出旅通信 12
백 승 돈
< 餘話 數題 >
<혹독한 트래킹>
귀국 일자에 아직 여유가 있어서 가보지 않은 안나푸르나 트래킹 코스 중 당일치기로 다녀올 만한 곳을 소개하라고 하니 해리가 도면을 그려준다.
숙소에서 '제로 케이엠'에 가서 시외버스를 타고 두 시간쯤 가서 '칸대'에서 내려 한시간쯤 걸어 올라가면 '오 켐"이 나오는데 그곳이 트래커 들이 즐겨 모이는 곳이라고 한다.
거기에는 한식당도 있으니 한국 음식을 먹고, 한시간쯤 산으로 더 올라가면 담 프스가 나오는데 거기서 휴식하고 더 걸으면 패디까지 두시간 반이 걸린다고 한다.
패디 버스 스테이션에서 포카라 행 버스가 있으니 그걸 타고 돌아오면 된다는 것이다.
걷는 시간이 얼추 4시간 반쯤 되니 해 볼만 하다고 여겨 오케이 했다.
여기서 현지 용어를 빨리 캣치해야 한다. 제로 케이 엠은 시외버스터미널 중 한 곳인데 그 이름이 '0 km'라는 곳이다. 오캠 은 오스트랄리아 캠프로써 이름이 나 있는 트래커 집합소다. 0km 까지는 해리의 오토바이로 같이 오고 시외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자주 오고 가지만 내가 타야 하는 버스는 오지 않는 모양이다. 버스 운행이 시간표가 있어서 그대로 하는 게 아니어서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부근에 제복을 입은 경찰도 있기에 바쁠 테니 저 친구에게나를 맡기고 가라고 해도 가지 않고 기다렸다가 나를 태워 보내줬다.
그 차는 칸대가 종점이어서 버스에서 내려 오 켐을 찾아가는데 계속 오르막 계단길이다. 안내 표지 판도 있어서 잘 찾아 가다가 표지판이 없는 갈림길에서 헛걸음도 좀 했지만 한시간 만에 오캠을 찾아갔다. 해발 2,060m 고지 널찍한 평지에 리조트를 잘 조정해 놓았는데 트래커들이 많이 운집해 있다.
해리는 한국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으라고 했지만 나는 여행하면서 굳이 어쭙잖은 한식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네팔의 가장 흔한 대중 음식이 탈리와 타칼리 인데 그게 나는 구분이 잘 안 되는 비슷한 음식이다. 어쨌든 여러 가지 찌개같은 것과 수프와 채소 향신료를 곁드려 밥을 주는데 그것들을 훌훌 비벼서 현지인은 손가락으로 집어 먹는다. 그걸 다 넣고 비비면 짜서 먹기 힘들기에 나는 밥 따로 부식 따로 먹는다. 점심값에 밀크 커피 한잔 값이 6~7백 루피 인데 포카라에서는 400루피면 된다.
식사 후 담 프스 까지는 길 찾기가 쉬워서 한시간 만에 도착했다. 이제 패디 버스 스테이션으로 가야 하는데 해 리가 2시간 반이 걸린다고 했듯이 꽤 먼거리다.
길은 산자락을 휘감아 뱅뱅 돌며 내려가는데 버스는 안 다녀도 오 토바이나 찦차 등이 다닐 수 있게 길을 닦아 놓은 것이다. 홀몸으로 걷는데 궂이 길을 따라 빙빙 돌아가야 하는 가, 산등성을 따라 직방으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을 것도 같아 村老에게 물으니 손가락질 하며 가 보라고 한다.
좁다란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순조롭게 내려갔는데 길의 흔적이 점점 희미해 진다. 그래도 되 돌아 설 수는 없어 무조건 더 내려가다 보니 경사는 점점 급해져 지팡이를 짚었지만 걷기가 힘들어 진다. 그냥 주저앉아 미끄럼 타듯 미끄러져 내리가고, 앉은방이 걸음으로 내려가기도 하고, 도저히 내려갈 수 없는 절벽을 만나면 다시 우회하고...그렇게 한참을 헤매고 나서 까마득히 버스길이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다달아 이젠 도리 없이 거기까지 내려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팡이에 의지해 몸을 가누고 주저앉아 미끄럼 도 타고, 그렇게 길로 접근해 가다가 계곡을 만났다. 골짜구니 밑으로 내려가는 것도 깊게 파인 절벽을 암벽 타듯해 간신히 내려섰고, 아무렇게나 널리고 쌓인 바윗돌 사이를 헤짚고 내려와 도로까지 접근했지만 도로에 내려서는 것도
육중한 콩크릿 구조물로 옹벽이 처져 그것을 타고 내려오는 것도 애를 먹었다.
그렇게 40~50분 동안 혹독한 트래킹을 한 사례는 아마 前無 이고 後無일 것이다.
길에서 차를 기다리니 운 좋게도 포카라 행 버스가 금방 왔다. 이 버스는 내가 가려던 패디 버스 스테이션에서 출발해 한참을 달려와 나와 만난 것이다. 갈 적에 버스 요금이 160루피였었는데 이번엔 100루피 만 받는다. 그러니 내가 지름길로 내려온 것은 틀림없다.
<안녕! 페와 湖>
포카라 체류 중 페와 호반을 많이 거닐었 는데 언제 가도 실증이 나지 않는 정다운 산책로다. 잔잔한 호수에 청명한 하늘, 멀리 둘러쳐져 있는 눈 덮힌 히말라야 산봉우리를 바라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호수에서는 뱃놀이도 하는데 몇 시간씩 배를 랜트하는 것도 있지만 나는 호수에 떠 있는 작은 섬 엘 다녀오는 가장 간단한 뱃놀이를 했다. 섬에는 힌두 사원이 있어서 참배객 들이 붐빈다. 왕복 115루피에 구명조끼도 빌려준다. 칠인승 소형 보트에 타고 10분도 채 안 걸려 섬에 닿으면 서비스로 섬을 한 바퀴 돌아 내려준다.
의례 신발 벗고 들어가 예배하는 신전은 안 들어가고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다 돌아왔다.
네팔의 시민의식수준이 문제 겠지만 청결도시의 이미지가 있다는 포카라의 거리에도 어디 가나 쓰레기가 널려 있다.
아름다운 페와 호반 산책로도 예외가 아니다.
쓰레기통이 드문드문 있지만 제 때 수거하지 않는지 쓰레기가 차고 넘친다. 길에 쓰레기가 너저분 하니 누구나 그냥 마구 버리는데 꺼리낌이 없다.
한국 생활도 해본 해 리에게 말을 해 봤다.페와 호반의 고급 레스토랑 카페 등을 운영하는 상인들이 상인회를 조직해서 환경정화 운동을 펼치고 인건비도 싸니 알바를 쓰던가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쓰레기 줍기를 하면 좋지 않겠는가 하니 해리도 동조는 하면서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투로 부정적이다.
< 가성비 높은 치트완 싸파리 투어>
네팔의 치트완 국립공원은 네팔 여행자들이 찾아가는 여행지 중 우선순위가 높은곳이다.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되었고, 야생을 생생하게 보존한곳으로 평가받는다.
면적이 957평방km라니 여의도 3평방km의 300배가 넘는다.
나도 그곳을 가볼 셈인데 내 여행 방식인 개별적 자유여행으로는 구경과 경험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한다. 내부의 모든 투어 프로그램은 여행사를 통해 대행 체제로 운용되기 때문이다.
포카라 시내 여행사 몇 곳을 들러 알아보니 2박 3일 프로그램 참가비가 최저 100$에서 많게는 175$짜리도 있다.
그 가격 차이는 전적으로 제공하는 숙박시설과 식사의 질에 따른 것인데, 해리와 상의하니 신용할 만한 곳의 150불짜리를 소개해주어서 거기다가 신청했다.
프로그램 마치고는 포카라나 카투만두 까지 데려다 준다는 조건 이어서 어차피 출국 일정에 맞춰 카트만두로 가야 하니 그렇게 날짜를 맞췄다.
150$로 커버되는 서비스는 포카라에서 치트완 까지 관광버스 탑승, 호텔 픽업, 2박 3일 투어 기간 중 호텔과 식사 제공, 가이드 및 공원 입장료, 그리고 치트완에서 카트만두 까지의 차량제공 등이다. 그야말로 여행 기간 중 지갑을 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새벽에 포카라 시내 관광버스터미널에서 치트완행 버스를 타는데 터미널까지는 역시 해리가 안내해, 타야 하는 버스는 물론 지정 좌석까지 않쳐주었다.
6시간 만에 지트완 터미널에서 내리니 지 정 호텔에서 픽업 차자 대기하고 있어서 쉽게 호텔 투숙을 했다. 호텔방도 삼성급에는 못 미치지만 우리의 장급 수준은 되고, 음식도 네 팔 와서 평소 먹던것 보다는 훨씬 다양하고 고급스럽다.
2박 3일 정글 트래킹과 사파리 투어 등 프로그램은 다양하고 성의껏 서비스한다. 공원내에 흐르는 라 파티 강을 카누같은 좁고 긴 목선을 타고 1시간쯤 강을 누비며 여러 종류의 조류를 구경했고, 멀리서 나마 악어 도 봤다.
아침나절 정글을 2시간 정도 도보 탐사하면서 사슴의 무리, 흔한 원숭이 따위를 봤을 뿐인데 걷는데 이력이 난 나는 숲속을 걷는것이 즐거웠다.
가이드가 말로는 야생 코끼리나 코뿔소를 만나면 어떻게 하고, 혹시 곰이나 호랑이 표범 등 맹수를 만나는 어떻게 하라고 겁을 주었지만 그런 건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주의사항일 뿐 그런 큰 동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긴 가이드 2명이 앞뒤로 서서, 그 조민아비가 좋아하는 죽창을 들고 경호 하니 겁낼 것도 없다.
코끼리 조련소에도 들러봤는데 하나같이 다리를 쇠사슬로 묶여 기둥에 매여 있고, 새끼도 그렇게 해 데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12인승 다찌 오픈카를 타고 본격 싸파리 투어에 나섰다. 공원 내에 이리 저리 닦아 놓은 찾길로 차 엔진 소리와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니 사람을 싫어하거나 경계하는 동물이 나타날 것 같지 않다. 너 덧시간을 차 타고 쏘다녔지만 만나본 것은 야생 코끼리, 코뿔소, 사슴떼, 흑곰, 원숭이, 공작새 등이 전부다.
만일 내가 내 방식대로 개별 자유여행을 왔더라는 국립공원 밖의 숙소에 머물면서 라파티 강뚝에 앉아 석양에 맥주나 마시며, 멀리 공원 정글을 바라다보는 게 고작이었을 듯 해 미화 150$로 이토록 알찬 여행을 한 것이 새삼 가성비가 높았음을 실감하게 된다.
< 네팔 도로공사 유감 >
장거리 버스를 타고 도로를 달려보면 도처에서 대대적으로 도로 공사를 벌리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도로는 무자비하게 파 헤쳐 졌고 산더미 같은 흙더미가 여기저기 쌓여 있고, 여러가지 토목공사 자재 따위도 무질서하게 널려있다.도로변 상가나 주택은 물론 바나나따위 농작물 등도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다.
도로 확장과 포장 공사를 하는 모양이긴 하지만 공사 진행에 역동성이 느껴 지지 않는다. 가는 곳마다 그렇게 다 파헤쳐 놨으니 그 공사는 언제 마무리될 것인지? 내가 걱정 할 일은 아니지만 한심스러워 보인다.
문득 우리의 경부고속도로의 건설 野 史가 떠오른다. 야당 지도자들이 길에 드러누워 제동을 걸었다지만 군 출신 '군 발이' 들이 워커 발로 쪼인트 까고, "까라면 까는 시늉이라도 하는" 방식으로 다그쳤기에 착공 3년 만에 완공했다고 하지 않던가!
당시 건설부 장관은 이한림이었다. 그는 516 당시 전방 제일 야 전군사령관이었고 박정희는 그보다 전투 서열이 낮은 후방 제 2군 부사령관이었다. 거사 벽두에 이한림은 박정희의 거사를 반대하는 입장을 밝혀 혁명군 영관 급 장교에게 원주에서 서울로 압송되는 수모를 겪었고, 미국으로 추방 되었던 인물이다.
나중에 박정희의 부름을 받고 건설부 장관이 되어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총 지휘관이 된 것이다.
이 장관은 실 국장급 부하를 대동하고 공사 현장을 확인 방문해서는 진척 사항이 만족스럽지 못 할 경우 대동했던 부하를 현장에 내려놓고 최단 시일 내에 일 다 마치고 돌아와서 보고하라고 일갈 했다는 일화도 있다.
워커발 군사 문화를 폄하 하지만 개발 연대에 그런 박력과 카리스마가 개발을 앞당긴 것은 사실이다.
네팔의 그루카 부대는 용맹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국제 용병 그룹이다.
그런 용맹성을 산업개발부문에 도입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