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사라’를 보고
티베트어 ‘삼사라(Samsara)’는 윤회(輪廻)라는 뜻인데, 이는 일정한 깨달음 또는 구원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또는 구원된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해서 이 세상으로 다시 탄생한다는 교의 또는 믿음이다.
2001년도에 나온 ‘삼사라’라는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은데 나는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 특히 여주인공의 말이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아서 영문 시나리오를 참고해서
자세히 인용해 본다.
주인공 타시는 다섯 살에 (티베트) 승려 생활을 시작했다. 20년 후,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밀실에서
홀로 3년 3개월 3일간의 고된 수행을 마치지만, 어쩐 일인지 전에 없던 억누를 수 없는 성욕을 느낀다. 그러던 중 마을에서 만난 부농의 딸인 아름다운 처녀 페마에게 한눈에 반하고 세속을 알아야 욕망도 포기할 수 있다며 절을 떠난다. 절을 떠나 농가에서 임시 노동자로 일하다가 페마를 다시 만난다. 이미 약혼자가 있던 페마는 타시와의 운명적인
만남에 끌려 그와 결혼하여 아들, 카르마를 낳고 몇 년 동안 행복하게
지낸다. 타시는 농민들을 속여 부당 이득을 취하는 지역 상인 다와에게 곡식을
팔지 않고 직접 도시 상인에게 내다 팔아서 부를 쌓고 지주가 된다. 어느 날 함께 절에 있었던 동료 승려가 방문하여 스승이 열반에 들었다고 알리고 “우린 다시 꼭 만날 것이다. 우리가 재회하는 그날 수천 가지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과 한가지 욕망을 정복하는 것 중 어떤 게 더 중요한지를
알게 되겠지.”라는 글이 적힌 스승의 편지를 전한다. 며칠 후, 잠자는 아내와 아들을 두고 그는
절로 돌아간다. 잠에서 깨어나 남편이 떠났음을 알게 된 페마는 길목에서 기다리다가
그를 만나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야쇼다라, 이 이름을 아세요? 싯다르타, 왕자 고타마, 석가모니, 부처.... 다들 이 이름은 알죠! 하지만 야쇼다라는 몰라요. 야쇼다라는 싯다르타와 결혼했지요. 그녀는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했답니다. 어느 날 밤 싯다르타는 득도하여 부처가 되려고 한마디 말도 남기지 않고 그녀와 그들의 아들, 라하울라가 잠들어 있는 사이에 그들을 두고 떠났어요.
그녀는 싯다르타가 고통에 대해 깨닫기 훨씬 전부터
병자들을 가엾이 여겼어요. 싯다르타가 득도한 건 그녀의 덕이 아닐까요? 야쇼다라가 남편과 아들을 두고 떠나고 싶었을지도 몰라요. 싯다르타에게 버림받은 뒤 그녀가 분노와 외로움과 슬픔에 빠져 살았다는 걸 그 누가 알아주죠? 아무도 그녀에겐 관심조차 없었어요! 야쇼다라는 아들이 아빠는 어디 갔냐고 끊임없이 보챌 때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한밤중에 자식을 버리는 어머니는 없어요. 남자만이 그럴 수 있죠. 오직 남자만이.
그 후로 야쇼다라에겐 외길뿐이었죠. 금욕적인 삶을 살아야 했어요. 머리를 깎고 여승으로 살았죠. 당신의 불도를 향한 열정이 내게
보여준 사랑만큼만 강했어도 당신은 지금 이 몸으로 부처가 됐을 거예요.”
‘어느 곳에나 도가 있다’는 걸 아는 페마가 타시에게
굳이 절로 돌아가지 않아도 속세에서 득도할 수 있으니 집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하는 줄 알았더니 영화의 결말은 내 짐작과는 아주 달랐다. 페마의 말을 듣고 타시는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페마. 날 용서해 줘. 당신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게.”
페마는 말없이 보퉁이 한 개를 타시의 무릎에 떨어뜨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을 달려 집으로 돌아간다. 타시가 그걸 끌러보니 음식이
들어 있는 발우(=스님의 밥그릇)와 염주가 있었다. 타시는 그걸 바랑에 넣고 절로 돌아간다.
페마에게는 절로 돌아가는 타시의 행동은 자신에 대한
모욕일 수도 있었을 것이며, 남편에게 헌신한 크기에 비례해 배신감을 느끼는 정도도 컸을
텐데, 타시를 놓아주는 게 뜻밖이었다. 만약에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득도를 위해 떠난 (비겁한) 남자 타시가 부처가 된다면 그건 페마 덕일 것이다.
싯다르타는 왕자의 몸으로 부귀영화를 버리고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러운 아들을 떠나 출가하여
설산에서 고행하여 득도했다. 이게 내가 어려서부터 알고 있던 얘기다. 물론 그분의
다른 호칭인 석가모니와 부처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분의 아내였던 아쇼다라에 관해서는 이름조차 들어 본 적이
없다. 영화를 보고 나서 여러 자료를 찾아보니 아쇼다라도 대단한 분이었다. 이 영화의 대사처럼 싯다르타가 득도한 건 아마도 아쇼다라 덕분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쇼다라가 불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건 왜일까?
(2017년 1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