘 포로귀환에 대하여 적고 있다.
“나는 고레스 세계의 왕, 위대한 왕, 정정당당한 왕,
사방의 왕이며 위대한 왕 안샨의 왕이신 캄비세스의 아들이며 …
고레스의 손자이며… 테이스페스의 후손이며 (중략)"
"나는 오랫동안 황폐되어온 성소들과
그 안에 있던 신상들을 티그리스강 저편에 신성한 도성들로 귀환시켰으며
그들을 위하여 영구적인 성소들을 지어 주었다.
이곳의 주민들은 모두 모아서 저들의 거주지로 귀환시켰다…
(중략)”
한 때 성경의 역사적 기록은 불신의 뒷전에 밀려 홀로 서 있었으나
고레스의 기록이 발견됨으로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는 명확성을 확보했다.
또 우리는 다리오(522-486BC) 왕의 원통 인장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고레스 왕이 예루살렘의 재건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훼방자들이 이 일을 방해하고 고레스(559-530BC)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아닥사스다 I[530-522BC, 일명 캄비세스(Cambyses)]에게 이 일에 대해
금지 조서를 내리기를 바라는 상소문을 올렸고(에스라 4:7-16),
그래서 다리오(522-486BC)왕 2년 때까지 공사가 중단되었다.
그 후 학개를 비롯한 사람들이 스룹바벨을 중심하여 성전 재건을 시도하자(에스라 5:1-2)
이번에는 또 다른 무리들(에스라 5:3 참고)이 다리오왕에게
성전 건축 금지 조서를 내리도록 상소하였기에
다리오는 古문서들을 살펴 고레스의 명을 확인하고는
오히려 100%의 재건 자금과 함께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를 내렸는데,
그 조서를 내릴 때 여기에 있는 원통 인장으로 인을 찍었다.
이 원통은 굴리면서 찍히도록 사용됐다.
다리오의 도장은 그 뜻이 밝혀지지 않은 고대 페르시아어와 엘람어(Elamite)와
바벨론어로 된 명함으로 새겨져 있다.
2. 고레스대왕의 무덤 비문
고레스는 분명 다니엘로부터 페르시아가 영원할 것이 아니라
200여년 후 그리스의 젊은 왕이 페르시아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다니엘 2장, 7장, 8장, 9장의 성경예언을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대가 오리라고 예상하고 오래 전부터 여기 누워 기다리고 있었다.
"이 나라는 내가 이룩한 것이니 너는 내 무덤을 파괴할 권리가 없다”
헬라의 정복자 알렉산더대왕이 이곳 파사르가대 입구에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고레스 대왕의 무덤 앞에 당도했을 때 대왕의 지석(誌石)을 발견하였고
그 지석의 글을 읽고 그의 망토를 벗어 대왕의 무덤에 덮어주며 머리를 숙여 경배하였다고 한다.
자료출처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onkm3927&logNo=130007140809
*다니엘과 고레스의 만남
(단 1:21) 『다니엘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
(단 10:1) 『바사 왕 고레스 삼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다니엘은 적어도 고레스 3년까지 살았다.
그런데 1장에서는 원년까지라고 했는데 같은 책을 자기가 쓰면서, 10장에서는 3년이라고 했다. 다니엘에게 ‘고레스 원년(537BC)’은 아주 인상 깊은 사건이 있던 해였다.
다니엘이 고레스 원년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 해(年)를 기억하고 싶었던 것이다. 원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고레스원년(537BC)
다니엘은 바벨론이 망할 그때(539BC) 바벨론 총리였다. 80넘은 노인이었다.
다니엘은 바벨론 사람이 아니라 유대사람이기 때문에 다니엘에게는 바벨론도 페르시아도 이방이다. 그래서 다니엘은 경계심이 없는 정치가였다.
바벨론을 정복한 고레스가 페르시아 통치를 위해 자문을 구할 안성맞춤이었다. 고레스가 바벨론을 점령해서 누구를 불렀겠는가? 선왕 다리오 때부터 신임 받던 다니엘을 불렀다. 당연한 일이다.
당신이 다니엘이라면 고레스 만나러 갈 때 뭘 가지고 갈 것인가?
<이사야 예언서> 가지고 가야한다. 다니엘은 그 예언을 안다.
이사야 두루마리 가져가서 고레스랑 접견하고, ‘왕이여 만세수 하옵소서. 제가 왕께 보여 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사야 44장부터 45장까지 쭉 펴서 읽어줬을 것이다.
그래서 ‘다니엘은 고레스원년까지 있으니라’
고레스가 놀라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사 45:4)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자기 이름이 나와 있다. 기절초풍할 일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사44:27) 깊음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마르라 내가 네 강물들을 마르게 하리라
세상에 이런 신이 어디 있을까.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할지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고레스에 대한 예언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렘 25:11-12) 『[11]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1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칠십 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유대민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때 포로 생활을 70년 동안 할 것이고 그 후에 황폐된 예루살렘을 중건하게 될 것이라고 예레미야를 통해 이미 말씀(605BC)하셨다.
70년이 지나면 포로 귀환 명령과 예루살렘 중건 령(令)을 누군가 내려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택하신 것이다.
(사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 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
그거 다 읽고 자기 태어나기 150여 년 전에 예언해 놓은 사실을 알고도
“에이 나 안 해.” 그럴 사람 몇이나 있겠는가?
‘강물 마르게 하고, 고레스라는 이름도 주고, 메사아(왕)의 칭호도 주고, 열국을 정복할 수 있도록 자기를 안내했다는데’
그래서 바로 자기를 통해 “예루살렘을 중건하고 성전의 기초를 다시 쌓으라고” 한다는데 그거 안할 사람 누가 있겠는가?
얼마나 놀라고 감동되었겠는가?
출처: https://souljm.tistory.com/210 [Soulmate와 그루터기]
대한성경-29 메사의 비문과 고레스의 인권선언 | |
크리스찬타임스 2015-08-10 22:35 |
구약성경의 기록이 실제인지 이야기인지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유물이 나오면서 구약의 역사에 대해서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유물이 모압왕 메사의 비문(Mesha Inscription)이다. 이 비문은 성경 열왕기하 3:4-5절과 동일한 상황을 기록한 것으로 성경 기록의 역사를 증명한 유물이다. 이 유물은 1868년 독일인 의료선교사 클라인(F. A. Klein)이 발견하여 이동시키려 하였는데, 주민들이 파괴하여 탁본만 전해지고 있다.
이 석비(Moabite Stone)에는 이스라엘의 ‘오므리’가 등장한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오므리’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오므리는 오므리 왕조를 이룰 만큼 큰 영향력을 끼친 왕이었다. 오므리는 수도를 ‘사마리아’로 천도한 강력한 왕이었고, 모압을 정복하고 억압한 정복자 왕이었다. 모압왕 메사는 오므리가 죽자 그의 아들 아합과 전쟁을 벌려 억압에 풀려나왔다는 승전비가 모압의 석비이다. 북이스라엘에서 여로보암 다음에 강력한 왕이 오므리 그리고 여로보암 2세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는 ‘여로보암의 죄’와 ‘아합 왕’에 대한 말씀이 거의 차지하고 있다. 오므리 왕조의 뒤를 잇는 예후 왕조도 결국 ‘아합의 죄’를 심판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예후 왕조의 여로보암2세의 아들 스가랴가 즉위 6개월 만에 피살된 후에 반역이 연속되다가 결국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몰락하였다. 오므리가 건축한 ‘사마리아’는 부끄러움의 대명사가 되었다. 아직 이스라엘 사마리아는 약 500여명이 그리심산에 올 메시아를 기다리며 살고 있다고 한다(참고 요한 4장). 이들이 갖고 있는 사마리아 오경은 가장 오래된 사본이지만, 기독교나 유대교에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고레스 실린더(Cyrus Cylinder)는 바벨론을 정복한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BC559-529)가 제정한 세계 최초의 인권선언서이다. 현재 세계인권선언의 원형이다. 고레스는 바벨론을 정복하고 바벨론 정복지에 있던 관습, 종교 등에 자유를 선언하였다. 성경에는 바벨론 포로로 잡혔던 유대인들을 귀환 명령을 내렸고, 성전을 재건축하도록 명령을 내렸다(스 1:1). 문명의 총화를 이룬 제국이 페르시아이다. 사막에 인공정원, 분수와 연못을 만들어 거주하였다. 가장 적합한 거주 형태였을 것이다. 고레스의 인권정책은 세계역사에서 유일한 것이다. 피정복자의 인권과 권익을 보호하고 활성화시키는 정복자는 세계역사에 없다. 정복자는 지배계급으로 피정복자를 종을 삼아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는 것이 인간 역사이다. 그런데 고레스만 정복지에서 인권정책을 펼친 것이다. 이것이 현재 정복자의 아량으로 되었지만, 정복자의 내면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고레스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인물로, 여호와의 목자로 지명된 인물이다(사 44:28, 45:1)
페르시아의 꿈은 서진이었고, 아테네 연합군에 막혀 중단되었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에 의해서 정복되고 지금의 ‘이란’이라는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동서의 분기점, 세계의 역사를 결정하는 마라톤 전투(BC 490), 테르모필레 전투(BC 480), 살라미스 해전(BC 480)이였다. 세계 역사의 중심축은 서양의 알렉산더로 로마로 이동하였다. 이 때 성경은 에스라, 에스더, 느헤미야 시대인데 성경에 언급이 없다. 예루살렘은 조용하였지만, 때가 차매 베들레헴에 하나님께서 요셉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세계의 중심은 바벨론이다. 여호와는 갈대아(바벨론)에서 아브람을 불러 가나안으로 인도하였다. 아브라함의 아들 다윗이 건축한 예루살렘, 다윗의 아들 예수가 죽은 예루살렘, 예수의 피로 세운 교회가 바벨론을 벗어난 세계의 중심이다. 예루살렘을 대적한 바벨론은 멸망하지 않고 지금도 교회를 유혹하고 박해한다. 역사에 오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Maranatha
*고대 페르시아어 Kūruš, 바빌로니아어 Kuraš, 엘람어 Kuraš, 아람어 Kureš, 히브리어: כורש Koreš, 라틴어: Cyrus, 페르시아어: کوروش بزرگ, 성경에서는 כורש(고레스)라고 쓴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인 크테시아스와 플루타르크는 키루스라는 이름이 태양을 뜻하는 “쿠로스”에서 유래한다고 기록했다.
이데일리 | 2016.04.08 10:55 | 박지혜 e뉴스 기자
[이데일리 e뉴스 박지혜 기자] 출판사 ㈜북이십일이 참된 리더의 조건을 제시하는 신간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을 출간했다.
지난달 30일 출간된 ‘군주의 거울, 키루스의 교육’은 각자도생의 아포리아(Aporia, 해결의 방도를 찾을 수 없는 난관의 상태) 시대를 위한 위기 극복의 인문학도서로,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 아포리아 시대의 기록에는 현대 리더의 자질을 왜 그리스 군주에게서 찾아야 하는 지를 설명한다. 또한 비극의 반복으로 군주의 거울이 등장하기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현대와 대입해 이야기 한다.
책에 따르면,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는 ‘막다른 곳에 다다름’이라는 뜻의 아포리아(Aporia) 상황을 맞는다. 페르시아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 등을 연달아 겪은 상태에서 철학의 아버지라 칭송받던 소크라테스가 독살되며 국민들은 큰 절망에 빠진다.
저자 김상근 교수는 그리스의 아포리아를 꿈과 희망, 결혼과 인간관계를 포기하는 현시대와 다르지 않다고 말하며, 이를 타계할 리더의 자질을 그리스의 인문학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당시 그리스의 역사가와 철학자들은 부흥의 국가 그리스가 아포리아와 같은 위기에 처하게 됐는지 전후사정을 책으로 기록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플라톤의 ‘국가’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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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선 이러한 아포리아시대의 기록 4가지 저서를 모두 소개한다.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책 ‘역사’에서는 페르시아전쟁이 일어난 계기와 이를 이끈 아테네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의 이야기를,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는 진정한 군주의 거울, 영웅 페리클레스의 이야기를 각각 소개하며 리더의 덕목과 혜안을 짚는다.
1부에서 그리스 역사에 등장하는 지도자의 유형을 살펴봤다면 2부에서는 크세노폰의 저서 ‘키루스의 교육’을 통해 더욱 구체적인 리더의 자질을 이야기한다.
‘키루스의 교육’ 속 키루스 대왕(Cyrus the Great)은 고대 근동의 문헌에 ‘왕 중의 왕’으로 표현된 인물이다. 전쟁 중에 군사들을 직접 이끌며 그들과 고통을 함께 나눴을 만큼 사람을 중요시 생각하며 모든 피지배 민족들에게 이상적인 군주로 칭송 받았다.
키루스는 “위대한 제국은 대리석이나 권력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만들어진다”며 군주가 지켜야 할 정의와 원칙은 국민에게 있음을 강조했다.
저자 김상근은 “비단 지도자뿐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 역시 오늘날 ‘군주의 거울’이 비추어야 할 주된 대상”이라며 “수천년 전 역사가들의 기록을 통해 우리가 갖춰야 할 지혜를 배울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
출처 : 다음카페/주성태교육학
교육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국가를 위해서나 개인을 위해서 교육은 바탕이고 희망이다. 사회 체제를 유지하고 발전할 수 있는 근본이요 뿌리이기 때문이다. 공교육이 위협받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읽는 크세노폰의 <키루스의 교육>은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교육과 개인 그리고 교육과 국가의 힘 사이에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는 좋은 고전이다.
<키루스의 교육>은 한국 학술 진흥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 편 22번이다. 저자는 기원전 430에서 기원전 354년까지 산 소크라테스의 애제자 크세노폰이다. 아테네 기사 가문 출신으로 장군이기도 하다. 스승을 죽인 아테네에 실망하고 스파르타로 갔다가 코린토스에서 생을 마감하는 대학자이기도 하다. 정치 군사 역사 철학 수필을 망라하는 대학자이다. 그의 저서로는 <아나바시스>, <심포지엄>, <소크라테스의 변명>, <헬로니카>, <메모라빌리아> 등을 들 수 있다. 이동수가 번역한 <키루스의 교육>은 한길사에서 2005년 2월 5일 펴낸 제1판이다.
현재의 교육 이론을 살펴보면 크게 두 조류가 맞서고 있다. 하나는 유전론적인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환경론적 입장이다. 유전론적 입장은 재능은 천성적으로 타고난다는 입장으로 교육의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것이고 환경론적인 입장은 사람은 교육에 의해서 얼마든지 계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어 교육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고 있는 입장이다. 이런 이론적 접근은 언제나 팽팽한 평행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크세노폰은 기원전 6 세기 이전에 이미 꿰뚫고 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52-53쪽 참조)
키루스의 교육을 교육과정과 제도로 나누어 알아보면 그 정교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교육과정을 보면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교육 내용 또한 정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절제와 복종을 강조하고 있다. 신과 부모 그리고 국가와 친구에 대한 배은 망덕을 가장 엄하게 다루며 국가와 개인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제도를 보면 소년 교육, 청년 교육, 장년 교육과 노년 교육으로 나뉘어 평생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이미 이때 평생 교육의 개념을 확립하였다는 점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28쪽-35쪽 참조)
교육 내용을 익히는 과정을 보면 토론과 실습으로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익힐 수 있도록 하였다는 점이 특이하다. 사냥을 통하여 몸과 마음을 연마하고 규율과 질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인상 깊다. 우리의 화랑제도와 비슷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식으로 아는 것보다는 직접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탁월하다는 점을 실증하고 있다. 우리의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입시위주의 암기식 교육임을 간파할 때 이를 통해 청소년 수련 활동을 통해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기회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56쪽-59쪽 참조)
이야기는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해 나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아시리아가 침공해온다는 소식을 접한 메디아의 왕 키악사레스(키루스의 외삼촌)는 페르시아에 구원병을 보낼 것을 요청함으로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원정군의 대장이 된 키루스가 교육을 통해 배운 것을 활용함으로서 대장정은 시작된다. 아버지의 당부는 강의식 교육의 대표적인 방법으로 생각된다. 보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사람을 다루는 기술 중에서 최고의 기법은 바로 사랑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덕목은 오늘 날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라고 말할 수 있다.(87쪽 -107쪽)
키루스의 지휘법은 현대에 내놓아도 그대로 통용될 수 있는 훌륭한 기법들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지휘체계를 일원화할 수 있는 조직기법이다. 5인 단위를 기초로 하여 연대에 이르기까지 일사 분란한 조직으로 승리의 기틀을 다진 점이다.(116쪽참조). 군대의 조직을 높이기 위해서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보상을 해주고(123쪽 참조)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하여 카리스마적인 권위보다는 합리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하여 토론을 통한 설득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삼촌 키악스레스를 설득하는 부분에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키루스의 능력이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삼촌의 딸과 결혼을 함으로서 제국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는 고금 이래로 설득의 중요성을 증명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128쪽, 132쪽, 159쪽, 164쪽, 238쪽, 270쪽 272쪽 등 전반적인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음)
키루스의 제국 건설의 과정에서는 현대적인 조직이론의 모델을 이루고 있다. 부하들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으며(135쪽) 공과에 대한 공정한 보상(133쪽, 173쪽) 부하에 대한 존중과 사랑 그리고 배려(159쪽, 223쪽, 361쪽) 동맹국과의 신뢰(170쪽,222쪽, 238쪽, 251쪽) 칭찬(189쪽, 359쪽) 업무 분담(202쪽) 포로에 대한 예우 및 존중(211쪽, 360쪽) 적의 적을 이용(242쪽) 위장전술(259쪽, 283쪽) 정보의 중요성(293쪽, 297쪽), 순애보(305쪽, 328쪽), 신탁(322쪽), 관리의 조직화(351쪽) 경쟁의 활용(353쪽) 과시(366쪽) 가정의 소중함 강조(387쪽) 통신 제도인 역제도(393쪽) 도덕성의 강조(403쪽)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제도나 사상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첨단 기법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 이 또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여러 기법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모범을 보이는 일과(348쪽, 355쪽) 교사의 권위를 강조한 점이다.(357쪽) 제국의 황제가 되었으면서도 스스로 모범을 보일 수 있었기에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이런 모델링 기법은 최신 교육 기법 중의 하나 임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교사의 권위를 강조하고 있는 점은 교권이 추락하여 설 곳을 잃어가고 있는 교사들에게는 각인될 수 있는 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고전 속에 미래가 있다고 한다. 키루스의 교육을 읽으면서 이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옛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진리는 우리가 외면하고 있을 뿐이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키루스의 교육을 감히 권하고 싶다. 고전을 읽으면 현대를 살아갈 수 있는 진리를 되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