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3. 21
끝났지만 끝난 것 같지 않다. 이번 대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분명 윤석열 당선인이 승리했지만 국민의힘 내부는 어수선한 것 같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선거에서 패했지만 민주당은 패한 정당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사뭇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역대 대선 사상 최소 표 차이로 승패가 갈렸기 때문이다.
일단 윤석열 당선인과 국민의힘을 보자. 윤석열 당선인은 선거 때 상당히 이질적인 집단의 ‘복합 지지’를 받았다. 과거 대선에서는 볼 수 없던 매우 특이한 경우다. 탄핵 이후 ‘유사(de facto) 정상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기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실정(失政) 덕분에 이런 ‘어중간함’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특이한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가 친문 정당과 친문 단체의 윤석열 당선인에 대한 지지 선언이다. 이들이 애초부터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니 없으면 여리 찍는다”는 말에서 볼 수 있듯, 현재 상황은 여야 이분법적 구도로 보기 힘들다. 보수 대 진보 단순 구도로 보기도 쉽지 않다. 이번 대선 구도가 후보 대 후보 구도가 아닌, 진영 대 진영 구도였음에도, 민주당 내 분열 때문에 매우 복잡한 진영 대결 구도가 형성됐다는 의미다.
진보 진영이 윤석열 당선인 지지 세력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인수위원장이 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로 상징되는 중도층의 지지도 윤 당선인 승리에 한몫했다. 여기에 보수 본류의 지지도 함께했으니, 윤 당선인 지지층은 상당한 다층 구조로 형성돼 있는 셈이다.
‘다양한’ 지지 세력은 긍정적으로 보면 ‘통합’의 기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칫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면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심지어 지지 세력 중 일부가 적으로 돌변할지도 모른다.
현재로서는 어떤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될지 알 수 없다.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윤석열 당선인이 모든 측면에서 주도권을 확실히 쥐고 본인 주도로 모든 사안을 해결하고 정책을 추진해나가야 한다.
윤석열 당선인이 지도력을 발휘해야 하는 분야는 또 있다. 국민의당과의 합당 문제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합당한다는 것은, 공천과 관련한 교통정리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은 정권 차원의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 합당 과정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공천 지분 문제가 공동 정권을 삐걱거리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안철수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미래를 위해 앞으로 있을 모든 선거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길 원할 것이다. 그렇기에 지방선거에서의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배신감’을 표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뿐 아니다. 윤석열 행정부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소수파 정권이라는 데 있다. 설상가상 역대 대선 역사상 가장 근소한 표차로 당선됐으니, 소수파 정권의 한계가 더욱 극명하게 노출될 수 있다.
윤석열 행정부가 이런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카드는 여론 지지를 받거나, 아니면 거대 ‘야당’으로부터 탄압받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줘 ‘피해자 이미지’를 얻는 것이다. 피해자 이미지를 얻으면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상당히 유리한 입장에서 선거를 치를 수 있다. 정권 초기 ‘허니문 시기’라는 강점을 갖고 있는 데다, ‘실패한 정권’의 주인공인 민주당으로부터 ‘탄압’까지 받고 있다는 인상을 국민이 갖게 되면, 선거는 하나 마나 한 게임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 여론 지지까지 합해지면 금상첨화다.
리얼미터가 3월 14일 발표한 여론조사(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8명을 대상으로 3월 10일과 11일 양일간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차기 대통령 1순위 국정 가치로 응답자의 33.5%가 ‘부정(不正)에 대한 공정한 처벌로서의 정의’를 꼽았다. 과거의 부정의와 불공정에 대한 단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음을 보여준다.
이 지점은 민주당 내분 사태와도 연결된다.
현재 민주당은 송영길 전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 비대위 구성을 두고 파열음을 내고 있다. 일단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n번방 추적단’ 활동가 출신 박지현, 두 사람이 공동으로 비대위원장을 맡는 형식의 비대위 체제가 출범했다. 하지만 아직도 당내에서는 ‘이재명 비대위원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재명 후보를 중심으로 비대위를 꾸리자는 주장은 일면 일리가 있다.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의 득표력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윤호중 원내대표가 전면에 나선 이유 중 하나는, 친문 주류가 이재명 후보의 당내 영향력 확대를 탐탁지 않아 하기 때문일 수 있다. 이재명 후보가 지방선거에서 일정 부분 기여할 경우 그 영향력이 8월 전당대회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그런 상황이 초래되면 ‘주류 교체’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다는 얘기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지난 3월 13일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특검 실시에 대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서 동의한다고 한 것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당선인도 ‘대장동 특검’에 대해 “국민들이 다 보시는데 부정부패 진상을 확실히 규명할 수 있는 어떤 조치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대장동 특검에 여야가 모두 동의한다고 볼 수 있다.
특검이 지방선거 이전에 활동에 들어가면, 수사 관련 이재명 후보 이름이 다시 오르내릴 수 있다. 당연히 이재명 후보 득표력이 지방선거에서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갈 수 있다. 이럴 경우 지방선거 기여를 통해 당권을 확보하고 대권에 다시 도전하겠다는 이재명 후보 계획은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대장동 특검은 진실 규명 차원에서도 필요하겠지만, 민주당 내부의 권력 구도, 더 나아가 차기 대권을 놓고 경쟁하는 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프랑스 속담에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 황혼 무렵, 해가 질 때 생기는 붉은빛과 밤이 막 시작할 때 생기는 어둠이 어우러진 상황에서는, 멀리 보이는 실루엣이 나를 공격할 수 있는 늑대인지, 아니면 그냥 개인지를 구분할 수 없게 되는데 이런 순간을 의미하는 속담이다. 현재 민주당과 국민의힘 그리고 윤석열 당선인과 이재명 전 지사가 처한 상황이 바로 ‘개와 늑대의 시간’인지 모른다.
신율 /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51호 (2022.03.23~2022.03.29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