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기중 교수께서 남기고 간 이야기
사람은 세상을 떠나면서 이야기를 남긴다. 윤대통령 부친, 윤기중 교수께서는 92세를 일기로 소천하셨다.
윤대통령은 나이들어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다. 윤대통령은 재학생 시절 아버지 연구실에 들려 수학 공부,
방학 숙제 등을 하고는 했다. 성적이 떨어지면 꾸지람도 받고, 위로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서울대 법대, 열심히 공부한 윤석렬 학생은 장학금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기뻐하는 아버지 얼굴을 떠올리고 친구들에게 술자리 한턱 쏘겠다고 아버지를 찾아갔다.
집에 와 결정을 말씀드리니, 그 돈 네가 받아도 되는지 생각해 봐라. 그 돈은 가난한 친구가 받아야지.
아버지 말씀에 아들 윤석렬은 친구들의 양해를 구하고 장학금 명단 삭제를 요청하였다.
윤기중 교수는 9수만에 자식을 사법 시험에 합격시켰다. 자식의 사법시험 낙방을 8번이나 지켜보신 것이다.
사법시험 합격 소식을 전하러온 아들을 맞이한 윤기중교수는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만이 지은
"선택의 자유" 라는 책을주고 술자리를 열어 주셨다.
윤기중 교수는 아들에게 주도를 가르치며 자유와 공정의 가치를 가르쳐 주셨다.
윤대통령 요리 솜씨는 아버지와 대화하는 술자리 안주 솜씨에서 비롯되었다.
이후도 윤대통령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아버지를 찾아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아버지와 찍은 사진이 유난히 많다. 윤대통령 검사 임명장을 받고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 윤기중 교수는 단벌 신사였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있는 남의 밥 절대 얻어먹지 마라고 3000만원이 입금된
카드를 아들에게 주셨다. 이 일로 윤석렬 검사는 부하들의 술값은 언제나 윤 검사 차지가 되었다.
윤기중 교수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취임식 소식을 들었다.
윤기중 교수는 단상에 자리를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그 때문에 취임식 날 윤기중 교수의 모습은 단상에서 비추지 않았다.
그런데 윤기중 교수의 얼굴을 아는 지인이 단상 아래 일반석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다가와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주변 지인이 사진에 담아 모 신문사에 보내주었다. 이일로 대통령 취임식장으로 간 아버지 모습이
알려지게 되었다.
윤대통령이 아버지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찾아가 인사드리니,
윤기중 교수께서 윤 대통렁 손을 잡고하시는 말씀 “잘자라 주어 고맙다.”
이 말씀을 남기고 헤어졌다.
윤기중 교수의 임종 전 자식에게 남긴 마지막 말씀이었다. -옮긴 글-
<김덕영 교장님이 주신 카톡에서>
첫댓글 유급생이면서 교수 딸이 200만원씩 3번이나 받은 자와 비교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