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는 세밑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훈훈한 자선경기가 열렸다. 홍명보 장학재단 주최로 열린 경기로 2002년 월드컵 멤버가 중심이 된 사랑팀과 2006년 독일월드컵 출전이 유력한 젊은선수들로 구성된 희망팀이 맞붙은 2005 푸마 축구자선경기였다. 수익금 중 필요경비를 빼고 남은 돈을 소아암 어린이 환자와 소년소녀 가장을 돕는데 기부하는 자리였다. 올해로 3회째 대회. 지난 1·2회 경기를 치르면서 총 4억원의 기금을 모아 어린이들을 위해 썼으니 참으로 뜻깊은 경기였다. 사회적인 성숙도가 높아지면서 최근들어 스포츠 스타들의 이런 기부활동이 조금씩 느는 추세다. 높은 연봉을 받지만 팬들의 사랑이 없으면 존재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바로 프로선수들. 팬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사회로 환원시키는 기부활동이 요구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국내 축구 선수들 중에는 뚜렷하게 기부를 많이 하는 선수는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홍명보가 사비를 털어 홍명보 장학회를 만든 뒤 지난 2003년 제1회 자선경기를 열면서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상 유일하게 벌어지는 정기적인 기부활동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K리그에서 예전 서정원처럼 골을 넣었을 때 일정액을 적립해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쓰는 선수도 있었지만 일부선수 이외에 적극적이고 꾸준한 기부활동을 하는 축구선수는 거의 없었다.(물론 드러나지 않게 몰래 하는 선수들은 많이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일부 스타급 선수들은 국내외에서 큰 재앙이나 사고가 터질 때마다 기부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대구지하철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안정환 홍명보 등은 500만원에서 1000만원 정도를 성금으로 냈고, 몇년전 태풍으로 인한 재해가 발생했을 때 안정환은 의류 등 현물로 3천만원 상당의 물품을 제공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특정 단체가 마련한 연말열시 불우이웃돕기 자선 바자회, 또는 스폰서 주최로 열리는 자선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전부였을 만큼 국내 축구선수들의 기부는 미비한 수준이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적잖은 스타들이 기부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포르투갈 출신 루이스 피구(레알 마드리드)는 피구재단을 만들어 2003년 7월 유니세프 올스타팀과 피구재단 올스타팀간의 자선경기를 열었다. 피구는 수익금을 어려운 환경에서 운동하는 어린이들에게 전달했다. 지난 2004년 12월에는 스페인에서 유엔개발계획(UNDP)의 홍보대사인 지단과 호나우두가 세계적인 스타들을 모아 빈곤 퇴치를 위한 자선경기를 열었다. 지단, 호나우두 등 세계적인 스타 뿐만 아니라 자동차 경주의 황제 슈마허, 브라질의 명장 스콜라리 감독, 외계인 주심 콜리나 심판 등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지난 1963년 FIFA 올스타와 잉글랜드간 경기로 시작된 FIFA 주관 자선경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 FIFA는 전세계의 SOS 어린이마을을 돕는데 이 기금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선수 중에는 유상철 등이 출전한 적이 있다.
올들어서는 지난 2월 동남아를 강타한 쓰나미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스페인에서 자선축구경기가 열렸고 한국선수로서는 차두리 박지성이 출전한 바 있다.(차두리가 1골 1도움을 기록한 바로 그 경기다). 나이지리아 출신 공격수 은완코 카누도 자기 이름을 딴 자선경기를 종종 치른다. 어린 시절 심장병을 앓았던 카누는 '은완코 카누 심장재단'을 설립한 뒤 자선경기를 치러 벌어들인 수익금을 아프리카 지역에서 심장병 등 각종질병과 싸우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기부했다. 어릴 때 빈민가에서 축구를 시작한 뒤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한 브라질의 호나우두도 불우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때마다 기부에 동참하고 있다.
프로선수들은 세법상 자유직업소득자로 분류돼 있다. 그래서 근로소득자처럼 인적·특별공제를 받을 뿐만 아니라 약값·차량유지·장비구입 등 경비를 모두 필요 경비로 인정받아 세금을 공제받고 있다. 프로선수들이 다른 나라 프로선수들(일본·영국·네덜란드 등은 프로선수의 세율이 40% 안팎이다)이나 우리나라 수많은 근로소득자에 비해 수익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세금을 내고 있는 것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축구선수들이 프로농구·프로야구·골프 등 다른 스포츠 스타들에 비해 기부를 적게 한다고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외국 선수들은 많은 기부하는데 왜 우리나라 선수들은 기부에 인색한가라며 압박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프로는 돈이 가장 큰 잣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프로선수들은 모든 인터뷰에서 항상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팬들의 성원에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응원이 없었다면 저는 재기하지 못했을겁니다." "팬 여러분 너무 고맙습니다"라고 말이다. 즉, 팬들로부터 받는 따뜻하고 끊임없는 사랑이 돈 못지 않게 프로선수의 생명줄이라뜻이다.
기부는 돈을 많이 번다고 할 수 있는 행위가 절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이다. 그저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프로선수로서 그 사랑을 조금이나마 사회로 돌려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이 사회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리고 자신의 선행이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프로선수들이 조금씩이나마 기부문화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하는 생각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홍명보 장학재단이 주최한 자선경기는 단순한 채리티 매치 이상의 의미가 있는 셈이다. 내가 직접 자선경기를 주관하거나 운영한 것도 아니지만 일개 축구기자로서 이번 대회를 준비하고 진행해준 사람들, 뭉칫돈을 내준 협찬사들, 영하 10도를 육박하는 날씨 속에 경기장을 찾아준 열혈팬들, 경기장을 찾지 못했지만 예매를 통해 입장권을 구입해준 팬들, 자신의 개인적인 생활을 뒤로 하고 추운 날씨에도 밝은 표정으로 열심히 뛰어준 선수들과 심판들,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기사를 작성하고 사진을 찍은 기자들 등 모두에게 그저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