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후손
백제 성왕의 후손인 오우치씨의 누리코지 절
오우치 가문은 백제 임성태자의 후손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왕조 실록에는
모리미가 백제 임성태자의 후손임을
자처하면서 대장경을 수입해 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루리코지(瑠璃光寺)의 5층탑은 560년전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야마쿠치의 영주 오우치 요시히로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저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중기의 뛰어난 건축으로 일본의 3대 명탑 중 하나로서 야간에는
1년 내내 일몰에서 23시까지 조명을 비추어 계절별로 피는 주위의 아름다운 꽃들과 함께 그 자태를 드러낸다
일본 역사 자료
14세기 이 지역 야마구치를 다스리는 다이묘(大名, 지역영주)인 오우치 히로요 그는 문학을 사랑했고 문화에
깊은 관심이 있었기에 자신의 영지인 야마구치를 교토와 같은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고자 했으며 문인을
우대하고 많은 절을 짓는 등 문화적 기반을 튼튼히 닦은 덕분에 많은 문인과 지식인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으며
일본 서부지역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고향 스오를 지키던 히로요의 6남 모리미는 요시미쓰의 명령을 받아들일 것을 거부하고 큰형처럼 쇼군 요시미쓰에 반기를 든다. 그러자 요시미쓰는 히로요의 7남 히로시게로 하여금 모리미를 정벌토록 명령한다. 결국 요시미쓰에 저항하는 모리미와 요시미쓰를 따르는 히로시게는 형제끼리 결전을 벌이게 된다. 이 형제의 싸움에서 형 모리미가 승리하여 오우치 가문을 지켜내게 된다. 이후 모리미는 세력을 확장하여 막부에서도 함부로 손대지 못할 정도로 강해지자 쇼군 요시미쓰도 어쩔 수 없이 그를 인정하고 야마구치의 다이묘로 임명했다고 한다.
1404년 전쟁이 끝난 후 모리미는 요시미쓰에 맞서다 전사한 형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당대 최고의 장인들을
불러 모아 교토 지역의 호류지 오층탑과 꼭 같은 이 루리코지 오층탑을 건립했다고 한다.
그러나 탑이 완성된 것은 38년 후인 1442년이라고 하는데, 그동안 탑 건립을 시작했던 모리미도 전투에서
전사하고 탑의 완공을 보지는 못했다고 한다.
야마구치를 서일본의 교토로 만들고 싶어 한 오우치 가문의 의지와 형에 대한 그리움이 이와 같은
아름다운 탑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기록이 있으며, 조선왕조 실록에는 모리미가 백제 임성태자의 후손임을 자처하면서 대장경을 수입해 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 조정에서도 왜구의 침략 등으로 일본과의 무역을 전면 금지하면서도
오우치 집안과는 꾸준히 무역을 허용하는 등 상당히 우호적으로 대했다고 한다. (일본 역사자료)
백제의 후손들과 일본인들이 많이 방문 하는
백제 성왕의 후손인 오우치씨의 누리코지 절
이 커다란 염주를 정성을 다하여 하나씩 위에서 밑으로
떨어뜨리며 돌리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사찰과 같은 고적지 주변에 정원이나 숲을 아름답게 잘 가꾼다
그래서 문화재뿐만 아니라 주변의 정원과 숲길만 걸어 봐도 잘 왔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곳은 탑 주위에는 나무들을 너무 많이 조성하여 숲과 나무가 오히려 이 탑의
아름다움을 가리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쪽저쪽에서 조망을 해보아도 선명하게 탑의 전신이
들어오지 않아 조그마한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설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