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열 8순 인생회고 글 3-휘천이 너른 바다 되어 [이효진]
[편집자 註]
아래는 이효진 동기가 2015년 6월2일 발간한 자신의 회고록 서문입니다. 대열 동기생 각각 ‘8순 마지 인생의 회고 글’을 모집하는 일환으로 편집자가 청해서 여기에 싣습니다. 역사자료 편집장 김명수
휘천·輝川이 너른 바다 되어
◇휘천·輝川 이효진 삶의 이야기◇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인내하라! 너희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다.
적응해라! 너희는 다양한 삶의 진수를 맛 볼 것이다.
그리고 바닥의 의미를 언제나 마음에 새겨라!
절망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
인생 제1막 중 2%
아쉬움을 채우고자 합니다.
파란 하늘에 윤기 나는 청록색 생명력이 온 천하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도 날마다 조그마한 변화가 있어 갑니다. 날씨같이 최근
저희 부부도 날마다 변화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뒤늦게 우리
곁에 온 손주 다세가 어느 날 갑자기 일어서다가 엉덩방아를 찧더니 이제
는 방긋 방긋 미소를 지으며 걷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 우리 부부는
요즘 아기 공주 덕분에 날마다 웃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하나, 지난 8개월 동안 우리 부부를 활기 있게 만든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저의 삶을 정리 기록하는 일이었습니다. 제 아이들이 아빠 칠순
을 기념하여 기록을 남기자고 했을 때 저는 ‘과연 내 이야기에 기록할 만한
것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지만 자녀들이 강권하다 싶이 하여 이 작
업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정리하다 보니 정말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거미줄이 쳐져 버린 기억의 보물창고에서는 날마다 금쪽같은 삶의 편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감자넝쿨같이 끝없이 이어지는
삶의 이야기들이 반짝거리며 제 앞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낡고 녹 쓸어 버린 이야기들은 제 기억에서 생생하게 재생되어 갔습니다. 마치 원석을 갈고 닦아 보석을 만들듯, 말입니다. 저는 이 작업에
임하면서 날마다 흥분과 감사와 경이를 느끼며 제 삶의 보석들을 갈고 닦
으며 그 의미들을 새겨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느낀 것이 있습니다. 부족한 제가 오늘이 있기까지 얼
마나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는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너
무나 감사해야 할 분들이 많았습니다. 조금 멀리는 어린 시절 저를 위해
이른 새벽 시루를 머리에 이고 새벽정성을 드리셨던 어머니의 염원이 있었습니다.
가까이는 제 아내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제가 가지지 못한 많은 장점
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큰 대과 없이 공직과 나의 사회생활을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아내의 내조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언제 보아도 정겨운 내 아이들. 창훈, 수민, 금향, 며느리 혜정,
사위 희만, 호진 그리고 내 사랑하는 7남매와 가족, 조카들도 있었습니다.
내 삶의 절반이상을 함께 보냈던 청와대와 거쳤던 일터의 동료, 선배,
후배님들. 그리고 광주고, 육군사관학교 동료, 선후배님들. 일일이 거론할 수조차 없습니다. 하나하나 잊을 수 없는 내 삶의 동반자들이었고 훌륭한 조력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조그마한 기록을 통해 이분들을 기
억하므로 조그마한 감사의 정을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졸저 『휘천이 너른 바다 되어』에서 휘천(輝川)이란 선친께서 저에게 지어주신 호입니다.
멀리 반짝거리며 아름답게 조용히 흘러가는 강이라는 의미입니다. 선친께서는 제 성품을 아신 것 같습니다. 내성적 성격에 평범한 교사를 꿈
꾸었던 저이기에 평화롭게 흐르는 은빛 강 같은 일생을 살라고 붙여 준 것
같습니다. 그러던 제가 육군사관학교를 택하므로 저는 서서히 삶의 거치
른 대양으로 나갈 준비를 한 것 같습니다.
이어 뜻하지 않는 국가의 부름에 운명적으로 임해야 했던 청와대 시절.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로 국가원수의 안위를 지키면서도 격동의
정치 현장에서 부침하는 영욕을 보며 격랑의 파도 속에서도 이를 넘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이어 산업단지공단에서는 조직의 수장으로, CEO로서, 국가의 산업
정책을 선도한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땀 흘렸습니다.
그러나 아직 2% 부족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졸저 『휘천이 너른 바다되어』를 기록하면서 저는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습니다.
저의 인생 1막을 돌아보니 나름 삶의 원칙을 지키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헌신, 근면, 성실이라는 좋은 덕목으로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결국은 제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내 주변을 뒤돌아볼 겨를 없이 지내온 바쁜 삶이
나를 위함 이었구나 함을 느꼈을 때 저는 2%의 아쉬움을 남겨두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인생 2막은 이 부족한 2%를 채우는 삶. 나보다 내 주변을 위한 헌신과 섬김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동안 나 자신에 충실하여
나에게 돌아온 감사 기쁨의 열매를 이제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 나를 필
요로 하는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 인생의 2% 부족이 채워지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의 조그마한 이야기는 저의 자랑을 하고자 함이 결코 아닙니다. 제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기준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새로움
을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이죠.
또 하나 있습니다. 먼 훗날 제 후손 중 어느 누군가 이 책을 접하고
‘우리 조상 중에 이렇게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사셨던 분이 계셨구나.’ 를
느끼게 되면 저는 만족합니다.
끝으로 부족한 아비가 지나온 길을 회고해 보므로 삶에 보람을 가질
수 있게 해준 내 아들 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창훈아, 며느리 혜정아, 수민아, 사위 희만아, 금향아, 그리고 사위
호진아. 삶에서 중요한 것은 인내, 순응, 그리고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 한다. 너희들의 고마운 뜻으로 남겨진 아빠의 조그마한 이
기록에 이 이야기들을 잘 숨겨 놓았다. 이제 찾는 것은 너희들 몫이다. 너
희들이 힘들고 외로울 때 아빠의 땀과 눈물을 기억해 다오. 이 책을 너희
들에게 주고 싶은 의미는 바로 이것이니까.”
2015년 5월 신록 어느 날
이 효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