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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를 다녀왔습니다. 2017.5.30~6.1 대마도- 우리나라 거제에서 49.5km,부산에서 50km 밖에 안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엄연히 일본 땅이고 해외여권이 필요한 곳이다. 항공편이 없어 배편으로 가야하니 부산 에서 출발하는 배가 아침에만 있어 역시 불편하다. 상과대학 오상회 동문들과 만 9년전에 2박3일로 다녀온 기억이 생생한데, 이번에 또 고교모임단체에서 가게 되었다. 한번쯤은 가볼만하다고 추천하면서- 왜 그대는 두번이나 가나? 하면 할말이 없지만 굳이 말한다면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계절적으로 조금 늦은 시기라 할 수 있는 5월30일부터 부산포함 2박3일 여정이다. 부산서 출발하기 때문에 이른 꼭두새벽부터 기차 타고 가기가 어려워 단체로 버스여행을 하기로 했다. 첫날은 부산여행,2,3일차는 대마도 여행후, 귀경편도 버스로 -- 20명과 여행사(발해투어) 안내자 한사람 포함 21명을 태운 버스는 서울시 9시 출발, 도중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3시경에 부산에 도착하였다. 부산은 태종대,송도,자갈치시장,남포동에서 호텔 투숙하는 첫날 일정이다. 태종대 유람선을 타고 오랫만에 태종대 땅을 밟는다. 아마도 30년은 된듯하다. 해운대나 송도도 몇년전에 다녀온 기억이 있는데 태종대 기억은 가물가물거린다. 태종대는 높이 250m이며 영도 남단의 해안으로 삼면이 첨예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해식애로서 1969년 1월에 관광지로 지정되 었다. 신라시대 태종 무열왕이 전국의 명승지를 다니던 중 이곳 영도의 절경에 도취되어 쉬어갔다고 하여 태종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 모양의 기암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수령이 오래된 소나무숲이 푸른 바닷물과 잘 조화되어 해금강을 연상하게 한다. 태종대에 이르는 중턱에는 4.3㎞의 순환관광도로가 나 있으며, 이 도로를 따라 약 2㎞쯤 가면 절벽 위에 전망대가 있다. 이곳은 자살바위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날씨가 맑은 날에는 오륙도와 쓰시마 섬[對馬島]이 보인다. 태종대 보는 방법은 걸어면서 가는 길,다누비열차로-- 그리고 유람선을 타고가며 보는 방법이 있다. 예전엔 걸으면서 본 기억이 나는데-- 이번은 유람선을 타기로 했다. 유람선을 타러 급한 계단길을 내려간다. "빨리빨리 내배 타이소" 하던 부산 사투리의 옛선장의 농담이 생각나서 혼자 웃음을 지어본다. 행복한 웃음,즐거운 마음으로 어린애 처럼 좋아하며 유람선에 갈매기밥(새우깡)을 사들고 자리를 잡는다. 자살바위,병풍바위·신선대·생도(주전자섬)를 지나 오륙도 채 못미쳐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35분. 갈매기들이 배를 따라 온다. 그런데 강화도 갈매기들은 손위에 얹어놓은 갈매기밥 까지 날쌔게 집어가는데 어찌된 건지--배가 부른건지 버리는 것이 더 많다. 입이 심심하니 새우깡은 갈매기밥에서 사람 간식으로 변한다. 갈매기밥을 먹으면 새처럼 날라다녔으면 좋겠다고-- 송도해수욕장 다음 행선지인 송도해수욕장으로- 부산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해수욕장이다. 1960년대까지는 주로 해수욕장으로 이용되었으며, 해수욕장 서쪽 산 언덕과 거북섬을 잇는 길이 420m의 케이블카와 송도공원과 거 북섬 사이에 구름다리가 설치되면서 부산시민의 해안 위락시설로서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1970년대 이후, 해안주변의 급속한 개발과 그에 따른 바닷물의 오염과 모래유실로 인하여 해수욕장으로서의 기능을 점차 상실하고, 휴게소·놀이터·유람선·숙박시설 등이 갖추어진 유원지로서의 기능만을 가지게 되었다. 거북섬을 지나 구름다리 위에서 사방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한다. 하늘위로 케이블카가 빈차로 다니고 있었다. 6월부터 운행을 앞두고 시운전 중이란다. 다리위 유리 아래로 보이는 바다물에 순간적으로 혹 발이 빠지지는 않을까 아찔해지기도 한다. 밤이면 네온등으로 불야성을 이루는 모습이 굉장한데 몇년전 부산친구 초청으로 와본 기억이 되살아난다. 저녁식사시간-자갈치시장 근처에 예약식당에서-- 자갈치시장 부산 왔으면 회를 먹어야지--하는 바램으로 회파티를 열리로 했다. 모처럼 허물없는 동창들간에 모듬회 안주와 소주로 분위기가 화기하다. 얼큰해진 상태로 자갈치 시장을 구경하기로 했다. 자갈치 시장은 7층의 현대식건물로 되어있는데 1층은 수산물시장 2층이 회센터이다.1층 시장안을 둘러보고 길 건너편에 있는 남포동 국제영화제거리 쪽으로 산보를 했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 때에는 영화인과 관광객들로 대만원을 이룬다. 영화제거리 끝부분에 오니 유달리 약국이 많다. 내일 혹 필요할까 싶어 배멀미약 귀미태를 샀다. 그 안쪽이 영화 국제시장으로 잘 알려진 국제시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미 야밤이라 별 구경거리가 없지 싶어 돌아왔다. 숙소는 중앙역 인근의 크라운하버호텔이다. 한방에 2명씩 배정을 받아 체크인. 내일아침 기상이 5시. 6시에 호텔출발이란다. 8시30분 출발 배이니- <태종대> 조심조심 부산갈매기는 배가 부른지 국제화 되어서인지 갈매기밥(새우깡)을 별로 안좋아하는 것 같다. 강화 갈매기는 환장한듯이 달려드는데-- 자세히 보면 바위에 낚시꾼들이 앉아있다. 주전자섬 오륙도도 보인다 태종대 영도등대 자살바위 갈매기집 <송도> 거북바위 발아래를 보라 6월10일 케이불카 재개통을 앞두고 시운전 <자갈치시장> 자갈치시장앞 김천횟집에서 회잔치 <광복동> 우리 숙소 크라운호텔 <대마도 1일차> 대마도행 이즈하라항으로 부산을 떠난 오션플라워2는 800명을 수용하는 엄청난 크기의 배이다. 배가 큰 대신 속도는 느린 편이라 이즈하라 항까지 3시간이 걸린다. 물론 대마도 남쪽 끝에 위치하니 거리도 훨씬 멀다. 배가 크기 때문에 안전은 물론 배멀미도 없다. 그래도 몰라 어제 사둔 귀미태를 붙였다. 지정좌석에 앉았으니 빈자리가 많아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탑승인원이 300명 정도라고 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배 선창가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다. 섬이 한없이 길게 이어진다. 대마도이다. 고구마처럼 긴 대마도 끝이 없어 보인다. 대마도(對馬島:쓰시마)는 대한민국 부산에서의 거리는 약 49.5km이다. 섬 크기는 남북으로 82km, 동서로 18km이다. 섬 넓이는 약 700km²이며, 제주도의 2/5 넓이이다. 섬의 인구는 2010년 기준으로 34,610명 이다. 농경지는 전면적의 3.4%이며, 대부분이 산지이다. 상대마도 하대마도 두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만제끼바시(만관교)로 이어져 있다. 좀 지루하다 싶을 시간에 마침내 이즈하라항에 도착했다. 수선사(修善寺)와 국분사(國分寺) 대마도에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애국지사 최익현 선생이다. 이즈하라의 수선사는 서기 656년 백제 귀족출신인 법묘 비구니가 창건한 사찰로 최익현선생의 유해가 잠시 안치된곳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 온다. 한말 항일구국운동의 거두 최익현선생 순국비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세 번이나 귀양을 갔다. 첫 번째는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비판하다가 제주도에 귀양 갔으며, 개항과 개화운동에 반대하여 위정척사사상으로 대항하다가 흑산도로 귀양갔다. 이 두 번은 쉽게 풀려났으나, 마지막으로 일제의 이등박문에 의해 대마도에 귀양가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순국했다. 왜놈들의 밥은 먹지 않는다며 단식끝에 돌아 가신 것이다. 일제의 강압으로 맺어진 1905년 을사늑약조약에 항거 무효를 주장하고 을사5적 처단을 주장했다.1906년 체포되어 대마도로 이송된 것이다. 수선사에는 조선말기 판서를 지낸 김학진의 친필 현판과 유두 9개인 조선의 종과 통일신라의 금동보살이 있으며 대마도 3대성인으로 꼽히는 수야마토츠안의 묘가 있다. 높은 계단을 올라 수선사 법당이 보이고 왼쪽에 종이 있다. 수선사 문을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보면 최익현선생 순국비가 서 있다. 절 위쪽으로 납골묘들이 수없이 있고 수선사 입구 옆에는 천옷을 입은 작은 석불상이 많이 정좌하고 있다. 지장보살들이다. 수선사를 나와 황백현박사가 발굴한 매국노 이완용글씨를 확인차 국분사(國分寺)로- 전국 호국기원사찰의 하나인 국분사는 조선의 마지막 통신사가 묵었던 객관터가 있어서 의미가 깊다. 높은 기와의 문양이 남달라 특색이 있었다. 국분사 안 납골당 위쪽으로 오르니 을사늑약문과 한일병탄문을 초안하고 통역한 공적으로 조선총독부 인사국장까지 오른 대마도 출신의 총독부 고관의 비명에 남긴 이완용의 글씨가 있었다. 나카라이 기념관 나카라이 토스이는 대마도 출신의 기자이자 소설가였다. 나카라이 토스이는 지한파 작가로 춘향전을 번역했다. 의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부산 왜관에서 소년기를 보내면서 한국어를 배우게 된다. 15세에 귀국해 동경의 영문학 학원인 공립학사를 졸업후 신문사 기자가 되어 한국의 임오군란을 취재하였고 춘향전을 20회에 나누어 연재하였다. 일본 엔화 5천엔권에 나오는 일본 여류작가 히구찌히치요로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히구치는 여성으로 근대소설의 개척자로 25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었다. 그녀는 나카라이 토스이의 제자였고 그를 사랑한 것이 그녀가 죽은 후 일기에서 연모의 글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문학기념관으로 아래층에서는 기모노 체험관도 있고 차 마시는 곳이 있다. 위층에 올라가니 많은 문학도서들이 서가에 꽂혀 있다. 나카라이 기념관을 나와 골목길을 걸었다. 방화벽 돌담으로 특색이 있고 이 거리는 사무라이 거리라고 한단다. 사무라이들이 살던 사무라이집도 걸으면서 구경했다. 하치만궁신사 이즈하라의 대표적인 신사로 하치만신을 모신 하치만궁신사로 갔다. 일본 제14대 주아이천황의 왕후이자 삼한을 정벌했다고 주장하는 신공왕후를 모신 신사이다. 신공황후는 삼한(신라, 가야 등 한반도 )을 정벌하여 임나일본부를 건설하였다고 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입구에 고마이누(狛犬) 두마리가 입구를 지키는데 한마리는 입을 벌리고 다른 한마리는 입을 다물고 있다. 만물의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고-하치만궁 신사에는 3개의 신사가 있다. 임신한 몸으로 삼한을 정벌했다는 신공왕후의 동상도, 청동으로 만든 신마 동상도 시선을 끈다. 신마의 무릎부분과 허리부분은 많은 관광객이 만지면 자기몸 아픈 부위가 낫는다는 설로 반질반질하다. 이즈하라 하치만궁 경내의 좌측의 돌계단를 올라 가면, 거기에 코니시 마리아 부인과 그 아이의 제를 지내고 있는 今若 · 若宮神社[이마미야 · 와카미야신사]가 있다. 임진왜란시 히데요시는 그의 부하 고니시유끼나가의 딸(마리아)을 대마도 19대도주 요시토시에게 시집보낸다. 요시토시의 부인이 된 마리아는 15살 어린나이로 대마도로 가서 남편과 10년간 잘 살다가 히데요시가 죽고 그의 후예세력과 신예 도꾸가와이예야스파와의 세끼가하라전투에서 패해 유끼나가는 죽고 대마도의 안전을 위해 대마도주는 부인과 이혼을 하게 된다. 결국 그를 그리워하다 마리아는 세상을 뜨게 된 슬픈 스토리가 전한다. 덕혜옹주 결혼봉축비 덕혜는 고종과 고종의 세수간 나인 양귀인 사이에서 태어난 옹주의 신분이었으나 고종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조선 왕실의 마지막 왕녀였다. 1925년 영친왕에 이어 강제로 일본으로 건너가 학습원 여자중등과에 입학하게 된다. 불운은 계속된다. 1931년 5월8일 대마도 번주의 아들인 소다케유키 백작과 정략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후 마음의 병을 얻고 그 병세가 심각해져 1946년 마쓰자와 병원에서 입원하여 귀국 때까지 16년간 병원의 독방에서 지내다 1962년 1월26일 38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귀국후 5년간 병원 치료를 받다가 퇴원하여 낙선재에서 기거하게 된 덕혜옹주는 1989년 4월21일 77세로 영면하였다. 덕혜옹주의 혼이 담겨 있는 곳-금석성(가네이시성)은 대마도주 소 가문이 거주하던 곳이며 아들 소 다케유키와 정략결혼을 한 것이다. 금석성정원가는 길에 덕혜옹주 결혼봉축비가 서 있다. 이왕가종백작가어결혼봉축기념비(李王家宗伯爵家御結婚奉祝記念碑)라고 비문에 쓰여 있다. 조선을 이왕가로 격하시켰으니 일본 황실도 아닌 대마도주 아들과 정략결혼이 가능했던 것이다. 비문 옆으로 벚꽃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봄철이면 만개한 벚꽃을 보며 덕혜옹주의 슬픈 역사를 되뇌인다고 한다. 또 조선 통신사가 12번 에도까지 가지 못하고 대마도에서 국서를 전달한 조선통신사 접우노지비가 여기에 있다. 오늘의 관광일정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대마도 시의원의 소유 식당으로 갔다. 특별메뉴로 멧돼지 바베큐-연하고 맛이 좋았다. 몇몇 회원들이 스폰서하여 일본사케와 생맥주를 맛보았다. 일본 하면 온천이 떠오른다. 대마도에도 온천이 있다. 온천을 위해 수건을 지참하라고 미리 통지도 하고--우리나라 사우나처럼 비교적 시설은 괜찮았다. 물도 좋았다. 하루의 피로가 싹 가셔진다. 온천욕을 하니 모두 신수가 훤해진 것 같다. 숙소행이다. 숙소는 대아해운이 운영하는 대아호텔이다. 당초 다인실에서 2인1실로 격상되었다. 대아호텔은 당초 그 위에 자리한 노인복지관에서 호텔건립을 극구 반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인 관광객이 많고 대아해운의 로비로 건립이 성사되었다는데 호텔 앞 넓은 잔디밭에는 하얀 토끼풀꽃이 멋진 풍경을 만들고 그 너머로 바다를 구경할 수 있어 최상의 뷰를 선사하였다. 저녁노을,아침 일출 때의 아름다운 풍경은 가히 최고의 절경이라고 한다. 가져온 소주병과 과자안주를 들고 앞마당으로 갔다 벌써 몇몇 주당들이 가져온 중국 명주를 마시고 있었다. 한잔을 하니 핑 오른다. 기온이 선선하여 상쾌하기 그지없다. 타인들을 배려하여 9시반경 모두 자리를 파하고 각자 방으로 -- 내일은 북쪽으로 달려가 두섬을 잇는 만제키바시,대마도의 하롱베이라 일컫는 에보시다케전망대,한국전망대,일본100선 해수욕장 미우다해수욕장을 간다. 오션플라워2 수선사 최익현선생 순국비
국분사 조선통신사 막부접우지 천덕산 국분사 종각 천택사 납골당 묘지 이완용 글씨가 보인다. 인생~ 제야의 종에서 국분사 지붕이 독특하다 100엔-무인판매대 나카라이기념관 예전 펌프가 보여서 기념관 안 정원
소설가 나카라이 토스이와 5천원권 속의 여류작가 히구찌히치요 나카라이 기념관 기모노 체험 2층 도서실 사무라이 거리 사무라이 저택 방화벽 돌딤 초대 대마번주 宗義智 동상 하치만궁 도오리 고마이누(狛犬)) 한마라는 입을 벌리고 한마리는 입을 다물고- 신공왕후 동상 신마 신궁 본궁 금석성 유적 금석성 덕혜옹주 결혼봉축기념비 돌지붕 멧돼지 구이 호텔앞 잔디에는 토끼풀이 숙소 대아호텔 <대마도 2일차> 대마도 여행 2일차이다. 대아호텔에서 편히 하룻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지하에 있는 사우나탕으로 갔다. 물이 너무 뜨거워 탕으로 들기가 어렵다. 냉수를 털어놓고 겨우 탕속에 몸을 담군다. 잔여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려는듯--아침식사가 7시30분부터.영감들 잠이 없는지 벌써 목욕도 끝내고 산보도 다녀왔단다. 언제 보아도 하얀 토끼풀이 가득 핀 마당은 멋지다. 오늘은 대마도의 주요 관광도 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기도 하다. 만제키바시(万関橋)
열대수련과 금계국 -감사합니다- |
첫댓글 오상회에서 간것이 엇그제같은데 벌써 9년이 지났구려. 스위스 여독이 풀리지도 않았을 텐데 체력 대단합니다.9년전 기억들을 되살려주어서 감사합니다.
황회장님 안그래도 부산서 임봉규사장과 통화했습니다. 임사장의 남방셔츠도 모두 얻어입었고 ,우리는 미리 부산에 가서 하룻밤 자면서 추억도 남겼지요. 세월이 참으로 빠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