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자취” (영화 시(Poetry)를 보고. 이창동 감독. 윤정희 주연)
이창동 감독의 영화<시>의 첫 장면과 끝 장면은 ‘흐르는 강물’로 문을 열고 닫는다. 시간은 흐르고, 강물은 흐르고, 인생은 흐르지만 영화는 지울 수 없는 삶의 무언가가 있음을 말한다. 주인공 미자는 손자와 홀로 사는 할머니로 자신만의 독특한 멋을 추구하며 사는 인물이다. 손자와 단둘이 사는 그녀의 가정은 일반적인 사회에서의 소외된 계층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녀의 인생의 노년기에 ‘시’라는 문학이 찾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시에 담아 보려고 안간힘을 쏟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안타깝게 그녀의 기억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영화 속의 주인공은 알츠하이머병으로 기억이 점점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아이러니 하게도 삶의 기억이 쉽게 지워지지 않다는 것을 동시에 말해주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시의 자취’를 발견하였다.
잠언을 보면 “공중에 날아다니는 독수리의 자취와 반석위로 기어 다니는 뱀의 자취와 바다로 지나다는 배의 자취와 남자가 여자와 함께 자취(잠30:19)”가 나온다. 인생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 흘려보내어 기억과 감정 속에서 지워지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우리 안에 남겨져 있는 수많은 삶의 자취들을 부인 할 수 없다.
영화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주인공 미자의 손자를 비롯한 5명의 남학생들은 같은 학교의 한 명의 여학생 성폭행 한다. 이 사건으로 이 여학생은 죽음을 택하고 5명의 가해자 부모들은 이 사건을 지우려고 애를 쓴다. 가해자 부모들은 ‘돈’이라는 하나의 경제적 단위로 그 끔직한 사건을 지우려 하지만 사실상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이 사건을 지우기 위하여 학교, 언론, 피해자의 가정까지 꼼꼼하게 움직인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단락 된 거 같아 보이지만, 영화는 지우려는 이 사건이 주인공 미자의 삶에, 외손자의 기억에, 피해자 부모들의 양심에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계속해서 영화는 버스가 지나간 자리, 주인공 미자가 돌보는 할아버지의 몸을 씻기는 장면, 시를 사랑하는 모임에서의 다양한 사람들의 과거의 삶의 자리를 보여주면서 인생은 지나가고 지나간다는 것을 확인 시켜준다. 하지만 자취들은 그대로 남는다. 떠나간 버스는 또 다시 그 자리에 돌아오고, 몸을 씻는 할아버지는 또 다시 몸을 씻고, 사람들은 인생에서 과거를 끊임없이 회상하는 등 영화는 ‘시간이 흐르고 꽃도 시드는’ 지나감을 말하지만 그 지나간 자리에는 ‘세상의 자취’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는 것을 동시에 말한다.
주인공 미자에게 ‘시’는 무엇일까? 좋은 것을 표현하는 방법일까? 아니면 어두움을 쫓아낼 수 있는 도구인가? 또는 본인도 모르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사라져 버리는 기억일까?
영화는 내용상 끝이 나지만 관객들은 기억한다. 영화 속 미자의 기억도 약해지지만 삶은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신앙도 그런 거 같다.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알게 모르게 하나님의 일하심이 우리의 삶에 자취로 남는다. 그 자취를 발견하는 것이 신앙이며,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 참 된 그리스도인의 삶 같다. 야곱이 밤새 하나님과 씨름하여 ‘하나님과 대면하여’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는 자취가 남은 것처럼, 삶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의 흔적이 우리의 삶에 있음을 확신한다. 영화 <시>는 삶의 자취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그리고 시를 쓰기 위해서는 영화는 관찰하라고 한다. 이에 필자는 한 명의 신앙인으로 오늘의 “하나님”을 관찰하려고 한다. 그분의 자취를...
첫댓글 와 본인만의 독특한 관점과 감성으로 영화를 새롭게 보신거 같아요. 너무 좋네요.ㅎ
형님 감사해요^^ ㅎ 형님의 탁월한 "자작 시"가 생각나네요^^
글이 인상깊었습니다. 마음에 자취로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역시 매번 모임 때 마다 작은꽃님의 "엄청난 글"을 통하여, 많은 것을 남몰래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