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기운(氣運)이 전해지는 한 주(週)의 시작.
아파트 베란다에 놓아 둔 화분들이 며칠 새 딴판이 되어가는 걸 보았고
흙빛으로 움츠러들어 있던 이파리가 기지개를 켜면서 곱고 연한 연두 빛으로
바뀌어가며 창가을 향해 비스듬히 키가 큰 걸 보니 따사해진 볕이 반가워
해바라기를 닮아 가는 걸 보았다.
고물고물 자라나는 새순을 타고 봄 기운(氣運)이 한 주(週)의 시작.
오늘은 눈(雪)이 비로 바뀌고 얼음(氷)이 녹아 물(水)이 된다는 우수(雨水).
봄바람이 불고 새싹이 나기 시작하는 절기 우수(雨水).
자연의 이치(理致)는 거스를 수 없는 것.
봄은 봄인가 보다. 미물(微物)들이 먼저 반기는 걸 보면...
까치들이 쌍쌍이 날며 온갖 날갯짓을 하는걸 보면 말이다.
차창 밖으로 농촌 들녘을 바라보니 된서리가 내린 듯 해 보이고...
저 번 산행 때 돌아오는 차 중에서 오늘 산행은 시산제(始山祭)를 겸한
산행이라고 예고하면서 많은 분들이 참석해주기를 당부하더니...
보배로운 섬. 제주도, 거제도 다음으로 큰 섬.
우리나라에서 세 번 째로 큰 섬 진도(珍島)에 있는 첨찰산(尖察山).
진도는 말 그대로 보배로운 섬이며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섬이려니.
고려시대에는 삼별초 군사들이 대몽항쟁을 벌였던 진도가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버스는 “영암금호방조제”에서 멈췄다.
▲ “영암 금호방조제” 한쪽에 자리한 “해목 최일환” 시비(詩碑)
쪼그렸던 다리와 허리를 펴고 진도대교(珍島大橋)에 들어서니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다.
다리의 끝(해남 쪽)에서는 거북선이 반겨주었으며
반대 끝(진도 쪽)에서는 좌우에서 누렁이(黃狗)와 흰둥이(白狗)가 반겨 주었다.
400 여 년 전(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鳴梁大捷)은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대첩(大捷)이 아니던가?
“아직도 12척의 배가 있으며 죽음을 불사하는 미천한 신하가 있다”고.
“상유12 미신불사”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떠 올랐다.
허름한 배 12척을 손질하여 왜선 133척을 대파한 것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전적(戰績)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서 진도 땅에 들어섰다.
쌍계사(雙溪寺)는 첨찰산에서 두 줄기의(북쪽과 동쪽) 계류가 감싸 안은 절로
신라시대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고.
산 위에 봉수대가 있다하여 봉화산이라고도 불리기도 한 첨찰산(485m)은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동백나무 등 상록수가 우거진 자연림이 울창한 산으로 느껴졌다.
쌍계사 옆 등산로 길을 오르기 전에 “해우소(解憂所)”에 들렀다.
“해우소(解憂所)”...
절집에 딱 어울리는 문패가 아닌가.
화장실이니, 측간이니, 변소니 W․C니 보다 훨씬 정감이 가는 문패다.
쌍계사 옆 계곡을 따라 걸으니 이른 새벽에 일어나 걸어가는 노 스님 같은 기분이 들었다.
봄눈 녹아 흐르는 계류의 물소리가 너무도 잔잔하게 들려 심란한 마음이 가라 앉은 듯...
한참을 걷다가 한 여성 산우가 어찌 으스스하다고 했다.
동백나무 등 상록활엽수가 우리 키를 두 배 이상은 훨씬 넘을 나무들이
우거져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이 자연스레 나올 법도 하였다.
동백나무, 후박나무, 참가시나무 등 상록활엽수가 어울어져 어둑할 만큼
우거진 숲이 신선한 산소를 내품어 상쾌한 기분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좋았다.
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걷고 또 걸기를 얼마후에
상록수림을 벗어나니 중턱부터는 급경사를 이뤘으며 소사나무, 서나무 등
활엽수가 군락(群落)을 이뤄 나목(裸木)이 되어 시원한 갯바람을 실어다
낯을 간지럽혀 청량감을 느껴보기도 하고...
▶ 노산 이 은 상 시인은 이렇게 읋었다오.
산악인은 무궁한 세계를 탐색한다.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정열과 협동으로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
산악인은 대자연에 동화되어야 한다.
아무런 속임도 꾸밈도 없이 다만
자유와 평화 사랑의 참 향한
행진이 있을 따름이다.
정상에 올라서 멀리 가까이 바라보니 “다도해 국립해상공원”의 한 축이 한 눈에 들어왔다.
“한 폭의 그림 같다” 라는 수사로는 모자랄 것 같은 아름다움이다.
섬이라고 하지만 나지막한 구릉의 땅으로 옛 부터 농사가 성하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땅이 기름지다해서 한 때는 옥주(沃州)라 불리기도 했고
“한 해 농사지어 3년을 먹는다”란 말도 있다고...
농사가 잘되어 애써서 바닷일을 할 필요가 없어 4면이 바다이지만 해산물이 귀하여
“해변산중(海邊山中)” 이란 말도 있다고...
▲ 봄꽃이 따로없네 그려...웃음 꽃이 봄 꽃일세.
▲ 아하! 향촉대를 이렇게!... 百聞以不如一見이라...
▼ 경건하고 엄숙한 자세로 제(祭)를 올리고 있는 모습.
▶ 산신(山神) 이시여! 약한 게 인간이랍니다. 살펴 주소서!!!
▶ 엄숙하고 단정한 모습으로...어느 여성 산우(山友)가 가장 예쁘게?
檀紀 4341년 西紀 2008年 戊子年 2月 19日, 희망을 밝히는 찬란한 새해를 맞으며,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 산우회” 會員 一同은
戊子年 尖察山 始山祭를 거행함에 앞서
天地神明과 尖察 山神께 업드려 고하나이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천지신명(天地神明)이시여!
금일 우리는 선현의 발자취가 은은히 느껴지는 이곳 정상에서 지난 한해를 감사하고
반성하며 내일의 번영과 도약을 다짐하기 위한 일념으로 전체 회원의 정성을 모아
성스러운 祭를 올리나이다.
거듭 비옵건데 戊子年 한해도 서로 화합과 사랑이 넘치게 하여 주시옵고
무사한 산행이 되도록 업드려 고하나니, 천지신명(天地神明)이시여!
이 한 잔 술을 흠향하여 주옵소서.
檀紀 4341年 西紀 2008年 2月 19日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 산우회” 회원 일동 拜.
산 노래 : 산에서 살면서
1.
산에서 살면서 산처럼 살자던 우리들 모두 모여 여기 왔네
우리는 간다 저 높은 산에 정든 이 산정위에 우리 또 왔네.
2.
산새들 노래는 우리를 반기고 계곡에 울려 퍼진 yodel소리
우리는 간다 저 높은 산에 정든 이 산정위에 우리 또 왔네.
나 홀로 뇌까려 보았다.
시산제(始山祭)를 마치고 진도 기상대와 두목재를 거쳐 덕신산(386m) 부드러운
능선(稜線)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 덕신산 초입지... ▼ 청미래 덩굴(명감나무, 망개, 토복령)
온통 산 허리가 소사나무와 서나무 군락으로 이루어진 화개봉(385m), 학정봉(390m)를
넘어 주차장에 당도 하였다.
진도하면 얼른 떠오르는 것이 이 고장 사람들은 노래를 잘하고 글씨도 잘 쓴다는 것.
그렇다. 노래, 놀이, 굿, 그림, 글씨다.
강강술래, 남도들노래, 씻김굿, 다시래기 등 네 종목이 국가지정중요무형문화재가
많은 지역도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디 이 뿐이랴?
쌍계사 옆에 있는 운림산방은 어떤 곳인가.
서화예술의 본당이라고 해도 이의를 걸 사람은 없으리라.
조선 후기 남화의 대가로 불리는 소치 허 련이 만년을 보낸 곳이 운림각이 아니던가.
셋째 아들인 미산 허 형, 손자인 남농 허 건이 태어나 남종화의 대를 이은 곳이며,
의재 허백련이 그림을 익힌 곳으로서 한국 남화의 성지로 불린 곳 이라고.
왕고개 온천에서 봄볕에 흘린 땀을 씻고 떡국으로 마무리...
역사 탐방이나 다름없는 유익한 산행.
시산제를 준비한 집행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