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토리네/블레인
책 소개
질병과 낙인 너머,
공동의 우울에 관한 가장 치열하고 다정한 탐구
불안과 우울의 파편을 모아
2030 여성들의 언어로 ‘우울증’을 다시 쓰다
2003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은 2017년 단 한 해를 제외하고는 줄곧 OECD 국가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 그 가운데 ‘우울증’은 자살의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꾸준히 사회문제로 호명되어 왔다. 특히 최근에는 정신질환을 진단받는 2~30대 여성이 많아지고,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높아지는 현상이 집중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정신과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당사자들의 수기가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질병을 제거하거나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가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질병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하미나 작가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모든 질병 서사는 그 자체로 귀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든 우울이 자꾸 한 사람의 경험으로만 비춰질 때, 우울증이라는 질병을 둘러싼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살피기 어려워진다. 우울증이 개인의 고통으로만 비칠 때, 그에 대한 해석은 개인의 환경과 특성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2~30대 여성들은 대체 왜 우울할까? 저자는 ‘제2형 양극성장애’(조울증)를 진단받은 당사자로서, 우울증을 앓는 2~30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아 우울증을 둘러싼 여러 질문에 당사자의 이야기로 직접 답하고자 한다. 조울증을 진단받고 살아가며 이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정신과에서 겪었던 어딘가 불편한 경험들, 여성 운동 단체 ‘페미당당’에서 활동하며 마주한 여성을 향한 폭력과 그에 맞서 싸우다 자주 분노하고 무력해지고 우울해졌던 순간들, ‘우울증 측정 도구’를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쓰며 공부했던 정신의학 지식들, 그리고 31명의 인터뷰이를 만나 긴밀히 소통하여 그러모은 이야기들. 2년에 걸쳐 진행한 이 모든 작업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은 ‘우울증’이라는 이름의 고통을 당사자들의 언어로 다시 정의해 나간다. 파편화된 우울의 조각을 공동의 경험으로 복원하여 우울증을 공론화할 수 있는 사회적 장을 마련하고, 보다 평등한 관점에서 우울증을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미국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앤 보이어는 “질병의 역사는 의학의 역사가 아니라 세상의 역사다”라고 말했다. 하미나 작가는 의학적 질병과 사회적 낙인 너머, 여성의 고통에 대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간다. 여성들이 증언해 준 고통과 폭력의 역사를 옹호하기 위해 치열하고 사려 깊게 풀어낸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은 김희경의 추천의 글처럼 “고통을 이해하는 문화를 바꿔나가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나는 모순적인 두 가지 상태를 동시에 얻으려고 애쓰고 있다. 피해를 인정받되, 피해자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이것이 내게 고통이었음을 말하되, 나를 무너뜨릴 정도의 고통은 아니었음을 말하기. 별일이 있었으되 ,별일이 아니었음을 드러내기. 일이 벌어진 것은 나의 책임도 나의 잘못도 아니지만, 동시에 나의 인생 경로 어디쯤에서 분명 나를 취약하게 만든 원인이 있었으며, 그 원인 역시 스스로 가장 열심히 탐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사랑이 구원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여전히 사랑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을 받을 때가 아니라 줄 때,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 구원의 대상이 아닌, 구원의 주체가 될 때만이 사랑은 구원이 된다. 나를 구원하는 것은 나뿐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꼭 인 간일 필요는 없다. 동물일 수도 있고, 글쓰기와 같은 행위일 수도 있다.
이 사회가 피 냄새를 맡은 상어처럼 여자들을 물어뜯으려고 달려들잖아. 어리고 취약하고 가난해서 생존에 관한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여자들한테 특히. 이런 일을 겪는 여자가 너무 많아. 그런데 세상에는 팜 파탈이 이 남자 저 남자 만나서 돈 빨아먹는 서사만 널려 있어. 가난한 여자가 온전히 자기를 지키면서 결국 어떻게 생존했는지 보여주는 자료가 없어."
내가 만난 여성들 중 누구도 우울을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냥 내 탓이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좋겠어요. 그러면 편하니까" 라고 말할 정도였다. 나를 우울하게 만든 사회를 고치는 것보다는 나를 고치는 게 더 편하고 쉽기 때문이다.
설리의 부고를 들은 날, 이곳저곳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또래 친구들의 연락이 쏟아졌다. 지금 괜찮아? 당분간 SNS나 인터넷 뉴스 보지 마. 핸드폰 끄고 자. 우리 중 누구도 그가 왜 죽었는지 묻지 않았다.
이후로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자살자를 그리워하는 편지들을 읽었다. 아주 단순한 단어로 이루어진 편지들이었다. 너무 미안해. 정말 사랑해. 너무나 그리워... 그 세 가지가 삶에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의 전부 같았다. 누군가를 내 삶에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로 인해 내 삶이 어그러질 가능성까지 껴안는 일이란 걸 알게 됐다. 내가 받을 기쁨과 사랑뿐 아니라 상처와 아픔까지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난 두려움보다 분노가 훨씬 커. 이상한 대답일 수도 있는데, 내가 제일 미쳤다고 생각해. 가해자가 진짜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또라이'여도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면 내가 이기리라는 확신이 있어."
많은 여자들이 우울증의 가장 깊은 골짜기를 지나고 난 뒤에는 우울증을 없애버리기보다는 이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기 시작한다. 이것은 자신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우리의 마지막 인사는 '또 만나요!'였다. 당사자로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다 보며 무리하지 않아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고, 또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독자의 마음으로 하루하루 기다릴 것이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을 실컷 만날 때를. 대륜
-
제목이 멋있어서 바로 빌려본 책, 보면서 울고 공감하고 화나고 불안했지만 우리 또 만나요!
우리는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하니까.
우리 죽지 말고 끝까지 살아남자.
첫댓글 이 책 재미있나 관심은 계속 있었는데..