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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 이야기
세계에 가장 널리 퍼진 탄산음료이자, 자본주의와 미국을 상징하는 음료.
코카의 잎에서 추출한 성분과 콜라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원액에 캐러멜 및 여러 첨가물을 넣고 탄산을 더해 만든 탄산 청량음료. 보통 콜라병이나 캔에 담아서 판다. 술을 먹을 수 없는 어린이나 청소년, 그리고 무슬림들이 술 대용으로 마시는 경우가 많다. 카페인과 설탕 덕에 많이 마시면 사람에 따라 심장이 빨리 뛰는 등 흥분되는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술과 사촌인데, 콜라 레시피에서 탄산을 빼고 술을 넣는다면 남미산 약초나 잎으로 만드는 리큐르 계열과 흡사하다.
고기 요리에도 자주 들어간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대체 왜 요리에 그런 것을 넣냐 하지만, 콜라에는 과일과 유사한 인산과 당분이 포함되어 있어서 단백질을 녹여 질긴 고기를 부드럽게 하고 요리 전에 간을 해주는 구실을 할 수 있다. 족발의 짙은 갈색도 콜라로 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콜라에는 카페인이 들어있기에 카페인에 약한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때문에 음식솜씨가 없는 1-2인가구 주민에게 콜라는 고기 요리를 하기 전에 재우는 조미료로 아주 알맞다. 콜라는 냉장보관할 필요가 없고, 이런 용도로는 탄산이 빠져도 상관없으며, 아무리 맛없는 고기라도 맛을 내준다.
1886년 미국의 약사 J. S. 펨버턴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에는 첨가물 없이 순수히 코카잎 추출 성분과 콜라나무 껍질 원액과 탄산수로 만들어졌었으며, 원래는 소화제를 주목적으로한 자양강장제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첨가물을 더 넣고 만든것이 오늘날의 콜라. 그의 약국의 소다수 판매 진열대에서 잔 당 5센트로 판매되었지만 별로 판매량이 좋지 않았고 2년 후 그는 이 청량음료에 대한 제조, 판매 등 모든 권리를 단돈 122만 2천원에 팔아 버렸다. 이 권리를 구매한 사람이 약제상인 에이서 캔들러이다. 에이서 캔들러는 이 청량음료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존 펨버튼의 전 동업자였던 프랭크 로빈슨(Frank Robinson)과 함께 1892년에 ‘코카-콜라 컴퍼니(The Coca-Cola Company, TCCC)’를 설립했다. 에이서 캔들러의 탁월한 영업능력으로 판매가 급증하였고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청량음료로 성장하게 되었다, 현재 코카콜라 병의 디자인은 1919년 캔들러가 1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고 공모전을 벌였는데 여기에 응모한 유리병 공장의 직원 루드가 디자인한 것이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미군 군수물자로 채택되어 전세계에 폭발적으로 보급되었다. 당시 상당수 작전 지역에선 정제한 물맛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미군은 진주하는 곳마다 식수 대용품으로 콜라를 자주 마셨다. 그로 인해 대량의 콜라가 보급되며 현지인들에게도 소개되고 전세계적으로 퍼지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실제 미군이 2차 세계대전을 치른 지역에선 당시 미군들이 버린 콜라병들이 지금도 종종 보일 정도니...
이 시절에 이와 관련한 몇가지 일화들이 있다.
•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힌 어느 미군이 허기진 상태에서 6주 동안 강제로 행군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로 인해 거의 아사 직전까지 갔는데, 어느 독일 마을을 지나던 중, 흔적만 남은 코카콜라 광고를 보았다. 그는 2~3분정도 그 광고 흔적을 바라보자, 미국에 두고 온 자기가족들과 그곳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을 떠올릴수 있었고, 살아야한다는 의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코카콜라는 5억병이 소비되었다. 코카콜라사는 총 64개의 해외공장을 운영했는데, 그 중 59개 공장은 미국 정부 조달 전용이었다.
• 2차대전 도중, 독일 코카콜라 공장의 노동자 중 상당수가 독일군에 잡힌 전쟁 포로였다. 이들의 노동력으로 1942∼1945 년 독일 코카콜라를 1억 병을 생산했다. 1939년 이후 독일과의 통상금지 조치를 뚫기 위해, 코카콜라 본사에서는 독일로 수출한 콜라 원료를 회계장부에 분실로 처리했다. 그럼에도 독일에서 생산하기에는 원료가 부족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독일 코카콜라 공장에서 만들어낸 것이 환타.
• 1940년 영국의 식품성은 생필품인 설탕에 대해 배급을 선언했다. 자연스레 배급은 일반 가정 중심으로 할당되었기에, 코카콜라 같은 회사들로서는 설탕공급이 원할하지 못해 생산량이 크게 감소했다. 덕분에 코카콜라의 주 소비자인 영국 거주 미국인들은 미칠지경이었다. AP통신기자인 에디 길모어는 코카콜라 뉴욕지부에 영국에 있는 미국인들이 코카콜라 구입이 불가능해 끔찍한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코카콜라를 보내달라는 전보를 보냈다.
• 1942년 영국 식품성은 전시상황의 비용절감이라는 측면도 생각해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합쳐 그냥 아메리칸 콜라라고 명명해 영국시장에 공급할 것을 두 회사에 명령했다. 이 조치는 코카콜라사를 더욱 격분시켰고, 이 때문에 1948년까지 영국에서 영업을 중단했다.
전후에도 콜라 공장들이 세계 곳곳에 건설되며 지속적으로 콜라는 전세계에 보급되었고, 21세기 현재 어떤 회사의 것이든지 콜라가 없는 국가는 상당히 드물다.
코카콜라의 성공 이후 많은 곳에서 코카콜라의 아성에 도전하기 위하여 자신들만의 콜라를 많이 내놓았으나 대부분은 시원찮은 결과를 맞이하였고, 그나마 성공한 콜라 업계들도 대부분 자국 내 소비에서만 그쳤다. 유일하게 코카콜라를 따라잡는데 성공한것이 존 스컬리가 지휘하던 시절 폭풍 성장을 한 펩시.
코카콜라에서 내놓는 환타의 경우에도 2차세계대전과 연관된 제품이다. 나치 독일 시절에 코카콜라 생산시설을 독일에 건설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해 코카콜라 원액의 공급이 끊겨서 대용품으로 과즙 등을 이용한 탄산음료로 만들어진 것이 환타이다. 그리고 독일의 패전 후 코카콜라사에서 환타 생산시설을 입수했고, 반응이 좋아 공식 코카콜라의 제품군에 포함되는 신분세탁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캐러멜의 달달한 맛과 탄산의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음료. 음료계열이 대부분 그렇듯 시원하게 먹는것이 기본적이다. 아예 얼리면 상당히 시원하게 먹을수 있지만 너무 오래 얼려두면 터질수 있기 때문에 적당히 얼려야 한다. 이는 다른 탄산 계열 음료들도 동일하다.
Mythbusters에 나온 바로는, 멘토스라는 사탕과 같이 먹을 경우 좀 안 좋은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안 좋은 일이 세게 벌어지는 것이 다이어트 콜라라고 한다. 이건 멘토스뿐만이 아니고, 설탕이나 아이스크림, 분말가루류와 같이 먹으면 대단히 위험한데, 설탕이나 아이스크림이 콜라와 만나면 미세한 입자마다 탄산이 붙어 탄산이 빠른 속도로 방출된다. 설령 재미라 하더라도 아이스크림이나 설탕과 콜라를 섞어먹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급격하게 불어나 터지는 이산화탄소에 식도나 입 속이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 물론 폭발한다는 것은 위장 내가 아니라 페트병과 같은 단단한 용기에 담았을 때 기준. 여러분의 위장은 생각보다 튼튼해서 넘칠지언정 폭발까지는 하기 힘들다. 실제 이 실험에서 2리터 콜라 2병과 멘토스 2통을 모두 돼지 위에 부었음에도 폭발하지 않아 결국 압축공기를 동원해서야 겨우 터졌다. 게다가 애초에 이단계까지 오기 전에 몸이 위험함을 느끼고 토해버리는 쪽이 일반적이다.
참고로 KBS 스펀지 83회에서 이 명제가 나온 적이 있었으며, 실험 참가자들이 모두 참지 못하고 뱉어냈다. 멘토스에 있는 계면활성제가 콜라의 표면장력을 낮추어 이산화탄소가 대량방출되면서 폭발하는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샴푸나 락스, 치약을 넣으면 훨씬더 강력한 폭발력을 맛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하기 나름이고, 콜라에 아이스크림을 띄운 음료도 실제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루트비어라는 음료는 바닐라 플로팅이라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띄워먹는 방법으로 즐길 수 있다. 또한 왕년의 하디스에서 코크플로트라는 이름으로 판매하였고, 대만의 어떤 맥도날드에선 이걸 "맥플로트(McFloat)"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한국 맥도날드에서는 한정 메뉴로 잠시동안 팔다 지금은 판매중지. 말 그대로 콜라에다 아이스크림 띄워 놓은건데 맛은 밍밍한 편.
일각에선 폭발을 장난에 이용하기 위해, 링 형태의 멘토스에 실을 묶고 콜라병 입구에 실의 반대쪽을 걸친 후 뚜껑을 닫아 끼워서 다음사람이 콜라를 먹기 위해 뚜껑을 따면, 멘토스가 떨어지면서...
터키에는 '콜라 투르카(Cola turka)'라는 콜라가 있다. 값도 코카콜라보다 싸고, 맛도 괜찮은 편이라 인기있지만 터키 안에서만 거의 소비된다. 그리스에서도 그린 콜라(Green Cola)가 생산된다. 스테비아를 감미료로 사용한 무설탕 콜라이며 그리스에서 만든 그리스인의 콜라라며 애국심 마케팅도 한다. 애초에 상품명인 그린 콜라 자체가 그리스인(Greek)을 뒤틀은 것이다. 인도에선 '잠잠 콜라'라는 상표가 있었고, 아랍권에선 '메카 콜라'라는 상표가 있으며, 남미에선 '잉카 콜라'가 한때 인기를 끌었으나, 잉카콜라는 아예 코카콜라에게 팔려 사라졌지만 제품은 부분적으로나마 계속 생산되고 있다.
이 경우들 외엔 다들 '펩시'와 '코카'라는 공룡들에게 연이어 고전하고 있다. 영국 대기업인 버진 그룹이 버진 콜라(Virgin Cola)로 도전했으나 화끈하게 참패하며 사라진 경우처럼 실패한 콜라도 많다.
중국에서는 콜라를 '가락(可樂)'(중국 발음은 커러에 비슷하며 잘 들어보면 흡사 콜라와 비슷하게 들린다)이라고 표기한다. 단순한 음차를 넘어서서 뜻풀이를 해도 '즐겁다'(by 이어령 교수)는 뜻까지 담겨 있는 상황. 그런데 이게 상표에까지 적용돼서 코카콜라는 '가구가락(可口可樂 커코우커러)', 펩시콜라는 '백사가락(百事可樂 바이스커러)'으로 불리고 있다. 발음을 들어보면 가구가락은 "커코우커러"이기 때문에, 실제 영어발음과 매우 유사하게 들린다.
참고로 과거 중국의 몇몇 식당에서는 콜라를 시킬 경우 김이 날 정도로 데워서 주고, 시원하게 달라고 하면 미지근한 걸 줬다. 이는 본래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음료수로 따뜻하게 데운 차가 통용되었기 때문에 늘 하던데로 음료수인 콜라도 데워서 먹은 것이다. 물론 현재에는 모든 식당이 그런 건 아니고 맥도날드 같은 곳은 시원한 콜라를 준다.
다만 데워먹는 콜라가 아예 사라진 것도 아니어서, 홍콩에서는 콜라에 레몬과 생강 으깬 것을 넣어 끓인 것을 차처럼 마시기도 한다. 닝멍커러바오장(檸檬可樂堡煲薑)이라고 하며 흔히 감기 치료용으로 마시는데, 뜨겁게 해서 마시는 것이 보통이지만 딱히 감기 치료용이 아니거나 여름이라면 차게 해서 마시기도 한다.
또, 중국에는 향료를 넣은 콜라도 있는데, 웬만한 사람들은 한 입 마시고 전율을 느낀다. 이건 사실 펩시나 코카콜라 쪽 콜라가 아니라 중국 기업들이 흉내낸 것들이다.
심지어 북한도 자기들 나름대로 콜라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진 중앙의 코코아 탄산단물이라고 쓰인 게 콜라다.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지속적으로 북한식 콜라의 존재를 플리커나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다. 물론, 북한에서도 코카콜라가 중국 국경의 보따리 장사꾼들을 통해서 조금씩 들어오고 있고, 펩시는 구 소련 시절의 영향으로 대중들에게 약간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결국 2000년대 중반 경공업 육성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음료수의 개발과 생산에 열을 올린 결과, 북한식 콜라가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걸프전 시절 한 이라크 주민은 미국을 욕하면서, '우리는 펩시 안 마셔도 잘 살지만, 너희 미국인들이 석유 없이 살 거 같으냐?'라고 광역 어그로를 끌기도.
일반적으로 콜라에 첨가하는 당은 옥수수를 분해한 전환당액이 들어가지만, 멕시코의 경우, 사탕수수 원액을 넣어서 맛이 다르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훨씬 고급스럽게 느끼는 듯. 미국에서 유래한 칵테일 레시피에 콜라가 들어간다면, 십중팔구 그냥 콜라가아닌 멕시코산 사탕수수 원액 콜라일 가능성이 높다.
목이 마를 때 콜라를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순간적으로 갈증이 해소되는 것 같지만 시간이 흐르면 갈증이 심화된다. 갈증이 날때는 이온음료를 적당히 마셔주자. 축구선수들이 괜히 경기중간마다 이온음료 마시는 게 아니다. 혹은 콜라는 마시고 싶지만 갈증도 싫다면 콜라를 마신 다음에 곧바로 물을 한 모금이라도 마셔서 입안을 행궈주자. 뒤따르는 갈증을 없앨 수 있다. 이는 이온음료(탄산음료만큼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물보다는 갈증이 조금 난다)에도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속설
충치의 원인이라고 잘못 인식되어 있는 음료 중 하나이다. 산도가 pH 2~3을 왔다 갔다 하기에 실험용 약품 정도 까지는 아니지만 음식 중에선 강산이며, 당이 상당량 들어있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 콜라의 충치유발지수는 약 10으로, 이는 라면이나 사과와 같다. 이는 액체이기 때문에 그냥 흘려버리기 때문... 물론 콜라로 가글을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탄산음료 따위를 마신 즉시 칫솔질을 하게 되면 치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산과 접촉되어 부식된 약한 치아에 바로 솔질하기 때문에 치아가 손상될 수 있다. 사실 새롭게 정립된 학설에 따르면 무슨 음식이든 먹은 직후 칫솔질을 하는 건 좋지 않으며, 30분 정도 틈을 두고 하는 게 좋다고 한다. 이 정도 시간이 지나면 침에 의해서 손상된 치아가 어느정도 회복되어 괜찮다고 한다. 여담으로 떡의 경우 2배인 약 20, 캐러멜, 젤리는 4배인 약 40이다.
모야시몬에서의 언급에 따르면 서구에서는 감기나 배탈 등으로 몸이 아플 때 일종의 민간요법으로 콜라를 마신다고 한다. 탄산이 소화를 돕고 당분으로 영양을 보충하는 의미. 하지만 탄산음료가 소화에 도움이 되는지는 입증되지 않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 악화시키기도 한다고 한다. 자세한 설명은 탄산수 항목을 참고.
소련의 장군이 사랑했던 투명한 콜라
콜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전세계적으로 많지만 특이한 경우가 하나 있는데 바로 소련군 원수인 게오르기 주코프. 2차 세계대전 직후 연합군들은 베를린에 모여서 회담을 가졌고 이 때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주코프에게 콜라 한 잔을 권했는데 이날의 한잔은 이후 주코프의 정신을 쏙 빼놓아 그를 중독자 수준으로 만들었다.
다만, 소비에트 연방 인민의 대영웅쯤 되는 높으신 분께서 자본주의 원쑤들의 수장 미국의 대표상품 콜라 같은걸 즐긴다는 것은 내적으로는 '인민들에게 영 좋지 않은 모범 사례'가 되고, 외적으로도 '충분히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웃기는 대표적 사례'가 되기에 충분했기에 주코프는 비밀 리에 미국 측에 특별 주문을 넣어서 '와인'이나 '보드카'처럼 위장된 콜라를 받아 마셨다고 한다. 더욱이 스탈린도 콜라를 마셔보고 맛이 뛰어난 점은 인정했으나 그런 훌륭한 음료가 자본주의 상품이란 점에 분노해서 금수조치를 때렸으므로 소련에서 콜라를 마신다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다.
주코프가 받아 마셨다는 그 콜라는 오로지 주코프만을 위해 제작된 특별한 콜라로, 병은 보드카 같은 술병을 사용하였고 콜라는 특유의 캐러멜색이 아닌 무색의 콜라였다고 한다. 주코프 사후 이 특별한 콜라는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았다고. 현재는 관련 자료가 없으나, 소련 해체 후 나중에 이 사실을 기록한 신문 기사가 남아있다.
첫댓글 한동안 홈플러스 콤비콜라가 싸서 콜라만 마셔댔습니다. 맛은 좀 떨어졌고 탄산이 빠지면 그냥 설탕물이었습니다. 매일 콜라만 마셔대고 양치질도 했더니 치아가 줄줄이 망가져서 치과에서 땜방치료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