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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군자보다 칠보를 더 좋아하더라 – 군자산, 칠보산
1. 앞은 보배산, 오른쪽은 칠보산, 그 뒤는 희양산, 맨 오른쪽 뒤는 뇌정산
하늘이 땅에이엇다
끝잇는냥 알지마소
가보면 멀고멀고
어늬끝이 잇으리오
님그린 저하늘같해
그릴수록 머오이다
―― 노산 이은상(鷺山 李殷相, 1903~1982), 「그리움」 3수 중 제2수
주) 나에게 그리움의 대상은 때로 산이다.
▶ 산행일시 : 2023년 6월 25일(일), 맑음, 무척 더운 날
▶ 산행코스 : 솔밭주차장,437m봉,전망대,871.9m봉,군자산,663.5m봉,도마재,도마골,떡바위다리,문수암골,
청석재,칠보산,750m봉,활목고개,윗활목골,방아골,쌍곡폭포,절말주차장(쌍곡휴게소)
▶ 산행거리 : 도상 14.3km
▶ 산행시간 : 6시간 50분
▶ 교 통 편 : 다음매일산악회 버스 타고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7 : 00 – 양재역 1번 출구 100m 전방 스타벅스 앞
07 : 14 – 죽전 간이정류장
08 : 00 – 금왕휴게소( ~ 08 : 20)
08 : 50 – 솔밭주차장, 산행시작
09 : 25 – 541.2m봉 돌아 넘은 안부, 이정표(주차장 1.1km, 군자산 1.4km)
09 : 53 – 전망대
10 : 13 – 871.9m봉
10 : 36 – 군자산(君子山, △946.9m)
11 : 12 – 663.5m봉
11 : 22 - ╋자 갈림길 안부, 도마재, 이정표(군자산 2.0km, 도마골 2.0km)
12 : 00 – 도마골 입구, 도로
12 : 12 – 떡바위 입구, 떡바위다리
12 : 20 – 계단 오름 직전, 점심( ~ 12 : 40)
13 : 20 - ╋자 갈림길 안부, 청석재, 이정표(떡바위 2.1km, 칠보산 0.6km)
13 : 51 – 칠보산(七寶山, 779.0m), 휴식( ~ 14 : 00), 이정표(절말주차장 4.3km)
14 : 19 - ╋자 갈림길 안부, 활목고개, 이정표(각연사 2.1km, 절말 3.6km)
15 : 27 – 쌍곡폭포
15 : 40 – 절말주차장(쌍곡휴게소), 산행종료(16 : 00 – 버스 출발)
17 : 25 – 덕평휴게소( ~ 17 : 35)
18 : 18 – 양재역
2. 칠보산 지도(1/25,000)
3. 솔밭주차장에서 바라본 하늘벽(아래)와 군자산 북동쪽 지능선
4. 멀리 가운데는 월악산 영봉, 맨 오른쪽은 조령산, 맨 왼쪽은 계명산(?)
5. 멀리 왼쪽은 월악산 영봉, 그 오른쪽은 만수릿지, 그 앞 오른쪽은 조령산
6. 멀리 왼쪽은 계명산(?), 맨 오른쪽 멀리는 월악산 영봉, 그 앞은 박달산
7. 멀리 왼쪽은 계명산(?)
8. 가운데 안부는 제수리치, 그 오른쪽 뒤는 대야산, 멀리 왼쪽은 둔덕산
9. 멀리 왼쪽은 월악산 영봉, 그 앞은 박달산
10. 멀리 왼쪽은 조령산, 가운데는 부봉 연봉, 맨 오른쪽 뒤는 주흘산
▶ 군자산(君子山, △946.9m)
작년 이맘때 군자산과 남군자산을 가면서 왔던 길이다. 그때 첫 발걸음부터 가파른 오르막에 된통 데였던 터여서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또 오고 말았다. 당초에는 다음매일산악회에서 가기로 한 두타산과 베틀봉이
모객 저조로 취소되는 바람에 군자산과 칠보산을 연계하는 산행으로 갈아탔다. 그렇다고 칠보산만 오르기에는 여기
까지 오는 발품이 아깝다. 이제는 어디쯤 올라가면 조망이 트이고, 산허리 돌아가고, 바윗길 또는 데크계단을 오르
고 등등 훤히 안다.
그래서 더 힘들다. 모르면 호기심이 생겨 걸음걸음 따분할 겨를이 없을 것인데 다시 오르기 싫은 가파른 돌길을
기다시피 하니 염천에 더하여 비지땀을 쏟는다. 땅에 코 박으니 후끈한 지열에 얼굴은 금방 달구어져서 벌겋게 되
고, 바지자락은 땀에 젖어 칙칙 감기니 걷기가 여간 거북하지 않다. 솔밭주차장에서 가파른 계단 길을 15분쯤 오르
면 지능선에 올라서고 화석바위 꼭대기의 하늘벽 전망대라고 하는데 등로를 벗어나는 것 같아 발걸음 스텝이 엉킬
까봐 찾아보지 않고 그냥 간다.
돌길이 이어진다. 오늘 군자산과 칠보산을 다 가겠다고 한 일행은 불과 6명이다. 산악회에서 공지한 산행거리는
15km이다. 주어진 시간은 7시간이다. 이에 맞추려면 빠듯할 것 같아 시작부터 조급하다. 일단 내가 서둘러 맨 앞장
서서 간다. 산길은 오가는 사람이 없어 한적하다. 437m봉에 이어 541.2m봉도 왼쪽 사면으로 길게 돌아 오른다.
직등하는 능선은 금줄을 치고 막았다. 일단의 등산객들이 고맙게도 길을 양보한다. 맨 뒷사람이 길을 비켜주세요
하고 소리치자 앞서가던 여러 일행이 일제히 길을 비켜준다.
바윗길 오르막에 바위 턱이나 나무그루터기를 움켜쥘 때는 독사라도 집을까봐 미리 주변을 살피는 등 각별히 조심
한다. 541.2m봉 돌아 오른 안부를 지나고 한 피치 오르면 수렴 사이로 조망이 언뜻언뜻 트이지만 섣불리 카메라를
꺼내지 않는다. 분초를 아낀다. 좀 더 가면 데크계단으로 길게 덮은 암벽이 나오고 그 위가 전망대다. 미세먼지가
약간 끼였지만 맑은 편이다. 첩첩 산 너머 월악산 영봉으로 일기를 가늠한다.
전망대 지나 잠시 평탄하다가 바윗길을 기다시피 오르고 사면을 길게 돌아 871.9m봉이다. 지도에는 이 봉우리도
전망대라고 하는데 쉽게 찾지 못하겠다. 노송 그늘 아래 앉아 휴식한다. 흔히 비 오듯 땀을 쏟는다고 하는데, 그 반
대로 비가 올 때면 땀을 쏟듯 비가 온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산정에서 얼음물을 마시는 것이 또한 여름 산을 오르는
이유이다. 물병에 입을 대고 바로 마시면 체할 수도 있어 컵에 따라-그 시간에 가쁜 숨을 고른다-음미하며 마신다.
한 차례 바윗길을 살금살금 뚝 떨어졌다가 박차 오른다. 암릉 오른쪽 사면을 돌아 오르고 등로 약간 벗어나면 솟대
바위다. 그에 기대어 톱날 같은 속리연봉을 조망한다. 이윽고 군자산 정상이다. 삼각점은 ‘속리 23’인데 ╋자 방위표
시만 보인다. 절벽 위 암반에 다가가 첩첩 산을 조망한다. 건너 보배산은 불뚝하고 칠보산이 납작하다. 군자산은 이
근방 뭇 산들의 맹주다. 군자 같은 풍모라 그렇게 부르지 않았을까 싶다.
군자산의 옛 이름은 군대산(軍垈山)이었다고 한다. “삼국시대에는 이 지역에서도 한반도의 패권을 노리는 전투가
벌어졌었다. 하루는 칠성평야에서 백제군과 신라군 간에 전투가 붙었는데, 싸움에서 진 한쪽 장군이 느티나무에
머리를 받고 자결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이곳은 괴주(槐州), 괴양(槐壤) 등으로 불리다가 조선 초기부터 괴산(槐山)
으로 불리게 됐다.”(월간산 2004.10.2.)
곧바로 도마재, 도마골을 향한다. 오른 만큼 내려야 하는 게 정한 이치다. 숲속 바위 섞인 가파른 내리막이다. 무인
지경 줄달음한다. 풀꽃들도 숨죽인 염천이다. 가파름이 주춤하자 잔 너덜길이다. 나지막한 봉봉을 오르내리다
663.5m봉 직전 안부는 ┫자 갈림길이다. 여러 산행표지기는 일제히 왼쪽 사면을 돌아가기를 안내한다. 작년에는
그에 따랐지만 오늘은 직등한다. 무난한 인적 흐릿한 암릉 길이다. 암봉인 663.5m봉 정상은 군자산 남릉의 최고
경점이다.
풀숲과 잡목 숲 헤쳐 가며 바윗길 조심스레 내리고, 사면 돌아 온 길과 만나 한 피치 내리면 ╋자 갈림길 안부인
도마재다. 여기서 도마골 입구까지 2.0km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등로는 골짜기로 가는 게 아니라
오른쪽 사면을 길게 돈다. 하늘 가린 숲속 잔 너덜길이다. 자칫 돌부리에 채여 엎어질라 걸음걸음 예의 살펴가야
하는 너덜이다. 엄청 따분하다. 더러 스틱이 돌 틈에 끼어 빼내느라 엉뚱한 데에 시간과 힘을 쏟기 일쑤다. 그렇게
30분 걸려 도마골 입구인 대로에 다다른다.
11. 앞 오른쪽은 보배산, 그 뒤 가운데는 678.9m봉
12. 앞 오른쪽은 보배산, 그 뒤 왼쪽은 678.9m봉, 멀리 거운데 오른쪽은 대미산
13. 앞은 칠보산, 멀리 가운데는 백화산, 그 앞 오른쪽은 희양산, 맨 오른쪽 멀리는 뇌정산
14. 장성봉
15. 멀리 왼쪽은 둔덕산, 그 앞 오른쪽은 대야산
16. 앞은 칠보산, 그 뒤 왼쪽은 시루봉, 멀리 가운데는 백화산, 그 앞 오른쪽은 희양산
17. 멀리 하늘금은 속리산 연릉
18. 보배산
▶ 칠보산(七寶山, 779.0m)
길 건너는 쌍곡계곡이고 그 주변은 온통 카페 혹은 음식점이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음식점에서 다 막았다.
손님만 출입이 가능하단다. 집집마다 평상을 대여한다고 안내문을 내걸었다. 도로 갓길은 승용차가 꼬리를 물고
주차하였다. 그늘도 그들에게 빼앗기고 땡볕을 고스란히 쬐며 떡바위 가는 길 1.1km를 걷는다. 떡바위를 들먹이는
음식점들이 나오고, 떡바위 칠보산 등산로 입구는 뚫렸다. 무지개 떡바위다리로 쌍곡계곡을 건넌다. 계곡 물가에는
피서객들이 빼곡하니 들어찼다.
확실히 나이에 비례하여 느는 것이 겁이다. 여기 오기 전에 미리 도상으로 칠보산을 갔다. 문수암골과 살구나무골
(방아골) 사이의 능선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였다. 봉봉 오르내림이 그랬다. 아홉 개 봉우리를 넘는다. 저기로 가야
지 하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쪽으로는 등산로를 안내하는 아무런 표지판이 보이지 않았다. 차마 지도만 보고 그리
로 달려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럴 용기가 없는 내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기도 했다.
고개 꺾고 대로로 뚫린 등로를 따른다. 칠보산을 오가는 외길인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대체 떡바위가 어떻
게 생겼는지 둘러보아도 딱히 알아볼 수 없고 수두룩한 바위 모두가 떡바위로 보인다. 떡바위(餠巖)는 쌍곡계곡의
구곡 중 제3곡으로, 거대한 바위인데 그 모양이 시루떡을 잘라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떡바
위는 예로부터 그렇게 불렀다. 월곡 오원(月谷 吳瑗, 1700~1740)의 「호좌일기(湖左日記)」에 나오는 글이다. 호좌
(湖左)는 충청북도를 말한다.
“다파현(多坡峴)을 넘어 사동(寺洞)으로 들어가니 산봉우리가 빙 둘러있고 골짜기가 깊었는데, 나무와 바위들이
푸르게 우거지고 가파르게 솟아 있었으며 수석이 점점 아름다워졌다. 길가의 치솟은 바위가 시내 가운데에 찌를 듯
솟았는데, 그 위의 작은 정자는 축요당(祝堯堂)이라 하였다. 물은 남쪽에서 졸졸 흘러와 바위 서북쪽에 이르러 맑은
못이 되었다. 그 북쪽은 더욱 깊고 넓으며 지극히 맑아 모래와 돌을 셀 수 있을 정도였으며, 경계가 뛰어나게 맑았
다. 점심때까지 머물러 앉아 있노라니 바람 기운이 서늘하여 깊은 가을 같았다. 당 앞에 화봉현(華封峴)이 있어
‘축요당’이라 명명한 것인데, 정장암(鄭丈巖) 호(澔)가 그 정자를 지었다.
그 위로 수백 보 되는 곳에 작은 암자를 지어 선비들이 독서하는 곳으로 삼았다.
시내를 따라 올라가며 층진 너럭바위와 맑고 깊은 물을 자주 보았다. 5리쯤에 이른바 떡바위[餠巖] 언덕이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 두 절벽이 가까이 솟았는데 그 사이로 어지럽게 물이 쏟아져 깊은 못이 되었다. 여기서부터 깊은 웅
덩이와 거대한 바위를 더욱 빈번하게 볼 수 있었다. 2리쯤 되는 곳이 용추(龍湫)로, 너럭바위가 가장 컸고 샘물이
굽어 꺾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내다가 떨어져 웅덩이를 이루었는데 깊이가 대략 몇 장이요 너비가 수십 이랑이었다.
그 동쪽에는 바위 봉우리가 겹겹이 솟아 있었는데, 깎아지른 듯 기이하였다.”
위의 글에서 ‘다파현(多坡峴)’은 지금의 제수리치를 말하고 ‘사동(寺洞)’은 절골 마을이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쌍곡을 쌍계라 불렀고, 쌍곡휴게소가 있는 절말에 이계사(離溪寺), 떡바위에 축요당(祝堯堂)이란 정자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계곡을 철다리로 건너기를 반복한다. 떡바위 입구에서 8분 정도 들어가니 계곡이 약간 멀어지고 계단으로 사면을
오른다. 더는 걷기가 허기져서 계곡 계류에 다가가 옥계반석에 자리 펴고 늦은 점심밥 먹는다. 땀을 하도 많이 흘려
그저 물만 들이키는 판이라 얼음물에 밥 말아 넘기는 게 일거양득 상책이다. 혹자는 오르막 직전에 밥을 먹으면 배
가 불러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뱃심으로 오른다. 계곡은 계속 이어진다. 그래도 아쉬워 내가 가려고 했던 능선을
안내하는 길이나 표지기가 보일까 둘러보지만 이디에도 없다. 마음이 적이 놓인다.
계류가 밭아야 능선이 가까울진대 가도 가도 잴잴거릴지언정 계류는 이어진다. 등로 주변에는 떡으로 보이는 바위
또한 즐비하다. 건폭 지나고 마침내 데크계단 올라 ╋자 갈림길 안부인 청석재다. 왼쪽 보배산 가는 길은 막았고,
반대편 내리막은 각연사 1.7km이다. 칠보산 0.6km. 이제부터 음주산행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을 걸었다. 그러나 별
재미없는 길이다. 암릉은 그 왼쪽이 낭떠러지라 접근하지 못하도록 목책으로 막았고, 등로는 오른쪽 사면 숲속을
돌아 오른다.
칠보산. 너른 공터에 조그만 정상표지석이 있다.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섰다. 동쪽으로 약간 더 가면 조
망이 훤히 트이는 마당바위가 있다. 장성봉에서 막장봉을 넘어 제수리치로 이어지는 장릉과 그 너머로 백두대간
백화산, 희양산, 조항산, 청화산, 속리산이 가경이다. 나는 한 번은 12년 전 8월 염천에 영희언니, 옥지갑 님과 함께
은티 마을에서 마분봉, 악희봉, 시루봉, 보배산을 넘어 서당말 쌍곡계곡으로 갔었다. 도상 11km였으나 등로가 워낙
사나워 9시간이 넘게 걸렸다.
19. 멀리 왼쪽은 계명산(?)
20. 도마재 가는 길의 663.5m봉에서 바라본 군자산
21. 앞 오른쪽은 각연사 뒷산인 678.9m봉
22. 앞 왼쪽은 각연사
23. 칠보산 오르는 중에 바라본 군자산
24. 각연사 뒤쪽 산들
25. 앞은 막장봉 서릉
26. 중간이 막장봉 서릉
27. 가운데 멀리가 희양산, 그 오른쪽 뒤는 뇌정산
칠보산. 어째서 칠보산일까. 산악인 김장호는 ‘명산의 유적을 찾아서’(월간 산, 1998. 6월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
하고 있다.
“칠보란 물론 무량수경(無量壽經)에 나열된 금 ㆍ 은 ㆍ 유리 ㆍ 파리 ㆍ 마노 ㆍ 거거 ㆍ 산호 가운데 파리와 산호
가 법화경(法華經)에서는 진주와 매괴(玫瑰)로 대신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쳐다보는 칠보산 정상부위가 각연사
스님들 눈에 화려하고 찬란한 법열경(法悅境)에 든 그 칠보장엄(七寶莊嚴)으로 비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불서에는 이 산 이름을 또 보개산(寶蓋山)이라 적고 있으니, 그것은 물론 강원도 철원의 같은 이름의 그 보개산처
럼, 그 산 품안의 절에서들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를 지붕삼아 받든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물론 근년에
발간된 안내책자에서들 지도상의 보배산을 이 보개산으로 적고 있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그런 칠보장엄의 모습을 활목고개로 내리는 암릉 길에서 잠깐 볼 수 있다. 하산. 수많은 사람들과 줄지어
내린다. 시끌벅적한 말소리와 배낭에 단 산행표지기가 경향각지에서 온 사람들임을 알게 한다. 예전에 짜릿한 손맛
보던 암릉 암벽은 데크계단과 또는 잔도로 덮어버렸다. 심심하다. 암릉 바위틈 비집은 노송은 예전의 고고한 모습
그대로다. 750m봉 넘고 뚝 떨어져 내리면 ╋자 갈림길 안부인 활목고개다. 시루봉 쪽 등로는 막았다.
절말 3.6km. 줄곧 내리막이다. 대로다. 시간 저축하고자 줄달음한다. 계류 물소리가 들리고 등산객들이 군데군데
모여 있다. 독탕 찾는다. 긴 목교 나오고 그 옆 계류에서 웃통 벗고 등목 하는 사람이 있다. 순찰 중인 국공이 어서
옷을 입으시라고 강권한다. 탁족은 용인되지만 국립공원에서 웃통 벗은 등목은 너무 하지 않느냐며 나무란다. 나는
등로가 계류와 약간 멀어지는 틈을 노려 산죽 숲 헤치고 계류로 간다. 사태골과 합수점이다.
사방 막히고 하늘만 열린 소가 나온다. 독탕이다. 그런데 여기는 피라미(?)가 기다렸다는 듯이 떼로 몰려들어 온몸
을 쪼아댄다. 피라냐가 아니기 다행이다. 간지럽다. 피라미가 입수하는 것을 막는다. 그래도 개운하고 시원한 맛을
한껏 누렸다. 이제는 쌍곡폭포를 보는 일이 남았다. 등로는 임도 수준의 대로다. 쌍곡폭포는 쌍곡탐방지원센터 20m
앞에 있다. 이정표가 안내한다. 암반에 관폭대가 있으나 폭포 상단만 약간 보일뿐이고, 폭포 가까이 접근하는 길은
금줄을 2중으로 치고 막았다.
몰래 금줄을 넘고 폭포 옆 슬랩에 앉아 관폭하는데 경고음이 울리고 알아듣지 못할 방송이 나온다. 쌍곡폭포의 여러
모습을 가까이서 멀리서 위에서 아래에서 카메라에 담고 금줄을 빠져나와 무리 속에 섞인다. 국공 두 분이 방금 전
의 경고음을 확인하러 폭포 쪽으로 간다. 쌍곡폭포에서 절말주차장(쌍곡휴게소)는 10분 거리다. 산행 마감시간 16
시를 20분이나 남겼다. 절말주차장은 등산객들로 북새통이다. 너른 주차장은 꽉 찼고, 버스들은 다른 데서 대기하고
있다가 시간에 맞춰 오곤 한다.
이곳 쌍계에 대한 한시로는 연풍 현감을 지낸 조유수(趙裕壽, 1663∼1741)가 1707년에 지은 오언율시인 「쌍계의
화수암에 사중(思仲)과 함께 가서 방문하다(雙溪華叟巖, 同思仲往訪)」가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떡바위
를 화수암(華叟巖)이라고도 했다. 아래는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의 한문고전자문서비스를 받았다.
靑峽斗千丈 푸른 골짜기는 천 길이나 높은데
幽潭湛一盃 그윽한 못은 한 잔 술처럼 맑아라.
巖空華叟去 텅 빈 바위엔 화수암의 노인이 떠났고
亭敞醉翁來 탁 트인 정자엔 취한 늙은이들 왔네.
晩飯銀鱗入 저녁밥상에 은빛 물고기 반찬 차린다 하여,
歸軒紫馬催 집으로 오는 길에 자색 말을 재촉하였네.
山容暮逾媚 산 모습 저물녘에 더욱 아름다워지니
如別美人廻 미인과 이별하고 돌아오는 듯하네.
주1) 사중(思仲)은 심제현(沈齊賢)의 호(號)이다. 숙종 정해년(1707)에 조유수(趙裕壽)와 함께 이곳에 방문하였다.
주2) 화수암의 노인은 화수암(華叟巖)에 은거하였던 정호(鄭澔)를 가리킨다.
주3) 취한 늙은이들은 송나라 구양수(歐陽脩)가 저주(滁州)의 태수일 때, 빼어난 산수를 사랑하여 취옹정을 짓고
날마다 노닌 것에서 취옹(醉翁)이란 말이 유래하였다. 심제현은 당시 괴산 군수, 조유수는 연풍 현감(延豐縣監)이었
는데, 수령으로서 풍광이 좋은 화수암(華叟巖)에 방문한 것을 빗댄 말이다.
나는 쌍곡을 빠져나와도 날은 무덥고 시간에 쫓기고 사람들에 치이고 하여, 위 시에서와 같은 감흥을 도무지 느끼지
못하겠다. 서울 가는 길. 다음 주에는 어디로 갈까 생각하느라 잠이 오지 않는다.
28. 막장봉 서릉
29. 멀리 하늘금은 속리산 연릉, 왼쪽 뒤는 대야산
30. 앞 왼쪽은 장성봉, 그 뒤 오른쪽은 대야산
31. 칠보산 정상에서 바라본 보배산
32. 쌍곡폭포
35. 쌍곡휴게소 뒤쪽
첫댓글 그리움
♥이은상
뉘라서 저 바다를 밑이 없다 하시는고
백천길 바다라도 닿이는 곳 있으리라
님 그린 이 마음이야 그릴수록 깊으이다
하늘이 땅에 이었다 끝 있는 양 알지마소
가보면 멀고멀고 어디 끝이 있으리요
님 그린 저 하늘 같애 그릴수록 머오이다
깊고 먼 그리움을 노래 위에 얹노라니
정회는 끝이 없고 곡조는 짜르이다
곡조는 짜를지라도 남아 울림 들으소서
군생활을 저 근처에서 했었는데, 지도를 보니 기억이 나네요.
더운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군대 생활을 경치 좋은 곳에서 했군요.
그때는 사람들이 덜 붐볐겠지요.^^
폭염속에서 고생이 많으셨네요. 주변의 산군들을 바라보는 조망권은 좋았지만, 날이 너무 더우니 조심하세요. 이번 주 팔공산은 더 덥다네요^^
폭염과 한판 전쟁을 치르는 날들입니다.
조망을 즐기다 보면 그 순간은 더운 줄도 모릅니다.^^
30여년전 알프스 산길에서 땀내고 작은 폭포밑에서 발 담구었다가 눈총을 받았었지요. 그땐 한국의 산이 그립더군요. 더울 때면 알탕을 할 수 있었으니.ㅎ
이젠 국내 산에서도 여름계곡을 즐기기가 쉽지않아졌군요.ㅠㅠ
이제 점점 몸으로 느끼는 산이 아니라 눈으로 즐기는 산으로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ㅎㅎ 더운 날씨에 대단하십니다...
이제 슬슬 다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