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목단상)
나의 영적 상태는 풍년인가, 흉년인가?
애굽 땅에 임했던 7년의 풍년과 7년의 흉년 이야기를 보며, 가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지금 나의 영적 상태는 풍년의 때인가, 아니면 흉년의 때인가?”
성경에서 풍년과 흉년은 단순히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영적인 신호이기도 했습니다. 곡간이 가득 찼다고 해서 풍년이 아니며, 가진 것이 적다고 해서 반드시 흉년인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살아 있고 은혜의 샘이 마르지 않는다면 환경과 전혀 상관없이 언제나 풍년입니다. 반대로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으나 마음이 굳어 있고, 기도는 하지만 영혼이 메말라 있다면 그것은 영적 흉년의 징후일 수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아모스 8장 11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흉년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예배를 드려도 감동이 없고, 찬양을 불러도 가슴이 울리지 않으며, 먹고, 마시고, 노는 일에 비그리스도인들과 동일하다면 이미 깊은 흉년, 기갈 속에 있는 것입니다.
사실 삶을 돌아보면 풍년보다 흉년의 때가 더 길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성경은 흉년의 시간을 결코 저주로만 규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흉년이라는 광야를 통해 우리를 더 깊은 은혜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창세기 요셉의 시대에도, 열왕기 엘리야의 시대에도 흉년은 찾아왔으나 이때의 사람들은 그 결핍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다시 찾기 시작했습니다. 풍년의 때에는 내 힘으로 사는 줄 착각하지만, 흉년의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흉년은 역설적으로 ‘은혜의 시작’이 됩니다.
나의 영적 상태를 조용히 점검해 봅니다. ‘지금 나는 말씀에 배고파하고 있는가?’ ‘기도의 자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는가?’ ‘하나님 앞에서 다시 회복되기를 원하는 거룩한 갈망이 있는가?’ 만약 이 세 가지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나에겐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배고픔을 느낀다는 것은 곧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풍년이란 문제가 하나도 없는 평탄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놓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도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답답한 현실 속에서도 기도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 그가 바로 영적인 풍년을 사는 사람입니다.
혹시 지금 영혼의 흉년을 지나고 계신가요?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농부는 흉년이 왔다고 해서 논과 밭을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 역시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때가 되면 다시 은혜의 단비를 내리시고, 메마른 땅에서 반드시 새싹이 돋게 하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메마른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않는 인내입니다.
세상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예배의 자리, 기도의 자리를 선택할 때 우리 영혼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머무는 사람은 결국 다시 찾아올 풍성한 풍년의 열매를 수확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나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의 영혼은 지금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느냐?”
섬김이 박희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