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세상에서 제일 큰복이 무엇이냐?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해서 죄 용서받고 죽은 영적인 생명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3가지 신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바뀝니다.
마귀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뀝니다.
지옥 시민에서 천국 시민으로 바뀝니다.
신분의 변화와 함께 많은 특권이 주어졌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창조주 하나님과 독대하여 기도할 수 있는 특권입니다.
이 특권을 사용하느냐? 사용하지 않느냐?에 따라 이 땅에서의 삶이 달라집니다.
그러면 이 특권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오늘이 주기도문에 대한 말씀 50번째입니다.
두 달반을 주기도문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제자입니까?”라는 책을 쓴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이 “우리가 드리는 기도중에 (제 기억으로는) 85%는 천국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는 말을 했습니다.
언 듯 들으면 “참 교만한 분이네”하고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르티즈 목사님의 강조하는 요지는 기도하는 사람은 최소한 자기가 드리는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는지 안들으시는 지는 알고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의도에서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 기도문 말씀을 나누기 시작할 때 저의 소원은 우리 DFI Korea 회원 모두가 주님이 들으시는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기도를 드리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원이 이루어 지기를 기도하며 오늘 말씀을 나눕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느냐?
첫째는 나라가 하나님께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권세가 하나님께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영광이 하나님께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3번째 주제 “영광”에 대한 말씀입니다.
구약에서 “영광”은 히브리어 “카보드”를 번역한 말입니다.
“카보드”란 “무겁다,” “공경하다,” “영광을 돌리다”의 의미입니다.
십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할 때 “공경하라”는 “카보드”를 번역한 것입니다.
시편 66:2, 78:9에서 “그 이름의 영광”에서 영광은 “카보드“를 번역한 말입니다.
신약에서 “영광”으로 번역된 헬라어 “doksa”는 “명예와 존귀와 찬양을 받으실 대상으로 생각하다”는 의미입니다. .
그래서 모든 “스포트 라이트 (spot light)”를 받는 것 즉 공연장에서 관중의 기립 박수를 받는 것을 “영광”이라고 합니다.
만물은 각자의 영광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전 15:40, 41)고 말씀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각자 나름대로의 영광을 가지고 있으며 그 영광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피조물중에서 최고의 영광은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모든 피조물의 영광은 서로 다르지만 그 영광을 주신 분은 한 분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19:1ff)고 노래하고 있고 성경은 “모든 피조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롬 1:19ff)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가장 정상적인 것은 모든 피조물들이 자신들이 영광을 받을 때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께서 주신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자신이 취하게 되면 그것은 도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1:21-23)는 말씀처럼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사람이나 짐승 그리고 뱀 즉 용과 같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들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상숭배하는 종교들은 각기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들을 만들어 놓고 그 우상들에게 경배하며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가 되면서 우상도 진화하여 이제는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는 시대까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도둑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도둑질을 끝내야 합니다.
특히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 하는 일을 끝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한 사람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두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헤롯이라고 하는 왕이 있었습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 사도를 참수하고 베드로를 공개 처형하기 위해 감옥에 가두었던 사람입니다.
이 헤롯이 두로와 시돈에 가서 백성들을 모아 놓고 연설을 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행12:22)고 아부를 합니다.
그런데 그 헤롯이 며칠 후 갑자기 죽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4:8이하를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앉은 뱅이를 일으켜 세웁니다.
그러자 그것을 본 백성들이 놀라서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헤르메스라고 하며 제우스 신당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러자 두 사도가 이를 말라고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헤롯과 바울 이야기는 사실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안에서는 날마다 헤롯의 영과 바울의 영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타락한 육신의 소욕은 헤롯의 영을 사랑하고 성령의 소욕은 바울의 영을 사랑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이 싸움을 싸울 것입니다.
이 싸움에서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바울의 영으로 헤롯의 영을 누르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승리하는 하루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