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天路)를 걷는 삶(10/18)
-겉은 겉일 뿐이다-
천하보다 귀한 나의 인생을 겉으로 살게 해서는 안된다.
‘나’란 존재에 씌워져 있는 외양은 그저 외양일 뿐, 예수님과 나의 존재적 관계에서는 도리어 방해가 되기도 하며 또한 외형은 모두 지나간다(고전7:31).
‘난 이런 일을 했어’, ‘난 이런 일들을 하고 있어’, ‘난 이런 사람이야’, ‘난 이런 학교, 직장에 다녔어’...
주께로 수만 명을 인도했을지라도 그것은 나와 직접적 관계성은 없다. 왜냐하면 주께로 가는 것은 주의 은혜 안에서 주의 부르심에 의해서다. 그리고 주께서 주의 일과 영광을 위해 때로는 사단도 사용하시며 악한 자들도 뜻대로 사용하신다.
또한 내가 무슨 권력과 명예를 가졌든 그것은 주의 나라와 절대적 상관이 없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주의 일을 하고 주의 나라가 확장된 것이 아니라, 주께서 뜻대로 주의 일을 하시고자 주가 도구로 인생을 사용하신 것뿐이다.
직분과 지위는 천국가는 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도리어 나에게 있는 직분과 지위가 주의 나라로 순수하고 깨끗하게 향하는 길을 휘젓게 된다. 예수 믿음 안에서 그것들은 마음 밑바닥에 내려야 한다.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엡6:9)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벧전3:3)
‘내가 무엇을 했다’는 그 공적 표시에는 반드시 죄가 섞여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무슨 자랑이 있으며 또한 주의 은혜로 되어진 것인데 무슨 드러낼 것이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나’가 중심이 되어 하는 일에는 언제나 ‘죄’가 함께 하기 마련이다.
주의 피로 의롭게 된 자는 자신이 주의 은혜를 입고 주께 붙어 있는 것으로 감사하고 기뻐한다. 즉 주께 붙어 있는 지체여서 된 일이므로 자랑하거나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마25:37)
성도가 직분에 매이게 되면 순수해질 수가 없다. 성도는 성도가 본질이고 직분은 성도 겉에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주께서 씌워 주신, 은사로서의 지팡이와 막대기일 뿐이다.
교회 안이든 밖이든 모든 직분과 직책은 주께서 주의 일을 위해 사용하시려는 은사적 도구다. 주께서 필요에 의해 사용하신 후 거둬가신다. 천국에서는 직분이 없다는 말이며 직분은 한시적이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내 안에 예수님의 은혜의 충만함과 내가 예수께 복종하는 자라는 것이 ‘성도인 나를 나되게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의 하나님의 사람은 모두 우리의 구속주이신 예수께 순종하는 자였다.
그래서 주께서 나를 사용하시고자 어떠한 ‘은사’를 주셨고 ‘겉’을 주셨을지라도, ‘나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지시고 구원해 주신 주님’과 ‘은혜로 성도가 된 나’를 떠나고 잊어서는 결코 안된다.
‘은사’와 ‘겉’은 주의 몸된 교회와 복음을 위해 주신 것이지, 자신을 나타내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