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판결과 전자업종 사내하도급(소사장제) 문제
공계진 금속노동연구원 원장
안산 반월공단에 시그네틱스 안산공장이 있다. 2011년 7월, 시그네틱스는 COG라인을 폐쇄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 전원(28명)을 해고하였다. 시그네틱스 사용자는 COG라인이 적자라는 이유를 들고 있으나 △ 시그네틱스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2010년에 비해 각각 12%, 16% 상승(2011년 3분기 기준)하여 경영상태가 양호하고 △ 시설투자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영상의 이유를 근거로 한 정리해고라기 보다는 정규직 제로(0, ZERO) 공장을 만들기 위한 조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시그네틱스의 정리해고의 문제는 부당한 해고로 판명날 가능성이 크지만 전생산라인에 직접고용을 없애고, 간접고용형태의 사내하도급(소사장제)을 도입한 그 상태 자체를 바꿔내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 크다.
비정규직 고용 관련, 직접고용은 불완전하지만 사용사유제한이라는 것이 있어서 비정규직의 사용을 규제하지만, 간접고용의 경우 그런 규제가 없다보니 생산라인 어느 곳이나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 있다. 사실상 직접고용에 적용되는 사용사유제한이 무력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내하도급(소사장제)이라는 간접고용이 갖고 있는 이런 맹점을 악용, 시그네틱스는 전공장 정규직 제로화를 달성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런 유의 저질의 고용, 불안정한 고용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300인 이상 대기업의 41.2%(1,939곳 조사, 고용노동부, 2010년)가 사내하도급(사내하청)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사내하도급 사용을 규제하는 것이 양질의 고용, 즉 정규직 고용을 확대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다. 그런데 현재 사내하도급은 법으로 인정되고 있어서 이에 대한 대응도 위법과 적법에 따라 다르게 나오고 있다. 위법으로 인정될 경우에는 - 대법원 확정판결의 내용은 불법파견의 경우도 2년 경과 후에나 정규직 가능하다는 것이지만 - 즉각 정규직화하라는 요구를 하고 이의 쟁취투쟁을 하는 것이 위력한 대응방안이다.
그런데 적법한 경우는 어찌할 것인가?
민주노총, 통합진보당 등 진보진영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고 있다. 민주노총의 내용을 담아 통합진보당이 발표한 5대 핵심 노동공약은 사내하도급 문제 해결을 위한 방책으로 △ 불법파견과 도급의 기준을 직업안정법에 명문화하고 △ 불법파견시 사용사업주가 당해 근로자를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도급의 범위를 엄격히 하고, 이 범위를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서는 불법파견으로 간주, 정규직화하겠다는 것으로 사내하도급을 최소화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이 안에도 맹점이 있다. 왜냐하면 사내하도급의 경우 적법으로 위장하여 아무런 제한 없이 생산라인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시그네틱스의 경우를 보면 파주공장의 (주)에스티아이라는 하도급업체(소사장업체)는 시그네틱스가 자본의 99%를 점하고 있고, 안산공장의 퓨렉스라는 하도급 업체의 사장은 시그네틱스와 퓨렉스를 오가며 임원을 했던 사람으로 누가 보더라도 시그네틱스의 위장 하도급업체지만 서류상으로는 통합진보당이 제시한 직업안정법상 기준을 명확히 지키고 있기 때문에 불법으로 규정하기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이럴 경우 법적으로는 하도급업체의 시그네틱스 생산라인 진출을 막을 길이 없는 것이다.
위장된 적법을 들춰내 불법화시키고, 하도급업체에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적법으로 위장한 것을 밝혀내는 것이 상당히 어렵고, 밝혀낸다해도 도급인의 부인으로 긴 재판을 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설령 불법으로 판명난다해도 생산라인에 사내하도급 형태의 비정규직 사용은 만연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대법원의 판결은 사내하청(사내하도급)의 문제는 그대로 남긴 판결이어서 사내하도급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할 소지가 매우 크다. 왜냐하면 판결의 핵심은 △ 컨베이어벨트하에서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혼재작업은 원청의 지배하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며 △ 불법파견도 파견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것 등이라서 이 판결을 시그네틱스처럼 ‘셀 작업’을 하는 전자산업에 적용할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원청의 지배하에 있지 않다는 것, 따라서 현재의 사내하도급(소사장제)의 사용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적법이든, 불법이든 사내하도급은 당장 철폐되어야 하는 것이고, 투쟁의 방향도 당연히 사내하도급의 철폐로 맞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힘이 미약하여 당장 철폐가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목표로 한 이행과정을 밟아갈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과 통합진보당의 주장처럼 도급과 파견의 구분을 명확히 구분하고, 위장도급을 막는 것도 하나의 이행 방법일 것이다. 이것도 사내하도급을 최소화하는데 일조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사내하도급을 근절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원청은 앞에서 보았듯이 대법판결의 구멍을 찾아 교묘한 적법 사내하도급을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절의 이행방법으로 사내하도급의 사용을 극히 제한하는 사용사유제한 법률의 제정을 제안하고자 한다. 즉, 현재 파견법에 파견허용업종을 정해놓고 있는데, 사내하도급도 이와같이 허용업종을 정해놓고 엄격히 규제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이와 같은 조치의 귀결점은 당연히 사내하도급, 소사장제, 사내하청 등으로 불려지는 간접고용을 근절하고, 직접고용을 전면화하는 것이다.
이를 그림으로 표현해 보자.
그림1은 생산라인에 사내하도급이 투입된 형태이다. 사내하도급업체를 따로 떼어놓고 보면 독립공정처럼 보이나 공장전체를 보면 원청의 지배하에 있는 것이다. 사내하청 노동자와 원청간에 근로계약관계가 성립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사용사유제한제를 도입하여 사내하도급을 일소 또는 최소화하고 그림2와 같이 직접고용으로 전환되도록 해야 한다.
자본은 사내하도급의 사용사유제한과 정규직 전환이 엄청난 비용상승을 갖고 올 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이는 과장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주장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과대 포장되어 있는 반면 원청이 사내하도급 업체에 보장하는 이윤 등이 빠져 있고, 비정규직 사용으로 인한 부당이익의 환수 문제 역시 빠져 있기 때문이다.
설령 추가 비용이 든다는 것을 인정한다해도 그것이 그들이 벌어들인 돈에 비하면 얼마되지도 않는다. 현대차와 시그네틱스의 경우를 보자.
현대자동차에는 작년 기준 생산직 8천 여 명, 기타 4천 6백 여 명 등 1만 3천여 명에 이르는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가 존재한다. 본 노동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1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연간 1405.4억 원의 임금비용이 필요하다. 복지비용을 계산할 경우 더 들어갈 수도 있지만 사내하청 업체에게 보장해주는 이윤 역시 계산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추가 비용은 이정도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매우 크게 느껴질 지 모르나 2011년 한 해에만 8조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봤다는 것을 고려하면 큰 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정은 시그네틱스도 마찬가지이다. 시그네틱스의 경우 약 1100명의 생산직 노동자들이 사내하도급(소사장)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이곳의 경우 정보의 부족으로 정확한 계산을 해보지는 못했지만 200억원(2011.3분기까지의 당기순이익은 155억원) 가까운 당기순이익을 크게 까먹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왜냐하면 이곳의 경우 정규직이 없기 때문에 추가비용이 극히 제한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추가비용의 발생을 인정한다하드라도 얼마 되지 않는다. 반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할 경우 안정적 고용이 보장되는 것이기 때문에 생산성향상, 품질관리 향상 등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막대한 이익이 발생한다.
이런 점을 볼 때 추가비용 운운하며 사내하도급 근절과 정규직화를 반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고용노동부가 2011년 7월 18일 발표한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 가이드라인’은 사내하도급을 근절 내지는 축소시키기 보다는 조장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를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사내하도급 사용사유제한 법률을 만들어 사내하도급 사용을 최소화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사내하도급을 근절시켜야 한다. 사용사유제한이나 업종제한 조치가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의 저하와 고용불안을 막기 위한 것임을 감안하여 비정규 사용 제한 법률은 ‘기간제 사용사유제한’, ‘파견업종 제한’, ‘간접고용 사용사유제한 및 업종제한’ 등을 묶어 종합적으로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