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만큼이면 만족 할래요.
난 참 복 많은 여인입니다.
왕년에 교육공무원이었던 남편 덕분에 연금수급자의 아내로서 잘 살고 있으니까요. 내 집(아파트 34평)에서 생활비 걱정 안하고 편안한 삶을 이어가는 나의 모습, 이 만큼이면 만족해야죠.
연금 공단에서 입금 사실 알려 주는 전화문자 받고 남편은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연금 들어 왔네~"라고... 나는 그의 말에 장단을 맞춥니다. "돈 들어왔어요? 우리 나이엔 연금 받는 남편이 최고의 남편이라던데...난 정말 시집 잘 왔어..." 맆써비스 합니다.
45년 전. 나는 고등학교 교련교사와 중매 결혼했습니다.
중매하던 분, 내게 "신랑감이 교사"라고 일러 주었고, 난 "밥은 먹고 살겠네"라면서 시집왔어요. 그리하여 나는 매달 월급날이 되면 남편으로부터 월급봉투를 받았지요. 봉투 받아들면 다음 단계는 한 달 살아갈 예산을 짜야합니다. 생활비 외에도 시부모님께 부쳐드릴 용돈 떼어 놓고, 장애인 둘째 형님 자녀(조카 4남매) 학비도 보내야 하고, 날아드는 청첩장 부고장에 부조금 들고 가서 얼굴 도장도 찍고 와야 하고...수지 맞추기 참 어렵습니다.
시댁 식구들은 우리가 무슨 은행쯤으로 생각 하는지 맏동서님"아무개 진학 하는데 입학금 좀 보태 줘.."라고 합니다. 그 뿐인가요. 대학 떨어진 조카는 "작은아버지! 저 재수할 생각인데 학원비 좀 대 주세요" 편지글 받은 적도 있었고, 사업자금 빌려 달라, 빚보증 서 달라... 달라달라 달라는 사람 참 많았습니다. 그런 저런 말들 못들은 척 넘어가면 내가 베풀줄 모르는 ‘구두쇠’라고 쑥떡거립니다. 그 분들 생각은 선생월급 아주 많은데, 나만 잘 먹고 잘 산다고 생각하나봅니다. 그 요구하시는 걸 다 들어드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남편 봉급은 그 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많질 못했지요.
신혼살림 셋방에서 시작했어요. 그 집은 대문도 없는 집이었는데 세입자는 일곱 가구나 되었답니다. 넓지도 않은 마당 가운데에 수도가 하나 있고, 귀퉁이에 변소가 하나 있었는데...수돗가도 변소도 항상 붐비는 탓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일을 해결할 수 있었어요. 우리 방문 앞엔 툇마루가 붙어 있었고, 툇마루는 수돗가에서 물 받을 사람들이 대기하는 장소였죠. 수도는 늘 틀어놓은 상태로 물을 받아도 항상 사용량에 못 미쳤지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수돗물 흐르는 소리, 사람들 떠드는 소리에 잠시도 조용한 시간이 없었던 곳이었지만, 우리 방은 창호지 바른 문이 안과 밖의 경계선이었으므로 그 소음을 고스란히 견뎌낼 수밖에 없었답니다. 소음 속에서도 우리 큰아들은 태어났고 거기서 돌잔치까지 치렀네요.
두 번 째 셋집,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했죠. 그땐 이사 갈 때 방바닥에 깔았던 비닐 장판도 걷어가지고 가던 시절입니다. 넓혀간 방엔 장판이 모자라네요. 돈 아끼느라고 비닐장판 부족한 분량만 사서 헌 장판과 이어 깔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이사했는데 비닐장판 걷어가지고 다녔지요. 그땐 어떤 물건이든 아주 너덜너덜 해 질 때까지 쓰다가 더 이상 못쓰겠다싶어져야 버렸지요. 그 집에선 우리 둘째 아들을 낳았네요. 그렇게 우린 4인 가족이 되었습니다.
남편 봉급은 4인 가족이 살아가기에 빠듯했어요. 미래를 생각하면 저축도 해야 하는데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돈 벌 일을 찾아봤죠. 애 딸린 엄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수출품 뜨개질이 있었어요. 뜨개질은 내가 자신 있는 일, 당장 일감 받아 왔지요. 그런데 아이가 자는 동안 틈틈이 하는 일은 능률이 안 오르네요. 일은 조금 밖에 못했으면서도 돈 나오는 날이면 남들보다 적은 액수에 엄청 열 받곤 했습니다.
그 시대의 주부들은 남편 봉급만 바라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돈 벌 수 있는 일감이 필요했고 수출품뜨개질은 필요충족 조건이 맞아떨어졌던 거죠. 그래서 그 일 전국 알뜰 주부들의 부업이 되었습니다. 나는 남편의 발령지를 따라 이사하고도 뜨개질 손에서 놓질 못 했지요. 그렇게 수년간 돈 몇 푼에 매어 돈 돈 돈하며 살다가 건강을 해치고 말았네요, 뜨개질하는 자세가 문제였나 봅니다. 의사선생님 진단, 허리디스크 (요추4~5번 추간판 탈출증)랍니다. 나이 45살에 허리수술을 받았습니다. 지난세월 돌아보니 나의 삶, 몸이 부서지도록 아등바등 살았네요. 그렇지만 지금은 우리나라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직장인으로서의 남편은 아주 성실한 사람이었죠. 가정에 충실했던 그는 아마 직장에서도 그러했을 겁니다. 그 결과 모범공무원상(2003년. 고건 국무총리)도 받았고, 정년퇴임할 땐 홍조근정훈장(2006년, 노무현 대통령)받았습니다. 교직생활 36년 만에 정년퇴임을 맞았습니다. 그는 그간 보람도 있었겠지만 힘든 일도 많았을 테지요. 젊음을 앗아간 36년, 곁눈질 한번 안하고 걸어온 외길인생, 남자라는 이유로 가족부양의 짐을 내려놓을 수 없었던 사람...이제 그는 연금 수혜자가 되었고 편안한 노후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이젠 출근시간 맞추느라 동동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이 편한 시간에 세예학원으로 향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돌아서는데 아파트 마당에 사다리차가 보이네요. 누군가 이사를 하나봅니다.
이사 풍경 예전과 아주 다릅니다. 포장 이사 깔끔하게 합니다. 쓰던 비닐장판까지 둘둘 말아 싣고 가던 너절한 이삿짐은 내 기억 속에나 남아 있지요.
이사 뒤끝 풍경도 옛날과 다릅니다. 불리수거 딱지 붙은 가구들이 쓰레기장에 쌓이는 것도 예전엔 못 보던 풍경이죠. 저 물건들 버려졌지만 아주 멀쩡한 가구들입니다. 아까운 생각에 자세히 살펴봤지요. 그렇지만 예전처럼 주워올 생각은 접었습니다. 나의 품격은 스스로 높여야 하니까요.
지금 나는 품격을 갖춘 노인인가봅니다. 노인 복지관에 가서 교양강좌나 건강 프로그람에 참여하고, 컴퓨터 스마트폰으로 정보 교환을 하고, 음악, 미술, 운동 등등.. 취미생활을 하고, 주1회 봉사활동에 참석하고, 가끔씩 손자들 보러 아들집에도 다녀오고...나의 삶, 이젠 연금수급자 남편 덕분에 느긋하고 여유롭습니다.
2015년 4월 3일 글: 이복자
첫댓글 성실히 살아온 모습 잘 그려 놓았구나! 수고!
이 글이요. 공무원연금공단 연금지 수필공모전에 출품했던 작품입니다. 결과는 낙방먹었어요. ㅎㅎㅎ
꾸준한 공부.
노력.
연금수급자 하루의 삶입니다 ㅎ
국민들수명이 길어져서 나라에서 연금 지출하기 힘들다지요?ㅎㅎㅎ
우리같은 수급자는 좋지만...
@수백 다행입니다.
수백님............ 멀지않아 교사,교장,공무원,,,,,,,,,,,,,,,,, 연근개혁은 필수입니다.
먼저 받은 분들은 ..................... 대한민국 기초를 만드시냐.... 고생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