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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산 사건 이후
참고말씀: 마16:21; 막9:3,14,29; 눅9:28~37; 고전8:9; 계1:13~16
읽을말씀: 마17:1~27
주제말씀: 마17:1,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첫째, 기도에 힘쓰며 늘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미17:1,2)
예수님은 왜 세 제자들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까? 기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1절) /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눅9:28)
언제 그들 앞에서 변형되셨습니까? 기도하실 때입니다.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눅9:29 상) 어떻게 변형되셨습니까? 얼굴이 해 같이 빛나셨으며 그 입으신 옷이 빛처럼 희어졌습니다.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2절) /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뺄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개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막9:3) /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눅9:29 하)
그러나 사실 이는 변형되셨기보다는 본래에 가지셨던 모습으로 잠시 돌아간 것뿐입니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같고...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계1:13~16)
무엇을 놓고 기도하셨습니까? 장차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실 것, 즉 당신의 사명 감당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리 말할 수 있습니까?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장차 당신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 새.”(눅9:30,31)
왜 베드로는 자신도 모르는 말들로 횡설수설했습니까?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4절) 기도해야 할 시간에 기도는 하지 않고, 오히려 깊이 졸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 두 사람이 떠날 새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되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하더라.”(눅9:32,33)
한편,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5절) 예수님을 힘입어서 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7절)
기도에 집중할수록 누구만 보이게 됩니까? 예수님입니다.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게 되더라.”(8절) /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눅9:36 상)
예수님과 세 제자들은 언제 산에서 내려왔습니까? 이튿날입니다.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 새.”(눅9:37) 내려오시면서 제자들과 무슨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오리라 한 엘리야가 세례 요한이라는 점입니다.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셨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서야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11~13절)
그 시간 산 아래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까? 한 아비가 간질로 고생하는 아들을 데리고 왔으나 제자들이 능히 고치지 못했고,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15,16절) 서기관들이 이를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막9:14)
예수님은 왜 그들이 고치지 못했다고 했습니까?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19,20절)
믿음이 얼마만큼만 있어도 능히 고칠 수 있다고 하셨습니까? 겨자씨 한 알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20절 하)
그러니 우리는 무엇에 힘써야 합니까? 믿음의 기도입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 그리고 어떤 기도를 해야 합니까?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만큼만 믿음을 허락해주시도록 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기도에 힘쓰며 늘 기도로 깨어 있습니까? 사명 감당을 위해 기도하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힘입어서 그리 하고 있습니까?
둘째, 부활신앙으로 무장하고 불필요한 오해를 피해야 합니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념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마17:22,23)
예수님은 언제 다시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습니까? 갈릴리에 모였을 때입니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념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22,23절) 이는 빌립보 가이사랴 이후(마16:21)로 몇 번째 말씀하신 것입니까? 두 번째입니다.
이에 대해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매우 근심스러워했습니다.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23절 하) 어째서입니까? 아직까지 구원의 도를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부활신앙으로 무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이처럼 부활신앙으로 단단히 무장해야 합니까? 우리에게 닥칠 인생의 고난들을 능히 이겨내기 위함입니다.
가버나움에 이르셨을 때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성전세 납부 문제가 붉어졌습니다.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성전세)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24,25절)
사실 예수님은 어떤 권리를 가지고 계셨습니까? 성전세를 내지 않을 권리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이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25,26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하셨습니까? 지금까지 그리해 오셨던 것처럼 이번에도 성전세를 납부하셨습니다. 어째서입니까? 그들로 하여금 실족하게 하기 위함, 즉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함입니다. 참고로, 성전세는 어떻게 마련하셨습니까? 베드로로 하여금 낚시하여 잡은 물고기 입에서 취함으로써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27절)
이는 무슨 말씀을 연상시킵니까? 우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을 실족시키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8:9)
그러므로 우리도 어찌 해야 합니까? 우리의 권리를 온전히 깨닫고 누리되 삼가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즉 우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을 실족하게 하지 않도록 삼가고 또 삼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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