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박용래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시집 『강아지풀』, 1975)
[작품해설]
이 시는 겨울밤에 떠오르는 고향의 모습을 간결한 소묘법으로 보여 주고 있는 작품이다. 시인이 그려 놓은 이 소묘 속에서 고향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은 여백의 공간 속으로 침윤되어 있을 뿐, 그 감정의 크기나 깊이가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쓸쓸함과 애틋함 또는 삶의 무상감이 배경처럼 작품에 깔려 있으나, 그것이 감상적 차원으로 확산되는 것을 4행의 절제된 시 형식과 압축된 표현으로 적절히 제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눈’ ⸱ ‘달빛’ ⸱ ‘물’ ⸱ ‘바람’ 등의 전원 상징의 시어와 ‘잠’ ⸱ ‘고향’ ⸱ ‘마늘밭’ ⸱ ‘추녀’ ⸱ ‘발목’ 등의 인간적 체취의 소재를 결합시키는 방법으로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 향수를 표출한다. 이러한 근원적 향수는 ‘눈’ ⸱ ‘달빛’의 시각적 이미지와 ‘물’ ⸱ ‘바람’의 청각적 이미지의 대응을 통해 그리움과 외로움의 정서를 유발시킨다. 그러므로 자연의 본질적 고독과 인간의 생래적(生來的) 외로움이 전원 상징의 시어 속에서 향수와 그리움으로 변모해 가는 것이다.
이처럼 박용래의 시는 전원 상징의 시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교감과 친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그것들의 본질이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근원적 향수와 그리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보여 준다.
[작가소개]
박용래(朴龍來)
1925년 충청남도 부여 출생
강경상업학교 졸업
1956년 『현대문학』에 시 「가을의 노래」, 「황토(黃土)길」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61년 제5회 충남문학상 수상
1969년 『현대시학』 제정 제1회 작품상 수상
1980년 제7회 한국문학작가상 수상
1980년 사망
시집 : 『싸락눈』(1969), 『강아지풀』(1975), 『백발의 꽃대궁』(1980), 『먼 바다』(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