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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24] (수원)김선자
작년에 수능을 본 딸아이가 대학에 합격은 했지만 더 큰 뜻을 품고 반수를 하겠다고 하네요. 며칠 후면 기숙학원으로 들어갑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또다시 도전하는 딸아이를 응원하고, 믿으면서도 걱정이 되고.. 뜻 한 바를 이루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들어 맘이 편치 못합니다ㅠㅠ 어떻게 기도를 드려야 제 맘이 좀 편해질 수 있을까요? 부디 바라고 원하는 일이 부처님의 따뜻한 가피덕분에 꼭 이루어지도록 두손 모아 간절히 발원드립니다!!
※ 반수 : 현재 재학 중인 대학교에서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타 대학의 신입생으로 재 입학하는 것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져서 훈훈합니다. 나의 일이 아니고, 딸의 일인데 왜 내가 마음이 편치 않을까요?
그 이유는 나는 내 딸의 조물주이고, 내가 만든 세상에서 떠나려는 딸의 ‘날개짓’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딸은 나를 선택해서 만난 것이 아니지만, 어머니는 딸을 선택해서 낳았고, 어머니가 만든 세상에서 딸은 선택권 없이 자랐습니다.
그런데 그 딸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 ‘선택’이라는 것을 스스로 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려려고 합니다. 딸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는 내가 만든 세상에 더 이상 만족할 수 없는 딸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은 것입니다. (제행무상)
나보다 더 큰 세계로 가서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있고, 그렇게 해서 사랑하는 내 딸이 나를 영영 떠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고, 더 이상 딸에게 어머니도, 인생선배역할도 할 수 없는 곳으로 가면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심리가 있어 보입니다.
딸에 대한 강한 소유욕은 내가 항상 딸보다 나은 위치에 있을 거라는 자만심에서 옵니다.
그러나 어머니, 딸이 원하는 세상의 지도자가 되지 않을 요량이라면(정치를 해서 세상을 바꾸지 못하시겠다면^^)...그냥 딸에 대한 집착을 놓으시고 편안해 지시길 바랍니다.
열심히 기도하세요. 딸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딸 없이 살아갈 자신의 ‘독립’을 위해서...^^
그리고 앞으로는 딸을 내가 거느려야할 ‘식구’로 보지 말고, 내가 보고 배워야 할 ‘부처님’으로 생각하세요. 그러면 어머니 삶이 훨씬 편안해질 것입니다.
2.
8357]
사리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유신(遺身)·신골(身骨)이라고도 한다. 사시(死屍) 또는 유골을 말하는 것으로서 ≪현응음의 玄應音義≫ 제6에는 “사리는 바로 설리라(設利羅)라고 하며 번역하여 신골이라 한다.”고 하였다.
사리는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형태에 따라 전신사리(全身舍利)와 쇄신사리(碎身舍利)를 말하고 있다. 즉 신체 자체로 볼 때는 전신사리이고 다비(茶毘)한 뒤의 신골은 쇄신사리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쇄신사리는 세골(細骨) 내지 흰 분말의 경우가 있으나, 북방불교 계통에서는 사리신앙이 더욱 신비화되어 둥근 구슬의 형태로 된 영골(靈骨)·영주(靈珠)로 인식되었다.
즉 황금색의 분말에서부터 진주와 같은 구슬에 이르기까지 다비 후의 유신(遺身)이 사리로 신봉되었다. 보통 불사리(佛舍利)를 으뜸으로 말하고 있으나 그 외 수행자의 유신인 고승의 사리 역시 신봉되어 탑을 만들기도 하였다.
대체로 이 같은 신골사리 외에 부처님의 교설인 불경이 법사리(法舍利)로서 신봉되어 신골사리와 함께 불탑(佛塔) 속에 봉안된다. 부처님의 신골을 진신사리(眞身舍利), 불경을 법사리, 고승의 사리를 승사리(僧舍利)라 하여 구분하고, 승사리를 봉안하는 곳은 부도(浮屠)라고 하여 뒤에 와서는 불탑과 다른 형태로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석가모니의 열반 뒤 그 제자들은 인도의 장례법에 의하여 유신을 다비하였더니 8곡 4두(八斛四斗)나 되는 많은 사리가 출현하여 이를 8국에 분배하여 봉안하였고, 그 뒤 아소카왕(阿育王) 때에는 팔만사천의 불사리탑을 건립하는 등 사리신앙이 매우 성행하였다.
또 ≪대당서역기≫에는 현장(玄奘)법사가 돌아올 때 여래의 육사리(肉舍利) 150립(粒)을 가져왔다고 하였으며, 의정(義淨)도 사리 300립을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그 밖에 서역으로부터 불골(佛骨)이 전해져서 사리신앙이 널리 행하여졌다.
우리 나라에서는 549년(진흥왕 10) 양나라에서 사신을 보내어 불사리를 보내왔으므로 왕이 백관과 함께 흥륜사(興輪寺)에서 맞이하였다는 것이 사리 전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그 뒤 안홍(安弘)이 진(陳)나라에 들어가서 법을 구하고 호승비마라 등과 함께 귀국할 때 ≪능가경 楞伽經≫·≪승만경 勝鬘經≫과 불사리를 가지고 귀국하였다.
636년(선덕왕 5)에 당에 들어간 자장(慈藏)은 오대산 태화지(太和池) 가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불정골(佛頂骨)과 치아(齒牙)사리 등을 받아서 645년(선덕왕 14)에 귀국하였다. 그리고 왕에게 건의하여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였으며, 오대산 중대에 적멸궁을 건립하고 그 지하에 정골을 봉안하였다. 그 밖에 월정사, 태백산 정암사(淨岩寺), 양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지리산 화엄사, 영월 사자사에 사리탑을 건립하였다.
751년(경덕왕 10)에는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에 사리를 봉안하였고, 그 뒤 신라 후기 및 고려시대에도 사리신앙이 매우 성행하였다. 조선 초기에도 사리에 관한 신앙은 왕실을 중심으로 매우 성행하였다. 태조가 대신에게 “사리가 어찌하여 생기느냐?” 하고 묻자, 하륜(河崙)이 “정기가 쌓인 것입니다. 사람이 정신을 수련하면 다 사리가 있습니다. 바다의 조개도 보주(寶珠)가 있고 뱀도 명월주(明月珠)가 있으니 조개와 뱀이 무슨 도가 있어서 그런 구슬이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자 왕이 웃었다고 하였다.
태조는 1393년(태조 2) 정릉 흥천사(興天寺)에 사리각(舍利閣)을 건설하고 7일 동안 기도하였는데, 그 때 사리 4매(枚)가 분신(分身:여러 개로 나뉨)하여 불당을 유동(楡洞)에 건립하고 사리를 봉안하였다. 그리고 1398년에는 명 태조가 황엄(黃儼)을 사신으로 보내어 사리를 구하므로 왕은 각도 감사에 명하여 사리를 구해 들이게 하였다.
충청도에서 45매, 경상도에서 164매, 전라도에서 155매, 강원도에서 90매를 모았으며, 또 태조가 가지고 있었던 사리 303매를 함께 주자 황엄이 고개 숙여 감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 각 사찰에서 구한 것과 함께, 모두 800매를 도금한 금은합 속에 넣어 보냈다고 한다. 1415년(태종 15) 왕이 불(佛)의 진위를 실험하기 위해 승려 100명을 흥천사 사리각에 모아 기도하면서 사리의 분신을 기원하게 하였다. 1419년(세종 1) 태종이 흥천사 탑 안에 사리를 봉안하였다.
석가 생존시 이[齒] 사이에서 나온 치사리 4매와 두골·패엽경(貝葉經) 및 가사 중에서 패엽경과 가사는 내불당(內佛堂)에 안치하고 두골과 치사리만 탑에 두었다고 하였다.
1446년 4월에는 광천사(廣天寺)에 있던 사리 10매를 내원당으로 가지고 와서 봉안하였다. 1450년(문종 1)에는 사리를 깊이 신앙한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사리탑을 조성하기 위해 시주를 얻으려 하다가 관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일도 있었다.
특히 세조 때에는 사리에 관한 여러 가지 기록이 많이 전하고 있다. 개성의 연복사(演福寺) 승려가 사리라고 진상한 함을 열어보니 좁쌀이었다고 한다. 1464년(세조 10)에 삼각산 장의사에서 사리가 분신하므로 백관이 서한을 올려 경하하였는데, 이 날 오색구름이 나타났다고 한다.
같은 해 5월에는 효령대군이 회암사(檜巖寺)에서 원각법회(圓覺法會)를 베푸는데 여래가 현상(現相)하고 탑이 방광하면서 채색구름이 공중에 가득하였으며, 사리가 수백 매로 분신하였다. 그리고 그 사리를 함원전(含元殿)에서 공양하는데 또 수십 매가 분신되었다. 왕은 크게 기뻐하여 원각사(圓覺寺)를 세우고 이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또 세조는 양평에 용문사를 중창하고 사리탑을 세웠으며, 양주에는 수종사(水鐘寺)를 창건하고 사리탑을 세웠다. 그리고 양양 낙산사에서 37일 기도하는데 공중에서 사리 4매가 떨어지므로 낙산 해안 홍련암(紅蓮庵)에 사리탑을 세웠다고 한다. 세조가 세운 사리탑은 수십 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 뒤에도 사리신앙은 매우 성행하였으며, 불상에 대한 신앙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에 대한 신앙이 매우 강하였다. 근년에는 경상남도 사천다솔사(多率寺) 후불탱화에서 사리 수십 매가 나오고, 경기도 양주군보광사(普光寺) 후불탱화에서도 수십 매의 사리가 나왔으며, 구미도리사(桃李寺) 부도탑에서도 세존사리 1매가 발견되었다.
<인터넷 백과사전>
3.
0368]
혼자사는 저에게 가끔 출가를 권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출가의 인연은 따로 주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스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그냥 혼자사는 삶과 승복을 입고 절에서 사는 삶이 많이 다르신가요?
혼자서 계를 지키고 부처님 교리를 탐독하면서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출가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 출가의 인연이 있습니다. 출가의 인연이란 ‘불성’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4.
0395]
저는 불교를 종교로서가 아니라 삶의 철학으로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어떤 공부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스님들은 태어나서 출가하기 전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참회’하는 기도부터 시작합니다만...^^
종교는 무엇이고, 철학은 무엇일까요? (그 영역을 굳이 분류하면, 종교학자와 철학자들이 간의 다툼이 있을 듯 합니다만...^^)
자신의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문적인 지식으로 ‘부처님의 경전’을 보게 된다면 나쁜 짓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준비가 안 된 어린아이에게 ‘총’을 잡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까? 그러면 더 볼려고 할텐데...알아서 판단하시길...)
어제 지방선거에는 수행하는 스님들보다 더 수행을 열심히 한 ‘난사람, 된사람, 든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사람들이 ‘계정혜’를 지키는 삶을 살고 있다면, 열악한 환경에서 수행해야 하는 스님들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5.
8767]
제가 아는 스님께서는 타 종교에 대해 심할 정도로 배타심을 갖고 있는데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타 종교라고 하면 한정되어 있지요? 기독교와 천주교일텐데요. 그리고 기독교와 천주교는 구약과 신약으로 나뉠뿐 교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배타심을 갖고 있는 스님께 불교 경정과 성경의 차이점을 이해시켜 주시면 좋겠네요.
첫째, 성경에는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믿지 말라는 유일신제도가 있습니다. 불교에서 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불교의 교주는 ‘부처님’으로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사상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제일 큰 자이점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쉬워요. 원시시대에는 헌법만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지고 사람들의 삶의 형태가 달라지면서 여러분야의 법이 생겨납니다. 민법, 상법을 비롯해서 ‘판례’법까지...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헌법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유일신만 믿으면 인생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아서 교리적 마찰이 생기는 것입니다.)
둘째, 상벌제입니다.
기독,천주교의 하나님은 상과 벌을 직접 주십니다. (그래서 법관들이 입는 옷은 목사들이 입는 옷과 유사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업’으로 인해서 많은 괴로움을 겪습니다. 하나님만 심판을 하는데, 인간이 심판을 하면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우리는 업보와 인과응보에 의해 살아가지, 누군가의 심판에 의해서 살아가지 않습니다.)
불교의 부처님은 업보와 인과응보에 의해서 살아간다고 법을 설할 뿐 직접 상벌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대신 승가에 ‘계’를 만들어 지키도록 하셨지요. (실제로 사람들이 ‘선악’에 대해 분별하기 시작하면 삶이 힘들어집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선악에 대해 분별하지 않고, 계를 지키는 삶을 삽니다.)
셋째...
이와 같은 교리의 차이점을 잘 이해시켜주시면, 스님꼐서도 마음을 비우고, 바른 통찰지를 얻으실 겁니다. 수행자에게 ‘분별심’은 금물입니다.
6.
8698]
스님들께서는 수행의 목적을 중생구제와 해탈 둘 중에 어느 쪽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이 수행의 목적이지요.
깨달음을 얻어서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입니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 자가 중생을 제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참된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께서도 설법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많은 고민을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참된 깨달음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렇게 수행하는 진정한 수행자를 만나서 공양을 올리고 보시를 하고 복을 받게 하는 것이 ‘중생구제’가 아닐지요?
부처님께서는 서열 1순위의 왕족출신이었기 때문에, 깨달으신 후에도 많은 인연을 맺고 중생구제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과 같은 인연을 맺지 못한 사람들은 깨달은 후에도 부처님과 같은 승가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중생구제도 인연이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7.
8996]
50살이 가까워지면서 자꾸만 인생이 허무하게 여겨집니다. 자식들도 멀어지는 것 같고,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지, 아무런 의욕도 나지 않네요. 힘 좀 주세요.
무상, 고, 무아의 원린를 알고 열심히 수행하세요.
제행이 무상하다는 진리를 제대로 통찰하는 시간을 가져보시길...사람들은 그렇게 출가를 하기도 합니다. 부처님은 29세에 출가를 하셨으니, 50살이면 꽤 늦은 나이지요.
그 동안 ‘무상’의 진리를 통찰하지 못하고, 많은 업보를 지었음을 참회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특히 계를 지키지 않아 지은 업보를 참회하시고 복을 지으시길...)
이제 육신의 한계에 부딪혀서 ‘무상’의 진리를 알게 된 어리석음에 깊은 참회를 하시고, 기도와 수행으로 자신을 잘 단도리 하시길 바랍니다. 자신의 지은 어리석음 앞에 겸손해지지 않고, 사람들이 응원해 주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탐욕’심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자신의 ‘상’을 내려놓고, 겸허한 자세로 계를 지키면서 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수행과 정진을 하세요.
(부처님 경전에 보면 예의를 갖추고 진심으로 ‘법’을 청하는 사람에게만 ‘법’을 주라고 되어있습니다. 부처님의 법 앞에 예의를 갖추지 않으시면 법을 구할 수 없습니다. 진심으 나를 이끌어주시는 인연을 만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혼자서 수행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기를 바랍니다.)
8.
0397]
정근할 때는 부처님 명호를 한가지만 계속해서 부르라고 하시던데. 절에 가면 관세음 보살, 약사여래불, 미륵존불등 다양한 명호를 부르는데 왜 이렇게 다른가요?
사람들의 성취하려는 소원이 모두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랜 옛날에 사람들을 제도하기 위해서는 관세음이나 약사, 미륵같은 ‘像’이 필요했습니다만, 지식수준이 높아진 현대인에게는 굳이 그런 상에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그러한 기도처에서 깨달음을 얻고 성불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기운에 힘입어 가피를 입기 위해서 그 곳에 가는 것이지요. (문아명자면삼도 견아형자득해탈 이라고 하잖아요? 지옥에서도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아는 사람이 있어서 같이 지옥에 간 사람들이 모두 구원을 받았다는 설화도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말해도 인연이 없으면 못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인연이 있는 사람은 금강경 사구게만 들어도 깨달음을 얻지요.)
정근을 하는 원리는 번뇌망상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들이 보다 쉽게 정신집중(무념무상의 상태)을 하여 기도를 성취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원리를 잘 알아서 기도성취하세요. 상근기 수행자들은 호흡(정근보다 상근기 수행법)만으로 삼매에 든다고 합니다.
9.
3970]
부처님이 열반하실 때 얼마나 많은 사리가 나왔길래 전 세계에 사리가 봉안되어 있나요?
궁금하시면 한 번 부처님 사리를 모신 성지순례를 해 보시길...^^
10.
8854]
대학다니다 중퇴하고 집에서만 은둔하는 딸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사회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있네요. 어떻게 보살피면 좋을까요?
딸은 선택권 없이 태어난 자신의 ‘삶’에 대해 많은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그래도 부모를 떠나지 않고 집에 거주한다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적어도 사회를 만나기 전 부모님과 함께 했던 시간은 만족스러웠다는 것이니까요.
주변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는 딸의 전생업보?일 수도 있고, 부모님이 복을 짓지 못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가진 부모는 절에 가서 보시를 하고 복을 짓고 좋은 일을 앞장서서 해야하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딸의 과거전생을 탓하는 것보다는 부모가 딸을 잉태하면서부터 지은 업보를 참회하고, 좋은 업을 짓도록 기도하고 수행을 하는 것이 먼저겠지요.
딸은 이미 대학에 가고 사회를 만나야 할 성인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딸의 실제 나이는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 하는 어린아이입니다.
딸이 자신의 선택한 삶으로 나아가지 않고, 부모가 딸을 선택한 삶속에서 멈췄다는 것은 아직 부모가 딸에게 베풀어야 할 것들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딸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물심양면으로 베풀어야 합니다.
딸로 인해서 마음의 위안을 삼고, 자신의 삶을 유지했던 과거를 생각해 보세요. 당시 딸은 부모님이 힘들어하는 삶을 보고 상처를 받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다른 사라의 생노병사를 보고 마음이 아파서 출가하셨지요.)
그렇게 딸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에 대해서 참회하셔야 합니다.
(공개되면 안 되는 중요한 기술? 한 가지 알려드릴까요? 사람의 재물은 유한하잖아요. 마음은 한없이 베풀 수 있을 것 가지만 재물이 부족해서 한계에 부닥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딸보다 좋은 입거나, 좋은 생활을 누리고 계시다면 딸은 사회로 가기 더 힘듭니다. 딸을 좋은 사회로 보내고 싶으시다면 딸보다 못하게 사셔야 하고, 딸보다 나은 삶을 계속 누리고 싶다면 딸을 계속 데리고 아이처럼 보살펴야 합니다. 그런 부모님의 업보를 잘 이해하시고 기도 열심히 하시길...행운을 빕니다.)
그리고 딸은 딸대로 부모와 격리되어 개인적인 업보를 점검할 상담을 받을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인연을 만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