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금속 비축량, 목표의 42% 그쳐
[광물전쟁 비축량 경고등]
반도체-2차전지 등 핵심소재 13종, 100일분 목표에 평균 42일분 확보
中 등 자원무기화로 공급망 차질땐
한국경제 ‘제2 요소수’ 피해 우려
희소금속 비축량, 목표의 42% 그쳐
희토류, 갈륨 등 희소금속 비축량이 정부가 목표로 잡고 있는 양의 42%로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중 갈등이 중국의 광물 수출 통제로까지 이어지면서 각국의 자원 확보전이 더욱 치열해진 가운데 ‘제2의 요소수 사태’가 반복되지 않도록 대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광해광업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5월 말 희소금속 13종의 평균 비축량은 42.1일분으로 집계됐다. 희소금속에 대한 정부의 비축 목표는 100일분(중희토류, 코발트는 180일분)이다. 희소금속 13종에는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 이차전지, 디스플레이 등을 만드는 데 필요한 희토류, 갈륨, 마그네슘, 리튬 등이 포함된다. 1일분은 국내 산업계가 하루 동안 쓰는 희소금속의 양을 뜻한다.
희소금속 평균 비축량이 목표치를 크게 밑도는 건 이들 금속을 사들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고 비축기지마저 포화 상태에 달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희소금속을 제때 공급받지 못해 국내 기업들이 지금 당장 피해를 보는 건 아니지만 ‘자원 무기화’가 심해져 수급에 문제가 생기면 제조업체들이 공장을 멈춰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비축량을 당장 빠르게 늘리기도 쉽지 않다. 대다수 희소금속을 중국에서 주로 수입하는 데다 일부 금속은 최근 3년 새 시장 가격이 10배 이상 올랐다가 떨어지는 등 가격도 큰 폭으로 급등락하고 있어 매입 시점을 잡기가 어렵다.
전문가들은 정부 비축량을 확대하면서 장기적으로는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 등 글로벌 광물 협력 체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연규 한양대 국제학부 교수는 “미국은 동맹국 간 광물 협력 체계를 강화하고 중국은 거대 자본을 앞세워 아프리카를 비롯한 자원 부국에 집중 투자하는 등 광물을 둘러싼 패권 싸움이 격해지고 있다”며 “과거 석유파동 때 동맹국들끼리 석유를 서로 빌려줬던 것처럼 한국도 MSP 등을 통해 동맹국과 광물 협력 관계를 형성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했다.
리튬 비축량 6일분, 코발트 12일분뿐… 자원 무기화속 빨간불
中-칠레-印尼 등 잇단 수출통제
공급 부족땐 반도체 등 생산 차질
구입예산은 1년전보다 24% 줄어
비축기지도 포화상태… 증설 시급
전북 군산에 있는 희소금속 비축기지 내부 모습. 한국광해광업공단은 조달청이 운영하는 비축기지 중 3만402㎡ 규모의 전용창고 4개통을 빌려 희소금속을 비축하고 있다. 한국광해광업공단 제공
지난해 말 정부는 글로벌 공급망 위기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희소금속의 비축 목표를 100일분(일부 희토류, 코발트는 180일)으로 두 배 가까이 확대했다. 하지만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이차전지에 들어가는 리튬 비축량은 여전히 6일분이 채 안 된다.
그런데도 올해 희소금속을 사는 데 쓸 수 있는 돈은 오히려 1년 전보다 약 24% 줄었다. 광물을 보유한 국가들이 ‘자원 무기화’를 본격화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주요 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해 만약의 경우 기업들의 생산 차질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공급망 충격 땐 6일 만에 리튬 소진
24일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광해광업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리튬 비축량은 5.8일분이었다. 정부가 목표로 잡은 비축량의 6% 규모다. 국내 기업들이 리튬을 사오는 국가에서 수출 통제에 나서는 등 공급망에 충격이 발생하면 정부가 보유한 리튬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셈이다. 리튬은 이차전지의 핵심 소재로 ‘하얀 석유’로도 불린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40년 리튬 수요는 2020년보다 40배 넘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배터리 등에 사용되는 코발트의 비축량도 12.4일분에 그쳤다. 정부의 비축 목표는 180일분이다. 업계에선 기업이 갖고 있는 광물량이 모두 소진된 후 다시 평상시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90∼100일로 보고 있다. 코발트 최대 수출국인 중국이 수출 통제에 나서면 국내 배터리 기업의 생산 차질이 두 달 넘게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갈륨의 비축량 역시 40일분으로 정부 비축 목표량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첨단 반도체와 태양광 패널용 태양전지 등에 쓰이는 갈륨은 중국 정부가 이달 3일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시킨 광물이다. 중국에서 갈륨을 수출하려면 업체가 구체적인 해외 구매자 정보를 보고하고 중국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주요 광물 보유 국가들이 광물을 국유화하는 식으로 자원 무기화에 나서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선 국가와 담판을 지어야 하는 기업의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가 비축량을 늘려 기업의 생산 차질 우려를 완화해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리튬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매장돼 있는 칠레는 올 4월 리튬 산업을 국유화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광물 자원 부국인 인도네시아는 2020년 니켈 수출을 전면 금지했고 올해부터는 구리에 대해 최대 10%의 수출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 99% 차버린 비축기지
문제는 비축량을 늘리고 싶어도 예산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올해 광해광업공단이 희소금속 구매를 위해 받은 정부 출자금은 372억3200만 원이다. 정부의 재정건전화 기조로 지난해 받았던 487억9100만 원보다 23.7% 줄어든 규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희소금속 비축 목표량을 맞추려면 희소금속 구매 예산을 1000억 원까지 늘려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산업부는 기획재정부와 함께 관련 예산 확대를 협의하고 있다.
여기다 희소금속 가격이 널뛰기를 함에 따라 매입 시점을 잡기도 쉽지 않다. 지난해 희소금속의 평균 수입단가는 t당 4687달러로 전년보다 95.4% 급등했다. 실제로 이차전지 핵심 원료인 탄산리튬의 경우 2020년 9월 kg당 평균 6달러 선이었지만, 전기차 시장 급성장에 따라 가격이 치솟으면서 2022년 11월 80달러 선을 돌파하며 1200% 안팎 급등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각국의 에너지 전환 정책에 따라 수요가 늘어나는 데다 중국 등 생산국의 감축 정책까지 겹쳐 광물 가격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며 “적정 가격을 가늠하기 쉽지 않아 광물을 사오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희소금속을 보관할 비축기지 확충도 시급하다. 전북 군산에 위치한 광해광업공단의 희소금속 비축기지는 현재 포화도가 98.5%에 달한다. 광물을 더 사서 비축량을 늘리려 해도 보관할 곳이 없는 것이다. 현재 추가 비축기지 건설을 위한 예비타당성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종배 의원은 “반도체 등 주요 산업의 생산 차질이 없도록 충분한 예산 확보는 물론이고 특정국 의존도가 높은 품목의 대체물질 기술 개발, 재자원화 등 대응 역량 확충도 같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김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