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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1860년에 최제우(崔濟愚)를 교조로 하는 동학(東學)을 1905년 제3대 교조 손병희(孫秉熙)가 천도교로 개칭한 종교.
내용
최제우는 전통적 유교 가문에서 태어나 지방의 유학자로 이름이 높았다. 조선 후기는 국내적으로는 외척(外戚)의 세도정치와 양반·토호들이 일반 백성에 대한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자행하여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민란이 각지에서 발생하였고,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의 무력침략의 위기를 맞던 시대였다.
최제우는 21세에 구세제민(救世濟民)의 큰 뜻을 품고 도(道)를 얻고자 주류팔로(周流八路)의 길에 나서 울산 유곡동 여시바윗골, 양산 천성산 암굴에서 수도하고 도를 갈구하여 1860년 4월 5일 '한울님(하느님)'으로부터 인류 구제의 도인 '무극대도(無極大道)'를 받게 되었다. 따라서 처음에는 도의 이름을 '무극대도'라고만 하였다. 최제우가 포교를 시작하여 많은 교도들이 모이자, 관(官)과 유생들이 혹세무민한다는 구실로 탄압하여 부득이 전남 남원 교룡산성(蛟龍山城)으로 피신하였다. 이 때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많은 저술을 하였다.
특히 1862년 1월경에 지은 《논학문(論學文:東學論)》에서 처음으로 무극대도는 천도(天道)이며 그 학은 서학이 아닌 ‘동학(東學)’이라고 천명하였다. 이로써 동학이라 지칭하게 되었다. 이 해에 다시 경주의 박대여(朴大汝) 집에 머물면서 포교하자, 충청·전라 지방에서까지 수천 명의 교도들이 모여들자 교도들을 조직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1862년 12월 동학의 신앙공동체인 접(接)제도를 설치하고 접주(接主) 16명을 임명하였다. 최제우는 1863년 3월 경주 용담정으로 돌아와 대대적인 포교활동에 나섰다. 접주들로 하여금 교도들을 수십 명씩 동원하여 용담정에 와서 강도(講道)를 받게 하는가 하면, 동학 교단 책임을 맡을 북도중주인(北道中主人)으로 해월(海月) 최경상(崔慶翔:時亨)을 선임하였다.
한편 관의 탄압을 예견하고 그 해 8월 14일에는 도통(道統)을 최경상에게 완전히 물려주었다. 날이 갈수록 동학 교세가 커지자, 놀란 조정은 그해 12월 10일에 선전관(宣傳官) 정운구(鄭雲龜)를 파견, 최제우를 체포하여 이듬해 3월 10일 대구에서 정형을 집행하여 최제우는 41세를 일기로 순도하였다.
천도교는 관의 탄압으로 최제우가 순도한 이후 교세가 급격히 줄어들었으나 제2세 교조 해월 최경상의 노력으로 다시 복구, 1870년경에는 신도수가 수천에 이르렀다.
그러나 영해지방에서 이필제(李弼濟)가 주축이 되어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을 일으켜 1871년 3월 10일 군아(郡衙) 습격과 8월 2일의 문경 초곡 군기고 습격사건으로 300여 교도가 희생되어 또다시 타격을 받았다. 1875년 최경상은 이름을 시형(時亨)으로 고치고 강원도 지방과 충청도 지방의 포교를 시작, 많은 교도를 얻었다. 이때 최시형은 양천주(養天主),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실천적 수도요령과, 위생 등 생활의 합리화를 내세워 민중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그리하여 1880년에는 강원도 인제와 단양 천동에서 《동경대전(東經大典)》과 《용담유사(龍潭遺事)》를 최초로 목판 간행하여 경전종교로서의 기틀을 세웠다. 이후 충청도 지방으로, 1889년경에는 교세가 전라도 지방까지 뻗치기에 이르렀다. 1892년경에 이르자 신앙자유를 내세워 충청도 공주와 전라도 삼례에서 대대적인 민중시위를 벌였는데 이후부터 교세는 급격히 늘어났다.
이듬해인 1893년에는 서울 광화문 앞에서 정부를 상대로 한 종교 자유화와 교조신원을 소청하였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자 3월에는 충청북도 보은 장내리에서 수만 교도들이 모여 보국안민·척왜양이(斥倭洋夷)를 내세운 반봉건·반제국주의적 정치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이 운동 역시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1894년 3월에 이르러 전라도 고부에서 전봉준(全琫準) 고부 접주에 의해 고부민란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전봉준·김개남(金開南)·손화중(孫華中)·김덕명(金德明) 등 지방의 동학 대접주가 공동으로 동학군을 동원, 동학농민운동으로 발전시켰다.
5월에는 전주화약(全州和約)이 이루어져 53곳에 집강소(執綱所:군사위원회 같은 것)가 설치되어 폐정(廢政)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청일전쟁이 일어나 결국 청국이 패퇴하기 시작하자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을 강점하려 들었는데, 이때 최시형은 전 동학군에 기포령(起包令)을 내려 반제국주의 무력항쟁에 나서도록 하였다. 그러나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관군에게 패퇴, 수만의 희생을 내고 막을 내렸다. 이로부터 4년 뒤인 1898년에는 최시형마저 체포되어 6월에 순도함으로써 동학(천도교)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1900년에는 지도급 인물 중 손천민(孫天民)과 김연국(金演局)이 체포되어 손천민이 순도하자, 위기를 느낀 제3세 교조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는 1901∼1902년에 망명길에 나서 상하이[上海]까지 갔다가 이상헌(李祥憲)이라는 가명으로 일본에서 1906년 1월까지 머물렀으며, 1904년 러일전쟁을 계기로 국내 동학군을 동원하여 진보회(進步會)를 조직, 10월 8일 360곳에서 30만 명이 색옷입기와 단발을 단행하는 개화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운동은 한국 근대화의 민중운동이었으나 동학군이 주동이 되었음이 세상에 알려지자 곧 탄압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국내 지도자인 이용구(李容九)가 단독으로 일진회(一進會)와 합동, 노골적인 친일행위를 자행하였다. 손병희는 1905년 12월 1일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근대적 종교체제를 갖추는 데 힘썼다. 1906년 1월 말경에 귀국하여 2월부터 천도교 중앙총부를 설치하고, 9월에는 이용구를 포함한 교도 62명을 출교 처분하였다.
1910년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자 종교적 수행을 강화하는 한편 보국안민이라는 슬로건 아래 민족해방운동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국민교육을 위해 800여 개의 강습소를 설치, 기본교육에 힘썼으며 보성전문학교·동덕여학교를 경영 또는 보조하는가 하면, 16개 학교에 보조금을 제공하였다.
1919년 3월 1일 천도교는 그리스도교계·불교계 인사 및 학생들과 더불어 독립운동을 위한 대민중시위를 주도하였다. 1922년 5월 19일 제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가 생애를 마치자 한때 교세는 주춤하였다.
그러나 청년들은 1919년 9월에 발족한 천도교 청년교리 강연부를 토대로 1920년 3월에 천도교청년회를 조직했다. 또한 종합잡지 《개벽(開闢)》을 간행함으로써 문화운동이 시작되었고, 1921년에는 어린이운동의 선구자인 천도교소년회를 발족시켰다. 1922년 9월에는 천도교청년회를 천도교청년당(黨)으로 발전시켜 여성운동·농민운동을 전개했고, 이후 천도교청년당과 천도교청년동맹으로 갈라졌다가 1931년 2월 천도교청우당으로 통합했다.
이때 천도교가 간행한 잡지만도 《개벽》을 비롯하여 《신여성》 《어린이》 《학생》 《농민》 《천도교 월보》 《신인간》 《별건곤(別乾坤)》 《자수대학강의》 등이 있었는데, 일제의 탄압이 심해져서 1935년 이후부터는 거의 마비상태에 들어갔다.
그러자 천도교 청년들은 오심당(吾心黨:22년 조직)을 조직, 1935∼1936년에 조선독립운동을 꾀하다 발각되어 많은 인사가 체포·구금되었고, 1938년에는 제4세 대도주 춘암(春菴) 박인호(朴寅浩)가 주도한 멸왜기도사건(滅委祈禱事件)이 발각되어 수십 명이 체포·구금되기도 하였다.
8·15광복 이후, 천도교청우당은 다시 조직되었으나, 남북이 분단되면서 이 단체도 남북으로 나뉘게 되었다. 그러나 1948년 북한측이 유엔감시하의 총선거를 반대, 이미 분단정권을 세우고 국토 분단을 영구화하려 하자, 1948년 2월에 3·1재현운동, 즉 남북통일 총선거운동을 전개하려다 사전에 발각되어 1만 7000여 명이 체포되었다. 이로부터 조직적인 탄압을 받았는데 그래도 많은 교도들은 영우회(靈友會)라는 이름 아래 국토통일운동을 계속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북한에서는 많은 교도들이 남쪽으로 피난하였다.
도교
(道敎)
중국의 대표적인 민족종교. 황제(黃帝)와 노자(老子)를 교조로 삼은 중국의 토착종교로, 노자와 장자(莊子)를 중심으로 한 도가(道家)사상 과 구별된다. 도교는 후한(後漢)시대에 패국(沛國)의 풍읍(豊邑)에서 태어난 장도릉(張道陵)이 세웠다고 전하며, 지금도 타이완[臺灣]·홍콩[香港] 등지에서 중국인 사회의 신앙이 되어 있다. 장도릉은 초기에 오경(五經)을 공부하다가 만년에 장생도(長生道)를 배우고 금단법(金丹法)을 터득한 뒤 곡명산(鵠鳴山)에 들어가 도서(道書) 24편을 짓고 신자를 모았다. 이때 그의 문하(門下)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모두 5두(斗)의 쌀을 바쳤기 때문에 오두미도(五斗米道) 또는 미적(米賊)이라고도 불렸다. 장도릉이 죽자 아들 형(衡)과 손자 노(魯)가 그의 도술을 이어 닦았다.
【교리의 체계화】 장도릉 등이 도교를 일으킨 초기에는 그 신도들이 대부분 어리석었던 탓으로 종교라기보다도 일종의 교비(敎匪)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도교가 일반 민중뿐만 아니라 상류 지식층 사이에도 널리 전파되자 체계적인 교리와 합리적인 학설·교양의 뒷받침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필요에 따라 도교가 하나의 종교로서 이론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3∼4세기 무렵 위백양(魏伯陽)과 갈홍(葛洪)이 학술적인 기초를 제공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구겸지(寇謙之)가 전래 종교인 불교의 자극을 받아 그 의례(儀禮)의 측면을 대폭 채택하고 도교를 천사도(天師道)로 개칭함으로써 종교적인 교리와 조직이 비로소 정비되었다.
【제신과 경전】 도교에서 받드는 신들은 매우 잡다(雜多)할 뿐 아니라 시대에 따라서 그것은 새로이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제사 지내는 신에는 원시천존(元始天尊) 또는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있고 이는 다시 무형천존(無形天尊)·무시천존(無始天尊)·범형천존(梵形天尊)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그리고 교조인 노자, 곧 노군(老君)도 원시천존의 화신(化身)이라고 믿는다. 그 밖에도 현천상제(玄天上帝:北極星)·문창제군(文昌帝君)·후토(后土)·서낭신[城隍神]·조군(君:五祠 중의 한 神)·화합신(和合神)·삼관(三官)·재신(財神)·개격신(開格神)·동악대제(東嶽大帝:泰山神) 등 수많은 신들을 제사지낸다. 한편 도교의 경전을 통틀어서 도장(道藏)이라고 한다. 그 내용을 분류하면 신부(神符:부적)·옥결(玉訣:秘試)·영도(靈圖:鬼神像)·보록(譜錄:敎法의 연혁)·계율(戒律:修道의 율법)·위의(威儀:齋戒 등의 의식)·방법(方法:귀신을 쫓는 術策)·중술(衆術·鍊丹類)·기전(紀傳:老子 등의 전기)·찬송(讚頌:神典의 偈)·표주(表奏:귀신에게 奏上하는 祈願文) 등으로 이루어졌다.
【도교의 방술】 금주(禁呪)나 부록(符) 등 방술을 행하는 것도 이 종교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즉 특정한 날과 시간에 목욕재계하면 치아가 튼튼해진다든지, 명경(明鏡)이나 호부(護符)를 차고 다니면 요괴(妖怪)를 피할 수 있다는 따위가 방술이다. 또한 도교에서는 장생불사(長生不死)를 염원하면서 이를 이룰 수 있다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실천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① 태식법(胎息法)으로 충화기(沖和氣)를 받아들여 장생하는 수련인 내단(內丹), ② 황금·수은과 약물들을 복용하거나 몸에 주입하는 외단(外丹), ③ 음기(陰氣)를 취해서 양기(養氣)를 충만하게 하는 방중술(房中術) 등이다. 도교에서는 이러한 수련 결과, 상자(上者)는 허공에 올라가 우주에 소요하는 천선(天仙)이 되고, 중자(中者)는 36동천(洞天)과 72복지(福地)에서 사는 지선(地仙)이 되며, 하자(下者)는 혼백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시선(尸仙:人仙)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적으로 이와 같은 연단술(鍊丹術)만을 닦는 것이 아니라 적덕행선(積德行善)하고 계율을 지켜야 진선(眞仙)이 된다고 하여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도교】 도교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래된 것은 삼국시대(624:고구려 영류왕 7년)이다. 신라와 백제에도 비슷한 시기에 전래되었으나 도교신앙은 고구려에서만 성행하였다. 그것은 천제(天祭)·무속(巫俗)·산악(山岳) 신앙 등 지리적 여건으로 종교적 의식이 강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책적으로 국가에서 적극 수용 권장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백제와 신라에서는 종교적 신앙보다는 노자(老子), 장자(莊子)의 서적을 통한 무위자연(無爲自然)사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자체사상과 융합하면서 선도(仙道)·선풍(仙風) 의식을 심화시켜 나가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신라가 통일한 이후에는 당(唐)나라 유학을 하고 돌아온 사람들 중에 양생(養生) 보진(眞)을 도모하는 사람이 있어 단학(丹學)의 성격을 가지는 수련(修鍊)도교의 양상을 드러내는 현상도 없지 않았다. 도교가 가장 성행했던 시기는 고려시대라고 할 수 있다. 중세에 해당하는 고려시대는 신앙의 시대, 종교의 시대라고 할만큼 신(神) 중심의 나라였다. 불교가 그 중심 종교이기는 했지만 귀신·영성(靈星)·산신(山神), 그리고 무속(巫俗)과 더불어 도참(圖讖)사상이 병존하여 모든 것이 기복(祈福)종교의 현상을 띄는 것이 이 시대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교 역시 여러 민간신앙과 잡유(雜)되면서 불교 도참사상과 함께 하여 현세이익(現世利益)을 희구하는 양재기복(禳災祈福)의 기축(祈祝)행사가 성해, 그 풍습이 민간생활에까지 뿌리를 내렸다. 국가적으로는 호국연기(護國延基)를 바라는 재초(齋醮:도교 제사)행사가 크게 행하여졌으며, 특히 예종(睿宗:1105~1130)은 복원궁(福源宮)이라는 도관(道觀:도교 사원)을 건립하는 등 도교를 크게 진작시켜 불교보다 더 중시하기도 하였다. 예종은 복원궁을 건립하기 이전에도 그의 즉위 2년에 연경궁(延慶宮) 후원에 있는 옥청정(玉淸亭)에 도교의 최고신인 원시천존상(元始天尊像)을 모시고 달마다 초제(醮祭)를 지냈고 청연각(淸燕閣)에서 노자 도덕경을 강론토록 하였다고도 한다. 이러한 도교의 성행은 민간에 수경신(守庚申)이라는 도교습속(道敎習俗)까지 낳게 하여 그 풍습이 오늘에 이른다. 조선시대로 넘어 오면서도 재초 중심의 도교는 그대로 이어졌으나 중종(中宗:1506~1544) 때에 이르러서는 조광조(趙光祖:1482~1519) 등의 유학 선비들의 상소로 소격서(昭格署:재초 등 도교행사를 관장하던 관청)가 혁파(革罷)되는 등 점차 위축되어 갔으며, 임진왜란(1592) 이후에 초제를 행하는 의식도교의 모습은 완전히 없어졌다. 그러나 궁중이나 민간에 뿌리내려진 수경신 등의 도교풍습은 그대로 존속하여 왔고 식자층에서는 노자·장자에 대한 철학적 이해와 더불어 양생 보진의 수련도교에 종사하는가 하면 참동계(參同契) 용호비결(龍虎秘訣) 등의 도서(道書)를 주해 및 연구 저술하는 사람들이 있어 도교의 사상적 측면은 계속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도교는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이후 크게 의식도교와 수련도교의 두 맥을 이루면서 종교사상은 물론 문학·예술 등 생활 전반에 걸쳐 많은 영향을 끼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우주관(宇宙觀) |
이 우주는 한울님의 기운인 '지기(至氣)'로 가득차 있어 지기와 함게 서로 유기적인 연관을 맺고 있고 나아가 이 모두는 궁극적으로 무궁한 우주와 함께 '하나의 커다란 생명'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곧 천도교의 우주관이다. 천도교의 경전에서 우주를 나타낸 말로는 <용담유사>'흥비가'중에 나오는 '무궁한 이 울'이라는 것이 있다. 즉 우주란 '무궁한' 곧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그러나 이 우주는 한울니므이 기운인 지기(至氣)로 가득차 있어 이 지기가 간섭하지 않고 또 명(命)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한다. 즉 이 우주는 곧 한울님의 지기가 그 본체를 이루며 나아가 한울님의 지기로 이룩된 것이라고하겠다. 그러므로 이 우주에 수많은 만상(萬像), 곧 삼라만상이 편재되어 있어도 궁극적으로 이들 모두는 이 우주에 가득차 있는 한울님의 지기와 함께 서로 유기적인 연관을 맺고 있고 나아가 이 모두는 궁극적으로 무궁한 우주와 함께 '하나의 커다란 생명'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 곧 천도교의 우주관이다. 즉 이 우주를 한울님의 지기에 의한 하나의 커다란 영성(靈性)의 생명체로 보는 것이 천도교의 우주관이다. 따라서 이 무궁한 우주, 곧 한울님의 지기에 의하여 명(命)하여진 만유(萬有)는 궁극적으로 같은 뿌리를 지닌 모두 같은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천도교에서는 다만 이 우주에서 인간만이 홀로 가장 존귀하다는 인간중심의 인간존엄주의에 머물지 않고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이라는 삼경(三敬)사상을 그 중요한 근간으로 삼게된다. 즉 우주를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로 보고있기 때문에 이 우주에 근원을 둔 모든 존재는 모두 같이 존중받아야 하며, 또 존중되어야 한다는것이다. 이러한 천도교의 우주관은 오늘이라는 현대에 인간중심주의의 팽배로 인하여 위협받고 있는 자연한경의 파괴나 나아가 지나친 개발과 파괴로 인하여 파생되는 우주적 질서의 위협이라는 현대적 난제(難題)를 가장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사상적 근간이 될 것으로 기대되기도 한다. 즉 천도교의 우주관은 한 마디로 '우주'자체를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로 보고 있으며 이와같은 하나의 생명체와의 유기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우주만상은 궁극적으로 같은 뿌리를 둔 동포(同胞)라는 데에 그 핵심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우주속에서 삼라만상과 더불어 '우주적공동체'를 이루고 나아가 우주적인 질서에 의하여 살아가고자 하는데에 천도교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종교적이상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즉 이 우주는 모든 만유의 삶의 터전이며 동시에 모든 만유의 삶의 질서이며 그 삶의 근원적 생명이라는 것에 천도교의 우주관, 그 본의(本意)가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
천도교의 인간관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내 안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빈부(貧富)나 귀천(貴賤)의 구분없이 세상사람이면 누구나 무궁한 존재로서 평등하다는 본질적인 편등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어느 종교나 사상을 불문하고 인간을 만물의 가장 존귀한 존재로 보고있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천도ㅛ에서는 인간을 다만 존귀한 존재로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궁한 한울님'과 더불어 '무궁한 존재'로 보고 있음이 그 특징이 된다. 이와같이 '유한적인 존재'인 인간을 신과 같은 '무한적 존재' 곧 '무궁한 존재'로 보는 것은 다름아닌 '시천주(侍天主)' 곧 사람들 모두 그 내면에 매우 주체적으로 무궁한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천도교의 인간관을 보다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한울님을 모신다'는 '시천주' 나아가 '시(侍)'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하겠다. 대신사는 이 '시(侍)'라는 글자에 대하여 동경대전 가운데 주문을 해석하는 대목에서 "侍라는 것은 안에 신령이 있고 (내유신령內有神靈)밖으로는 기화가 있어서(外有氣化) 온 세상사람이 각각 깨달아 한울님과 내 몸은 서로 떠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불이(不移)의 관계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한울님을 모셨다'는 것은 '시(侍)'의 상태란 다름이 아니라 안으로는 신령스러운 靈이 있음을 느끼며 밖으로는 어떠한 신비한 기운과 동화(同化)를 이루는 느낌을 갖게 되면서 나(인간)와 한울님이 떨어질 수 없는 존재임을 스스로 깨달아 실천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 이렇듯 대신사가 설명하고 있는 안으로 느껴지는 '신령스러운 영(靈)'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는 다름이 아니라 '나'의 주체이며 동시에 한울님의 마음이 된다. 그러면 밖으로 느껴지는 '신비한 기운과의 동화(同化)'란 무엇인가? 이는 곧 나의 기운이 한울님의 기운과 서로 일치함으로써 일어나는 작용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이는 안팎으로 느껴지는 신령스러운 靈인 신령(神靈)의 작용이 되는 것이다. 즉 안으로는 신령이 자리하게 되고 밖으로는 이 신령과의 동화작용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따라서 안과 밖이 둘로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일치를 이루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즉 '신령(神靈)'은 '기화(氣化)'를 통하여 활동을 하게 되고 이러한 기화로 이룩되는 '신령'의 활동을 각기 깨우쳐서 한울님과 내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삶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대신사는 '각지불이(各知不移)'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시천주의 侍란 신령스러운 한울님 마음과 기화라는 한울님 실천적 삶이 하나가 되어 각지불이(各知不移)를 통하여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와같은 면에서 본다면 시천주란 곧 내안에 자리한 한울님, 곧 나의 '참주체'가 되는 영의목소리에 귀기울여한치도 어긋남이 없이 행동하며 살아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아울러 이러한 '시'를 통해서만이 자신의 진아(眞我)이며 또한 우주의 본체인 한울님을 자신의 안에서 회복할 수 있으므로 대신사는 이 시천주로 천도교의 가장 핵심적인 사상으로 삼은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시천주의 상태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지이며 인간이 이 우주에 화생(化生)할 때 한울님으로 부터 품부(稟賦)받은 바로 그 천심(天心)을 다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가 하면 이는 곧 자신의 삶속에서 '한울님 마음'을 한 치도 어김없이 실천하는 그러한 삶을 으미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시천주는 곧 인간이 태어 날 때의 가장 순수한 마음, 즉 인간 마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며 나아가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된다. 즉 시천주란 무궁한 존재인 한울님을 내 몸에 모시고 그 무궁한 한울님의 삶을 나의 삶속에서 실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나'역시 무한한 우주와 더불어 무궁한 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천도교의 인간관은 바로 이러함을 통하여 '무궁한 나'를 깨달아 가는데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렇듯 '무궁한 나'로서의 존재를 깨달아 가는 천도교의 인간관은 궁극적으로 올바른 세상을 열어가는 데에 있어 가장 필요한 이상적인 인간형이기도 하다. 즉 이는 각자위심(各者爲心)에 물들어 자신의이기주의적 탐욕만을 찾아 서로 다투고 싸우는 세태속에서 한울님의 덕을 회복하고 또 한울님의 덕과 일치하는 (여천지합기덕與天地合其德)삶을 영위함으로써 동귀일체(同歸一體)의 세상을 지향하는 지상신선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살펴본 바와 같이 한울님과 더불어 '무궁한 존재'로 본 천도교의 인간관은 전대(前代)어느 성인도 천명하지 못한 대신사의 매우 독특한 인간관이다. 그런가 하면 바로 이러한 점에서 대신사가 천명한 가장 탁월한 인간관, 나아가 천도교 인간관의 한 특징적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천도교의 인간관은 대사회적(對社會的)인 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고 하겠다. 이는 다만 어느 특정한 신분의 사람만이 '무궁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내 안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빈부나 귀천의 구분없이 세상사람이면 누구나 무궁한 존재로서 평등하다는 본질적인 평등주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같은 천도교의인간관은 신분과 제도로 또 존비(尊卑)의 차별이 분명했던 봉건사회를 뛰어넘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이라는 현대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고 있는 인간관이라 하겠다. 즉 천도교의 인간관은 인류의 역사속에서 전근대와 근대를 지나며, '모든 인간은 무궁한 존재로서 평등하며., 도 평등해야 한다.'는 그러한 자각을 억압된 민중들에게 불어 넣었을 뿐 아니라 차원을 달리해서 인간 스스로 무궁한 신과 더불어 무궁할 수 있다는 새로운 자각을 불러주기에 충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본원적만인평등의 사상과 아울러 질적 차원의 변화를 통하여 무궁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깨달을 수 있는 천도교의 인간관은 불균형의 삶을 여위함으로써 불안한 현실과 비젼없는 내일을 살고 있는 현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는 희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천도교의 인간관은 진정한 인간의 가치가 무너져 내리면서 '물화(物化)와 소외(疎外)'라는 전도(顚倒)된 가치만이 강조되고 있는 현대적 모순을 극복하고 인류에게 미래에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바로 이와 같은 '무궁한 우주'와 더불어 '무궁한 나'를 자각함으로써 체득(체득)하게 되는 천도교의 인간관은 새로운 미래와 세상을 이룩할 수 있는 오늘이라는 현대에 있어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게 있는 그러한 인간간이라고 할 수 있다. |
대신사께서는 神신을 높고 먼데서 찾지 않고 우리 마음에 모시고 있다고 하였다.
<나는 도시 믿지말고 한울님만 믿었으라. 네 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 하단말가>라고 하시고 <侍天主시천주>를 말씀하셨다.
한울님은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영의 부모이다. 무궁으로 생명을 삼고 무궁으로 체를 삼은 한울님은 오직 깨닫고 믿음으로써만 알 수 있다.
우리가 믿는 한울님이라는 이 명사는 한국말에 가장 부합된 바른 명사라 할 수 있으나, 세상에는 신을 부를 때에 천주님, 한우님, 하느님, 하나님 하는 것은 한국말의 어원으로 보아 의미가 부족하다 할 수 있다.
한울님의 ‘한’은 우리말에 크다는 뜻이요. ‘울’은 시간과 공간전체를 범위로 하고 쓰는 것이므로 ‘한울’이라면 곧 우주전체를 가리키는 뜻이 말 속에 스스로 드러나고 또 ‘울’은 울이라는 뜻인즉 이는 ‘우리들’이라는 의미가 되므로 한울은 大我대아 즉 큰 나로 해석한다.
요컨대 한울님은 유일의 영적 존재로 나타나서는 천지만물의 형상이 되며 안으로는 천지만물의 정신이 되고 합하여보면 만물속에 품부되어 있는 만유신이 되는 동시에 일신도 된다. 그리하여 주재의 지위로서는 한울님은 만물의 창조주가 되는 동시에 만물의 부모가 되는 것이다.
참고로 아래 글을 읽어보시면 한울님의 개념을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아래 글은 故월산 김승복님의 설교자료에서 펌)
한울님이 어디에 계시는가?(天在何方천재하방)
한울님이 어디에 계실까요? 대신사님께서 도를 깨달은 경신 사월 초 오일 이전 선천 오만년 동안 많은 성현들이 출현하였지만 분명하게 가르쳐 주신 분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천은이 망극하여 다행스럽게도 대신사께서 우리나라에 태어나시어 온 인류에게 처음으로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을 내려 주셨습니다.
대신사께서는 교훈가에서 " 하염없는 이것들아 날로믿고 그러하냐 나는도시 믿지말고 한울님만 믿었어라 네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 하단말가"라고 분명히 사람마다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진리가 밝혀짐으로 해서 용담가에 보면 “한울님 하신말씀 개벽후 오만년에 네가또한 첨이로다 나도또한 개벽이후 노이무공 하다가서 너를만나 성공하니 나도성공 너도득의 너의집안 운수로다”라고 한울님께서 직접 대신사님께 말씀 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람이 모두 한울님을 모셨다는 진리는 앞으로 오만년이 가도록 변할 수 없는 영원한 진리이며, 모든 이웃종교에서 바라고 있던 인류의 새로운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도탄에 빠져 암흑 속에서 헤매는 인류에게 광명을 주고 구원을 주신 한울님의 뜻입니다.
우리들은 스스로가 한울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내유강화지교로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게 되는 것이며 또한 일동일정이 모두 한울님께서 시키시는 것입니다.
신사님께서는 베 짜는 부인을 보시고 한울님이 짜는 것이라 하셨고 새 소리를 들으시고 시천주의 소리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은 우리들이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유일무이한 한울님께서 만유를 성출하시어 만유 속에 계시면서 만유를 간섭하고 만유를 명령하시며 만유를 통일하시니 대소간의 모든 것이 한울님이 하시는 일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 정신, 숨쉬고 사는 것, 먹고 마시고, 일하고, 굴신동정을 하며 , 오장육부가 스스로활동하며 자용하고, 혈맥과 신경이 통하는 것 모두가 한울님이 하시는 바입니다.
대신사님께서는 도덕가에서 “사람의 수족동정 이는 역시 귀신이요 선악간 마음용사 이는 역시 기운이요 말하고 웃는 것은 이는 역시 조화로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귀신, 기운, 조화라 함은 한울님의 所使로 되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천지만물은 본연한 진성인 법상이 색상으로 된 것으로 다시 말씀드리자면 무형한 한울님이 유형한 한울로 화한 것입니다.
성사님께서는 법문에 “너는 반드시 한울이 한울된 것이니 어찌 영성이 없겠는가. 영은 반드시 영이 영 된 것이니 한울은 어디에 있으며 너는 어디에 있는가. 구하며 이것이요 생각하면 이것이니 항상 있어 둘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울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이 법문에서 명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은 일원이요, 심은 일천이요, 법은 일체이므로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원동력, 그 뿌리가 바로 한울님의 권능이므로 사람과 한울은 둘이 아니요, 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울은 어디에 있는가? 하는 문제는 이 법문에서 그 답을 명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은 일원이요, 심은 일천이요, 법은 일체이므로 사람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원동력 그 뿌리가 바로 한울님 권능이므로 사람과 한울은 둘이 아니요 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형한 한울님이 유형화되었다고 해서 습관된 마음을 한울님 마음으로 생각하면 믿음도 없고 공경도 없고 정성도 없는 망상에 사로잡혀 동물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물욕, 감정, 아집, 자존심, 의구심, 미망심에서 초탈되어 거듭날 때 한울님을 모시게 되고 한울님을 공경하게 되어 한울님의 모든 이치를 알게 되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받아 인내천의 진경에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습관된 마음이 아닌 본래의 마음을 찾으면 그 마음이 바로 한울님 마음인 것입니다. 그 마음을 찾아서 오직 바르고 밝고, 착하고 의롭게 생각을 하면 기차가 철로를 달리듯이 순탄하게 잘못이 없이 참다운 길을 걷게 되어 순리순수하게 될 것입니다.
한울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람이 지은 명사로 이 외에도 하나님, 한우님, 부처님, 성심, 이기, 성령, 산제, 천, 신 등 나라마다 각각 다른 이름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유일무이한 대우주 대생명, 대정신, 우주의식, 우주의 본체, 궁극실체를 우리 천도교에서는 한울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울님은 무시무종, 무상하, 무의무립, 무루무증, 무선무악, 불생불멸, 청정무구, 무궁무한하며 무사불섭, 무사불명하는 절대자요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일원의 무형한 성령으로 완전원만하며 무진장인 보물창고와 같아서 무엇이든지 무한공급을 하시며 자유자재하며 만물의 부모요, 스승입니다.
한울님은 불택선악 하시므로 세상사람들은 육신관념에 빠져 한울님을 등지고 한울님의 이치를 모르고 한울님의 뜻을 어기면서 한울님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울님은 생각하면 있는 것이요, 생각지 않으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사님께서 육신관념을 성령으로 개벽하라고 하셨습니다. 육신관념을 성령으로 개벽할 때 끝없이 일어나는 잡념을 끊으려고 불가능의 심력을 허비하지 말고 다만 내 속의 내가 아닌 어떠한 내가 있어 굴신 동정하는 것을 가르치고 시키는가 하는 대소사간 일마다 생각하여 오랜 습성을 지니면 성품과 육신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주체요 어느 것이 객체인 것과 같이 어느 것이 중하고 어느 것이 경한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니 이것은 곧 육신개벽을 뜻하는 것입니다.
성사님께서는 이신환성은 대신사의 본뜻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사람의 한 평생 주체요, 육신은 사람의 한 때 객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도교를 믿고 행하는 우리들은 어떠한 어려움이 가로막더라도 육신관념을 성령으로 개벽하여야 자신의 운명도 가정의 운명도 국가의 운명도 민족의 운명도 다 같이 개벽할 수 있는 동시에 궁극적으로 우리 천도교가 바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이신환성 됨으로써 한울님이 어디에 계시는가를 깨닫게 되어 참다운 신앙 즉 시천주의 생활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괴로움이나 정신적인 괴로움도 마치 불빛이 나타나면 어두음이 저절로 사라지듯 이신환성이 되면 그 어떠한 병도 스스로 낫는다는 것은 이미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바 있고 많은 교인들이 체험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바르게 믿으면 영력이 발동되어 우리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시천주의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가져올 수 있으며 이웃과 화목하게 될 수 있고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져서 지상신선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참다운 신앙생활이란 만사여의, 만사지가 되어 한울님의 지혜와 능력을 얻어 세상에서 가장 참되고 지혜롭고 어질고 용기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포덕122(1981)년 7월 신인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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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後觀(사후관)
모든 생명은 우주라는 커다란 생명에서 온 것이며, 그러므로 죽는다는 것을 천도교에서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라는 의미인 '환원(還元)'이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죽음'을 '돌아가셨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의미이다.
천도교의 우주관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이 광대한 우주는 하나의 커다란 영성의 생명체로 되어 있다. 따라서 우주의 모든 만유 역시 그 생명의 근원을 이 우주라는 커다란 하나의 생명, 즉 한울님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고 보는 것이 곧 천도교의 생명에 관한 관점이기도하다. 즉 모든 생명은 바로 한울님, 곧 이 우주라는 커다란 생명에서 온 것이며 동시에 죽게되면 이 우주라는 커다란 생명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는다는 것을 천도교에서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인 '환원(還元)'이라는 용어로 부르고 있다. 우리의 조상들이 '죽음'을 '돌아가셨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의미이다.
즉 인간의생명을 비롯한 모든 생명은 궁극적으로는 우주, 곧 한울님으로부터 와서 살아가다가 다시 우주라는 커다란 생명, 곧 한울님의 무궁한 생명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도 나의 생명은 우주라는 커다란 생명체에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이러함을 깨닫게 된다면 죽고 사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생명은 무궁한 한울님, 그 무궁한 성령과 함께 영원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천도교의 사후관은 바로 이러한 깨달음 속에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다른 종교와 같이 죽은 이후에 성령이 가는 세상, 곧 천당이나 극락, 지옥 등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죽음 이후에 성령은 무궁한 한울님의성령, 곧 우주라는 근원적 생명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동시에 자손과 후학의 심령(心靈) 속에 살아남아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나아가 천당과 지옥은 이러함을 깨닫느냐 못 깨닫느냐 하는 그 사람의 마음에 담겨져 있다고 보는 것이 곧 천도교의 사후관이기도 하다.
따라서 천도교인은 제사(祭祀)를 모실 때 조상의 성령이 모셔진 신위(神位)를 저쪽 '벽(璧)'에다 세워 놓고 제(祭)를 지내는 '향벽설위(向璧設位),의 방법으로 하지 않고 조상의 성령이 나에게 모셔져 있으므로 이 신위를 '나(我)'를 향하게 하는 '향아설위(向我設位)'의 방법에 의하여 祭를 지낸다.
즉 이러한 제사 방법은 다름 아니라 죽은 조상늬 성령이 다른 차원의 공간인 천당이나 저승으로 간 것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모셔져 있다는 천도교의 사후관을 잘 나타낸 모습이라고 하겠다.
나아가 현세인 이 지상(地上)과는 별도로 천당과 지옥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공간인 천상(天上)을 천도교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천도교의 인식방법은 흔히 유한적(有限的)인 존재라고 하는 사람이 한울님 모심을 깨닫게 되면 이내 그 무궁한 한울님과 더불어 무한적인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는 '시천주(侍天主)' 나아가 '사람이 이에 한울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에서부터 비롯된 내세관이며 사후관이라고 하겠다.
모든 생명체가 육체적으로 소멸하게 되면 다시 말해서 죽게 되면 이 지상에서 공간적인 차원을 달리해서 천당이나 지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본래 내 생명의 근원인 우주라는 커다란 생명으로 다시 돌아가서 자손과 후학의성련과 융합일치되어, 이 현세에 성령으로 다시 출세한다는 것이 곧 천도교의내세관이며 사후관이다.
이와같은 면에서 보면 천도교에서 말하고 있는 '장생(長生)'이란
곧 육체적인 장생이 아니라 무궁한 우주적인 생명과 함께 이를 깨달음으로써 누리게 되는 '성령의 장생'을 뜻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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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의 가치관은 그 기준이 사람의 '마음'과 '기운'에 있으며 나아가 이 마음과 기운을 올바르게 또 변하지 않게 하여 이 우주와 더불어 혼연일체가 되는 삶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것이라고 하겠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어더한 가치의기준을 세우고 이에 따라 선(善)과 악(惡)으로 그 가치를 나누고 있다. 즉 이 선악이라는 가치를 나눌 때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작용이 되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 가치의기준이 되는 것이다.
가치의기준을 잘못 세우게 되면 나뉘어진 선악이 잘못 개념화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가치의 바른 기준을 세우는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천도교의 가치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천도교의 가치기준은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사람의 '마음(心)'과 '기운(氣)'에 있다고 하겠다. 일찍이 대신사는 이 '마음'과 '기운'을 늘 말씀하시며 이를 기준으로 '올바른 삶과 올바르지 못한 삶' 또는 '선과 악' 나아가 '군자와 소인'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용담유사>를 통하여 "선하고 악한 마음을 쓰는 것은 기운(氣)에 의한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으며 <동경대전>'탄도유심급'을 통하여 "흐린기운을 씻어내고 맑은 기운을 어린아이 기르듯 잘 키우게"되면 그 마음이 이내 본래의 마음바탕을 회복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즉 기운을 바르게 하고 깨끗하게 하여 본래의 바탕을 회복한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이 바로 올바른 삶이요, 선한 삶이요, 나아가 군자의삶이라는 것이 곧 대신사의 가치관의 기준이기도 한 것이다. 즉 천도교 가치관의 기준은 '마음'과 '기운'에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천도교의가치관이 보다 잘 나타나고 있는 바로는<동경대전>'논학문'의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이다.
군자의덕은 기운에 바름에 있고 마음이 옮기지 않으므로 천지와 더불어 그 덕이 합해지는 것이요, 소인의 품성은 기운이 바르지 못하고 마음이 옮기므로 천지와 더불어 그 뜻이 어긋나는 것이다. 然而君子之德 氣有正而心有定故 與天地合其德 小人之德 氣不正而心有移
가장 이상적인 선(善)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군자(君子)의 품성은 곧 그기운이 매우 바르고 또 마음이 이리저리 옮겨다니지 않는, 곧 본래 품부받은 그 마음을 바꾸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소위 소인이라는 사람들의 품성은 그 기운이 바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마음 역시 이리저리 잘 바꾸어 본래 품부받은 마음을 지니고 못하고 있다고 지적이다.
이와같은 대신사의 가르침으로 볼 때에 천도교의 가치관은 '기운을 바르게 하고' 이 바른 기운을 통하여 '본래 마음 바탕을 회복'하며 이 '회복된 본래의 마음을 바꾸지 않고 살아감'에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이러한 기운과 마음을 지니기 위한 방법으로 대신사는 '수심정기(守心正氣)'라는 새로운 수행법을 내 놓았다. 즉 '회복된 본래의 마음을 지키고(守心수심) 나아가 기운을 바르게(正氣정기)'하여 이를 올바르게 삶 속에서 실천하도록 가르치는 수행법인 것이다.
그러나 천도교의 가치관은 이러한 '기운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옮기지 않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러한 삶을 통하여 '천지' 곧 이 '우주의 덕'과 더불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될 수 있는 삶을 영위할 때에 비로소 최고의 가치를 이루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이 우주라는 커다란 하나의 생명체와 더불어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최고의 가치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즉 천도교의 가치관은 그 기준이 사람의 '마음'과 '기운'에 있으며 나아가 이 마음과 기운을 바르게 또 변하지 않게 하여 이 우주와 더불어 혼연일체가 되는 삶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와같은 면으로 볼 때에 천도교는 바로 이와같이 우주적 삶과 그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사상이며 또한 이러함을 최고의 덕목(德目)으로 삼고 또 가르치는 종교임을 알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