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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다이제스트 유머시리즈] ② 관광/자동음악/계산/프로야구/아이스크림/소통/영어레슨/뉴멕시코/신생아/의식불명 11. 부모님이 단체 관광여행을 하실 때 인솔자는 일행에게 이튿날 일찍 출발해야 하니까 잠자리에 들기 전에 큰 가방을 호텔방 밖에 내놓으면 미리 버스에 실어놓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이튿날 입을 옷을 꺼내고 짐을 싼 다음 보청기를 뺀 후 잠자리에 드셨다. 아버지는 속옷 차림으로 가방을 내놓으러 복도에 나갔는데 그만 방문이 잠기고 말았다. "정말 난처하더구나." 아버지는 뒤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엄마는 내가 밖에서 아무리 불러도 듣지 못하더라. 그래서 난 1층으로 내려가 길 건너편에 있는 호텔 관리사무소에서 다른 열쇠를 가져와야 했단다." "하지만 할아버지, 옷가방 안에 옷이 잔뜩 들어 있었잖아요?" 내 아들이 반문했다.
12.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자동차의 경적으로 음악을 사용하는 게 유행이었다. 우리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고급 자동차는 48가지 노래의 첫 부분이 나오게 되어 있었는데 날씨가 몹시 추워지면 음악이 끊기거나 경적을 울리지 않아도 음악이 저절로 흘러나올 때도 있었다. 나는 여러 번 어머니에게 그 장치를 떼어버리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어느 추운 겨울날 오후 이모가 돌아가셔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장례식에 참석하러 가셨다. 식이 끝나고 두 분이 장지를 떠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자동차에서 "나는 팔자를 고쳤네."라는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야 어머니는 그 장치를 떼어버리셨다.
13. 아버지 농장에서 건축공사를 거들다가 내 옷이 온통 흙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혹시 아버지가 입으시던 헌 바지 가운데 내가 빌려 입을 만한 게 없겠느냐고 물었다. 내가 허리 38인치짜리 바지를 입는다고 하니까 어머니는 그 치수의 바지는 장 속에 많이 있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나보다 훨씬 뚱뚱하시다는 걸 알고 있던 나는 아버지 허리치수는 38인치가 넘을 거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38인치라고 우기셨다. "38인치일 리가 없어요. 지금 입고 계신 바지는 치수가 얼마지요?" 내가 물었다. "이건 44인치지." "이제까지 38인치를 입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하지만 44인치를 입으면 더 편하지."
14. 텔레비전으로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는 장면을 보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뭐하고 있느냐는 친구의 물음에 나는 "텔레비전에서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고 있는 걸 보고 있어"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친구는 이렇게 물었다. "그래? 삼성 라이온스가 이기고 있니? 해태 타이거스가 이기고 있니?"
15. 우리는 대만에 도착한 지 얼마 안돼서 그곳에 사는 미국인 가정을 방문했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파는 트럭의 음악소리가 들리자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다른 나라에 와서 고향에서 보던 걸 보니 아이들이 무척 신이 나는 모양이죠?" 하고 말했다. "아녜요. 저 트럭은 쓰레기차예요. 저 음악은 쓰레기를 가지고 나오라고 알리는 소리예요." 집주인이 설명했다.
16. 우리가 탄 유람선이 멕시코 연안을 순항하다 항구에 잠시 정박했다. 우리 회사 직원 한 사람이 배에서 내려 부두 근처를 산책했다. 그 여자는 색다른 경치를 찾아 한참 이리저리 거닐다가 그만 배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지나가는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는 영어를 전혀 못했다. 자기 뜻을 전하기 위해 여자가 가방에서 배 그림이 있는 우편엽서를 꺼내보이자 운전사는 알겠다는 듯 "네 네"하고 대답했다. 그 기사가 그 여자를 데려다 준 곳은 우체국이었다.
17. 미국 서북부지방 출신 남자와 결혼하여 태평양 연안의 오리건 주로 온 나는 내가 살던 동부지방 사람들이 서부지방 사람들보다 말이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빨리 무슨 말을 하고 나면 상대방이 내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가 자주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남편 패트릭이 자기 친구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우리 집사람은 대단한 여자야. 그 사람은 요즘 내게 말을 빨리 알아듣는 훈련을 시키고 있지."
18. 뉴멕시코 주의 알라모고르도와 텍사스 주의 엘파소 사이에 길게 뻗은 한줄기 길을 달리다 보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광활한 평지와 쑥대밭뿐이다. 중간에 쉴 만한 곳이라곤 뉴멕시코 주의 오로그란데라는 작은 마을뿐이다. 내가 처음으로 오로그란데에 도착했을 때 단조로운 경치에 마비돼 있던 나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고속도로 바로 옆에 키 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고 그 주변에는 누군가 정성껏 가꾼 채소가 푸릇푸릇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조그만 팻말이 서 있었다. "오로그란데 국립풍치림."
19. 처음으로 외손자를 보게 된 내 친구 캐럴이 병원의 신생아실에서 딸, 사위와 함께 아기를 보면서 아기가 제 엄마의 눈과 코, 피부색, 그리고 보조개 등을 쏙 빼닮았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옆에서 사위가 "저를 닮은 데는 없나요?" 하고 묻자 캐럴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일 자네 어머니가 오시지 않나? 그때는 아기가 자네를 닮게 될 걸세."
20. 멜버른병원에서 수련의로 근무하고 있던 나는 두 사람의 의사와 함께 회진을 하게 되었다. 우연히 세 의사가 모두 중국 태생이었다. 한 병실에 들어가니 전날 밤에 의식불명 상태로 입원한 환자가 있었다. 그 환자의 의식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환자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중국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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