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진의 촬영지점을 찾기위하여 다시 카메라를챙겨 도봉산으로갔다.
여러 도움말을 들어보고자 우선 할머니가개를 들렀다.
밀집해있는 먹거리와 등산용품점등 여러점포중
가장 유서깊으나 가장 초라해뵈는 할머니가개
6~70년대 산꾼들은 모두 거쳐간곳.
국립공원지정후 현재의 자리로옮겨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막내아들이 주인이다.
아직도 벽면한쪽을 채우고있는 산꾼들 연락함과 칠판
핸드폰은 상상도 할수없던시절의 유산이다
선인터줏대감 요델박스도 보이고 경동고박스도 보이고 68년도 메모노트도 보인다.
도봉산에서 출생하여 60여년을 지켜본 할머니가개 김사장으로부터 많은 궁금증을 풀었다.
지금은 국공차지기된 옛 도봉산장자리
이미 5~60년대 년말년시면 일간지에 영업광고를 올렸다.
주인은 개성사람이었다는 얘기.
대원군의 생모 조대비의 별장이었으며
규모가 101칸으로 엄청컷는데 어느날 슬며시 사찰로 둔갑했다는 얘기.
오른쪽 보호수 느티나무는 그역사를 더 잘알고있으리라..
일전에도 언급했던 쌍줄기 약수터 상단의 고급요정은
그이름이 운호수캬바레 였다는것.
당시 중앙정보부 힘깨나 쓰던사람들을 업고 운영했다는것
사진의 녹야선원간판위쪽 구릉쯤이었다.
사찰과 직선거리 200여미터인데 참으로 대단한...에휴~~
스캔한 사진을 들여다보며 몇군데 찍어봤으나
숲이 우거져 원경이 보이지않아 도저히 찾아내기어려웠다
원본사진의 교량근처의 바위를찾아보려했으나 워낙 훼손변형이 심하여 그것도 쉽지않았다.
근처에 계곡을 막아 한때 케블카수영장이라 불렀는데
바로 사진의 콘크리트 기초공사흔적이 60년대말에 도봉산에
케블카를 설치하려다 무산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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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2차답사를 아쉬운마음으로 마칩니다.
더러 관심있으신분들의 궁금증을 푸는데 조그만도움이라도 된다면 보람입니다.
지금 찬찬히 두사진을 비교해보니
원본사진 교량아래 박창영이라 글자있는 바위와 그뒤 버섯형태의 바위가
이번찍은 사진 교량우측아래에 바위와 비슷하네요
다시한번 찾아가 면밀히 살펴볼까합니다.
첫댓글 1) 도봉산 갈때 기회가 닿을때마다, 나름 '탐^^을 내곤 했는데....
'언젠가 그어느날' 할머니 가게는 그대로 또는 재현해서
국립산악박물관으로 가서 한 공간을 차지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일본에 있는 라면박물관의 지하에는 1960년대 일본 거리와 각 도시의 라면가게를 재현해서 영업을 한다고 합니다. 속초산악박물관에서도 아이디어를 채택해 봄직도...~~~
2) 도봉산장에 관한 이야기들도 역시 도봉산의 한 포인트로 '구술'되면 좋겠습니다..
3) 조대비 별장이었던 광륜사.... 101칸은 좀 과장된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도봉문화원에서 발간한 도봉산 옛 이야기 책자를 찾고 있는데, 아직ㅜㅜ. 101칸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납니다.
3)운호수카바레....'운호수'라는 이름이 낯서네요.
언젠가 숲속에 가서 그때의 흔적을 찾아, 사금파리라도 하나 발견할까 합니다...~
이름을 안 이상, 저도 한걸음 더 운호수 카바레로 다가가게 됩니다.
언젠가 텍스트나 사진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5) 케블카 수영장이 무슨 뜻이었나 싶었는데..그런 이야기였군요....~~~~
도봉산이 하나의 '공간'이 아니라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산아래동네의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선인봉 초등사'로서는 부족하죠.
제게도 실마리를 끄집어 내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십 수백만의 도봉산이 거기를 거쳐간 사람마다의 머릿속에 크게 또는 적게존재할것입니다.
제머리속의 도봉산도 그중 하나이겠죠.. 사랑하는 도봉산,
그래서 안타깝고 가슴아픈 도봉산 입니다.
산을 보는 관점이 좀 더 바뀌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빠지기 쉬운 편견인데요.
'백년전 문화유산과 지금의 환경윤리'를 소중히 여기는 잣대는 중요한데요.
좀 위험한 논리일 수도 있습니다.
양쪽에서 배제된 60년대 이후 도봉산을 도외시 할 수 있습니다.
한국산서회에서 진행하는 이른바 '인문산행'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주최하는 측은 당연히 의도하지 않지만, 참석자들은 그 어떤 오류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백년전 시대의 유적과 문화도 물론 중요하지만,
등산붐이 싹트기 시작한 60년대 이후의 도봉산, 그때의 문화, 결국 우리네 삶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60503_0014061737&cID=10801&pID=10800
를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우이동 과거가 어떠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유흥문화이건, 환경이건 그 어떤 논리에서 보아도 정비되고, 사라져야 할 그 무엇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모자이크-등산박물관
었 !! 이것은 썩유쾌하지않은 답글이군요.
사람의관점은 각각 다른것이 당연한것 아닐까요 ....
60년가까이 고착된 산을보는 저의관점이 이제와 바뀌기도 어려울듯하고.....
그냥 서로다름을 인정하는것이 자연스러울듯합니다.^^
@스파이더 스파이더님...오해이십니다...
제가 첫줄에 '산을 보는 관점이 좀 더 바뀌면 좋겠습니다.'라고 쓴 건,
이어지는 글들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스파이더님께 한 말씀이 아니라, 세상사람들과 등산계에 한 말입니다.
문화유산과 현대의 환경윤리 사이에 끼어서 소홀히 되는,
그러니까 '60년대 등산이 막 시작될 무렵의 도봉산'도 소중히 여겼으면 하는 바램을 담은 글입니다.
예를들어 북한산성쪽 상가가 완벽하게 정리되어 사라진걸 애닯아 하는 글입니다.
문화유산도 아닌데다 환경오염유발인자로만 파악되어 파괴되어 사라진 걸 말이죠....
''''''
@스파이더 이어지는 댓글의 링크글도 우이동도 유흥문화와 환경논리로 재개발되어야 한다는 세상의 논리를 소개하는 의도였습니다.
평소 제 생각이 어떤지 누구보다도 잘 아시리라 믿어 앞뒤없이 오해를 살 경솔한 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제 글이 오해를 불러 일으키게 되어 죄송합니다....
오해가 풀리시길 바라겠습니다...
@모자이크-등산박물관 미안합니다
나이들면 삐치기를 잘한다는데..내가그만.
오해했네요 글을읽으며 이분은 나와관점이 다르니 더 말섞을필요없구나
생각해서 탈퇴했었구요
다음은 산쟁이특유의 고집이랄까..
일면식도 없지만 산으로는 내가 한참선배일텐데
어따대구 관점을바꾸라고 ?? 이런 건방진..이랬었네요
나의 조급함과 경솔함을 사과드리며 더욱 열심히 연구계속하세요
감사합니다.
@스파이더 다시 돌아오셔서 감사합니다.
쥔장 댓글이 자칫 오해할 수 있게 앞뒤를 자르고 쓰여진 감이 없지 않습니다만, 천편일률적인 흐름보다는 이럼 점으로도 보자하는 뜻이니 선배님의 '도봉산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만큼 수많은 도봉산이 있다'는 말씀과 한편으로는 일맥상통하네요.
계속 선배님 좋은 글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스파이더 어제오늘 내내 마음이 갈피가 안잡혔습니다...
마치^^ 연인 사이에 벌어지는 오래전 추억처럼 말이죠....
오해하기 쉬운 글쓰기에 대한 자성을 하게 합니다.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는데, 이렇게 선뜻 이해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등산박물관도 뭐랄까 두둑해지고 든든해졌고요
아마 여기 오시는 많은(?) 분들도 안도를 하실거라 생각합니다.
@여름날 형님...여러모로...고맙습니다.
저 역시 스파이더님의 애정어린 관심과 좋은 글을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합니다..~
서로 사과하는 선배님과 아우님... 산을 매개로 했기에 흐믓합니다.
운호수 카바레는 여러 방면으로 검색해도.. 자료가 이것밖에 없네요. 68년 공무원 기강 확립차 출입금지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