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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강 창세기 2 : 7~17 에덴동산 56.32
26.08.29(토)
우리 지난 시간에 최상용 장로님 통해서 우리의 이 인체가 얼마나 신비스러운 하나님의 피조물인지 창조물인지 우리 확인했습니다.
우리 허파에 있는 꽈리를 다 펼치면 정구장만해진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자체도 신비스럽지만 이런 생각을 한번 해보십시다.
우리 허파에 있는 꽈리와 똑같은 크기의 모형을 만든다고 생각을 해 보십시다. 그래서 그 꽈리를 테니스장만큼 다 펼쳐 놓습니다.
우리 속에 들어있는 꽈리 숫자하고 정확하게 일치하도록 그 많은 꽈리를 누가 이 작은 허파에 차곡차곡 쌓아 넣을 수 있죠.
인간은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혈관을 다 이으면 지구를 두 바퀴 반 돈다고 그랬습니다.
실핏줄까지 다 합쳐서 인간의 혈관을 짝 연결했다고 하십시다. 그 지구 두 바퀴 반 돌았습니다. 세상에 어느 인간이 그 혈관을 정확하게 몸속에 배관할 수 있죠.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잠을 자는데 의식하지 않지만 침은 식도로 내려가고 숨은 기도로 내려간다 그랬습니다.
우리가 자다가 깨어서 교통정리 안 하거든요.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셨기 때문이죠.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우리 육체 자체가 신비한 기적 덩어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더 신비스러운 사실이 있어요.
이 기적 덩어리인 몸을 들여다보면서 이 신비스러운 육체를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이 육체가 아무것도 없는 데서 단세포가 생겼다가 원숭이를 거쳐서 인간이 되었다고 믿는 의사들과 과학자가 더 많다는 거예요.
저는 그게 정말 신비스럽습니다.
어떻게 이 신비스러운 몸을 들여다보고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노력해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아니잖아요. 우리는 전혀 노력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방법으로 이 믿음을 우리에게 그냥 주신 겁니다.
에베소서 2장 8절 말씀 제가 읽어드릴게요.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는데 이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어지는데 더 많은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었다고 하는 그 사실을 못 믿는 것이죠.
아무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우리는 그 엄청난 선물을 받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선물은 선물 그 자체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선물을 받은 사람이 그 가치를 깨닫고 바르게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조선 중기시대의 위대한 명필가 한석봉 선생이 있지 않습니까?
그분이 어느 날 자기가 신세진 분이 있어서 뭘 선사할까 생각하다가 자기가 쓰던 붓을 선사했다고 하십시다.
그 선물을 받은 사람이 야 이게 무슨 새 것도 아니고 말이야 쓰던 걸 줘 그러면 그건 지금 이 땅에 존재 안 하죠. 벌써 버려졌을 테니까.
그러나 한석봉 선생의 손때가 묻은 붓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그 선물을 받았다면 자자손손 대대로 물려지다가 지금쯤 어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겠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귀한 선물을 주셨서도 믿음의 선물을 주셔서도 이 믿음의 선물의 가치를 우리가 모른다면 아무 의미 없는 것입니다.
그 가치를 아는 사람만 그 믿음의 선물을 고이 간직하겠죠. 그러면 믿음의 선물을 받은 사람답게 그 선물의 가치를 내가 지키고 보존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그 믿음 속에서 내가 하나님에 의해 지음받은 사람다운 삶을 사는 거죠. 하나님의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선물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보답이란 말이에요. 그렇다면 우리가 사람다운 삶 그 선물을 받은 자답게 사는 삶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이겠는가
7절 말씀 보시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었으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이 구절에 대해서는 우리가 벌써 생각해 봤죠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후 당신의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령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생기를 지닌 영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람다운 삶을 산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생기를 지닌 생령다운 삶을 사는 것이죠. 그렇다면 또 하나님의 생기를 지닌 생령답게 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뭘 의미하겠는가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무엇으로 지으셨느냐 말이에요.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이 세상 만물을 다 지으신 뒤에 인간을 짓지 않으셨습니까?
이 세상에 온갖 재료들이 다 있었단 말이죠.
강하기로 따지면 강철이 강하고 비싸기로 따지면 다이아몬드가 더 비싼데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따라서 그 흙의 속성 그 흙의 특성을 우리가 생각하면 우리가 생명답게 이 땅에서 산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알 수 있다고 새 신자반을 통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가 고등학교때 이천에 있는 도자기 공장을 갔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뭐 고속도로 좋으니까 이천 금방 가지 않습니까? 그때는요 서울에서 새벽에 출발하면 이천에 오후에 도착했습니다. 저녁 먹기 전쯤 도착했습니다.
아주 정말 먼 동네였습니다.
그 짐을 풀고 그날 밤에 잠을 자고 그 당시에 이천이 어떤 시대냐 하면 화장실에 문이 없더군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화장실에 앉으셔서 며느리 밥 하는데 간섭하고 그러십니다.
참 우리나라 많이 좋아졌죠 그죠 그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서 그 도자기 그 움막에 들어가서 이제 도자기를 그 선생님의 지시대로 따라서 만들기 위해서 고령토에 손을 넣습니다.
여러분들 고령토를 한번 손으로 만져보신 분들은 아마 똑깉은 감격을 느끼셨을 거예요. 그때 제가 고등학생 때니까 얼마나 순수한 크리스찬 청소년이겠습니까? 그 흙을 만졌는데 눈물이 핑 돌아요.
아 이래서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드셨구나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체온 하나님의 온기가 그냥 제게 전율적으로 전해지는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흙으로 우리를 지으셨어요.
흙의 특성을 가만히 한번 생각을 해보십시다.
흙의 첫 번째 특성은 생명이라고 그랬습니다.
여러분 모든 생명이 땅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땅의 열매를 먹고 우리가 다 사는 것입니다. 육식동물은 육식동물이 잡아먹는 짐승은 초식동물이에요. 육식동물이 잡아먹는 초식동물이 있기 때문에 육식동물이 살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땅이 열매를 소출해 주지 않으면 초식동물 육식동물 다 있을 수 없죠 하늘의 새 마찬가지입니다.
바닷속에 있는 물고기 바다 밑에 흙이 물을 안 받쳐주면 어떻게 삽니까 흙이 없으면 이 세상은 생명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흙이 없는 사막이 죽음의 장소인 것과 똑같죠 하나님께서 그 생명인 흙으로 우리를 지으셨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생명의 사람으로 사는 것 그것이 곧 생명의 삶이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가끔 뭐 여러분들이 저한테 이런 질문을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가장 보람된 일을 한 가지만 얘기해 보십시오.
10:35
정말 한 가지 밖에 없어요.
제가 만난 교우님의 인생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망가질 뻔한 그 인생이 회복되고 깨어질 뻔한 가정이 화목을 되찾게 되고 그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분으로 인해서 몇 사람의 인생이 새로워졌습니까? 제가 예전에 방탕하게 살 때 매일 저녁에 술독에 빠져 있잖아요.
그런데 술꾼들이 혼자는 절대 술 안 먹잖아요. 반드시 누구든 끌고 가거든요. 그래서 저녁 5시쯤 되면 이제 바쁘죠 계속 전화해야 되니까.
저는 그 기간 동안에 많은 사람의 생명의 한 기관을 저는 망쳤습니다. 제가 그 사람들 데리고 다니고 술집에 가서 앉아있고 하면서 그 사람들 생명을 그 시간에 제가 죽인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잘못을 하나님 앞에서 속죄하기 위해서도 살아있는 동안에 더 생명의 통로로 살아야 될 의무가 있죠.
여러분 혹시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가 여러분을 만나서 그 인생의 한 부분이 그냥 없어져 버린다 그건 안 되잖아요.
우리로 인해서 날마다 상대의 생명이 새로워질 수 있다면 우리는 멋진 생명인 거죠.
두 번째로 흙은 사랑이라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뭘 버리든지 흙이 다 받아준단 말이죠.
그걸 품어서 그걸 썩여서 다시 정화시켜 줘요
이 지구가 창조된 이래 흙이 사랑의 품을 갖지 않았다면 쓰레기를 품어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겠습니까?
그냥 이 지구 자체가 거대한 옛날 난지도겠죠. 그죠 우리가 생명의 삶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사랑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품어야 될 사람들을 품는 거여요. 여러분 주위에서 가만히 보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할 일이 자꾸 생겨요 자식이 많아도요 시부모를 모신 자식의 친정 부모 또 모시고요.
친척 어려우면 또 보살피고요. 동창생들 중에서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또 그 사람 찾아가요. 모두가 다 사랑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이 자꾸 모여가요 사랑하는 사람은 덜 피곤합니다. 이유가 왜그럴까 큰 사랑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베푸는 사람에게 사랑의 의무가 자꾸 몰려가는 겁니다. 재미있는 사실은요 저 사람이 사랑의 의무를 참 잘 아는 사람이여요.
또 누가 가서 또 부탁을 해요. 그거는 그분이 도저히 할 수 없어서 거절하지요 뭐라고 욕합니까? 어찌 그리 사랑이 없느냐고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 없다고 욕 듣습니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이 없다고 욕하는 사람은 사랑을 안 해본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을 안 해본 사람이 사랑이 없다고 욕을 합니다.
사랑해 본 사람은 그런 이야기 안 하죠.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내가 품어야 될 사람을 내가 품지 아니해서 누군가에게 그 짐을 전가하고 있다.
우리가 과연 생명일 수 있겠는가 깊이 되돌아봐야죠 사랑한다고 해서 악까지 품는 건 아니죠. 흙이 모든 것을 다 품어주지만 플라스틱을 갖다 넣어보세요. 흙은 품지 않습니다. 흙 속에서 플라스틱은 못 썩어요.
악은 배척의 대상이죠. 악은 배척하지만 내가 품어야 될 사람은 품는 것 그때 우리는 믿음의 선물을 받은 사람다운 생명이 되는 거죠.
세 번째로 흙의 특성은 봉사라고 했습니다.
인류 역사 이래 최초의 인류의 도구들이 다 뭐여요? 그릇이라는 게 다 흙으로 만들어질 겁니다.
처음 쌓을 때 벽 흙을 다 쌓았죠 벽돌 흙으로 만들었죠. 인간이 흙을 무슨 도구로 만들든지 흙은 기꺼이 자기를 주고 봉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흙으로 우리를 지으셨단 말이죠.
그래서 우리의 인체를 들여다보면 모든 인체는 서로 봉사하는 구조로 돼 있다고 그랬죠 내 왼손등이 가려운데 이 왼손가락이 어떻게 긁어요.
내 왼손등이 가려운데 왼손가락으로 긁을 수 있다면 그분은 뭔가 잘못된 사람이죠. 오른손이 긁어줘야 돼요. 그렇죠 오른손은 왼손이 긁어줘야 되고 내가 밥을 안 먹으면 뭐가 배고픈 거여요.
시장기를 느껴요 내 배가 시장기를 느낍니다. 근데 배가 지가 밥을 먹을 수 있나요? 입이 먹어줘야죠 내가 어디를 가고 싶으면 다리가 가줘야 됩니다. 모든 인체는 다른 지체에 봉사하기 위해서 달려 있습니다.
암 덩어리가 뭐죠 자기만 위하는 겁니다.
그래서 암 덩어리가 들어오면 모든 체계가 깨지고 죽어요.
하나님께서 봉사의 특성인 흙으로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 각자의 지체 지체는 전부 봉사하게 되어 있는데 이게 합쳐진 우리는 봉사를 행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생명의 가치를 바르게 지키지 못한 것이지요
내가 봉사하고 섬기며 산다고 하는 것은 내 생명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이 세상이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내 주위가 뭔가 자꾸자꾸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죠.
네 번째로 흙의 특성은 정직함이라고 그랬습니다. 여러분 흙에다가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잖아요. 흙은 아부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콩을 심은 사람이 권세가 있는데 저 사람이 팥을 좋아하니까 내가 팥 좀 내드려야지 절대 그러지 않아요. 정직하죠.
그 흙으로 우리를 지었었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정직한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정직하지 않은 건 뭐예요? 거짓된 거예요. 그죠 거짓되다는 게 뭐죠 사실과 다른 거여요. 사실이 뭡니까? 일 사 자에 사실 실자라고 하는 이 실자가 실제 실 자입니다. 사실이라는 것은 실제로 있는 것이여요.
거짓은 실제가 아닌 거예요. 바꾸어 말하면 거짓은 없는 겁니다. 있는 것은 실제밖에 없습니다. 거짓은 없는 거예요.
내가 거짓말을 해서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어요. 하나님 앞에서 그건 없는 겁니다. 내가 정직할 때만 그것이 실제의 것이여요.
그것만 하나님 앞에서 남는 것입니다. 내가 거짓됨을 인해서 내 욕망을 아무리 추구해도 그것으로 인해서 내 인생은 그만큼 소멸되는 거여요. 없는 거여요.
20:06
그래서 시편 7편 10절이 이렇게 고백을 해요.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도다
얼마나 참 은혜로운 말입니까? 나의 방패는 마음이 정직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내 방패는 내 하나님이라는 거여요.
그분이 어떻게 내 방패가 되는가 내가 정직하게 살아갈 때 내 삶을 실제로 지켜주시기 때문에 내 방패라는 겁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거짓된 삶을 살면 아무리 화려해 보여도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어 주시지 않기 때문에 그거는 물거품처럼 다 없어지는 거라는 거요.
요즘 참 우리 사회에서 너무 거짓이 난무하지 않습니까? 그것 다 나중에 살고 나면 후회하게 됩니다.
내가 정직한 삶을 살아갈 때만 그것이 하나님 앞에 남는 삶이고 하나님께서 방패되어 주시는 것이죠.
정직은 절대로 남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사는 거예요. 그것이 결과적으로 타인에게도 유익하게 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흙의 특성은 겸손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 남산이 한 200 몇십 메타 되죠.
아마 이 시내에서 보면 굉장히 높은 산 아닙니까
그죠 그런데도 내가 남산에 올라가면 남산의 흙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 발밑에 있어요.
중국 태산이 높대요 근데 실제로 가보면 뭐 천 메타 정도라 그러죠 근데 하도 평지에 있으니까 높아서 태산이 높다하되 이렇게 됐는데 그게 아무리 높아 보여도 그 산 정상에 내가 가서 서면 흙은 네발 밑에 있어요.
흙은 자기 자리를 압니다. 흙은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머리 위에 올라가지 않습니다. 흙은 거지가 와서 서도 기꺼이 거지 발 밑에 존재합니다.
그 흙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어요.
내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높아져도 내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었어도 나의 위치는 언제나 하나님 밑이여요.
어떤 경우에도 내가 하나님 위에 올라갈 수 없습니다. 영어로 겸손을 퓨뮤리티 fumulity라고 그럽니다. 근데 그게 라틴어 퓨무스fumus에서 나왔는데 fumus 라틴어로 fumus가 흙이라는 말이여요.
흙으로 지어졌음을 알 때만이 하나님께서 아무리 우리를 존귀하게 해주셔도 우리는 늘 하나님의 존전 아래에 거하는 겸손한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한가 생명의 삶 사랑의 삶 봉사의 삶 정직한 삶 초지일관하게 겸손한 삶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의 생기를 내가 품고 살아갈 때 그분에게 내 생기의 파이프를 연결시켜두었을 때 이런 삶이 가능해진다는 거야.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을 만드시고 그 다음에 그 사람을 어떻게 하셨는가
8절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뒤에 이 세상에 그냥 내버려 던져주시지 않았습니다.
너 아무렇게나 아무데서나 살아라 그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께서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 그 인간을 위해서 특별히 에덴 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이란 지상의 낙원이었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눈으로 보게 해주신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여요.
그런데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그 낙원을 실낙원 잃어버렸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실낙원 했던 그 낙원을 우리의 삶 속에 복원시켜 가는 거죠.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어 가야 된다 라고 말을 할 때 우리가 구체적으로 일구어 나아가야 할 하나님 나라의 실체가 바로 에덴의 회복임을 알게 됩니다.
이 에덴에 대해서도 우리가 새 신자반 때 간략하게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에덴이 대체 어떤 곳인가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동산을 이 동산이라고 하는 말이 히브리말로 깐이라고 적혀 있는데 그것은 까난이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다고 했습니다.
까난이라고 하는 동사는 울타리를 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그 사람을 위해서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거기 두셨는데 제일 먼저 하신 게 뭔가 울타리를 치는 일부터 하셨습니다.
울타리의 의미는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보호하기 위해서 무엇으로부터 무엇을 격리하기 위해서 울타리를 치지 않습니까?
우리가 우리의 삶의 터전을 에덴 동산으로 하나님의 나라로 복원하고 일구어 간다고 하는 것은 제일 먼저 울타리를 치는 일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울타리를 친다고 하는 게 도대체 구체적으로 무슨 얘기겠는가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 삶의 터전을 내가 속한 공동체를 내 인생을 에덴 동산으로 복원시키기 위해서 제일 먼저 울타리를 쳐야 된다면 세속적인 사고방식으로부터의 울타리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라고 하는 것은 사고가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고가 바뀌어져서 행동이 바뀌고 삶이 바뀌어지지 않아요.
사고가 바뀌지 아니하면 절대로 하나님 나라는 일구어질 수 없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난받는다면 이유가 뭘까요? 예수님은 믿는데 세속적인 사고방식으로 믿는 거예요. 울타리가 쳐져 있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서 사고가 달라진다고 했습니다. 지금 양떼들이 평화로이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 이리가 나타나서 지금 양떼를 뜯어먹으려고 그래요. 그것을 본 목자가 뛰어가서 지팡이로 이리를 쳤습니다.
양들이 보면 그 목자가 어떤 존재여요.
자기들을 지켜주는 정의의 사자입니다.
목자로부터 지팡이로 매를 맞은 이리 아버지가 보면 어떼요 그 이리 아버지가 보면 이거 자기 자식의 생존을 지금 방해한 불한당입니다.
목자는 한 사람입니다. 어느 그룹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서 똑같은 사람을 놓고 정의의 사자로 볼 수 있는가 하면 우리의 생존을 방해하는 불한당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 봉사자들을 탈레반이 인질로 잡아두었습니다. 그분들은 그게 당연한 일이여요. 요구 조건 안 들어주면 죽인대요
그분들은 그 테러 집단에 속해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겁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30:09
왜 우리는 테러 집단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정상적인 국가에 속한 정상적인 국민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상에 속했던 사람이 하나님에게로 자기의 적을 바꾸는 것입니다. 정치인으로 말한다면 당적을 바꾸는 겁니다. 요즘 정치인들은 당적을 바꾸고도 사고가 바뀌지 않으니까 문제죠
그리스도인도 하나님 당으로 옮아가서 사고가 안 바뀐다면 똑같이 문제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세속적인 사고방식의 울타리를 치기 시작할 때 우리의 삶은 달라지는 것이고 우리의 삶은 에덴으로 복원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9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그 에덴 동산에 생명나무와 선악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명나무와 선악과가 동산 저 가장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동산 중앙에 있었습니다.
어디서든지 그 두 나무가 보이게 하나님께서 딱 중앙센터에 심으셨습니다. 에덴 동산이니까 생명나무가 있는 건 당연하겠죠. 그죠
근데 선악관은 왜 있어야 되는가 나중에 17절에 가서 생각해보죠.
10절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다.
에덴이 어떤 곳이었는가 강이 발원하는 곳이었다는 것이어요 그런데 강이 한 곳을 향해 나가지 않았습니다. 네 쪽으로 네 방향으로 지금 나아갔습니다.
11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첫 번째 강은 비손인데 비손이라고 하는 히브리 말은 퍼진다 이런 뜻입니다.
13절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다 기혼이라고 하는 이 강 이름은 넘친다 이런 뜻입니다.
14절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이건 요즘 말로 티그리스 하는 강의인데 힛데겔이라고 하는 것은 아랍어로 화살이라는 데서 유래가 되어서 강물이 빠르게 흘러간다 이런 의미예요.
넷째 강은 유불화 되더라 유브라데스 강이죠.
이것은 열매를 맺는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에덴에서부터 동서남북으로 생명의 강이 발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강들이 퍼지고 넘치고 화살처럼 빨리 흐르고 열매를 맺고 호수 물이 아니라 이 생명의 물들이 살아서 역동하는 모습을 지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삶의 터전을 에덴 동산으로 복원시켜 간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흙으로 지으셨는데 흙의 특성 중에 첫 번째 특성이 생명이라 그러지 않았습니까?
나 혼자가 생명의 삶을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우리가 참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가정 내 일터 내가 속한 공동체가 생명의 발원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성숙자반 우리 장년층과 구역 공부를 통해서 이야기할 때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 개개인은 하나님의 모델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앙드레 김 선생께서 참 한국을 대표하시는 위대한 패션 디자이너이신데 그분의 솜씨와 능력이 누구를 통해서 돋보이게 드러나는 거예요. 모델이잖아요.
좋은 모델이 옷을 입고 땅들의 김 선생의 그 재능 솜씨 기술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셔서 안 보여요.
우리는 이 세상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는 모델들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속해 있는 가정과 일터는 뭔가 나 개인은 모델이지만 내가 속해 있는 내 가정과 일터는 세상 사람들이 들여다보는 쇼윈도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여주지 않아요.
자기의 삶을 그리스도인들은 온 세상을 향해서 내 삶을 보여줄 수 있어야 돼 누구든지 와서 우리 집 들여다봐라 누구든지 와서 우리 일터 들여다봐라
그래서 사람들이 그 속을 들여다보면서 아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들의 삶이라는 게 저런 거구나 행복이라는 게 저런 거구나 서로 사랑하면서 산다는 것이 저런 거구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일터를 일군다는 게 저런 거구나 세상을 향해서 보여줄 수 있는 쇼윈도가 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일구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왜 우리가 속해 있는 일터에서 동서남북으로 생명의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인 것이죠.
잠언서 17장 1절 말씀 제가 읽어드릴게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지배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우리가 잘 아는 구절이죠.
그죠 개역 성경은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도 이랬는데 우리 개정개역은 육선이 집에 가득했다. 제육이 육선이 뭔가 히브리어로 세바흐라고 쓰여 있는데 제물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 여러분 우리나라에서도 제사를 드리는 댁에서 제사 음식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만듭니까 산 사람은 못 먹는 거 그 귀한 음식들을 제물로 만들어요.
제사음식으로 그래서 세바흐라고 하는 것은 단순하게 재물 자체를 의미한다기보다는 그 집에서 가장 귀한 것의 상징이죠.
다른 사람이 이렇게 들여다봤습니다. 그 쇼 윈도우를 그런데 아유 저런 것도 있네 어유 저런 것도 있어 귀한 것 정말 많네 그런데 서로 사람들이 다투고 있단 말이죠. 그건 아니라는 거죠.
저 집에 보니까 수입도 별로 없네 세상적으로 출세한 사람도 없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우리 집에 없는 게 있어요.
행복이 있고 화목이 있고 새로운 생명이고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기쁨이 있어요. 그것이 우리의 삶의 터전을 에덴을 일구어 가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를 12절 13절은 아까 강 이름을 보았죠
11절 보실까요?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절
그 땅의 금은 순금이여 그곳에는 베들리엄과 호마노도 있더라
에덴 동산에 보니까 금이 있어요.
그런데 이 금이 무슨 뭐 14금 이 정도가 아니라 순금이여요.
또 그곳에 베들리움이 있다고 하는데 베들리엄 앞에 숫자가 3자가 적혀있어서 밑에 주란을 보니까 진주랍니다.
그리고 호마노도 있더라 에덴 동산 하나님께서 만드신 에덴 동산이 어떤 곳이었는가 보석이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 집에 보석이 많으면 하나님 나라로 일구어지는 건가 보석상은 다 행복한가
요한 사도가 환상 중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요한계시록 21장 18절 21절에서 이렇게 묘사를 했습니다. 한번 들어보십시오.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40:37
열째는 비취옥이오 열한째는 청옥이오 열두째는 자수정이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개의 진주로 되어 있고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여러분 지금 여기에 나와 있는 보석이 다 댁에 있습니까? 큰 문이 있는데 작은 진주를 박은 게 아니라 그 문 자체가 하나의 진주였다는 거예요.
길이 온통 순금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냥 금은 보화가 가득하네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이 금은보화가 무슨 목적으로 사용되었느냐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금은보화는 금고 속에 자리 잡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금은보화는 벽돌장이였습니다.
집 짓는 벽돌이고 돌이고 길에 까는 아스팔트 대용이었습니다. 어떤 곳이 에덴인가 세상에서 가치로운 것이 더 이상 가치를 갖지 않게 될 때 그것이 바로 에덴이어요
가치관이 달라지는 것이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마는 소녀 아이들이 소꿉장난 하잖아요.
그죠 엄마가 끼고 있는 반지가 얼마나 끼고 싶으면 구멍 가게에 가서 100원 200원 주고 구리 반지 끼잖아요.
근데 그 아이가 커서 사랑하는 사람한테 금반지 받으면 구리반지 낍니까
끼라고 끼라고 사정해도 안 낄 겁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인가 영원하신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의 보배로 지닌 자들입니다
그 보배 앞에 여기에 열거되어 있는 어떤 보배도 벽돌 이외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우리에게 많은 물질이 필요하고 많은 것이 소용되지만 그건 다 수단이요.
도구일 뿐이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내 생을 걸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부터 내가 두 발 딛고 있는 곳은 하나님 나라로 일궈가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을 절대 기준 삼고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주일 설교 시간에 집착하면 눈과 귀를 잃는다 이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 앞에 지금 아무리 서 있어도 이 시간에 뭔가 지금 내일 무슨 갯돈에 집착하고 있다. 그러면 지금 제가 제대로 보이겠습니까?
벌써 시작해서 50분쯤 지났지만 계속 돈만 왔다 갔다 하잖아요. 그죠 앉아 계시지만 제 소리가 귀에 들리겠습니까?
여러분 세상의 것을 하나님보다 더 중시하고 집착하면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하나님이 안 들려요 그것은 결국 내 생을 내가 갉아먹는 것입니다.
내 생을 진리로 건져 올려야 되는데 세상의 것에 집착하면 90년을 살아도 다 흘려버리는 것입니다.
이 가치관이 분명하게 바뀌어지는 순간부터 우리가 어디에 있든 하나님의 나라는 복원되는 것이죠.
13절 14절은 아까 강의 이름들 봤고요.
15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아까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당신이 창조하신 사람을 위해서 창설하셨잖아요.
45:13
그죠 그런데 하나님께서 얘야 내가 너를 위해서 저기 에덴 동산 만들어 두었어 너 찾아가 이렇게 하시지 않았어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이끌어 인도하셔서 에덴 동산 안으로 넣어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우리를 에덴으로 이끌어 가시려고 그래요. 하나님의 말씀이 뭐죠 이 모든 말씀이 우리에게 에덴을 복원시켜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등져요
그리고 나중에 후회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 하시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은 하나님 당신을 위해서가 절대로 아닙니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요 내가 하나님 믿지 않아도 하나님에게 아무 손해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을 믿으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여요.
내가 하나님 믿지 않을 때 하나님께는 손해가 없지만 내가 하나님 믿지 아니하면 나는 영원히 실낙원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말씀으로 성령의 빛으로 당신의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15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경작하게 하셨다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인지요
개역 성경을 보면 다스리게 하시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지금 개정 개정은 경작하며 이렇게 돼 있잖아요.
이게 이것이 정확한 번역입니다. 히브리말로 아바드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아바드라는 말은 경작한다 수고한다 땀 흘리며 애쓴다 봉사한다 이런 뜻입니다
여러분 에덴 동산은 우리가 흔히 오해하듯 개역 성경 다스리며 하는 것만 보고 오해하듯이 아담과 하와가 아무것도 안 하고 무위도식하면서 빈둥빈둥 논 데가 절대 아닙니다.
그런 곳은 지옥이죠 자기 생의 가치를 자기 스스로 없애버리는 거니까요 하나님께서는 그 아름다운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당신께서 지으신 사람을 인도해가시고 그로 하여금 땀 흘려 경작하게 하셨습니다.
어떤 곳이 에덴 동산인가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수고해야 될 것을 위해서 수고할 때 내가 있는 곳은 에덴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편한 삶 이지 라이프를 위해서 살아가려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샬롬 평안이죠.
그 평안 속에서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수고할 것을 위해서 수고해야 됩니다. 내가 나이가 들었다고 내가 권위가 좀 있다고 내가 수고해야 될 것을 수고하지 아니할 때 나로 인해서 내 주위 사람들은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끝까지 수고해야 될 것을 수고하는 마음을 잊지 않으면 몇 주 전에 말씀드렸습니다마는 내가 온몸에 암이 펴져서 병상에 누워 있다 할지라도 내 말로 표정으로 사람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갈 때 이 세상 끝나는 날까지 내가 있는 곳은 에덴으로 회복되는 것이지요
16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임의로 임의로 자유로이 먹어라 니 마음대로 먹어라 그 말이에요. 그런데 먹되 우리나라 말로는 먹되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는데 히브리어 원문에는 아칼이라고 하는 먹는다는 동사가 두 번이 반복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먹어도 된다는 것을 그만큼 강조하는 거예요. 이 모든 열매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횟수도 제한이 없고요. 기준도 제한이 없습니다. 네 마음대로
50:25
17절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내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위에 먹으라는 말이 악할 동사가 두 번 반복되어 있는 것처럼 여기에서 죽는다는 동사도 무트가 두 번 반복되어 있습니다.
이 나무만은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먹는 것도 강조하셨는데 죽는 것도 강조하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잖아요.
그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이 열매를 안 먹으면 인간은 선만 행하죠. 악을 몰라요.
이 열매를 먹고 나서부터 인간은 악하게 되었단 말이죠.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늘 제기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께서 이거 만드셨냐 말이에요.
그냥 안 만드셨으면 다 해피 엔딩으로 끝나고 아니면 지금까지 현재 진행형인데 왜 만들어 놓으시고 우리를 이렇게 괴롭게 하시는가?
하나님께서 모든 열매를 네 임의로 먹어라 먹는 것을 강조하시잖아요. 그죠 다른 모든 열매는 이건 내 것이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거예요.
그래서 어떤 열매를 먹든 다른 열매 다른 나무 앞에서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나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동산 중앙에 있는 이 나무마는 내가 먹고 싶어도 먹으면 안 돼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금하신 첫 번째 명령이거든요.
따라서 그 나무야말로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서 절대 복종해야 될 피조물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근본적인 차이를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무를 동산 중앙에 두셨어요.
어디 가든지 보입니다. 내가 사과 열매를 먹고 귤을 먹고 임의로 먹으면서 내가 즐겁게 하더라도 눈을 들어서 그 동산나무가 보일 때 하나님은 나의 창조주 나는 그분의 피조물 나는 저분의 명령대로 살아가야 될 존재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죠.
그래서 에덴이 지켜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어떤 나무든 하나님께서 이것만은 먹지 말라고 명령하시는 나무가 한 그루가 있어야 그곳이 에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탄이 인간을 어떻게 유혹했어요.
야 이거 너 먹어라 이것 먹으면 네 눈이 밝아져서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죄가 뭐예요?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를 인간이 부정한 겁니다. 그래서 그 선악과를 따 먹는 순간에 인간 자신이 하나님이 된 거죠.
거기서부터 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거꾸로 이제 방금 우리가 에덴 동산에 대해서 상세하게 이 에덴 동산을 어떻게 우리의 삶 속에서 복원할 수 있는가
어떻게 세속적인 사고방식의 가지를 울타리를 치고 내 가치관이 새로워지고 생명이 넘치는 쇼 윈도우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범했던 선악과를 복원하는 것입니다
내 집의 선악과를 복원하는 거예요. 이 집의 주인은 하나님이고 나는 피조물이거든요
나는 그분의 절대 명령 속에 살아야 할 존재 내 일터에 선악과를 복원하는 것입니다. 내가 모는 자동차에 선악과를 한 그룹 심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의 마음속에 선악과를 심는 것입니다
그 순간으로부터 우리는 에덴의 사람으로 복원되는 것이고. 우리 삶의 터전은 에덴 동산으로 복원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밤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인간이 선악과를 범함으로 인간 스스로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낙원 했습니다.
주님 그럼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해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에덴의 사람으로 또 우리 삶의 터전을 에덴 동산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지혜와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가 범했던 선악과를 우리의 가정에 복원케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일터에서 복원하게 도와주옵소서
우리 각자의 심령 속에 하나님은 하나님이시요 나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선악과를 이 시간 침묵하게 도와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자신이 에덴의 사람으로 우리의 일터와 우리의 가정이 에덴 동산으로 날마다 복원되는 기쁨을 누리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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